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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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보고있다.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보고있다. 손을 뻗어 새를 잡아보려 하지만 새는 잡히지 않는다.

 새는 땅을 보고있다.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양 날개만 흔들고있다.

 나는 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고 싶다고 생각했다.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닥을 기어다녔다. 끝나지않는 끝을 찾아 평생을 해맸다. 그 끝은 결국 찾지못했다.

 어쩌면 의미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 할 자신이 없다. 평생 답을 찾아 기어다닌 바닥은 그저 바닥이었다. 열심히 한 일, 끝은 보지 못하고 아무 의미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건 어려운가보다. 이해받기만 원했던 내가 부끄럽다. 누군가를 이해하는건 이렇게나 어려운데, 그 어려운 일을 누군가에게 바라고만 있었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어리석었구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기만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들. 늘 부족했던 나를 이해해줬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죄책감. 항상 미안하고 고마웠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누군가에게 통제되었으며 내 의지는 철저히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다. 그 일들이 모두 나를 향한 배려와 걱정이었음을 깨달은건 지금 이 나이가 다 되어서다.

 나는 이제 곧 죽는다. 멍하니 풀밭에 누워, 잘리지 않은 잡초와 잔디를 침대 삼아 하늘을 본다.

 시간이 지나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누워서 본 하늘이 이렇게 예쁘다는 것.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것. 생각보다 하늘은 더 높다는 것.

 그렇게 며칠을 지냈다. 밤에 본 별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검은 하늘을 작게나마 비추어주는 약한 불빛. 그 작은 별들은 모두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이 많았구나, 저 별들은 누군가의 꿈이고, 누군가의 목표겠지, 내가 쫓아온 바닥의 경계처럼, 누군가도 별들의 행적을, 그 아름다움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이해가 된다. 다들 무언가에 미쳐 미친듯이 살아간다. 나는 내 목적에, 다른 사람들은 별, 혹은 하늘, 혹은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애정, 그 속에서 평범함이란 찾기 힘든 귀중한 보석같은 존재다.

 모든 사람은 별같이 살아간다. 각자 자기 주장을 하면서 그 강한 자기주장으로 서로를 조금씩, 조금씩 밝혀준다.

 

 사람은 사람 없이 살 수 없다.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고, 의도치않은 어떤 모종의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줄이자 삶이다.

 내가 아는 어떤 유명한 사람은 ‘사람 혼자서 살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미 서로 정이 들어버렸기에 서로가 서로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에 정이 들어버렸기에, 우리는 서로를 버릴 수 없고, 서로를 필요로하며 살아간다.

 내가 한 어떤 행위가 누군가의 생명이 되었다면, 누군가의 삶을 유지하는데에 도움이 되었다면 내 인생은 의미있었다고 말 할 수 있었겠지.

 

 내가 살아가면서 한 모든 행위는 모두 나를 위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이기심이었고, 나는 단 하루도 이기적으로 살지 않은 날이 없다. 지금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늦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살아왔다. 누군가를 위해서 모든걸 버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모든걸 실제로 버린 사람을 눈 앞에서 보았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건 그 때 부터 내 평생의 소원이 되었다.

 나는 진실된 사랑을 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죽음을 목격했다. 그 사랑을 당사자이자, 죽음의 목격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안타까웠다. 그것 뿐이었다. 내 감정은 진실이었음에도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람과 나의 차이점이 무엇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알 수 있었던건 그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나는 사랑에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만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그 소원이 이루어지자 나는 모든걸 잃어버린 듯 한 허무함을 느꼈고, 내가 잃어버린건 일순간의 감정이 아닌 내 인생 전체를 채우던 모든 빛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심으로 사랑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 상대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버릴 수 없다. 그녀가 죽고, 내 꿈속에 그녀가 나왔다. 그녀가 본인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며 소원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자라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세계, 그 내부를 파헤치는게 내 일이었고, 내 전부였다.

 그 감정을 이해하는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고, 그 소원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리자 나는 검게 변해버렸다.

 

 자유롭고 싶었다. 모든걸 버리는 그 순간을 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저 하늘의 새처럼 땅을 내려다보며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을까, 내가 하고싶은 일, 원하는 직업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며 행복하게 떠들고 있을까.

 검게 변해버린 하늘은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다. 낮에 본 푸른 하늘은 높다. 참 높다. 우주만큼 높다. 밤의 하늘은 손만 뻗으면 내 손에 걸린 검은 도화지가 찢어지고, 새하얀 백색의 빛들이 소등되고, 다시금 푸른색의 높디 높은 하늘이 떠 있을 것 같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검은 까마귀 하나가 지상으로 내려온다. 나를 보더니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며 ‘까악’하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까마귀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해하고 싶었다. 나도 그 절정의 감정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절망과 슬픔 그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에 대해서 정의하고 싶었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싶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부족했다. 박명이 내려온다. 밝아지는건지 어두워지는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내가 죽고 하늘이 우울해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도록, 말이야.

저 검은 하늘에 떠 있는 모든 별이 사람의 영혼이라면,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묻고싶다. 나는 어디에서 빛나고 있는가? 어느정도로 빛나고 있는가?

  까마귀야, 저 멀리, 누군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렴. 나는 어떤 색인지,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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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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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을 잘라내려다 피가 났다. 손가락을 꽉 잡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피는 멈추었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새로 돋아난 살은 완전히 자리잡았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혈액을 공유하며, 촉감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해자는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가 된 상태에서 다시 차를 몰았다. 차와 충돌한 나는 10미터 아래로 떨어져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사고 때문에 팔에 큰 흉터가 있다. 정확하게는 팔뚝과 어깨의 사이. 15센치가 넘는 큰 흉터는 내가 죽을 때 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뉴스는 며칠간 이 사건에 대해 보도했다. 음주운전으로 인해 10대 소년은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그 가해자는 이미 면허 취소가 된 상태였다는 보도였다. 며칠동안 보도 된 이 뉴스에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으며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 불과했다.

 

 보름만에 정신을 차린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자주 있었던 사건이고, 그 피해자가 내가 된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원망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에 그저 안주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안주했던 방관자가 다른 방관자를 욕 할수는 없었다.

 다만 팔뚝의 큰 흉터를 보고서는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난 직후에는 흉터를 볼 수 없었다. 아직 다 아물지 않아서 붕대를 두르고 있었기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상처가 다 아물고, 붕대를 풀어 상처를 봤을 때, 나는 크게 놀랐다. 긴 흉터 사이로 돋아난 것은 내가 아니었다.

 

 ‘사람은 어떤 일정한 주기로 완전히 바뀐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목욕탕에서 떼를 민다거나, 상처가 나서 딱지가 생기고 새로운 살이 돋아나는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뀐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상처는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흉터는 내 피부색이 아니었으며, 오돌도톨한 촉감은 지금껏 내 피부에서 느껴보지 못한 촉감이었다.

 

 

 손가락을 보았다. 촉감을 공유하고 있는 손가락의 끝. 이 부분은 ‘나’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불완전변태’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곤충이 알에서 태어나 성충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번데기의 시기를 거치지 않는 변태. 어쩌면 나도 불완전변태를 하고있다고 생각했다.

 교통사고의 전,후로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교통사고 이전이 ‘유충’이라면 지금의 나는 ‘성충’일까? 새로운 살이 돋아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불완전변태를 성공시켰다. 원래라면 성충으로 바뀌어야 할 테지만 나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나기 전, 17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바뀐 외관, 새롭게 돋아난 살, 점점 커지는 몸과 그 몸을 감당할 수 없는 껍질. 나는 그 속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저 탈피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새롭게 돋아난 살은 내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있는 나는 아니었다. 온전했던, 안정했던, 그저 바라보고 안주하기만 해도 만족했던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다.

 

 인간에게도 완전변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180도 바뀌는 어떤 전환점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번데기같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살이 떨어져 나가도 새롭게 돋아나는 일 없이, 한번의 긴 휴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이 있다면 이 세상에 모든 죄는 사라질텐데.

 

 하늘은 느슨해보인다. 붉은색으로 홍조를 띄고있는 하늘은 느슨하게 풀려서 무엇이라도 용서해줄 것만 같다. 팔에 있는 긴 흉터는 모양이 바뀌어서 웃고있는 입 모양이 되었다. 새로운 나는 지금의 나를 가지려한다. 새로운 인간이 ‘나’의 모습을 빌려 온전한 내가 되려고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정하는 그 기로에서 한번 벗겨져버린 피부는 비웃고 떠나버렸다. 남은 피부와 나는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데 있어서 크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존재다. 불완전변태를 경험한 곤충같은 존재. 원망하고 싶다. 나를 이 좁은 껍질 속에 넣어둔 사람, 불완전변태에 접어들게 한 사람, 그동안 안주하고 방과하기만 했던 그 사람.

 피해갈 수 없는 하늘의 천망이 모두를 잡아놓는다. 옳고 그른 것은 무엇인가 가릴 수 있는 자는 느슨해보이는 하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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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미터의 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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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앞을 나서자 큰 구덩이가 보였다. 지름 10미터 정도의 원 모양 구덩이.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 누가 만들어 놓은지 모를 구덩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구덩이 속으로 돌멩이를 던져넣었다. 소리는 한참이 지나도 들리지 않았다.

 

 전원주택을 지어 행복한 노후를 보내겠다는 소망을 품고 이곳으로 이주한 앞집 노부부. 그들이 오랜 직장생활을 버티며 겨우 이룩한 행복한 노후의 절반을 땅이 삼켜버렸다. 누구를 탓 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었다. 구덩이의 엄청난 깊이와 크기를 보아 그건 인간이 한 행동이 아니었다.

 노부부는 사라졌다. 반토막난 집을 보고 좌절하여 도시로 떠났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들과 친했던 나와 그들의 주변 사람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노부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30대가 되어 거창하게 시작한 사업을 2년 만에 망쳐버리고 빚을 피해 이 마을로 도망쳤다. 그때의 나는 물 조차 살 돈이 없었다. 먹을 것은 물론 없었고, 책임져야 할 처자식이 없다는 사실에 위로 받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으나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고 그 행동을 실행하려 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노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떡을 주며 새로 이사왔으니 잘 부탁한다며 말을 걸었다.

 그들은 현관을 통해 내 방을 보았다. 그리고 그 방에 걸려있는 밧줄을 보고는 막무가내로 집에 들어와 말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살아라.’라고.

 

 그런 노부부가 아무 말도 없이 이곳을 떠날리가 없다. 나는 노부부에게 구원받았다. 빚은 모두 갚았고, 평범한 회사에 취업해 적당한 돈을 벌며 살고있다. 그때 포기하지 않은 것. 끝까지 살기위해 노력한 모든 행동의 원인은 노부부에 있었다.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노부부는 구덩이에 빠졌을지 몰라.’

