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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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민들레는 꽃이 핀 것만으로 기뻤다.
보도블럭 사이를 비좁고 피어난
그저 작은 민들레뿐이어도 충분했다.

 

작은 민들레 옆에는
반 뼘 정도 큰 민들레가 살았다.
진작에 피었던 꽃은 벌써
흰 솜털로 변화하는 중이었다.

 

작은 민들레는 질투를 꼭꼭 씹어 삼켰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나도 인정받고 싶어.
나도 칭찬받고 싶어.
나도……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작은 민들레는 질투를 밑거름 삼아 자라났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어느 날.
큰 민들레는 어린 아이의 손에 꺾여
제 씨앗들을 바람에 실려보냈다.
작은 민들레는 말라비틀어진 채
어린 아이의 발에 밟혀 씨앗들을 토해냈다.

 

작은 민들레는 짓밟혀 부서진 씨앗들 사이에 숨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씨앗을 보며 이야기했다.
아이야,
우리는 질투 속에서 피어났고
질투 속에서 태어났단다.
독은 아무리 삼켜도 삼킬 때는 독인 줄 모르지.
작은 민들레로도 괜찮단다.

 

어린 씨앗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람에 실려가는 큰 씨앗을 보며
작은 질투를 마음에 묻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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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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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는 순간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막 글을 익혔을 무렵. 그의 아비는 그에게 종이 한 다발을 건넸다. 글에 친숙해야 한다는 교육방침 탓이었다. 그는 붓을 들어 자신의 일상을 문자로 그려냈다. 일기, 그것이 그에게 있어 첫 문학이었다.

 

그의 작은 손에 잡힌 붓은 종이 위에 제 솜씨를 맘껏 뽐내었다. 그의 붓 밑에선 평범한 일상조차 특별한 추억이 되었으며. 잘못하여 혼난 일조차 반성하겠다는 의지와 엮어져 훌륭한 일기로 변했다.

 

그가 아직 앳된 소년일 때. 그의 일기는 이미 책 세 권 분량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의 세상은 글이었고, 그의 하루는 소설이며, 그의 삶은 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일기 속에서 그는 홀로 주인공이었다. 그의 삶, 그의 이야기, 거짓 하나 없는 참된 이야기. 그의 시점에서 쓰인, 그만이 주인공인, 그는 일기를 자신의 소설이라 부르곤 했다.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의 소설은 그의 일기였다.

 

그가 철이 들었을 때.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양에 온몸이 까맣게 물드는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에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삼아 가볍게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사는 마을은 산골의 작은 마을이었으니. 그는 붓을 먹물에 적셔 종이에 소문을 적어냈다. 이상한 소문 탓에 어린아이들, 자신조차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소설의 기승전결 중 전(轉)으로 일기의 방향은 나아가고 있었다.

 

벼루에 닿은 옷이 까맣게 적셔졌다. 그는 팔에 먹이 묻어 흑으로 물든 것도 모른 채 연적을 들었다. 마침 연적의 물로 먹을 갈 참이었다.

 

그가 막 어른이 되었을 때. 한양에 돌았다는 전염병이 그의 마을에 퍼져나갔다. 새까맣게 물들어진 채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는 꿋꿋이 일기를 썼다. 누가 죽었고 어떻게 전염되는지. 소문이 사실이었다며 씁쓸하게 웃곤 그는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추측과 진실이 붓의 먹물로 종이에 새겨졌다. 그의 칠흑같이 까만 눈의 빛깔이 그의 몸에 퍼져나가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결(結), 그의 일기의 마침표는 어느 저녁. 먹물을 머금은 붓처럼 그가 완전히 까맣게 물들어졌을 때였다. 그는 가빠오는 숨을 붙잡고 붓을 들었다. 일기, 소설, 조금은 이를지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의 마지막. 먹물이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툭, 그의 까만 손이 붓을 쥔 채 바닥과 부딪혔다. 짧았던 그의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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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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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부유한 자들의 특권, 또다른 이명은 신이 내려주신 선물. 회색 벽 너머의 세상을 아이는 늘 동경했다. 회색의 하늘, 회색의 흙바닥, 회색의 친구들. 아이는 한 줌의 색이라도 가져보길 원했지만, 아주 조금의 색도 아이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가 가난한 탓이었다. 색은 신이 내려주셨다며, 그 신은 부유한 자들의 신인걸까. 아이에게 신은 없었다. 신은 존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색을 샀다며 아이의 친구가 아이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아직은 눈동자만 색이 있지만 곧 회색 벽 너머의 세상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기뻐하는 친구의 눈을 아이는 결코 마주볼 수 없었다. 하늘색, 그 이름에 걸맞는 청명한 하늘의 색. 눈동자 색을 설명하는 친구에게 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늘색은 회색이야?

 

아이는 색을 동경했지만 색을 볼 수 없었다. 원래 신은 부유한 자들의 것이라지만, 아이는 색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그건 부유한 자들의 환상 아닐까, 하고. 하늘색이라는 회색 눈을 빛내는 친구를 보며 아이는 중얼거렸다.

 

여름의 끝자락, 나뭇잎들이 하나 둘 옷을 갈아입기 시작할 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이는 깨어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여전히 회색인, 남들에게는 색깔일 친구가 서있었다. 친구의 손가락은 회색 벽 너머를 가리켰고. 너도 함께 갈래? 라며 다른 손은 아이를 향해있었다.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 하는 영원한 작별인사.

