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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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덥던 밤

한 여름밤의 소리가

정적을 깨우던 때

갈라진 침묵의 틈 사이로

물 밀듯 밀려와

별 사이를 가로지르며

온 하늘을 뒤덮던 것은,

억눌린 슬픔이

마침내 달의 부스러기가 되어 빛날 때

하나 둘 글썽이던 청춘은,

어둠 깊숙한 곳에

스며드는 풀뿌리

피어나는 붉은 꽃

한 떨기 영혼

그것은

당신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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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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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며칠이지?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날짜를 헤아렸다. 23일? 아니 24일이던가? 이제는 날짜마저 가물가물했다. 어제가… 어제는 또 며칠이었지? 요즘 들어 부쩍 날짜를 잊는 일이 잦아졌다.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날짜 하나는 무리 없이 헤일 수 있었던 그녀였다. 달력을 보지 않고도 날짜를 맞추는 것. 그녀의 몇 안 되는 일과이자 매일 같은 삶을 사는 그녀에게 그나마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온통 누렇게 변한 달력에 앞에 서고야 말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밤새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그녀의 손목은 두터운 솜이불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너무 가녀렸다. 손목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군데군데 바느질이 뜯어진 이불에서는 솜뭉치들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었다. 툭툭 튀어나온 모양새가 영 꼴 보기 싫었으나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달력만큼 누렇게 변한 이불에서는 죽음의 향기가 났다. 제일 마지막에 빤 지가 언제였더라. 아니, 그 전에 빤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그것을 덮고 자는 수밖에는 없었다. 24일. 오늘은 24일이다. 12월 24일.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무릎 사이로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무릎이 시렸다. 무릎이 시려오자 팔목, 발목까지 시큰거리고 마침내 바람은 코로 밀려 들어와 온 장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가스가 끊겼나? 방 안은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방바닥이 차가웠다. 마른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었다. 회색과 흰색의 머리카락이 한줌 모인다. 12월은 아무래도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마른기침을 한다. 벌써 몇 달째 지속되고 있는 기침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던 약도 점점 떨어져 가는데. 걱정의 빛이 일순 어린다.
그녀는 겨울에 외출하는 것을 꺼렸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람이 그리워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주름이 깊이 박힌 손으로 현관문을 꼬옥 쥐고 비척비척 낡은 신발을 꺼내 신었다. 그녀는 새 신을 하나 사 신고 싶었다. 그나마 걸친 옷이라고는 접때 아들이 사다준 외투뿐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날이 추운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따라 꼭 누가 부르는 것 마냥 밖으로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별 망설일 것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찬 공기가 얼굴에 정면으로 들이닥친다. 폐부 깊숙이 겨울 공기를 채운 그녀는 살금살금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집은 달과 몹시 가까웠다. 월훈이 가득한 보름달이 뜨는 밤에 손을 내밀면 꼭 달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창문 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올 때면 으레 난쟁이를 떠올렸다. 달에 종이비행기를 날린 난쟁이를. 계단 하나하나를 내려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퍽 조심스러웠다. 한 걸음 내딛고 한 번 숨 쉬고, 내딛고 숨 쉬고를 오래 반복하고 나서야 집 조금 밑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무릎이 몹시 시렸다. 그 잠깐의 걸음에도 숨이 차서 결국 벽에 손을 짚고 숨을 골라야 했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숨 한 번, 한 걸음, 숨 한 번, 한 걸… 그녀의 몸이 바닥과 만난 것은 순식간이었다. 바닥이 얼어 있었던 탓이다. 가녀린 몸뚱어리가 낙엽처럼 바닥을 굴렀다. 머리가 띵하니 아려온다. 온 몸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추운 날 기억 속에서 빠져 나왔다. 그 날을 떠올릴 때면 으레 방금 넘어진 것처럼 몸 전체가 아파오는 것이다. 아마 그 때 병원비가 깨나 나왔을 것이다. 그녀는 약이 다 떨어질 때 까지 최대한 버텨보기로 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입맛이 통 없다. 밥을 차려먹을 기운조차 나질 않아서 그녀는 24일을 되새기며 찬 바닥에 앉았다.