 

 하루가 지났다. 구덩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구덩이를 들여다보니 끝은 짙은 어둠이었다. 끝나지 않는 짙은 어둠이 구덩이의 끝이었다.

 어제 원인모를 구덩이가 생겼다며 신고를 했지만 구조대는 하루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TV에서는 전국에서 일어나는 원인불명의 구멍이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구조대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인명피해의 여부를 물어봤다. 내가 2명이 사라졌는데 구멍에 빠진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 하자 그들은 다른 대도시에 더 큰 구멍이 생겨 그쪽으로 모든 인원이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은 나의 마을에 생긴 구멍에는 구조대가 올 수 없다는 말 이었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구덩이 속을 들여다 보며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머니! 거기 계세요?”

 그러나 답은 오지 않았고, 다시 들려오는 것은 구멍을 울린 뒤 돌아오는 나의 목소리였다.

 

 노부부는 어디에 있을까. 진짜 구덩이에 빠져버린건가, 아니면 구덩이로부터 안전한 곳에 숨어서 향후 계획을 세우고 있으려나. 구덩이에 빠졌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노부부를 구해줄 구조대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노부부의 행방이나 생사 여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만약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도와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들에게 구원받았던 나만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노부부를 구하는 일은 반드시 내가 해야하는 일이 되어있었다.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나는 구덩이에 대해 조사했다.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직접 들어가보지 않는 한 확실한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확신했던 것은 이 구덩이의 끝에는 노부부의 집이 있고, 그 집 안에는 노부부가 있을거라는 것이다.

 

 안전모에 헤드랜턴를 달았다. 허리띠에는 로프를 묶었다. 로프는 구멍 입구에 고정시켰다. 부실한 안전장비였지만 나는 들어가야만 했다. 그들을 구해야했다.

 양 손으로 로프를 잡고 레펠하듯이 내려갔다. 땅 속 깊이 들어갈수록 햇빛은 감소했고 구멍 입구에서 봤던 어둠만이 내 눈에 비쳤다.

 구멍의 깊이를 정확히 모르기에 로프는 최대한 긴 것으로 준비했다. 그렇지만 만약 이 구멍의 깊이가 100미터보다 깊다면 다시 이 어둠을 올라가서 더 긴 로프를 찾아야만 했다.

 끝나지 않는 어둠 속으로, 그 끝을 찾아 100미터를 내려간다.

 

 70미터쯤 내려왔을 무렵 노부부의 집을 발견했다. 노부부의 집은 지반이 내려앉았을 때의 충격으로 반쯤 부서져있었다. 구덩이의 끝은 7m정도 남아있었다.

 그 때, 지진의 전조음같은, 엄청나게 큰, 울리는 소리가 났다. 몸을 지탱하던 로프가 헐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뭔가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몸을 비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헤드랜턴의 빛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꺼지기 직전 마지막 빛으로 본 것은 더 넓어진 구멍의 모습이었다. 구석에는 흙이 쌓여있고, 노부부의 집은 아까전의 충격으로 거의 다 부서져있다.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와중에 살아남아있었다.

 

 헤드랜턴은 전원이 완전히 나가버렸고, 로프가 묶여있었던 땅은 이제 구멍 위가 아니라 내 옆에 존재했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집이 아닌, 내 로프만 구멍 속으로 들어왔다.

 노부부를 찾아야만 했다. 휴대전화의 통신은 전혀 되지않았지만, 아직 남아있는 배터리는 빛을 내기에 충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부부의 방을 찾아서 움직였다. 그들의 집에는 처음 들어가봤기에 집 구조를 알지 못했다. 모든 방을 열어보고, 모든 곳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과 마주했다.

 

 갓 태어난 아기 구더기, 꿈틀꿈틀 기어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그들의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어미 조차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저렇게 되는걸까, 구원해주겠다던 말은 지킬 수 없었다. 서로를 안고있는 노부부의 마지막 모습이, 내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희망이 잔잔한 불씨였던 시절, 희망을 피워보겠다던 나의 발버둥은 오히려 불씨를 키워버렸다. 이제 불은 너무 커져서 꺼지지 않고, 이 세상 모든 나무를 태운 뒤 자신의 몸을 바쳐 잠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건 노부부의 부탁, ‘끝까지 살아야 해.'

 

 

 

 

 

 

 

 

 “여기는 왜 이렇게 깊은거지? 다른 곳의 구멍은 이렇게 깊지 않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왜 이렇게 깊은걸까요.”

 이상하게 깊다. 다른 곳은 깊어도 20미터였다.

 “방금 소리 들으셨습니까? 무슨 동물 소리였는데요.”

 “어, 그래. 확인하고, 바로 올라가자. 느낌이 안좋아.”

 77미터의 하강, 그 끝에서 내 눈에 보인 것은 죽은 노부부의 백골과 구더기를 진흙물에 삶아먹는 짐승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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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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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안좋은 소문이 있다. 그 소문은 유난히 사람이 많이 떨어져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 소문은 늪지대를 개발하여 아파트를 지어 올렸기에 늪이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말로 바뀌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실제로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은 많았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한 지난 반년간 떨어져 죽은 사람이 5명은 된다. 누군가는 자살, 누군가는 우연한 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인을 당했다느니 하는 말이 많았다.

 물론 ‘죽었다.’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었기에 어떤 이유든 우리는 그저 죽음에 주목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늪지대에 아파트를 지으면 안되지.”

 “그럼 아파트를 지을 땅은 어디서 납니까? 늪지대라도 아무 문제 없다고 건축허가도 받아서 지었구만.”

 “뭐가 어째? 반년 사이에 자그마치 5명이야.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그쪽 잘못이지.”

 말이 많은 부녀회장은 아파트 정문에 크게 플랜카드를 걸고 건설사에 항의하고있다. 그리고 건설사측은 대표도 아닌 보통 직원을 보내 부녀회장과 아파트 주민들 앞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은 반으로 갈렸다. 반은 부녀회장을 지지하며 건설사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었고, 나머지 반은 그저 우연이라며, 집값 떨어진다며 부녀회장을 욕하고 있었다.

 

 “학생, 학생은 어떻게 생각해? 나는 부녀회장이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는데. 집값 떨어지게 일만 크게 벌이고 있어.”

 수다스러운 윗집 아줌마가 말을 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와 눈을 마주치고 곤란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나는 뭐가 맞는지 잘 알지 못했다. 반년동안 5명이 한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코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연으로라도 사람이 떨어질 수 있다고, 물론 그건 큰 불행이겠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늪지대에 아파트를 지어올린 건축사를 원망하는 것도, 진상규명을 바라는 부녀회장도, 집값 떨어진다며 그런 부녀회장을 원망하는 윗집 아줌마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부녀회장과 건설사 직원의 싸움은 1주일이 넘게 반복되었다. 부녀회장은 반년간 5명의 입주민이 죽었는데 아무런 대처도 하지않은 건설사의 안일함과 ‘늪지대’라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말을 하며 어떻게 늪지대에 아파트라는 고밀도 주거지역을 건설할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따졌다.

 건설사 직원은 이미 건설허가를 받았기에 문제가 없고, 죽은 사람들의 사망원인이 경찰 조사로 확실하게 밝혀졌기에 건설사에서 피해보상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즉 건설사의 잘못이 아니기에 건설사 측에서는 어떤 보상도, 진상규명도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1주일이 넘어서자 아파트 주민들은 건설사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경찰 조사로 완벽히 밝혀진 사망원인은 건설사의 책임이 전혀 아니었다. 사고사, 자살같은 사망원인에 건설사의 개입이나 건설의 결함같은 문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집값의 폭락도 건설사 편을 들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

 

 잠시 편의점에 갔다가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정문에서 경비아저씨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플랜카드를 떼어내고 있었고, 그 바로 아래에서 부녀회장은 주저앉아 울고있었다.

 건설사의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아파트의 주민들은 부녀회장을 보고는 혀를 차고 갔다.

 나는 그런 부녀회장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가 한 일에 문제는 없다고, 나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부녀회장은 나에게 말 했다.

 “사람들에게는 명분이 중요해. 사람이 죽어서도, 죽지 않아서도.”

 조용히, 소리내지 않고 흘리는 눈물을 보고도 모른척했다.

 그날 밤, 나는 흥미로운 사실을 2가지 알게 되었다. 첫째는 부녀회장의 딸이 며칠 전 사고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 아파트에서 죽은 사람이 6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사람들은 명분이 중요하다고 말 했었다. 돈, 혹은 피붙이. 자신의 명예, 잃어버린 훈장. 그 어떤것도 충분히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 죽은 이유. 늪지대. 건설사. 딸. 집값. 여러 사람들.

 당신들은 도대체 어떤 대의가 있었기에 사람을 죽일 수 있었나.

 

 끓어오르는 피를 멈추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개벽하는 세상, 그 이상의 지옥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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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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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려서 부터 병원에 자주 있었다. 자주 아팠다는 말은 아니다. 의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때문에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픈 사람들이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친해진 병자들, 혹은 그들의 간병인이 나의 지인이다. 병원에 자주 있었기 때문에 나를 모르는 환자들은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죽음과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지나면 죽는 사람들은 수 없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충격도 받고 공포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죽음이란 것이 내 인생의 한 부분, 일상적인 상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와 유독 친하게 지냈던 병자와 간병인이 있었다. 그녀는 늙고, 암에 걸려 오늘이나 내일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반면 그는 그녀의 남편으로 나이가 그녀보다 3살이나 많았음에도 건강하고 윤기있는 백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병원 근처에 있는 한 공원이었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햇빛을 온 몸에 맞으며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입은 굳게 닫고,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태양을 바라보고, 눈을 감지 않았다. 햇빛을 눈에 맞으면 분명 아프고, 따갑겠지만 그녀는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햇빛을 마주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힘겹게 눈을 뜨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바로 나에게 다가오려다가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떠올랐는지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 그녀를 놓아두고 가까운 벤치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이미 다 보았지만 보고있었다고 말 할 수 없어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보시다시피 일광욕 중이지요.”

 그는 햇빛을 쬐고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는 슬픈 미소를 보았다. 슬픔을 숨기려는 듯 한 미소, 그 미소를 보았다.

 나는 과거의 그들을 알 수 없다. 현재의 그들조차 완전히 알지 못한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은 서로를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 하였으며, 어떻게 머리가 모두 백발이 될 때 까지 살아왔는지.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저렇게 계속 태양을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잖아요. 왜 말리지 않는거에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째서 말리지 않는지, 왜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이제는 다 포기하고 싶어요.”

 죽음을 앞둔 그녀를 바라보는 그는 좌절했다. 죽음에 대해서 수도없이 생각해보았을 나이지만, 그런 나이가 무색하게도 실제로 죽음을 마주한 그는 무책임하고 무신경했다.