 

어째서 색을 동경했던가, 결코 느껴질리 없는 색깔을 마주한 채 아이는 중얼거렸다. 회색 벽은 언제나 그렇듯 두꺼웠다. 회색 벽 너머를 동경하는 어린이들, 어린 자신이 저 벽 너머는 뭐가 있냐며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모든 것, 그렇지만 나는 결코 볼 수 없는.

 

후에 친구가 보낸 편지로 알게된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을 색을 가지고 있단다.

 

조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는 회색의 짐들을 가방에 쑤셔넣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회색의 흙, 회색의 풀, 회색의 나무. 결국은 흑과 백의 공존일 세상에. 어째서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색을 추가할 수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의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남아있었다. 그것들을 정리할 아주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회색 길을 한참 걷다가. 아이는 어느 산을 맞닥뜨렸다. 등산로는 반대쪽인지 회색 표지판이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아이는 산을 올랐다. 그저 발이 닿는 곳이 길이었다. 나뭇가지들을 꺾으면서 올라간 것이 약 1시간. 어두워지는 하늘에 돌아가려고 발을 돌린 아이의 눈에 동굴 하나가 들어왔다. 당연히 지나쳤을 그 동굴은 어딘가 모르게 빛나보였고. 희미한 것이 작게 반짝이고 있었다. 홀린 듯 아이는 동굴로 발을 옮겼고.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그 빛의 정체를 알아챘다.

 

오래전 보았던 친구의 눈동자처럼. 동굴 안은 온통 색깔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이 무슨 색인지 몰랐다. 그저 어렴풋이 색이구나, 하고 느낄 뿐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아이는 배낭의 짐들을 모두 버리고. 색깔들을 채워 마을로 돌아갔다. 가득 찬 배낭에서 한 방울씩 흐르는 색깔들이 바닥에 닿자. 하나씩, 하나씩. 세상은 색깔을 되찾아갔다.

 

어째서 색깔이 이곳에 있었는지, 그런 의문은 마을이 가까워질 수록 해답이 명확해져갔다. 색깔은 ‘특권’이라 하지 않았는가, 부유한 자들의. 아무리 감춰봤자 색들은 결국 제 주인을 찾아가는 법이다. 아이는 마을에 다다르자마자 가방을 벗고, 지퍼를 열어 뒤집었다. 쏟아진 색깔들은 하늘, 흙, 풀, 또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자리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나뭇가지로 뭔갈 끄적이던 소녀가 벌떡 일어서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자신이 지금 보는 게 색이냐며. 여전히 회색인 세상을 보며 아이는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색이라고, 누군가의 특권이 아닌. 모두의 것인 색이라며.

 

회색 벽 너머의 사람들은 모두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벽은 어느새 균열이 생겨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색이 더이상 특권이 아니란 걸 알고 울부짖었지만. 대부분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색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저 멀리, 아이는 익숙한 색, 회색의 반짝임을 보았다.

 

여전히 색이 없구나, 하고 친구는 아이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이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쉿, 조용히 하고 눈을 감아 봐.”

 

친구는 아이의 눈 위에 손을 올렸다. 됐어, 이제 눈을 뜨면.

 

아이는 처음 본 색에 마음을 빼앗겼다. 청명한 하늘, 푸른 들판, 그리고 다채로운 사람들. 친구는 회색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사실 내 눈동자는 원래부터 회‘색’이었을거야. 누군가의 색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제야 색은 모두에게 돌아갔으니. 아이는 청명한 하늘색 눈동자로 세상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회색 벽은 무너져있었다.

 

“아아, 겨울이구나.”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을이 지나갔음이 그제야 느껴졌다. 색을 보면서,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나무에 기대었다. 태어나서 이토록 기쁜 적이 있었을까.

 

그 날 색깔은 모두 제 주인에게, 그리고 제자리를 찾아갔고. 아이는 색을 보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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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색안경, 비우다,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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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하나가 차오르고 비워지는 밤.
은색으로 물든 작은 반달을 보며
문득 그런 달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꽉 찬 달은 보름달.
가장 좋은 황금빛 달이라며
축제가 열리듯 방방 뛰어다녔지.
깎아 버린 손톱 같은 초승달.
잘못 눈을 깜박이면 사라져 버릴 듯
위태위태한 밤을 지탱하고 있지.

 

이제 완벽에서 반 정도 비우고 살자.
보름달도 초승달도 되지 못한 반달.
그 누가 보름달이 완벽했다고 했을까.
달의 반을 비워내며 완벽에 묻어둔 감정도 덜어냈어.

 

달이 은색이 아니면 어때.
완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감정에게
검푸른 색안경을 씌어주고 싶어.
그 누가 노란빛 띄는 은색 보름달을 완벽한 달이라 했을까.

 

그래, 이 완벽하지 않은 밤에
검푸른 달을 위한 색안경을 쓰고
가득히 채워진 달의 반을 비워내며
완벽을 방해했던 모든 것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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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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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인사드립니다. 04년생 여입니다.

——

모서리

뽀족한 모서리를 깍아내렸다.

사람과 사랑 사이에 숨은 수많은 모서리들.

모서리에 부딪쳐 멍이 든 날이면

내가 원하는게 사람인지,

아니면 형체도 없는 사랑인지.

ㅁ과 ㅇ의 허물어진 모서리들.

그 모호한 경계의 모서리를 깎아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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