24일… 24일. 어쩌면, 감기를 앓게 될지도 모르겠다. 잠드는 시간이 길어졌다. 찬 바닥에서 오랜 시간 잠을 자면 감기에 걸릴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별 수가 없었을 뿐이다. 힐… 힐소태이? 요즘 아파트 이름은 참 어려웠다. 그녀는 아들이 살고 있는 그 아파트에는 난방이 잘 되고 있을까 문득 떠올렸다. 잠자리만 바꿔도 금세 감기에 걸리던 아이였다. 따뜻하게 지내야 할 텐데… 날이 추워지고 길이 얼면서 성당에 나가는 일도 뜸해졌다. 그럴수록 그녀는 묵주를 쥐고 눈을 감은 채 더 열심히 기도할 뿐이다. 기도 역시 몇 안 되는 그녀의 일과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녀가 가장 크게 의미부여를 하는 일 일지도 몰랐다.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가난한 사람이 살게 된다는 천국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녀는 문득 자신이 가게 될 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했다. 부자가 지옥에 간다면 가난한 자는 분명히 천국에 가리라. 가장 낮은 사람에게 해준 일이 나에게 해준 일이다. 예수님이 그랬다. 더 낮은 사람. 더 낮은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그렇다면 내가 예수가 아닐까? 실없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살풋 웃는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오늘이 며칠이더라. 분명 아침에 달력을 봤는데. 12월, 아, 12월 24일이다. 내일이면 예수님이 태어난다. 마구간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곳에는 예수님이 있다. 그녀는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온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항상 낮았다. 가장 높은 곳에 사는 가장 낮은 자. 그것이 그녀였다.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여전히 배는 고프지 않다. 배고플 기미도 없다. 통 입맛이 없고 식욕도 없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건 언제였더라? 반찬으로는 무얼 먹었지? 우리 집에 반찬이 있었던가? 이곳이 내 집인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 생각이 났다. 그 사람들, 내일은 올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머무는 잠시 동안은 진심으로 행복했던 것만 같다. 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집 안에 온기가 가득했다. 나를 엄마라고 불렀는데… 그 사람들이 그리웠다. 사람이 그리웠고, 온기가 그리웠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겨울이라 해가 짧다. 몇 가지의 할 일을 하다 보면 금세 어둠이 진다. 그녀의 일상은 그렇게 반복되었다. 그녀는 차라리 오랜 잠을 자고 싶었다. 악에서 구하소서… 묵주를 쥔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은 그녀의 손에 깊이 자리 잡은 주름 속까지 파고들었다. 아멘… 아마도 오늘 밤에는 외투를 입고 자야 할 것 같다. 내일 날이 밝으면 그때는… 나가봐야 할지도 모른다. 내일 날이 밝으면… 외투를 입었다. 곧 있으면 몸이 데워질 것이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오랜 잠이나 잘 요량이었다. 내일 그들이 오면 날 깨워 주겠지… 내일 날짜는 무리 없이 셈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야, 내일은 크리스마스니까…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계단을 올랐다. 하도 걸어온 탓에 숨이 차 헉헉거린다. 이 동네는 늘 올 때마다 힘들다. 그들은 익숙한 듯 그녀의 집 앞에 섰다. 벌써 꽤 오랜 방문으로 익숙해진 덕이다. 계세요? 불투명한 문을 콩콩 두드린다. 창문이 덜그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문 좀 열어주세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깊은 잠을 주무시나? 깊은 잠… 문득 겁이 난 그들은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린다. 싸늘한 정적이다. 낡은 문은 쉽게 뜯겼다. 참, 집 안에 생명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낡은 솜이불, 누런 달력, 몇 가지의 살림살이. 25일을 세지 못한 차가운 여인이 누워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녀의 얼굴을 한참 바라만 보았다. 하얀 입김을 훅훅 뿜어내는 그들은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겨울이라 다행인 것이다.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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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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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은 마지막까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투신했던 곳에 경찰 몇 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그것도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 때 뿐이었다. 장례식은 일찍이 치러졌다. 엄마는 거의 쓰러질 뻔 했다. 아빠는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걸 평생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어 알 수 없는 위화감을 조성했다. 설날과 같은 큰 잔칫날 한두 번 만나고 말았던 먼 친척들까지도 자리했더라. 간간히 친구들의 얼굴도 보였다.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교복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 친구들은 되레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볼 때에는 속에서 거북한 것이 계속 올라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일종의 부러움. 혹은 열등감이었으리라. 꼴사나운 짓을 한 것이다. 나는 그 곳에 오래 있지 않았다. 어쩌면 오래 존재할 수 없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내 사진을 둘러싼 꽃의 향기가 너무 독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향의 냄새가 자극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는 사진 속의 나를 남 보듯 바라보았다. 