 그녀가 태양을 바라보며 눈을 뜨고있는 이유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온기를 눈 속 가득 담기 위해서. 그는 차마 그런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나는 그와 그녀를 자주 만났다. 언제는 병실에서, 또 다른 때에는 다시 공원에서, 병실 앞 복도에서 만날때도 있었다.

 만날 때 마다 그녀는 항상 태양을 마주보고 있었고, 그는 그런 그녀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죽었다. 예고된 죽음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아주 가까운 죽음을 마주했다. 그녀의 죽음을 마주한 그는 오열했다. 슬픔을 숨기려 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실에 오열하는 추한 모습만 남아있다.

 그는 병원 복도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녀는 영안실로 들어가고 홀로남은 그는 병원 복도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방관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죽음을 그저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백발 할아버지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을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 나는 병원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병자로, 간병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어서 죽고싶다고 말 했다. 죽는다는건 삶이 끝난다는 뜻이 아니라고, 죽어서 새로운 삶을 살고싶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죽었다. 그들의 죽음은 나에게 회의감을 주었다. 내가 봐온 것이 옳은건지, 내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는건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바닥을 기어간다. 두 눈은 마루바닥의 얕고 긴 틈을 쫓는다. 이 경계는 언제 끝날까, 언제 사라질까. 얕고 긴 틈을 따라 눈을 굴린다. 앞에는 새로운 가로 틈이 있다. 경계는 끝나지 않는다. 눈은 멈추지 않는다. 바닥을 끝까지 기어다녀야만 나는 존재할 수 있다.

 존재를 포기하고 일어나는 순간, 나는 이 경계에 굴복한 패배자가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 경계의 시작으로, 기어다니기 시작한 무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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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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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이런 말을 들어도 곤란하기만 하겠지만, 들어주라.

  최근 많은 후회가 있었다. 내 삶에 대해, 내 선택에 대해. 하지만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전의 잘못을 깨우친다고 해도, 그 실패를 만회할 다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나고 난 후에 알아차렸다. 져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고, 말라서 땅으로 떨어진다. 꽃이 지고 땅으로 떨어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 날 이후로 좋은 일이 없다. 모든 일은 후회로 남았고, 그 후회는 나를 괴롭혔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병원을 가보라고? 물론 병원에 가봤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나와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대화하는 것이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병명이 결정되고, 차트에 적혀서 그들의 차트 속에 들어가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사연을 바란다. 내가 무엇을 해서 무엇을 했다. 육하원칙에 입각해서 기승전결의 형태를 갖추고 간단히 말해보란다. 그런 물음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 때 꿈이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나는 나무가 되어 새들이 쉬어가는 휴식처가 되기를 바랐다. 어쩌면 내 몸에 둥지를 놓아두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어쩌면 그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까. 편안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모든 것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크려고 발버둥치는 작은 묘목을 상자에 넣어 꺼내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큰 나무가 되지 못했다. 겨우 작은 화초가 되어, 작은 방에 살고 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왜 나는 나무가 되지 못하고 작은 화초가 되어 방에서 잊혀진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나는 잊혀진 화초가 되어 말라 간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줬으면, 나를 잊고 살아 줬으면 좋겠다. 헛된 꿈을 다시 꾸지 않도록, 헛된 이상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

  나는 어렸을 때 작은 농촌 마을에서 살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큰 논과 밭에 둘러쌓여 있었다. 관개시설이 좋지 않아 논은 자주 말랐고, 그럴 때마다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은 비가 내리길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다.

  “할아버지, 왜 아무도 없는데 밥을 차려 놓고 있어요?”

  “이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거란다.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마르니까 제발 비를 내려달라고 하늘에 비는 거지.”

  그 말을 듣고 어린 나는 무작정 하늘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항상 사람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신’같은 존재로 여겼다.

  학교에서 돌아가다가 논이 말라있는 게 보이면 제사를 지내는 어르신들의 흉내를 냈다. 하늘을 바라보며 빌고, 바닥에서 절을 했다. 그럴 때 마다 부모님은 나를 창피해하며 일으켜 세웠고, 할아버지는 옆에 서서 소리를 작게 내어 웃으셨다.

  “무슨 일이 있을 때, 하늘에 빌면 모두 해결된단다. 이렇게 손을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며 너의 바람을 말하는거야.”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하늘에 올라가서 신께서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실 거란다.”

  그때의 나는 신을 믿고 있었을까, 아니면 어린 마음에 어르신들의 행동을 모방한 걸까, 지금와서도 알지 못하겠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온 식구가 같이 밥을 먹었다. 크고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서 할아버지,부모님,나 순서대로 수저를 들었다. 부모님은 항상 아이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셨다. 농사를 지으려면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나를 낳고 난 뒤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셨다. 그래서 내가 더 소중하다고, 앞으로는 내가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가끔은 가족끼리 불화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전통적인 농사를 고수 하셨고,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언제나 설득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고집은 이길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운 날이면 나는 조용히 있어야 했다. 불평을 하며 술을 마시는 아버지에게 잘못 걸리면 맞아야 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술을 마시면 나는 항상 방에 들어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싸우지 않도록 해주세요’하고.

  결국 승자는 할아버지였다. 전통적인 농사 방법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24절기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며 잘 배워서 나중에 써먹으라고 하셨다.

  모가 죽는 날이면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전통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죽은 모라도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잘 모르기도 했지만, 듣다 보면 양쪽 다 맞는 말처럼 들렸다.

  결국 모가 성공적으로 자라면서 싸우지 않게 되었다. 나는 드디어 하늘이 내 바람을 들어줬다고 생각했다. 하늘 덕분에 집안이 화목하다. 이 말이 내가 우리 집을 화목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싸움을 그만두게 만든 것은 하늘이 아니라 잘 되고 있는 농사인데 나는 하늘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그 뒤로 나는 계속 움직여야 했다. 집안에 남자가 3명이지만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2명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전통적인 농사 방법을 주장하셨기에 나와 아버지는 불평을 하면서도 할아버지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논이 말라갈 때에는 집에 있는 물탱크를 이용했다. 물탱크에 있는 물을 바가지에 떠서 논으로 옮겼다. 논과의 거리도 꽤 멀었고, 그 무거운 바가지를 양손에 들고 여러번 움직이기에는 많은 힘이 들었다.

  우리 집의 논은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라 반나절만에 논에 물이 찼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우리 가족은 다음 비가 내릴 때까지 물을 거의 쓰지 못하였다.

  벼 말고 다른 농사도 지었다. 집 뒤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여러 작물을 키웠는데 가끔씩 딸기를 따 먹다가 걸리는 날에는 혼이 났다.

  “말하고 먹으라니까. 말하면 누가 못 먹게 하냐.”

  아버지는 몰래 먹는 재미를 알지 못했다.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르는 그 설렘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벼를 수확하는 날에는 집안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수고했다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나와 어머니는 차를 타고 시내로 와서 음식을 사갔다. 고기를 구워 먹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술을 마시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행복했다. 어머니도 불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 곳에 낄 수는 없었지만,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소외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늘은 맑았다. 별이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까만 색지에 떨어뜨린 하얀 물감은 좋았다.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맑은 하늘에 감사하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

그 행복은 빨리 지나갔다. 10년이 지나 성인이 된 나는 아버지를 이어 농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방에 누워 ‘하늘을 보며 소원을 빌라.’는 말을 반복하고 계셨다. 언제 돌아가실지 몰랐기에 어머니는 항상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었다.

  아버지는 그게 불만이었다. 농사를 짓고 돌아오는 나와 아버지는 신경쓰지 않고 할아버지 병수발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화를 내셨다.

  나는 싸움을 중재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처럼 밖으로 나왔다. 봄철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6시 쯤,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을 말했다.

  싸움은 어둠이 짙어져서야 끝이 났다. 어머니는 화난 얼굴로 씩씩대며 집에서 걸어 나왔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화난 얼굴로 숨길 수 없는 자국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드는 어머니에게 자기를 신경쓰지 않았다며 화내고, 때렸으니 어머니가 집에서 나간 것이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무시하고 가버렸다.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10년이 넘은 소파는 소주병으로 내리친 것 처럼 유리가 박혀있었다. 그 처참한 상황에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난장판 속에서 술을 드시고 계셨다. 그 날, 하늘은 흐렸고, 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다.

*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생각보다 슬퍼하지 않았다.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아버지는 신식 농기구를 사오셨다. 농약을 뿌리는 기계와 비닐하우스에 물을 줄 스프링쿨러를 가지고 낯선 사람들과 걸어오셨다. 낯선 사람들은 스프링쿨러를 설치해주고 나갔다. 아버지는 스프링쿨러를 테스트해 보시며 앞으로는 농사짓기 편해질 거라고 하셨다.

  나도 편한 것이 좋았다. 편하다는 것은 내가 덜 움직여도 된다는 말이니까 더 이상 내 몸이 힘들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행동이 맞는지는 알지 못했다. 노망난 할아버지와 떠나버린 어머니, 그리고 그들을 내버려둔 아버지와 나는 그들을 철저히 배신하고 떠나보내고 있었다.

  신식 농기구는 편했다. 더이상 벌레와 싸우지 않아도 되었으며,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 여러번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된다. 예전처럼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그냥 비닐하우스의 스프링쿨러를 잠시 떼서 논으로 가져가면 되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비가 내리지 않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신에게 비는 것처럼 하늘에 빌던 그 제사가 사라졌다. ‘하늘에게 빌어라.’는 할아버지와  스프링쿨러로 물을 뿌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서로 닮았으면서도 상반되어 있었다. 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언제나 반복이다. 만남와 헤어짐, 피고 지는 꽃은 여전하다. 어머니가 떠나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떠났다. 나는 오랜만에 하늘을 바라보며 빌었다. 꽃이 지지 않게 해달라고, 더 이상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술을 마시던 밥상에는 이제 나와 아버지가 있다. 바뀐 것은 너무나도 크고 셀 수 없이 많은데 정작 바뀌지 않은 것은 이런 사소한 일상이었다. 농사를 짓고 힘든 몸으로 마시는 술 한 잔은 그날의 피로를 풀어버리기에 적당했다.

  그 날의 아침은 맑고 화창했다. 내리는 햇살은 여름이 다 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맑고 건조한 날이 반복되고 있어서 논의 물은 말라만 갔다. 아버지는 이제 나에게 스프링쿨러를 가져오라고 시켜 물을 뿌리게 하셨다.

  스프링쿨러에서 뿌려지는 물은 무지개를 그렸다. 7가지 색으로 반짝거리는 물방울이 예뻐보여서 어렸을 때 보았던 밤 하늘과 4명이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날씨는 갑자기 안좋아졌다. 산 너머에서는 먹구름이 몰려왔고,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스프링쿨러를 다시 비닐하우스에 넣어두고 오라고 하셨다. 내가 비닐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서 번쩍하며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나와 아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의 전파는 잘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들고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애써 지은 농사를 다 망쳐버릴 위기에 쳐했다.

