소원

저를 발견했다면 부디 앉아주시겠습니까? 낡고 허름해 보이지만 당신의 엉덩이가 한번 닿는다고 해서 부서지지는 않을 겁니다. 오래되긴 했어도 재질은 고급이라 한번쯤 앉아볼 만합니다. 먼지야 털면 그만이고요. 거미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몸에 기생해 실을 자아내던 거미는 이사를 간지 오래거든요. 혹 거미줄이 옷에 달라붙을까 걱정된다면 저쪽에 빗자루가 있으니 가져오십시오. 먼지와 함께 멀리멀리 쓸어내면 그만이랍니다.

 

자, 준비됐으면 한번 앉아보시지요. 나무라서 딱딱할 것 같다는 편견은 버리십시오. 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워지는 법입니다. 제 예상과 달리 딱딱하다 하더라도 당신은 살이 푸짐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앉으면 무너질 것 같다고요? 너무 근거 없는 추측이라 생각되지 않습니까? 늙고 병든 저를 위해서, 이 작고 비천한 저를 위해서 단 한번이라도 선심써주지 않겠단 말씀입니까? 비록 제가 늙긴 했어도 오래전부터 묵혀왔던 외로움은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할 정도로 두툼하니, 제발 그릇된 망상은 버리십시오. 정 불편하다 싶으면 저쪽에 담요가 있으니 가져오시지요. 제가 그렇게 경직돼 보인다면 말입니다. 혹시 터무니없고 허황한 상념을 품으시는 건 아니겠지요? 가령, 제 위에 앉으면 우지끈 부서져 나뭇조각이 종아리를 찌른다든가, 몸이 수직으로 내려앉아 엉덩방아를 찧는다든가 하는 만화적 상상 같은 것 말입니다. 만약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저에게서 물러나 머나먼 여정을 떠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정말이지 아주 튼튼해 보이지 않습니까? 물론 저 스스로 심취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무너질 정도로 심각하게 낡은 건 아니잖습니까? 한 번 무게를 싣는다 해서, 한 번 엉덩이를 갖다 댄다 해서 하늘이 무너지거나 청천벽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고요?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었을지도 모른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제 몸은 제가 압니다. 초파리가 기어올랐을지언정 좀이 갉아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멀쩡히 남아있을 리 없지요. 아, 그게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진다고요? 너무 늙어서 냄새가 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저는 젊었을 때의 싱싱한 향기를 아직까지 보존하고 있답니다. 나무는 사람과 다르니까요.

 

헛된 편견은 버리십시오. 저는 살면서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았습니다. 창고 한구석에 처박혀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답니다. 언젠가 목수가 저를 내다팔려고 구석에서 끄집어낸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예약이 취소되었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도로 구석에다 박아놓더군요. 억울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문을 통해 바깥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거든요. 처음엔 몰랐는데, 창문이 어두침침한 것이 비가 오는 것 같더군요. 마음 같아서는 네 다리로 달려가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고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잖습니까.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목수가 자주 닦아주지 않아 흐릿해진 창문이 제 시야를 방해했지요. 때문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춤을 추는 풀잎도 볼 수 없었습니다. 왈왈 짖어대는 개도 형태만 희미하게 보일뿐 눈도 코도 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빌어먹을 창문을 깨고 싶어졌지요.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손이 있습니까 발이 있습니까? 입으로 돌멩이를 물어 던질 수 있습니까? 저에게 감각은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 한 창문 깨뜨리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끔씩 칼날 같은 태풍이 몰아쳐 창문이 산산조각나길 바랐지만, 강풍은커녕 미미한 바람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벽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창문은 금하나 가지 않고 당당히 서있었지요.

 