사실 남인 것처럼 보였다. 웃고 있는 내 모습은 참 낯설었다. 넌 누구니. 누군데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내가 투신한 다리를 지나가는 차들은 여전히 빨랐다. 그들은 모두 앞만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바쁜 인생이었다. 나의 몸은 검은 물 아래에 묻혀 있었다. 물빛이 너무 어두워서 나조차도 날 볼 수 없었다. 물속에 있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꽤나 부패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 손가락-혹은 발가락-은 물고기 밥이 되어 온전치 못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눈은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물에게 먹혔으니 물의 내장이 날 모조리 소화시켰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내가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다. 사람들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의 나는 온전한 모습이었으면 했다. 나는 다리 위를 걸어야 했다. 하늘을 나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었다.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 소설책 영화의 내용은 모두 틀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 나는 집에 들렀다.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무엇 때문에 망설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막연하게 겁이 났을 뿐이다. 엉망이 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을 대단했던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곧 집으로 들어갔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거실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 차가운 공간에서 엄마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평범한 거실에 엄마 혼자 덩그러니 떼어다 놓은 것만 같았다. 엄마는 먼지를 보려는지 허공에 공기를 세려는지 한참을 텅 빈 눈을 하고 어딘가를 보았다. 그 시선의 끝은 너무 흐렸다. 엄마는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보는 것이다. 엄마의 잠금 화면에서는 내가 엄마와 함께 웃고 있었다. 꼭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제주도에 갔었는데. 하늘이 청명하던 날이었다. 어쩜 구름이 한 점도 없니. 엄마는 내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 하셨다. 풍경을 찍으라니까.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툴툴거려도 내 사진만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엄마는 사진을 보며 그렇게 흐뭇해 하셨다. 뭐가 그리도 좋으셨는지. 본인의 사진은 몇 장 없이 전부 내 사진이었음에도 엄마는 웃었다. 사진은 유채꽃이 한창 이었던 들판에 머무른 내 기억을 어렴풋하게 상기시켰다. 그 사진은 내가 나온 사진 겸 몇 장 안 되는 엄마가 나온 사진이었다. 엄마는 황급히 핸드폰을 껐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는 나와 엄마의 얼굴이 까맣게 사라졌다. 엄마의 눈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투박한 엄지손가락이 핸드폰 화면을 쓸고 지나갔다. 그때에 나는 내 어깨가 불에 덴 듯이 뜨겁게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있지도 않은 어깨가 타버리는 것만 같다. 고통이 생생하다. 있지도 않은 어깨. 그래서 더욱 아팠다. 핸드폰을 끈 엄마는 내 모습을 다시 보기가 겁이 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테니까. 그러나 나는 엄마가 곧 다시 핸드폰을 켜 그 사진을 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엄마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망가질 때 까지 북만 치는 원숭이 인형 마냥. 엄마가 꼭 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화면 속 엄마와 나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어깨의 통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는 집에서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썬팅이 짙게 된 틀 안에서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 샤워를 하는 듯 물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고양이는 시끄럽게 울었다. 자동차 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귀를 막아야 했다. 그럼에도 온갖 소리는 내 영혼을 뚫고 들어왔다. 육체가 사라지자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오늘도 거리를 걷고 직장에서, 학교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발걸음이 닫는 모든 곳에서 타인의 아픔을 몸에 묻혔다. 세상이 어둠에 물들 때 즈음 집에 오면 뜨거운 물을 틀고 타인의 아픔을 씻어내는 것이다. 내일의 아픔을 준비하며. 일순 내 세상이 흔들렸다. 이제는 있지도 않은 두 눈이 몹시 시렸다. 마음만 먹으면 두 손이 눈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개골 깊은 곳에 눌어붙은 슬픔을 끄집어내어 눈으로 뽑아내면 더 이상 시리지 않을까? 살아있을 적 내 영혼이 육체 속에 숨어있던 자리에 물고기가 들어찬 것일까? 육신이 사라지고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학교였다. 그 사이 나는 새삼 이승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는 조금 기울었다. 내 책상에는 흰 꽃 두어 송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수업시간이 영 재미가 없어 시간 죽이느라 책상 오른쪽 모서리를 커터칼로 긁어 만들어낸 상처는 여전했다. 