  이 모든 게 하늘에 제사를 올리지 않은 탓이다. 그게 분명 잘못되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하늘에 기도했다.

  먹구름은 우리 집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을 수 있었다. 불과 몇 미터 사이에서 희망과 절망이 오가고 있었다.

  이미 논의 일부는 망가져 있었다. 이렇게 강한 바람과, 이렇게 강한 비를 맞을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비와 바람은 벼를 뽑아 날려 버렸고, 벼 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비밀하우스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더니 밖으로 뛰쳐나가셨다. 비닐하우스마저 잃으면 우리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필사적이었다.

  나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머니를 매정하게 때리고, 내쫓으신 아버지. 할아버지를 그리 쉽게 보내주신 아버지. 그러나 농사와 자기자신은 악착같이 지키려 드는 모습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고 있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서 나오라고 소리치셨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나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바라봤다. 먹구름은 이미 우리집을 뒤 덮고, 논을 망가뜨리고, 강한 바람으로 비닐하우스까지 날려버리려 하고있었다. 하늘에 사죄했다.

  밖으로 나갔다. 머리에 떨어지는 비는 우박처럼 굵었고, 바람은 나를 이상한 곳으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그 이상한 걸음을 본 아버지는 화를 내며 어서 오라고 하였다. 이건 내가 가기 싫어서 그런게 아닌데.

  휘청거리며 겨우 비닐하우스에 닿았다. 잡은 철봉은 비와 바람에 흠뻑 젖어서 엄청나게 차가웠다. 손이 얼 것 같았다. 잘 생각해보면 그 넓은 비닐하우스를 2명이서 어떻게 해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게 이상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바람과의 실랑이에서 결말은 비극이었다. 비닐하우스는 찢어져서 날아가고, 다른 비닐하우스는 비 때문에 무너졌다. 아버지와 나는 1시간 사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발로 찼다. 반으로 쪼개진 텔레비전의 한 쪽을 들고 논으로 던졌다. 반대 쪽 텔레비전을 드는 순간 스파크가 튀었고,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떨어뜨리셨다.

  “씨발, 뭐야 진짜.”

  아버지는 욕을 하시며 김이 올라오는 손을 반대손으로 잡으셨다. 김이 올라오는 손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대충 봐도 심각해보였다.

  아버지는 병원에 가지 않으셨다. 병원에 갈 방법도 없었고,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물으면 답하기 쪽팔려서 가기 싫다고 하셨다.

  바깥의 날씨는 더 흐려졌다. 아버지는 이 날씨를 두고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아버지를 다치게 했다. 그 사실은 분명 ‘재앙’이었지만 나에게는 모든 사태의 원인이 아버지로 생각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신식 농기구를 사용해서 더 이상 하늘을 향한 제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하늘이 화가 나서 우리에게 ‘재앙’을 준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쫓으신 것처럼 하늘도 우리를 내쫓은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는 없다. 신식 농기구를 편하게 사용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 날따라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리워졌다. 모두 다 같이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그 때가 떠올랐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 그 사소한 행복이 그리워졌다.

*

  아버지의 손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날씨가 습해서 잘 회복되지 않았다. 더러운 집안을 청소해줄 사람도 없어 수개월 째 청소도 하지 않고 있었다. 습하고 더러운 곳에서 계속 있다는 것은 상처를 악화시키기 좋았다.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손에 구더기가 생겨버렸다. 꿈틀거리는 구더기에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물을 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물을 가져다 주었다. 물을 겨우 마시면서 반대손으로 구더기가 생긴 손을 쥐어 뜯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창고에 가서 작두를 챙겨오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긴 고무줄을 가져와 손목과 팔꿈치 사이를 강하게 묶으셨다. 그러고는 작두의 밑부분과 칼 사이에 손목을 집어 넣으셨다. 스스로 힘을 줘보았지만 쉽게 잘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시켰다.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한번만 살려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절대 하기 싫었다. 누군가의 손을 자른다는 건 그것도 친족의 팔을 자른다는건 비인간적인 일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며 고통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아버지를 좀 살려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손에 난 구멍으로 얼굴을 내밀고 움직이는 구더기와 손등에 서 있는 핏줄이 어쩌면 부탁을 들어주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워 하는 아버지는 처음이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에게 그렇게나 무뚝뚝하셨던 아버지였는데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나는 결정했다.

  떨어져 나온 덩어리는 이상한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있어서는 안될 곳에 위치한 손은 어색하게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구멍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기어가는 구더기를 잡았다. 물컹한 촉감에 이상함을 느낄 새도 없이 기어코 친족의 팔을 잘라내 버린 나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작두는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잘린 덩어리는 재빨리 이상한 형체를 갖추었다. 쓰러진 아버지의 팔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빨간 액체는 신비했다. 그 신비함에 매료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어쩌면 그때는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라면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족의 팔을 직접 잘라내어 떨어진 덩어리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짙은 슬픔이었다.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잘려버린 단면에 깨끗한 수건을 감고,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방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바닥에 흥건한 피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으로 나를 지목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바람을 들어줬을 뿐이라는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내가 아버지의 팔을 잘랐고, 그 결과 아버지는 죽었다. 이게 진실이었다.

*

  아직까지도 그 태풍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논에서 뽑혀 날아가던 벼와, 강한 바람과 비에 무너지던 비닐하우스. 아버지가 던져버린 텔레비전과,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온 작은 스파크, 김이 나던 아버지의 손과 그의 입에서 나오던 욕, 친족의 팔을 잘라낸 나의 모습이 선명해서 태풍은 하늘이 준 재앙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태풍이 끝날때 까지 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도망친 구더기는 이제 아버지의 몸 전체에 살고 있었다. 매일같이 하늘에게 기도하며, 제발 이 재앙이 끝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하늘은 1주일이 넘도록 화를 냈고, 나와 아버지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강풍경보에서 강풍주의보로 넘어가고 있었다. 잦아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강했다. 우리 집은 비닐하우스가 바람을 막아줬지만 이웃집의 창문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창문은 깨져서 날카로운 단면을 가지고 작두처럼 사람을 공격했다. 창문이 깨졌을 때 옆에 있던 아저씨는 손목을 다쳤다고 했다. 소파에도 깨진 창문이 날아 들었지만, 다행히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 처참한 상황을 들으며 집 내부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어머니가 떠난 날, 상처받은 소파가 생각나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어째서 이렇게 되버린걸까.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은 아직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말해도 좋을 게 없어서라는 이유가 첫 번째고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죽여버린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가 두 번째다.

  아버지의 죽음은 예고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그 순간부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순간부터. 신식 농기구를 사 온 그날부터. 의미 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그때부터. 팔을 잘라 버린 그때부터.  더 이상 하늘에 제사를 올리지 않게 된 그때부터. 예고된 죽음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 징조들은 너무 사소해서,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넘어가기 쉬웠다.

*

  강풍주의보는 끝났다. 태풍은 가버렸다. 하늘은 화를 풀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체를 적당히 정리하고 무작정 집을 나와버렸다.

  집을 나온 뒤에는 막막했다. 성인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평생 농사만 지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쓸 수 있는건 건강한 몸 뿐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된 힘든 노동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몸. 마땅히 몸으로 때울만 한 일을 찾기 시작했다.

  시내에 있는 인력사무소로 들어갔다. 인력사무소 안은 좁았다. 겨우 5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더욱 좁아보였다.

  비집고 들어가자 동남아쪽 외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일 하러 왔냐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안쪽에 있는 작은 소파로 안내하더니 꽉 차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나를 앉게 해주었다.

  어째서 나를 앉게 해주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일 잘하게 생겼단다. 아마 그때부터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시골에서 사는 25년 동안 한번도 느낀 적 없는 여자의 호의에 쉽게 넘어가 버렸다.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일을 하러 갔다. 새로 지어지고 있는 상가에서 시멘트를 옮기는 일이었는데, 아직 엘리베이터가 지어지지 않아 1층부터 5층까지 무거운 시멘트를 들고 걸어다녀야 했다.

  시내로 오자 살면서 처음 하는 것, 처음 보는 것들 천지라 현기증을 느꼈다. 오늘 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말이었다.

  5층까지 올려보내야 하는 시멘트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건 공사 업체에서 인건비를 많이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러 온 사람들은 지옥이었다. 5층까지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 주저앉아 욕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도 불평이 많았다. 왜 이런 일을 시작한 거지, 후회하기 직전 일이 끝났다.

  일이 끝난 뒤에는 절대 불평할 수 없었다. 농사를 지었을 때에는 1년이 지나야만 벌 수 있었던 돈을 단 하루만에 벌어 버렸다. 순식간에 많은 돈이 생기자 마치 내가 진짜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돈을 받아들 때의 쾌감, 그 짙은 오락의 느낌이 내 몸을 괴롭힌 대가로 받은 돈인 것 같아 더 괴롭히고 싶어졌다.

  그게 내 본업이 된 것은 1년 전부터였다. 지난 1년 사이에 많은 돈을 벌었다. 농사로는 절대 벌 수 없던, 그 정도의 돈을 벌었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물론, 내가 죽였던 아버지도 까먹고 있었다. 그저 돈에 미쳐서 매일 같이 인력사무소에 가 일을 구했다. 매일 하는 짓은 일을 시작하기 전 인력사무소에서 짧은 시간 동안 외국 여자에게 농담을 던지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녀는 가끔씩 내가 던지는 사소한 농담에도 크게 웃어 주었는데, 그 미소가 나를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날이 갈수록 내 생각은 짙어졌고, 결심을 한 그 날, 그녀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안정적이지 못한 수입이었지만 한 집안을 꾸리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그녀와 나 사이에서는 아이가 생겼고, 내가 집을 이끌어야 했다. 내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나중에 잘 써먹으라며 가르쳐 주신 24절기가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강요하셨던 그 책임감과 지금 내가 느끼는 책임감은 다른걸까, 자꾸만 의심이 간다. 24절기를 배웠을 무렵 순수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버지는 이미 죽여 버렸다. 어머니는 이미 떠나버렸다. 할아버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내일 하루 종일 강풍주의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실내에서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

  머리가 아파졌다. ‘강풍주의보’. 1년 전의 그 날과 같다. 나는 어디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동안 까먹고 있었던 게 모두 떠올랐다. 어머니의 가출, 할아버지의 사망, 아버지의 자살. 모든 것의 원인은 나였다. 어머니의 고민과 할아버지의 아픔을 모른 체했고, 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다. 모든 사건의 원인이 나였다고, 지금 너가 괴로워 하는 이유는 너 자신이 알고 있지 않냐고 ‘강풍주의보’라는 앵커의 말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눈물을 흘렸는지 침대의 머리맡은 푹 젖어있었다. 눈물에 젖었을 뿐인데, 내 눈에는 피에 젖은 것처럼 검게 보였다. 그리고 그 검은 피의 흔적이 내가 잘라낸 아버지의 팔에서 나온것 처럼 보여서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아내가 놀라서 일어났다. 아내도 당황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말을 반복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텔레비전을 켰다.

