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오정화가 라시현의 눈물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라시현이라는 인간은 여태껏 마음 여리고 바보같이 착했던 오정화조차도 인정할 만큼 냉정했다. 찌르지도 않은 선임을 날려버렸다는 죄목으로 기수열외가 된 지도 거의 1년이 다 지나가는 만큼 슬슬 포기하려던 차였다. 사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게 남들 보기에는 도려 이상할 정도로 경멸받고 있었으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그날 밤의 그 일만 없었더라면 오정화는 결국 라시현이라는 존재를 영원히 마음 속에서 놓아버렸을 것이다. 설령 그러한다 해도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서서히 쌓여 온 혼자만의 애정은 마음에 작은 흠을 남기겠지만,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 흔적이니 시간에 의해 자연히 옅어지고 끝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중대에 67기의 신병 넷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내무반 안에서 홀로 동떨어진 채 가만히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것 밖에 허락받지 못하는 오정화는 하루의 반 이상을 오로지 그녀만을 바라보며 지냈다. 그렇기에 그녀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타 대원들과 달리 누구보다 그녀의 이상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상하다. 오정화는 눈을 깜빡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에도 생기 있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더 메마르고 지쳐 보였다. 행동이 느려졌고, 후임들을 괴롭히거나 책을 읽는 대신 기수열외인 자신처럼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연달아 저질러 중수에게 불려가 맞고 왔을 때도 그저 멍했다. 삶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공허한 그 모습은 마치 속이 밀랍으로 채워진 감정 없는 인형 같았다. 유일하게 이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은 맞선임인 설유라와 함께 있을 때 뿐이었지만, 그것조차 예전과는 달랐다.

 

거기다가, 종종 눈이 마주칠 때에는 예전처럼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대신 무언가 끔찍한 치부를 들킨 것마냥 시선을 피했다. 언뜻 스쳐지나간 표정은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

 

라시현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왜, 어째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백하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은 동기에게 잠시간의 원망을 품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리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죽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였다. 한 밤중에 신고도 하나 없이 일어나서 비척비척 내무반을 걸어나간 라시현을 몰래 뒤쫓은 것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위태롭게 걸어가던 라시현은 힘겹게 서의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모퉁이에서 털썩, 쓰러지듯 주저얹았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뒤적거렸지만 원하는 게 잡히지 않는지 점점 신경질적이 되어가더니 이내 담배갑을 잡고는 던져버렸다. 약간 열려 있던 사제 담배갑에서 비싼 담배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라시현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무릎을 구부린 채 고개를 묻었다. 이상하리만치 처연한 모양새였다. 오정화는 골목 귀퉁이에 선 채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곧이어 숨죽인 흐느낌이 들려왔다. 횡설수설, 뭔가를 토해내듯 하는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울어? 운다고? 그 라시현이, 울고 있다.

 

이유는 모른다. 애초에 알 리가 없다. 제대로된 대화조차 나눠 본 적 없는 동기였다. 동기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렇지만 확실히 같은 기수로 입대한 최고 엘리트. 그게 라시현이었는데.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낙옆을 밟았는지 조용한 자대 안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화들짝 놀란 라시현이 고개를 들었고, 이내 둘의 눈이 마주쳤다.

 

울음기가 가득한데다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라시현. 그리고 당황한 표정의, 그러나 멀쩡해 보이는 자신. 상황 없이 누가 보면 명백히 라시현 쪽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 너, 왜 따라왔어?"

 
정적 속 분위기를 깬 것은 약간 잠긴 라시현의 목소리였다. 오정화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동안 당해왔던 온갖 종류의 폭력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지만, 그래도 이상하리만치 용기가 들었다. 오정화는 한 발자국,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라시현에게로 다가갔다.

 
"오지마."

 

"-싫어. 나한테 명령하지 마."

 
떨리는 목소리었지만 확연한 의지가 담겨 있어, 이번에는 라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실 의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투가 어떻던, 어조가 어떻던, 지금 두 명의 뇌리에 박힌 것은 단 하나였다.

 

기수열외 오정화가 상경 라시현의 말을 거부했다.

 

아, 아, 어떻게 해야 할까. 괜히 말했나? 뒤늦은 후회와 공포에 오정화가 도망치려고 할 때쯤 라시현의 표정이 웃는 듯 우는 듯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에 몸이 굳었다.

 
"… 그래, 안 할게. 명령."

 
그러나 연이은 말에 둔탁한 통증이 골을 울렸다. 인간은 지나치게 충격적이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겪으면 순건적으로 뇌의 활동을 정지시킨다는 그것, 그 사건 이후로 다시 경험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라시현이 꼬리 내린 강아지마냥 가만히 있자 슬슬 용기가 생겨, 오정화는 그 앞에 라시현과 비슷한 자세로 쭈그려 앉았다. 꺼리는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일말의 희망이 섞인 몸짓이었다.

 
"이상해."

 

"뭐가."

 

"시현이 너."

 
돌아오는 퉁명한 말투에 오정화는 라시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 곧은 시선에 일순간 흔들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난 언제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을 또라이 새끼잖아. 너한테는. 아니, 너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야. 그냥 다들 그렇게 보잖아. 그렇지?"

 

"-"

 

"나보고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어느날 깨 보니까 여기였단 말이야. 난 입대하려면 한참이나 남았었다고! 그런데 다들 날 싫어해.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대체 왜! 이럴 거면 그냥 그 상태가 나았어, 시발…!"

 

"시현아."

 

"그냥 죽어버렸이면 좋겠어. 아하하, 어차피 죽어봤자 좋아할 사람이 더 많을 거 아냐. 너한테도 좋을 거 아냐. 난 그런 인간인데. 하, 하하하…"

 

"그건 아니야!"

 
나, 난. 네가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어. 기묘한 확신이 담긴 그 말에 라시현은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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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르지도 않은 선임을 날려버렸다는 죄목으로 기수열외가 된 지도 거의 1년이 다 지나가는 만큼 슬슬 포기하려던 차였다." – 주어가 '라시현'인지 '오정화'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 목적어도 없는 문장입니다. 물론 앞의 문맥을 통해 그것들을 생략해도 좋은 문장도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듯 합니다. * "사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게 남들 보기에는 도려 이상할 정도로 경멸받고 있었으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 도려-> 도리어, 오히려. 무슨 포기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상황이 경멸을 받는 것인지 '라시현(혹은 오정화)'가 경멸을 받는 상황인지 불분명합니다. * 이 작품을 두어 번 읽었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요. 지금 라시현과 오정화가 있는…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