몰래 그려놓은 그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연필로 그렸던 탓에 색이 조금 옅어졌을 뿐이다. 그 낙서를 두고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어떤 기분도 느낄 수 없었다. 죽으면 이렇게 다 무감각해질까. 기분이 좋아지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낯설었다. 나는 그 책상이 빠른 시일 내로 치워졌으면 했다. 죽은 사람 책상 교실에 있어 봤자 분위기 흐리는 것 밖에 더 하겠어. 그래. 이런 건 빨리 치워버려야지. 그렇게 계속 되뇌었다. 속마음이 그렇지 않았던 탓이다. 내가 쓰던 책상이 이곳에 있으면 자꾸만 미련이 생길 것 같았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그런 마음이 자꾸 들면 그때에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지 못하기에. 빈 교실에 가만히 있으니 이 자리에서 수업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 그곳에 있었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선생님 말씀을 듣고, 샤프로 무언가를 적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교복을 입을 수도 샤프를 들 수도 없다. 애당초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없다. 교실에 들어찬 책상 중에 날 위한 책상은 없었다. 내가 앉던 책상조차도 이제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속한 세상이 다른 사람들의 세상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 느껴질 때 즈음 교실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곧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항상 이맘때면 아빠가 돌아왔다. 그러니 지금 집에는 아빠와 엄마가 같이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아빠는 으레 술을 마셨다. 나는 아빠가 얼큰하게 취한 모습이 좋았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졌다. 그러니까, 이만한 사탕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니까. 막걸리 한 두 사발을 들이키고 나면 아빠는 으레 어릴 적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같았다. 늘 왼손 엄지와 검지로-아빠는 오른손 검지가 없다- 동그라미를 만들며 내 앞에 내밀었다. 한 번은 밤에 할아버지가 아빠를 업고 논두렁을 건널 때였어. 잔치에 가셨었나 봐. 그때도 술에 취하셨는지 비틀비틀 걸어가시는데 아빠는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재밌는 거야. 꼭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이. 휘청휘청 거리며 겨우 다 건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니까. 술에 취할 적마다 한 이야기니 나는 수백 번도 넘게 그 이야기를 들은 셈이다. 그래도 난 항상 처음 듣는 것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꼭 어릴 적 아빠의 얼굴이 보여서 차마 이야기를 끊을 수 없었다. 집안은 여전히 싸늘했다. 온기가 돌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불을 켜는 것을 잊은 것일까? 아니, 엄마 아빠는 불을 켤 줄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둠이 드리워지는 이 집 안에 그리 계실 리가 없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떠났을 적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숨겨 놓은 양말도 그대로 있었다. 내 방을 치우다 엄마가 그걸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웃을까. 짜증을 낼까. 울까. 문득 엄마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아직 엄마는 내 공책을 펼치지 않았다. 그 속에 껴놓은 편지가 그대로 있는 까닭이다. 만약 그 편지를 읽는다면 엄마는 그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엄마가 울 것임을 알았다. 때문에 그때에 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거실이 환해지자 내 방은 아까보다 더 짙은 어둠에 잠겼다. 아빠는 막걸리를 마셨다. 벌써 두어 잔이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리지 않았다. 아빠는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계속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우세요, 아빠. 아빠는 자꾸만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다.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몇 년 전에 사라진 그 손가락이 그렇게 아프다고 했다. 그 고통에 잠을 못 이루겠다고 계속 울었다. 어제도 자다가 깼어, 그놈의 거지같은 손가락 때문에. 예전에 사라졌을 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요즘 날이 갈수록 더 아파져. 계속, 계속. 그러고 보니 아빠의 수염이 참 많이 길었더랬다. 이제는 아무도 아빠의 수염이 따갑다고 불평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아빠는 왼손으로 뭉툭하게 밑동만 남은 오른손 검지를 꼭 쥐고 계속 울었다.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집에 머무를 수 없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온 세상이 어두웠다. 속이 뜨겁고 아프고 한 것이 꼭 매운 것을 먹은 것만 같다. 혀가 고통하기 때문에 느끼는 게 매운맛이라는데 혀도 몸도 없는 나는 대체 무엇으로 매운 맛을 느끼고 있을까. 무엇이 속에서 이리도 아프게 차오르는 것일까. 나는 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거지? 나는 집을 등진 채 걸었다. 거실에서 나오는 빛이 내 뒤로 어른거렸지만 땅바닥에 내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통과한 빛은 그대로 길 위에 쏟아졌다. 