  “이번 태풍은 상당히 강한데요, 유리창이 깨지고,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 벌써 피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벌써 재앙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집에 있는 밥과 반찬을 모두 꺼내서 밥상에 차려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모았다. 제발 재앙을 멈춰주세요. 그 다음에는 절을 했다. 하늘을 향해 그동안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아내는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보았다. 갑자기 밥을 차려 놓고 하늘을 바라보더니 손을 모으고 절을 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그녀를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나에게 다가왔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한국말로 능숙하게 물어왔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지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1년 전, 친족의 팔을 잘라내고, 고향을 짐승의 소굴로 만들었던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화를 냈다. 내 앞에 서서 멍청해 보이는 낯짝을 들이밀고 소리를 질렀다. 무시했다. 1년 전을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절실하게 부탁했다. 하늘을 향해, 신을 향해.

  나와 아내를 향해 유리창이 날아왔다. 깨져서 날카롭게 변해버린 유리창은 악의를 가지고 공격하듯 날아들고 있었다.

  신은 완전히 배신했다. 믿음을 배신으로 보답했다. 몸으로 아내를 감쌌다. 아내는 다행히도 다치지 않았지만 내 몸은 찢겨 버렸다.

  걱정하는 아내를 내버려두고 옷을 입고 집에서 나왔다.  강한 바람과 강한 비, 비가 우산을 뚫고 상처난 내 몸에 떨어질 때면 그 고통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키 작고 마른 여자와 남자치고 작은 키를 가진 남자 두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키 작고 마른 여자는 걷기도 힘들어 보였다. 키 작은 남자는 중간중간 건물에 들어가 쉬어가면서, 중요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나는 어디로 가고있을까, 멀쩡히 움직이는 몸이 신기했다. 1년 전과 똑같았다. 나는 목적도 모른 채, 그저 발이 움직이는 대로, 비닐하우스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버스터미널에 있었다. 이상하게 사람이 적은 날이었다. 구걸하던 거지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평소에 사람들이 붐비던 장소, 시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터미널 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그곳에는 멀리서 보아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주변에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몰려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그들이 올려다보고 있는 게 하늘이 아니라, 목을 맨 아버지의 시체처럼 느껴졌다. 죽일듯이 화 내고 있는 하늘의 표정이 구더기가 가득 피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처럼 보였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 죄책감이 들었다.

  구더기가 꿈틀거렸다. 그들은 새로운 구더기를 잉태해서 몸에 품고 있었다. 생명의 잉태는 위대하고 위험하다. 나는 그 생명의 잉태를 목격했다. 위험하고도, 위대한 순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그 순간에 경외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떨어질 듯한 간판이었다. 상가의 끄트머리에 매달려있는 위태로운 간판은 누가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그 간판은 내가 지어놓은 상가에 매달려 있었다. 1층에서 5층까지 걸어올라가며 만들어놓은 상가, 그 돈을 받으며 느낀 감정은 이제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버스터미널로 오는 도중에 봤던 키 작은 남자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간판이 심하게 흔들려서 조만간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도와 줄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이상했다. 1년 동안 느낀 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개인의 이익을 챙기고, 서로를 도우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으며 온 버스터미널에서, 도와 줄 수는 없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에게 누군가를 도와주라고 요구하는 듯했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도와주러 가다가 간판에 맞으면 어떡하냐, 바람에 넘어져 차에 치이면 어떡하냐 같은 핑계를 댔다. 차에 치일 가능성은 없었다. 도로를 지나는 차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키 작은 남자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도와줘야 한다.’그렇게 주장하는 것 처럼 보였다.

  하늘은 번개를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번개가 떨어지자 버스터미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 조용해졌다.

  버스터미널이 조용해지자,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기 시작했다.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1년전의 태풍이 기억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할 수 없는 혐오감, 태풍이 오고 나서 느끼는 강한 공허함에 끼어있는 이 감정을 뭐라 말 할 수 있을까. 1년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강한 바람, 강풍주의보는 여전했다.

  1년 동안의 행복은 무엇일까. 잠시 영원할 거라고 착각했다. 어쩌면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내 행복은 영원할 거라고, 내 꽃은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꽃은 져 버리고, 황혼은 짧았다.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그저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아버지 때문이다. 1년 전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겠지. 나는 그저 부탁을 들어줬는데, 그 부탁이 너무 커서 내가 짊어질 수 없었다. 선택을 후회한다. 아버지를 따랐던 나를, 그 아버지를 죽여버린 나를,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싫어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높은 하이톤에서 갈라지는 여자의 비명과 남자의 낮은 비명이 절묘하게 겹쳐져서 합창단 공연을 보러온 듯한 느낌이었다.

  마른 여자가 힐을 신고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 아까 버스터미널로 걸어오면서 키 작은 남자와 같이 본 여자였다.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힐을 신고 있었다. 바람은 잠시도 고개를 들 틈을 주지않았다. 비와 번개도 멈추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고 그건 위험한 상황이었다.

  마른 여자는 위태롭지만 분명하게 한 발자국 씩 움직이고 있었다. 강한 바람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우산을 피해 날아드는 빗줄기를 받아내면서, 분명히 걸어가고 있었다.

  힐을 신은 발자국 소리는 뚜렷했다. 바람과 비가 훔쳐가지 못한 강한 소리가 들렸다. 건물 안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키 작은 남자만이 울상을 지으며, 괴롭다는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여자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혹시 간판이 흔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해봐도 나에게는 용기가 없었다. 내 행복을 저버리고, 그녀를 구해줄 그런 용기가 없었다.

  얼마 없는 거지들도 구경에 동참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틈새에 끼어들고 있었다. 상황은 정신없었으며, 모두의 관심은 여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여자는 흔들리는 간판 쪽으로 가고 있었다.

  “저 쪽으로 가면 위험하잖아.”

  내가 소리쳤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울상을 짓고 있는 키 작은 남자가 혹시라도 구해주러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키 작은 남자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상황을 무시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구경하는 수 밖에 없다고, 저런 미친 여자를 구해 줄 사람은 여기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키 작은 남자가 움직였다. 앞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밀쳐내며, 불평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맨 앞에 섰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 문을 열었다.

*

  “들어와!”

  “빨리 돌아와!”

  나는 소리쳤다. 하지만 키 작은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내 말이 그 행동에 시동을 걸어줬다. 고민하던 남자는 내 말을 듣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건물 밖으로, 위험한 공간을 향해 제발로 걸어갔다.

  바람은 갑자기 거세졌다. 간판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키 작은 남자는 그 간판을 보더니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간판은 이미 떨어져 여자를 맞춰버렸다. 간판이 떨어지는 소리는 천둥 소리처럼 크게 울려퍼졌다.

  남자는 달려가서 여자를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팔 같은 형체의 이상한 물체와, 필요한 무언가가 없는 썩어가는 몸은 선명히 보였다.

  밖에서는 많은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빗소리, 천둥 소리, 바람이 만든 옹알이 소리. 그 소리들 속에서 키 작은 남자는 여자를 세워두고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남자의 머리 위에서는 또 하나의 간판이 흔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간판도 떨어져, 기도하던 남자의 머리를 정확하게 갈라놓았다.

  나는 쓰러진 남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너무 늦은 결심 이었을까, 이미 남자는 죽어버렸다. 떨어진 폰에서는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요양원’이라고 저장 되어 있는 번호. 전화를 받았다.

  “오늘 강풍주의보라 일 안와도 된다고 전화했어. 그런데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

  태풍이 불었던 날, 그 날 이후로 좋은 일이 없다. ‘꽃은 결국 진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을 떠올렸다. 지난 1년간 겨우 이룩한 꽃은 너무 쉽게 져버렸다.

  1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1년 전에는 기회가 있었다. 시내로 와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회.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그 목적은 이제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저 하늘을 원망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운 그 날의 하늘과 똑같은 하늘. 나는 그 때와 같이 그저 바랐다. 제발 이 불행을 멈춰주세요,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그 날의 나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묘목은 그대로 묘목이었다. 나무가 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 ‘어쩌면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거야.’라는 생각이 작은 불씨가 되어 희망을 피우려 할 때, 작은 묘목인 나는 불씨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타 버렸다.

  묘목을 태우고 커진 불씨는 희망을 모두 태워버렸다. 다 타버린 잔해 속에서 피어오르는 비명마저 모두 태워버렸다.

  1년 전, 아버지를 죽였던 그 날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는 죄 없는 남자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누군가 그녀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에 한 말이었는데,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1년 전과 똑같았다.

  

*

  

  무작정 집을 나왔다. 아내와 그 뱃속의 아이는 내버려두고 시골로 돌아갔다. 내 시조로, 아버지의 무덤으로 돌아간다. 유서를 썼다.

  갑자기 이런 말을 들어도 곤란하기만 하겠지만, 들어주라.

  처음으로 써 보는 손편지의 첫 문장이었다. 첫 손편지가 유서라니, 믿을 수 없었다.

  죽으려고 쓴 글은 아니었다. 그저 나를 찾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에 썼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혼자 살고 싶었다. 내가 피워낸 생명에, 그 꽃같이 아름다운 장면에 슬픔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돌아온 고향은 1년 전과 달랐다. 지난 1년 동안 재개발이 진행되어 상가가 올라가고 있었고, 얼마 남지않은 논에서도 모두 신식 농기구를 사용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주변의 집은 모두 높은 담을 쌓고, 문을 기계로 틀어막았다. 내 고향은 이제 없다. 정겹게 대화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그리운 고향은 이제 사라졌다.

  주변의 건물들은 좋았다. 새로 지어지고 있는 상가와 문을 전자식으로 바꾼 이웃집에 비해서 1년 전, 아니 20년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없는 우리집은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초라해 보이는 집은 분명히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해서 그나마 고향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적당히 처리한 아버지의 시체는 이제 볼 수 없었다. 아마 축축한 시골 땅에 묻혀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집을 나올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잘라버린 덩어리는 뼈만 덩그러니 남아 거실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석으로 밀어놓은 작두가 눈에 띄었다. 피가 굳어서 검은색으로 변해있었다. 1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피가 신기했다.

  덩그러니 놓여진 뼈를 보며, 매끄럽지 않은 뼈의 단면을 보며, 그 날의 추억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징그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존경심을 느꼈다. 땅에 묻힌 살은 분해돼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지렁이, 풀, 버섯, 그리고 구더기 까지. 어쩌면 죽는 건 꼭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이어, 어쩌면 내가 아버지를 죽인 건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키 작은 남자도, 마른 여자도, 어쩔 수 없었다. 모두 하늘이 정한 일이라 나는 도와줄 수 없었다.

