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솔
계란말이 [1]

아이야 추웠다, 계란말이를 먹고 싶었다 닭도 오리도 아닌 ​ 희끄무레한 무게에 짓눌렸고 짓눌릴 줄 알았기에 달걀로 남았다 껍질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브락사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 움직이는 것들 존재하는 것들에게 그냥 그렇게 있으라 말했다 이것과 저것 저것과 이것은 떨어질 수 없으니 이전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낫고 반짝이는 절망은 빛을 잃어간다 ​ 그럼에도 살겠다면 어떨까 장담할 수 없을지라도 계란이 되고 싶은 것 기꺼이 깨어지는 것 돌돌 말려지는 것 다른 이를 데우는 것 그리하여 추워지는 것 ​ 그냥 그렇게 살아, 더 할 말은 없다 종이 치면 일어나고 종이 치면 자리에 앉는 것은 언제나 깨어지는[…]

계란말이
/ 2021-06-15
아라솔
당신의 시를 읽고

언어가 쏟아진다 산산히 부서지며 밀려온다 나는 물살에 휘말린다 ​ 어느덧 바다 위 반짝이는 것들이 일렁인다 바다는 별을 품을 수 있어도 별은 바다를 품을 수 없으매 영원코 이르지 못할 별을 주워담으려 다시금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 별이 별이라면 모두 같은 별이겠지만 그 중 너는 특히 아름다웠다.

당신의 시를 읽고
/ 2020-11-19
15 질문요! [2] 아라솔 2020-09-26 Hit : 190 아라솔 2020-09-26 190
아라솔
왕창 울다 [2]

그날은 왕창 울었다.   종업식 전날이었고 담임선생님께선 장광설을 늘어놓으셨다. 이제 공부해야 해. 인생이 바뀐다. 선생님께서는 진실을 이야기하실 테다. 선생님께서 거짓말을 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순간 머릿속에 지난날이 스쳤다. 나는 살기 위해 공부했다. 나 그런 인간이었어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인간이었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혼자서도 열 시간 얼마고 공부하던 그런 아이였어요. 미치도록 억울했다. 다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J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그는 내게 있어 이전의 나를 확인시켜주는 존재였다. 중학교 때 모든 시절을 함께한, 그러나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하튼[…]

왕창 울다
/ 2020-09-26
아라솔
인생의 계절 [2]

1.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논스톱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치마가 퍼덕거립니다. 교실로 뛰어들자마자 종이 칩니다. 8시 30분입니다. 아무 의자에나 걸터앉습니다. 너 괜찮아? Y가 묻습니다. 씩 웃습니다. 얼굴이 시뻘겋잖아! 나는 Y에게 한번 더 웃어보입니다.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늘이 보입니다. 파랗습니다. 나뭇잎이 한창 푸르게 익어갑니다. 이따금 화장품 파우치가 허공을 가릅니다. 내 파우치 좀 던져도. 그래, 날아간다. 받았다! 야, 이번에 방탄 앨범이.. 말소리. 이제 들립니다. 교실이 소란합니다. 교실의 컴퓨터 스피커에서 최신가요가 쿵쾅이고 이름모를 벌레가 찌르르거립니다. 눈을 감고 소리의 흐름에 나를 맡깁니다. 아? 이제는 아이들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인생의 계절
/ 2020-09-26
14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3] 아라솔 2020-08-27 Hit : 161 아라솔 2020-08-27 161 13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5] 아라솔 2020-08-26 Hit : 238 아라솔 2020-08-26 238
아라솔
성숙과 자유 [2]

성숙과 자유 -은희경 저. <새의 선물>, 문학동네, 2014.를 읽고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숙해질 필요가 없었다.’ 이 소설은 강진희의 대담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성숙을 알을 깨고 나오는 새에 비유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 신을 향해 비상한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나는 진희의 선언이 놀라웠다. 성숙이란 신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그것은 모든 것의 본질이다. 스스로가 아는 것을 넘어서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끝이 없다. 사람은 어떻게 살던 자신만의 주관을 갖기 마련이다. 성숙은 이를 끊임없이 넘어서는 과정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숙을 끝마쳤다고[…]

성숙과 자유
/ 2020-08-26
아라솔
남한산성, 삶을 향한 길 [2]

남한산성, 삶을 향한 길 -김훈 저. <남한산성>, 학고재, 2007.을 읽고     ‘남한산성’은 역사소설이다. 보통 소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씌이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청나라의 침략에 한양은 일찌감치 함락되고,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떠난다. 임금은 46일간 성 안에서 버티며 고전한다. 신하들은 청에 항복할 것인지 맞서 싸울 것인지를 두고 싸운다. 추운 겨울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백성들은 성을 탈출하려 애쓰고, 조정은 그들을 잡는다. 이 책은 삶의 기록이다. 죽음은 담담하게 묘사된다. 정오품 교리가 심장이 터졌다. 누구누구가 죽었다. 죽음은 한 문장으로 끝난다. 수없는 삶과 죽음의 기록 속에서 죽음은 한 문장에 지녀야 할 것이다. 죽음은[…]

남한산성, 삶을 향한 길
/ 2020-08-26
아라솔
진리는 없다 [1]

<<진리는 없다>> -이케우치 사토루, 핵을 넘다, 나름북스, 2017.을 읽고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신과 진배없다. 인류는 과학을 이용해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올랐다. 과학 기술은 멈춤 없이 진보했다. 마침내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기술들이 탄생했는데, GMO, AI, 원자력 발전 등이 그 대표격이다. 이로 인해 과학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들이 발생했다. 미국의 핵물리학자 앨빈 와인버그는 이러한 속성을 가진 과학 기술을 ‘트랜스 과학’이라고 칭했다. (106p 참조) 트랜스 과학 문제를 기술로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자력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들은 원자력 발전을 통해 이익을 취하며 원전 기술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한다. 저자는 이들을 ‘원전이익공동체’라[…]

진리는 없다
/ 202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