이승에서 나는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있는데도 없는 존재였다. 소리는 영혼을 통해 들어왔다. 내가 지금 듣는 울음소리가 아빠의 울음소리가 아니기를 바랐다. 아빠의 손가락은 앞으로 얼마나 오래 아플까. 엄마는 앞으로 얼마나 핸드폰 껐다 켜기를 반복할까. 거리의 차들은 아직도 빠르고 가로등에는 노란 불빛이 들어오고, 담벼락 위에서 길고양이가 숨죽여 울면 음식 냄새가 곳곳으로 스며드는 저녁. 세상은 이다지도 잘 돌아가는데 나의 세상은 숨이 죽었다. 참, 있지도 않은 마음이 지독히 아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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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물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한 달 전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물을 좋아하거나 수영을 배웠던 것도 아니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열차를 타고 창문 밖으로 출렁이는 물을 마주한 순간 충동적으로-충동적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 열차는 더운 바람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열차 안이 너무도 갑갑해서. 그래서 뛰어들고 싶었던 것 일수도 있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도 하지. 침대에 누운 그 순간까지도 물의 잔상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물결이 꼭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고 싶었다.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물에 들어가고 싶어. 그 속에 안기고 싶어. 그리고 아마 그날 밤에는 물고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는 물고기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가방을 여는 순간 물고기가 튀어나와 교실 바닥에서 퍼덕거렸다.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요동치는 물고기를 앞에 두고도 선생님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것은 같은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앞만 보고 있었다. 가엾은 물고기는 마침내 몸부림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때에 나는 그 물고기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도 북어지, 너도.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급식으로는 모래가 나왔다. 바닷가 앞에 있는 모래사장에서 한 움큼 퍼담아 온 것 마냥 사각거렸다. 다들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 혀에서 느껴지는 까끌까끌 거림과 잇새에서 느껴지는 모래 특유의 사각거림. 이것이 모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모래인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것을 먹었다. 어떤 때에는 모래와 더불어 생선이 나왔다. 그럴 때면 급식을 모조리 버렸는데, 물고기들의 절규가 들렸기 때문이다. 거대한 수산시장 한가운데 서있는 것만 같았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바다로 가고 싶어. 물로 돌아가고 싶어. 물고기들의 절규를 외면할 때면 으레 물을 마실 뿐이다. 한 컵 두 컵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에 배 안에는 바다가 담기고 만다. 바다를 가득 품고 있으면 기분이 묘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퍽 좋아서 가끔은 일부러 내 안에 바다를 만들곤 했다. 그 바다는 오래 머물지 않아 곧 나는 다시 사막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어제 우리 반에 인어가 전학 왔다. 인어를 보았다. 인어를. 인어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은 물 밖으로 나온 탓이리라. 나는 자진해서 인어의 뒤에 섰다. 인어야, 인어는 말이 별로 없었다. 인어야, 인어야. 응. 물속은 어때. 조용해. 얼마나. 귀를 꼭 막아봐. 응.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그럼 그때 눈을 감는 거야. 그리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고 있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넌 깊은 바다에 왔어. 바다에는 빛이 없니. 너무 깊어서 빛이 들어올 수 없어. 그럼 넌 앞을 어떻게 보고. 인어잖아, 나는. 말갛게 웃는 그 웃음소리가 나를 감싸고돌았다. 물방울들이 웃음소리를 담아내어 수면으로 모두 떠올랐을 때 눈을 떴다. 인어는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바다는 어땠어. 예뻤어. 무척이나. 인어는 모래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종종 햇볕을 쬐고 싶어 했다. 바싹 말라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그렇게 무모하게 오래 있지는 않을 거야. 햇살 아래에 있으면 인어의 피부는 하얗게도 빛났다. 아마 내가 보지 못하는 빛나는 비늘들이 속속들이 숨어 있는 탓이겠지. 인어야, 오늘 선생님이 그랬어. 너희들은 꼭 진주조개가 되라고. 진주를 품으라고 했어. 그런데 이상하지 않니. 모래를 삼킨 조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진주를 만드는데, 정작 고통의 산물을 가져가는 건 조개가 아니야. 조개에게 물어볼까. 진주 만들어서 좋냐고. 아마 아니라고 할걸. 이때에 인어는 내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있잖아. 왜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 주는 것을 합리화하는지 모르겠어. 나에게 진주조개가 되라고 하는 건 곧 상처를 주고 그 고통의 산물을 가져가겠다는 게 아닐까. 인어가 말했다. 선생님들은 북어라서 그래. 북어? 응. 북어. 막대기 같은 생각에 시선도 없어. 다만 우리에게 더 먼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뿐이야. '그곳'에는 본인도 가보지 못 했으면서.