  집 안을 걸어다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입 꼬리가 올라가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하늘 때문일까? 20년 전과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동경했던 하늘에 아직까지 매달려 있었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자살을 결심했다.

  주위는 모두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잘린 팔에서 떨어지는 핏물을 보며, 목을 당기는 강한 줄을 느끼며,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같은 자세, 같은 모습, 같은 장소에서 죽은 아버지와 나는 분명히 닮아있었다.

  잊혀진 화초처럼, 조금씩 시들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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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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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엄청난 어둠이었다. 37년 동안 이런 어둠은 단 한번도 보지못했다. 모든것이 사라져 버릴듯한, 다른 의미로는 너무 깨끗해서 깨져버릴듯한 어둠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내 몸을 겨우 눕힐 수 있을정도의 공간 뿐이었다.

눈을 처음 떴을 때에는 엄청난 공포가 느껴졌다.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지만 더욱 놀랐던건 내가 입고있는 옷이었다. 까칠까칠한 (손가락을 뻗어 허벅지 밖에 만질 수 없었지만) 옷은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 였다.

"나는 지금 죽은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 감각이 너무나도 또렷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삼베의 촉감도 정확했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나는 죽지 않았다.'라는 현실을 수긍하면서도 왜 내가 죽어있는지에 대한 모순된 생각을 반복했다.

내 기억은 어느 지점에서 끊겨있다. 평범한 주부였지만 심장이 좋지 않았다. 혹시 심정지 상태의 나를 죽었다고 생각한건가? 장례절차가 끝날때까지 일어나지 못한건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뭔가 영양분은 섭취했나? 이러다가 며칠 지나지않고 죽어버리는건 아닐까?

 

 

 

2일차

어쩌다보니 잠들었다. 어쩌다보니 일어났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다. 아직 겨울이 되지 않아 추위에 떨지 않고도 잠에 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있어서 관 벽면에는 물방울이 생겨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겨우 옆으로 움직여 물방울을 햝아 먹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생기는 갈증은 나를 아득히 먼, 알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리는 느낌이었다.

온 힘을 다해 소리치기로 했다. 나는 공동묘지에 묻혀있고, 우연히 다른사람 묘지에 온 사람이 내 소리를 듣고 구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아직 살아있는데, 여기에 묻혀있어요!"

같은 외침을 30분동안 반복하고나서야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나갈 방법은 그것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수 십번, 수 백번을 반복해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이러다 온 몸의 힘이 다해 죽어버리는건 아닐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차라리 죽는게 좋을 수도 있겠다.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인간은 무엇에 희열을 느낄까. 죽었지만 죽지않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쩌면 내 죽음은 누군가의 계획된 범죄가 아닐까?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뭐가 좋은걸까. 의문은 의문을 가져오고 그 의문은 결론을 주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위의 목적은 알 수 없고, 그 행위의 결과조차 하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는 그저 눈물이 났다. 이 현실에서 나를 위로해주는건 없다. 혼자서, 좁은 공간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까. 그저 눈물이 난다.

 

 

 

3일차

오늘도 소리친다. 먹은거라고는 작은 물방울 뿐이라 힘이 부족하다.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소리지르는데 사용한다.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점점 커지고 기대가 커져서, 이렇게 소리쳐도 들은 사람 하나 없다는 현실에 몇배로 실망했다.

'죽을 운명인것 같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워서 소리치거나, 신을 원망하는 일뿐. 모두 신의 자식이라고 소리치던 교회 목사의 얼굴을 한대 때리고 싶어졌다. 모두 신의 자식이라더니 나는 버려졌네.  참 못난 사생아다.

무의미한 행동을 그만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 좁은 공간과, 어둠 속에서 나 혼자 생존해야한다. 몸에서 나오는 아직 따뜻한 이 온기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각인 시켜준다. 이 온기가 작은 물방울을 생기게 하는 희망이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희망이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누워서 힘이 닳아 없어지기를 기다려 죽을 것인가, 스스로 생존방안을 모색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나는 추악한 죽음을 싫어한다. 시도조차 않고 죽는 삶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나를 격려하고 노력했다. 살아있는 나로 돌아가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더 힘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관 뚜껑을 칠 생각이었는데, 손을 사용해서는 도저히 강하게 칠 수 없다. (팔을 뒤로 당길 공간이 없다.) 바로 작전을 바꾸었다. 온 힘을 다해 이마를 관 뚜껑에 들이받는다. 그러나 미동조차 생기지 않았고,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제일 고통스러운건 생리현상이었다. 해결 할 방법이 없다. 결국 누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행위는 나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주었다. 엉덩이에 질펀하게 쌓이는 분비물의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 냄새와 질감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관에는 십자가가 같이 들어있다. 씨발, 신은 무슨. 십자가를 들고 관 뚜껑을 때렸다. 약간의 흠집이 생겨 나무 부스러기가 내 몸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번이었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4일차

 

점점 몸에 힘이 사라지는게 느껴진다. 몸은 말라가고 체력은 확실히 사라졌다. 절망적인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를 책망했다. 좀더 머리를 써보란 말이야. 나는 이정도가 한계인가?

결론은 나왔다. 나는 괜한 힘만 사용했고, 남은 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 사실은 내 온기라는 희망 마저도 꺼버릴만큼 강렬해서 내 몸이 서늘하게 차가워졌다.

가슴팍에 올라와있는 십자가를 들고 신을 원망했다. 왜 내가 이 비극의 주인공이어야 하는지. 희망은 아예 없어졌는지. 나는 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미련과 실망만을 가득 남긴 채 떠나가는지. 결론은 단 하나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죽음'

십자가를 손에 쥐고 정자세로 누웠다. 얼마남지 않은 결론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나는 사생아.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아이. 행복한 사람들이 있으면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해. 알고는 있는데 그게 왜 나인지 원망하게 되는 나는 사생아. 불행한 아이. 불운한 아이. 사랑해요 어머님.

 

 

 

 

 

 

5일차

 

"아 씨발, 진짜 이거 해야하냐?"

"입 닫고 빨리 삽질해라. 좋은거 하나만 걸리면, 우리 이제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어둠속에서 삽질을 반복한다. 묘지를 파는건 좋은 취미가 아니지만, 우리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팔 수 밖에 없다.

가끔 사람이 죽으면 묻을 때 그 사람의 물건을 같이 넣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요즈음은 금품도 많이 넣는다고 하니 하나만 잘 걸리면 떼돈을 벌 수 있다. 묘지를 파헤쳐볼 생각은 아무도 안할테고, 가족과 친척들도 중요한 시기가 아니면 자주 오지 않을테니 완벽 범죄를 성공할 수 있다.

"아 진짜 깊게 묻어놨네. 이건 뭐 생매장 시킨거도 아니고."

"야, 생매장 시켰으면 묘지를 만들어 놓았겠냐? 좀 깊게 묻었을 뿐이겠지. 열심히 좀 파봐 좀."

2시간이 넘도록 삽질은 반복되었고, 우리는 딱딱한 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야 드디어 나왔네 제발 대박이기를…"

뚜껑에 묻은 흙을 모두 제거하고 관에 박힌 못도 전부 뺀 뒤,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관속의 내용물을 본 우리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십자가를 든 채 눈을 뜨고 입으로는 어떤 단어를 반복하며 말하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너무 작게 말해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는데, 뚜껑을 연 후 들은 그 말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

연속해서 말하는 '사생아'라는 단어. 우리는 대박도, 중박도, 평범한 쪽박도 아닌. 최악의 쪽박을 맛본 뒤에 삽과 관을 그자리에 두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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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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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보았다. '생산적 인간'. 약간의 불쾌함 까지 가져오는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은 절망적인 결말로 유명하다. 좋은 결말로 끝나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벌써 6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프로작가이지만, 언제나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안티 팬이 많은 듯 하다.

그러나 슬프고,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신격화되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눠지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속에서 표현되는 잔인하고, 비극적인 클라이막스의 묘사는 감탄을 자아낸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경외감을 느낀다. '생산적 인간'이라는 필명처럼 그저 '생산'을 반복할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묘사는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서글퍼지게 만들어준다. 특히 이번 소설이 그랬다. '행복의 비애'라는 제목의 소설 이었는데 결말은 언제나 그렇듯 비극이었다.

 

 

 

기차 역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스크린도어 앞에 서서 멀리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주인공.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질책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모습이 주인공을 더 초라하고, 서글프게 만들었다.

'박사원, 이거 오늘 5시까지 해서 나한테 보내줘요.'

상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작업량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상사에 대해 불평한다.

'적당히 시켜야지…. 저렇게 많이 시키고 5시까지 다 하라는게 말이되나….'

집으로 가는 중,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를 지나가다가 술집을 보게된다. 시원한 맥주를 한입 크게 들이키며 '캬'하며 저절로 소리내는 모습이 주인공을 자극 하기에는 충분했다. 주인공은 집으로 가기전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가기로 한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놓은 순간, 그녀와 마주친다.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를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이고, 고집 센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사람에 따라 형태가 다르고, 그 중 자신이 느낀 한 형태가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은 이기적인 주장으로 느껴졌다. 이 소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해온 사랑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주인공과 여자. 그들은 운명처럼 다시 사랑에 빠진다. 고등학교때 헤어진 이후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유대는 더욱 깊어진다.

헤어졌을때 당신을 너무 그리워해서, 그 그리움이 행복마저 삼켜버려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해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수고했다고 말해달라고. 그렇게 요구하는 주인공과 여자의 마음이 표면에 드러나 '사랑'을 잘 모르는 나 조차도 공감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형태가 어느 하나로 고정된 느낌이었다. 믿음이 부정당하는 느낌. 그러나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사랑은 원래 이런거구나.'라는 수긍의 감정이었다. 첫 부분의 초라함과 서글픔에 대조되어, 행복해지고 활력을 되찾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과 여자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며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했다. 얼마 뒤, 서로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멋지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행복의 미소를 짓는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정도로 행복하다고 모든 단어들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둘은 예식장으로 향했다. 차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행복을 절정으로 느끼며 굽이굽이 산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뭔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건 그때였다. 산길을 올라가던 도중에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은 더욱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 채 핸들만 부여잡고 있었다. 격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당황한 주인공의 심정을 여자의 한마디가 꿰뚫었다. '왜 제대로 안살피고 출발한거야.' 모든것을 주인공 탓으로 돌리는 여자의 직설적인 한마디가, 격하게 흔들리는 차체를 멈추었으며, 정적이 자리잡도록 도와주었다. 그 한마디에 사랑은 형태를 잃고 일그러졌으며 그 빈자리를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생산적 인간'은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 '꽉 찬 보름달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자리를 어둠이 채우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이치로 사랑의 빈자리는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양을 잃은 사랑은 유지가 불가능했고, 넋을 놓은 남자가 운전대를 놓으면서 소설은 끝난다.