제가 왜 당신을 앉히고 싶어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저는 저 창문을 깨야 합니다. 바깥세상을 못 본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목수는 떠났고, 창고는 버려졌습니다. 저는 이곳에 홀로 남아 언젠가는 부서질 창문만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저 창문을 깨주길 바라면서, 화창한 햇빛이 날 비춰주기를 기대하면서, 들판에서 꿀을 묻히던 벌이 날아와 내 어깨에 앉기를 소망하면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밖을 보지 않으면 미칠 정도로 힘이 듭니다. 당신도 20년 동안 답답한 창고에서 갇혀 지내면 이 갈급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밤이 되면 창고 안은 칠흑보다 어두워져 초조함이 자라납니다. 아니, 초조라기보다는 두려움, 공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암흑과 공포가 범벅된 불안(혹은 절망)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저는 당신과 달리 잠을 잘 수가 없어 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야 합니다.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습니다.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평생을 보내야 합니다. 당신이 한번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서있는 것일까요 앉아있는 것일까요? 섰다면 왜 사람들은 내 위에 앉는 걸까요? 앉았다면 왜 네 발로 바닥을 버티고 서있는 걸까요? 중요한 건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대상은 바로 당신입니다. 제가 앉았느냐 앉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제 위에 앉느냐 앉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서있습니다. 다리가 아프지 않은 모양이지요? 아니면 운동을 하려는 겁니까? 왜 앉지 않는 것입니까? 제 용모가 눈에 들지 않는 것입니까? 더러운 바닥에 앉는 것보다 청결한 제 몸에 앉는 것이 위생상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앉길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그런 헛된 예측은 버려버리십시오. 이곳엔 당신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계속 그 자리에 서있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차츰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덜덜 떨리면서 식은땀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겠지요. 당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가만히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다가오십시오. 가까이 와서 저를 만져보십시오. 생각보다 부드럽지 않습니까? 나무라서 차갑고 거칠 줄 알았나요? 저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갑지는 않습니다. 따뜻하지는 않더라도 당신의 다리를 편안하게 해줄 수는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고요? 왜 당신이 앉아야만 창문이 깨지냐고요? 그게 아닙니다. 당신은 방금 전 창문을 깨뜨렸습니다. 하얀 유리가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어졌지요. 당신이 그 자리에 서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당신에게 무척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문제는 창문의 자리에 당신이 서있는 것이지요. 당신의 커다란 머리통 덕분에 은은한 햇빛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빛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군요. 그러니 당신은 제 위에 앉아야 합니다. 당신이 앉으면 나는 창문 너머의 세계를 안심하며 관조할 수 있습니다. 정 앉는 행위가 싫다면, 차라리 여기를 떠나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물러나서 나가든지 앉든지 눕든지 알아서 하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조용히 떠나가는 것뿐입니다. 물론 저를 창고 밖으로 꺼내주신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당신이 그럴 리 만무하니 이것만이라도 바랄 뿐입니다. 왜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겁니까? 무엇을 기다리나요? 누군가 여기 오기로 예정돼 있었습니까? 제가 자리를 비켜드려야 하나요?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두 발로 땅을 지탱하고 있냐는 겁니다. 당신에게 험한 말을 하긴 싫습니다. 무례하게 대항하지도 않겠습니다. 공손한 말투로 부탁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싹싹 빌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은 나를 만든 목수도, 나를 살 사람도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잠깐 창고에 들어온 사람일 뿐입니다.

 

당신도 햇빛을 보러 유리를 깬 것이 아니던가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나요?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돌멩이를 던져 창문을 깼나요? 장난이었나요?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왜 아직도 멍하니 서서 저를 응시하고 있는 겁니까? 제 몸에 뭐라도 묻었나요? 걱정 마십시오. 당신이 앉는다 해서 창문이 안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제 몸 어느 부위라도 눈이 될 수 있거든요. 제 몸은 20년이 지나도 이렇게 튼튼하지 않습니까. 망치로 파괴하지만 않는다면 10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등받이는 단단하며 다리는 꼿꼿하고 본체는 견고합니다. 당신은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마 방법을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 건 아닐 테죠? 혹 그렇다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1번, 다리를 굽힌다. 2번, 앉는다. 끝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앉는 게 뭐 대수입니까? 그냥 앉으면 되는 거지요. 제 몸은 이렇게 부서지지 않고 잘 있잖습니까. 옆에 나뭇조각들이 떨어져 있지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것들은 내 몸에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제 몸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합니다. 감각은 없어도 알 수 있습니다. 내 몸은 여느 때처럼 건강하다는 것을요. 당신의 눈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때요, 부서진 데가 하나도 없지요? 늠름하고 든든해 보이지 않습니까? 찌그러진 데도 없지요? 손찌검 당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요? 그렇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눈은 있습니다. 제 몸이 보입니다. 제 몸은 건강합니다. 전혀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흩어진 파편은 제 것이 아니라니까요. 그러니 그렇게 가만있지만 마시고, 얼른 이쪽으로 와 앉으십시오. 당신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 위에 앉는 것이고, 하나는 그냥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쉽습니다. 피곤하다면 제 위에서 쉬고 가십시오. 몇 분쯤 휴식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한번만이라도 앉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소설은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입니다. 제가 이 글을 여기 올리는 이유는 다른 작품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생님의 충언과 지적을 받고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월장원 후보에서 제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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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쵸코맛

제목 그대로 소원을 담은 작품인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김선재

* "은은한 햇빛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은은한 햇빛이 흐르는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 햇빛이 하늘을 보지 못한다는 표현은 어색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모로님이 쓴 다른 작품과 좀 다른 느낌의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좋았던 부분은 화자인 내가 자신이 서 있는 것인지 앉아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부분과 "목수는 떠났고, 창고는 버려졌습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전자는 의자에 대해 오래 생각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었고 후자는 이야기 바깥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읽은 모로님이 쓰는 글들은 늘 기존의 내용과 형식을 뛰어넘으려는 노력들이 보입니다. 그런 노력들이 사소한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 일상을 뒤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