나 자꾸 숨이 찬다. 인어가 떠나기 며칠 전 내게 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눈에 띄게 야위었더라. 바다로 돌아가려고, 내 물음에 인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인어가 돌아갈 것을 알았다. 내가 바다로 돌아가면 넌 나를 잊을래. 인어의 시선이 섧다. 이 세상에는 인어가 꼭 필요할까. 모두의 관심을 받는다는 게 전혀 기쁘지 않아. 나는 왜 인어일까. 왜 인어여야만 했을까. 인어는 울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왜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섣불리 이야기하면 인어가 더 아플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인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비겁하게도 눈을 감았다. 이 세상에 인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날 이후 인어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인어의 흔적은 잊혀 갔고 어렴풋이 남은 향기조차도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인어의 책상 위에는 하얀 꽃 두 어 송이가 자리했다. 어쩌면 인어가 보내는 눈물일 수도 있겠다. 하얀 눈물이 모여 꽃이 되었다. 인어의 마지막 숨이 닿았던 그 자리에 꽃이 핀 걸 보면 기뻐할까. 인어가 사라진 뒤부터 가방에서 물고기가 나오는 일은 줄어들었다. 물고기의 절규도 희미해졌다. 손이 뻣뻣해짐을 느끼면서, 눈에 먼지가 껴 흐려진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인어를 잊었다. 세상에는 인어가 꼭 필요할까. 인어는 세상에 꼭 필요할까. 인어가 세상을 원하는 걸까. 세상이 인어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세상은 인어를 원하지 않을까. 인어는 세상을 원하는데 세상이 인어를 거부하는 걸까.

달이 유난히도 밝던 날에 나는 잊고 살던 인어를 추억했다. 모래 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저 멀리서 네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인어야. 나 세상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 뿌연 세상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아. 달과 별이 있는 너 있는 그곳에 날 데려다줘. 인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인어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내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인어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나는 꼬리가 생기고 아가미가 생겼다. 한 마리의 북어가 되어 너를 추억하다, 이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난쟁이가 달을 향해 비행기를 날렸던 것처럼 나는 물 위에 뜬 달을 향해 나를 던졌다. 물이 달려들어 내 살갗을 찢어놓는 것만 같았다. 혈관이 수축하고 귀가 먹먹하고, 손과 발이 뻣뻣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코로 입으로 물이 밀려들어 오고 폐 안에 찬물이 들어차는데. 그런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사는 것 같았다. 먼지가 말끔히 씻겨 나간 기분이었다. 아마 내가 가라앉으면, 인어가 날 데려가겠지. 더운 바람이 가득 찬 열차 밖으로 나와서, 북어들이 가득 찬 교실을 떠나서 차가운 물의 품에 안겼을 때. 그때에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이 되었다.

인어야,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북어가 되라고 하잖아.

사람으로 살고 싶어.

사람으로 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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