 

 

 

 

 

다 읽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었다. '행복의 비애'는 행복의 부조리함과 바람직하지 못함을 느끼면서 생기는 슬픔이나 서글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행복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말 한마디에 사라질 정도로 연약하다. 그 부조리함을 '행복의 비애'라는 짧은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의 불만이 남는다. 어째서 저런 애매한 결말로 끝을 낸건지. 애매한 결말로 끝을 내면서 얻는 이득은 뭐가 있을까. 그저 '생산적 인간'인가? 무언가를 만들기만 하는건가? 수 많은 의문이 의문을 덮고, 결론 지을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어져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시간 책을 읽어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손을 깍지껴서 위로 들고 좌우로 움직였다. 허리에서 '뿌드득'하는 소리가 나며 조금은 시원해졌다. 창문을 열어보았다. 며칠전 느꼈던 미지근한 바람은 사라지고, 이제는 시원하게 기분좋은 바람이 날아들고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보름달은 정원대보름이 1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허리까지 오는 방범창에 기대어 보름달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름달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저 '생산적 인간'인가. 왜 내 이야기에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들을 결론지을 수 없는거지? 지난 1년간 무얼했냐. 그렇게 질문하면 난 무슨 대답을 할까. 오래전부터 생긴 강박증과 의문. '모든 것의 답은 내릴 수 없어.'라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느낀 그 경외감은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이었다. 그래 이게 끝이겠지. 내 소설의 결말처럼, 이게 내 결말인거야.

그때 나의 몸을 밝은 보름달이 비추면서, 꽉 찬 행복을 투영하고 있었다.

 

 

 

이게 '생산적 인간'의 비극이야. 그 이야기는 모두 나였어.

비친 행복을 사랑하는 이처럼, 행복을 바랐던 자신을 고문하고 이제는 죽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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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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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최근 연달은 일 때문에 피곤했기 때문에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피곤한 눈을 겨우 떠서, 알람을 계속 울리고있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긴급재난문자' 그 여섯 글자에 정신을 차리고 아직은 멍한 상태의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보았다.

거실은 '재난' 그 자체였다. 창문은 깨져있었고,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오는 시점의 약간 선선한 바람이 악의를 품고 공격하듯 강하게 날아들고있었다. 그 사태를 제대로 보기위해 안경을 찾아서 썼다.

안경을 쓴 뒤 보이는 거실은 '재난'보다 더 심했다. 창문은 완전히 깨져서 파편이 되어 집을 공격하였으며, 그 공격을 미처 방어하지 못한 여린 가구들은 깨져버렸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담아 놓은 액자는 떨어져서 창문의 파편처럼 바뀌어있었다. 이건 '재앙'이었다.

방으로 돌아가 시계를 봤다. 7시 20분. 더 이상 보고있을 시간이 없다. 서둘러 씻기 시작했다. 씻으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금 몸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물줄기처럼, 그저 평범한 일상이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평범을 깨버린 이 '재앙'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결국 씻고 나올때까지 결론을 짖지 못하였다.

 

 

 

 

 

회사는 울산에 있다. 나는 부산에 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해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 흔한 차도 없어서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한다. 9시까지 출근이 원칙이기 때문에 8시에는 버스를 타야한다.

옷을 입고 깨진 창문을 뒤로한 채 집에서 나왔다. 버스터미널 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라 10분정도 여유가 있다. 집 앞에서 창문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창문회사 사람은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그 목소리에 왠지모를 짜증이 밀려왔다.

"저 창문이 깨져서 연락드렸는,"

창문회사쪽 사람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지금 바빠요."

그의 태도에 화가났다.

"저 아직 말도 다 안했는,"

다시한번 말을 끊고 답변하였다.

"저기요, 지금 한 두곳이 그런줄 알아요? 저희도 바빠 죽겠으니까 나중에 연락주시던지 다른곳 알아보세요."

전화가 끊겼다. 아까 밀려온 짜증과 화가 겹쳐서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평범하지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서 날 키우셨다. 돈은 부족했지만 열심히 일을 하셨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다른 아이들 부럽지 않게 나를 챙겨주셨다. 다른 아이들이 받는 부모님의 사랑만큼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는 50대가 넘어가도록 나를 아끼며 키워주셨다. 그러나 자식에게 준 사랑의 크기만큼, 자신의 몸이 낡고 있었다는걸 알게된건 50대 후반이 다 되어서 였다.

어머니는 결국 쓰러지셨다. 큰 병원에 입원해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돈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 할 수 있었던건 아르바이트를 통해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벌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리는 것이었다. 학교에 가서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어머니를 보살필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혼자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지만 지금 나는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한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첫 날, 휠체어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누구든 도울 수 있으면 도우라고. 도와줄 능력이 있는데도 돕지 않는건 사치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줄곧 가슴속에 품고있었다.

이건 수능시험날 아침의 일이다. 누군가 쓰러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도 주위에 걸어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돕지 않았다. 도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었다. 인공호흡을 하고, 119를 불렀다. 전화에서 말하는 지시에 따라 행동하였다. 기도를 확보하고, 가슴을 압박하고, 숨을 불어넣어라. 그 사람은 앰뷸런스에 실려갔고, 나는 경찰차를 타고 수능시험장으로 향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이 멈춘 듯 나만 지나가는 주위의 풍경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그러나 결국 시험시간에 맞추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험 잘 치고 돌아오라는 마지막 말만 남기신 채 떠나버리셨다. 절망적 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떠나가는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봐 드리지 못했다.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그 절망적인 사실에 빠져 눈물만 흘렀다. 그때 요양원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분명 네 어머니는 너를 자랑스러워 할거다. '도우면서 살아라' 네 어머니가 남긴 그 말이 가장 중요한거야."

절망적인 그 날 이후로 나는 강박적으로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가 되었다. 자격증을 따자마자 어머니가 계셨던 울산에 있는 요양원에 취업했다.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가까이서 마주하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도우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아직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께 사죄하고 싶었다.

수능시험날 있었던 사건은 '누군가 도와주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리고 그 안일한 생각은 우리 사회 전체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속에 각인시킨 나였기에, 창문회사 사람의 태도는 나를 화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냥 창문이 깨져버린게 아니라고요. 이건 재앙이라고요."

설명을 하기도 전에 사치를 부리며 앉아있는 모습은 분노를 자아냈다. 안일한 생각의 결과이자 안전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결과였다.

전화통화 때문에 예상보다 늦어졌다. 서둘러 터미널로 움직였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간판이 강한 바람을 원망하듯이, 일렁이는 촛불이 누군가가 내뱉는 숨을 원망하듯이,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를 원망하고 있었다.

 

 

 

 

겨우 도착한 터미널에서 절망을 마주했다. 버스가 떠나버렸다. '요양보호사' 라는 직업의 특성상 한명이 없으면 여러사람이 힘들어진다.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바람을 원망했다. 아침부터 정신을 쏙 빼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나를 화나게 만든 원인도, 내가 늦게된 원인도, 다른사람이 고통받는 원인도, 모두 바람 때문이다.

바람은 그런 나의 마음도 모르는 채 더욱 거세졌다. 이제 밖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똑바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바람에 온 몸을 일렁이며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떼고있었다.

하늘에서 헤엄치는 현수막을 봤다. 날아가는 새처럼 하늘을 돌아다니는 쓰레기들을 봤다. 평소에는 평범하게 느껴지던 바람이 이제는 무섭다. 추리소설 속 탐정이 '네가 범인이야' 하며 누군가를 가리키듯이, 모든 사건들의 결과가 '바람'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밖에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터미널 건물 안으로 사람이 몰려들었다. 사람이 많아 까치발을 들어야만 겨우 보이는 창문에서 상가의 골목사이로 위태롭게 걸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눈으로는 그녀를 쫓으며, 손으로는 지각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요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강한 바람 때문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신경쓰는듯 한걸음 걷고 거울을 보기를 반복했다. 다리가 아파 까치발을 내렸다가 다시 들 때마다 한걸음씩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높은 상가건물의 간판이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위태롭게 걷는 그녀와, 강한바람에 흔들리는 간판이 겹쳐보인 순간, 간판이 떨어졌다.

수능시험날의 기분이었다. 누군가 간판에 맞아 쓰러졌다. 사람이 이렇게나 붐비는데 아무도 못봤을리 없다. 모두 쓰러진 그녀를 보고있다. 그저 보고만 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수능시험날과 같다. 누군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도,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있는 어둡고, 차가운 생각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있으면 안 돼.'

'안일한 그들과 똑같이 되어버리면 안 돼.'

'어머니의 말을 기억해야지.'

지독하고 고독한 혼잣말. 이유없는 눈물이 눈에서 흘러내리며 몸이 움직였다.

연결 된 전화를 무시한 채 손에 들고,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달려가는 동안 내 뒤통수를 관통하는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구경꾼들을 뒤로하고 달렸다. 도와야 해. 구해야 해. 깊숙한 심연에서 나 혼자 외롭게 소리치더라도, 소리치는걸 멈추면 안 돼.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제발 그녀를 구하라고.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상태는 절망적 이었다. 그녀는 죽었다. 간판이 머리에 직격했다. 형체를 알 수 없게 바뀌어버린 머리 속으로 처음보는 덩어리가 나와있었다. 바람은 이제 그 덩어리 조차 날려버리려 하고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보았다. 전화는 연결된 채였다.

"여보세요."

흐르는 눈물에 끓어오르는 목소리가 제어되지 않았다. 바람은 강하게 불고있고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는걸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움직이는 수 많은 쓰레기들이, 재앙을 몰고오는 까만 까마귀 떼처럼 보여 상황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주시하며 웃고있었다. 이제 하늘에서 '재앙'이 떨어진다. 아아 어머니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죄했다.

"아, 드디어 연결됐네. 오늘 요양원 안 와도 돼. 강풍주의보라서 여기까지 못 올거 같아서 가까운데 사는 사람보고 오늘 하루만 해달라고 부탁했어."

떨어진 스마트폰은 슬픔에 젖어, 불러도 답 없는 메아리를 울리고 있었다. 계속 울리던 아침의 알람처럼, 계속해서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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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다는 것은 참 간단하지 않아?"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긴 침묵 사이에 이런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그가 이어 말했다.

"모든 남자들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배워. 2년동안 전문적으로 말이야. 물론 나도 배웠어. 불만은 없었지. 모두가 배워야 하는거니까. 하지만 그거 알아? 우리는 '국가를 지킨다.'라는 명분 아래에서 그들의 재산을 지켜주고 있었던거야."

그는 줄곧 안대로 가려져 있던 오른쪽 눈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물렁물렁한 주변의 살만 남아있었고 중요한 '알맹이'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토가 나와서 눈을 뽑아버렸어. 눈에서 선분홍색의 눈물이 나올때 나는 감탄했어.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살아가는게 정말 행복할 것 같았지.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바뀌기로 결심했어. 2년동안 배운 기술로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죽이고, 그들을 먹었어. 나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 나는 살기위해 죽이고, 먹었어. 도망치는 사람을 쫓아가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서 국수를 먹듯이 빨았어. 이건 단순한 사냥이라고 생각해. 동물은 사냥을 하고, 인간은 동물이야. 그렇다면 이건 평범한 일 아닌가?"

그는 그동안 과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이 혈연에 대한 절망과 혐오감이 밀려와 당장 자리를 떠나고 싶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부탁했다.

"제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서둘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지금 너에게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말해야 할 시간이야. 그때 나는 네가 좋아졌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 과거를 말하는거야. 무척 닮아있어. 지금의 너와 과거의 나. 단지 그것 뿐이지만 말이야."

대체 그는 나의 어떤 부분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걸까. 나는 물었다.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답변했다.

"너도 알맹이가 비어있어. 인간성을 상실한거지. 그들의 재산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나는 변했어. 나 역시 지금의 너처럼 사회악을 증오하며 살아온거지. 정의를 추구하던 내 안에서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악으로 바뀌어 있었다면,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지 않겠어?"

그는 잠시 차를 마시고는 다시 말하였다.

"사냥을 하던도중 죽여달라며 부탁하는 소년을 마주했어. 이기적인 사회를 원망했던 나에게 그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어. 나는 그 당시에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지. 총구를 내 입으로 넣고, 총알을 발사하기 직전에 죽여달라며 찾아온 소년을 마주했어. 동족을 만난듯한 기쁨에 나는 그 소년과 함께 이 곳에서 살아가기로 약속했어. 그러나 지금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공허함과, 상실감 그리고 과거의 나에 대한 혐오감이 남아있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어. 만약 그때 입에 있던 총구를 빼지않고 쐈다면, 그게 아니라도 총구를 빼서 너를 향해 쐈다고 한다면 지금 나는 이렇게까지 되어있지는 않았을거야."

나는 혼란이 왔다. 정리가 되지 않는다. 두개골 속이 스크램블 에그처럼 뒤죽박죽이다.

"너에게는 기억이 없어. 혼란할거야. 네 기억은 내가 지웠어. 아니, 실수로 지워버렸어. 나는 너와 같이 살기로 약속한 이후 방금처럼 후회했어. 너를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했어. 너를 죽이기 위해 뒤통수를 망치로 때렸어. 그런데 너는 쉽게 죽지않았지. 진득하게 살아남아 기억만 잃고 다시 일어났어. 이게 너를 위해서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괴로운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거니까. 나는 네가 정신을 되찾았을 때 다짐했어. 네 과거를 언젠가 다시 말해주기로. 너는 네 몸속에 어떤 피가 흐르는지 모를거야. 알게된다면 아마 자신을 혐오하게 될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줘야 해. 말하지 않아서는 안돼. 지금부터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언젠가'는 바로 지금이야. 내가 죽기로 마음먹었을때."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끝낸 그는 총을 꺼내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유없는 눈물만 뚝뚝 마른 바닥에 자국을 남겼을 뿐이다.

그는 사라졌다. 그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피부의 표피를 벗기니 살이 모두 썩어있었다. 썩어있는 채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나는 그 시체를 창밖으로 던졌다.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눈의 시신경에 까칠까칠한 철가루를 집어넣은 듯 아파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오른쪽 눈을 뽑고 있었다. 그래, 나와 그는 근본적인 부분부터 닮았던 것이다.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상한 감정. 무언가를 충족시켜야 하는 욕심과 갈망이 나에게는 있었다. 언제부턴가 느끼게 된 그 감정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와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로 알게되어 사랑에 빠졌다. 서로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그들의 사이에는 어느새 21개월의 벽이 생겨있었다.

21개월의 벽을 허문 그때. 그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차렸다. 도망치려 했지만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말했다.

"나를 혼자두지 말아줘."

그는 그러면서도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쓰러졌다. 그는 이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며칠뒤 목에있는 상처에 대해 물어보면서 알게되었다.

그녀는 그를 떠났다. 그가 그녀에게 제발 자신을 떠나라고 부탁했다.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울며 호소했다. 그녀는 울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녀는 가끔씩 편지로 소식을 알렸다. 사진을 넣어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에게 전했다. 그는 기뻤다고 말했다. 자신을 떠나서 제대로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 결실을 이루었다는게 좋다고 했다. 나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는 아마 그 사진을 보고 눈을 뽑아버렸을 것이다.

그는 모아뒀던 돈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모아둔 돈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우니까. 그래서 그는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먹었다. 약한자는 당한다. 아니 악한자는 당한다. 그는 정의의 이름으로 악한자들을 죽였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몰랐다. 정의가 누구인지 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욕구에 충실한 사냥을 몇번이고 반복하던 시기에 다시 편지가 왔다. 그녀는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그에게 자백했다. 죽은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라고 했다.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었고 편지에 적혀있는 집 주소로 와서 이야기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주변인들의 시선을 느낀다. 아 오른쪽 눈이 없었지. 그는 안대를 사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은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악취가 느껴졌다.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냄새는 사냥의 흔적이었다. 그녀의 말은 진짜였다. 방문을 연 순간 시체가 보였다.

시체는 보였다. 그러나 남자가 아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 축 내밀어진 혓바닥에 키스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에 대한 인사다. 아래쪽에는 편지가 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쓰는 일종의 자백이었다.

편지에 의하면 그녀는 연쇄 살인마였다. 그와 헤어진 뒤 상실감에 의해 문란한 생활을 즐기다 그녀의 아들을 임신해버렸다. 남편이 누군지도 모른다. 의미없는 살인만을 반복하고 이유없이 살아왔다. 그녀의 아들은 어느새 8살이 되었고 그녀는 아들이 무서웠다. 친구를 집에 데려온 날. 아들과 아들의 친구를 위해 과일을 깎아서 포크와 함께 건네주었다. 그러나 수 시간이 지나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서 그녀는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녀의 아들은 포크로 친구의 눈알을 파먹고 있었다. 목에 생긴 구멍으로는 피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뒤로 아들을 피했다. 그녀의 아들은 어째서 안좋은 점만 이어받은 걸까. 그녀는 편지의 마지막에 그에게 부탁했다. 아들을 죽여달라고.

그는 우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뒤 그녀를 따라가자고. 스스로를 마음대로 할 수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줄곧 무언가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눈처럼 말이다.

눈을 가릴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 상실감을 가려주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지막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고. 그는 진작에 죽었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죽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총을 꺼내들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쏘기 직전에 누군가가 말했다.

"저를 죽여주세요."

 

 

 

 

그는 21개월의 벽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그곳에서 받았던 훈련과 그 훈련을 사냥에 어떻게 적용했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스스로 알게된 효율적인 사냥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이 사회에 어떻게 반항하고 싶었는지, 어째서 반항하고 싶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 세계를 하나의 실로 보는거야. 어딘가가 엉켜있어. 그러나 아무도 풀려고 하지않아. 노력조차 하지 않는거야. 나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어. 엉켜버린 이 세계를 풀어주고 싶었던거지."

나는 줄곧 괴로웠다. 어느순간부터 이유없는 욕심과 갈망을 느꼈다. 욕심과 갈망은 모두 살인을 향해 있었다. 그는 구세주였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 몸에 섞인 피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자신의 피따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계속 사람을 죽였다. 엄마처럼 의미없는 삶을 반복했다. 어느날 그가 말했다. 그때 나를 죽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어째서일까. 나는 지금 행복한데.

그는 나를 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했다. 살인이라는 의미없는 삶을 반복하는 끝없는 지옥에서.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몇번이고 계획을 세웠지만 한번도 실행하지 못했다. 그는 점점 사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그래서 내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의미 없다. 누구든지 죽는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다. 나는 죽음에 쫒기는 그들을 구원해준 것이다. 방향을 틀어 역으로 죽음을 잡은 것이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가 들어왔다.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눈을 뜨니 내 세계는 돌아가 있었다. 편하게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앞에는 모르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는 스스로를 나의 아버지라고 했다. 너는 기억을 잃었다고, 앞으로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 뒤로 평범하게 살아갔다. 식사도 정상적으로 하고 사는 곳도 정상적인 아파트였다. 그와 나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살았다. 이게 그가 바란 결혼 후 행복 아니었을까. 21개월의 벽이 바꾸어 버린 그의 인생의 본래 모습이다.

마지막에 그는 울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스스로를 원망하지 마라. 너는 악이 될 수 밖에 없었어. 아무도 너를 원망하지 않아. 반드시, 몸속의 피를 이겨내야해.'

아버지 미안해요. 저는 이미 졌어요.

그는 마지막까지 모르고 있는 것이 많았다. 선과 악의 구분은 누가 한다는 말인가. 그것들을 구분하는 권한은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선의 반대는 또 다른 선이다. 서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선은 무엇인가? 그것을 판단할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다. 이기는 쪽이 진정한 선이다. 이기려면 강해져야한다.

 

 

 

 

선분홍색 눈물이 떨어지는 채로 수 개월동안 방구석에 앉아있었다. 얼룩지는 마루바닥처럼 나는 엉켜있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

일어나서 밖을 쳐다보았다. 시체가 있었던 자리에 싹이 자라났다. 마치 뼈가 자라나서 탑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마당에 있는 잡초들은 여러구의 시체에서 양분을 얻어 자란 것이다. 여러구의 시체에서 뼈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괴로웠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상한 감정. 무언가를 충족시켜야 하는 욕심과 갈망. 이것은 살인욕구다. 나는 누군가를 죽여야했다. 무언가에 휩싸여 집을 나가던 도중 튀어나온 못에 피부가 찢어졌다. 그리고 그 피부의 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그와 같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죽이기로 하였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기로 하였다.

나는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철탑을 기어 올랐다. 철탑은 내가 죽인 사람의 시체를 양분삼아 자란 뼈로 이루어져있다. 위에서는 내장이 로프처럼 얽혀 내려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로프를 잡고 철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끝까지 오른 철탑 위에서 보이는 것은 내가 죽인 수 많은 머리였다. 머리들은 모두 닮아있었다. 마치 그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머리중에서 익숙한 것들이 보인다. '과거의 나'와 '나의 엄마'. 히어로를 동경했던 스스로를 죽여버렸다. 사랑하는 엄마를 죽여버렸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게 결말이다. 머리들이 소리쳤다.

'너도 똑같아.'

'네 엄마는 너를 키우는데 실패했구나.'

수 많은 머리를 피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선분홍색의 아름다운 장미가 있었다. 어째서 아름다운 것은 삶보다는 죽음을 연상시킬까. 그렇게 생각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지금은 나 혼자 멀쩡하게 철탑위에 서 있다. 난 지금 그가 느꼈던 마음속의 공허함을 느낀다. 텅 빈 우주의 끝을향해 자유형을 하는 사람처럼. 끝없는 공허함에 이유없는 눈물만이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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