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댄싱 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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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기우스의 팔은 해가 떠도 여전히 붉지 우린 또 초록 별자리는 없다고 먹어치우면 곧 보라색 별도 나올 거라고

 

( 바라본다면 )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정렬했어 손톱으로 가지런해진 이빨은 어느 날 문득 붉어지지 지루하게 흩어진 조각들은 사자자리가 지는 계절에 피어날 거라고, 손을 잡고 폴카를 추자 내일의 태양은 이미 죽은 빛, 그 사이의 시차에 언젠간 분명 짓눌릴 거라고 그러나 그건 내일과의 시차를 계산해야 할 어제의 내게 맡기고 우리는 춤을 추자고, 알파별만 골라 스텝을 밟아 빰 빰 빠바밤, 은하수에 다이빙하면 그 출렁임은 누가 받아?

 

( 또한 살아가기 위하여 )

 

봐요 나 여기서 춤추고 있어요 시리우스의 손을 잡고 한 바퀴 돌면 보랏빛 드레스가 피어나지 마주잡은 떨림은 어차피 지나간 시간의 것, 세상은 늘 우리보다 급하지만 신경쓰지 않을 거야 태양이 지나간 곳에 남은 황금빛 잔상이 새벽을 지우고 난 리라에게 돌아가, 파트너는 스텝일 뿐이라 다시 한 번 베타로, 딴딴딴 왈츠로 완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즐거워도 다만 우리는 블루죠 사랑이 퍼렇게 물들어도,

 

오백사십육 번째 별똥별은 내가 삼킬게 내 소원을 이뤄줄 거라면 나를 붉은 별로, 부풀어 부풀어 하얗게 질려 빵! 터트리면 까맣게 죽어버리죠 자 이제 내 차례야 무대 위로 가볍게 올라가면 모두가 날 주목해, 쾅 삼켰어 이젠 아무것도 없어 공허한 파티홀에 마지막 피1가 흐르다가

 

-뚝.

 

( 우리는 우리입니다 )

 

 

 

1생각을 반만 내려, 내 코사주는 보라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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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에이지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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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쁘게 달렸어 있지, 나 여기서 그만 해도 될 것 같아 이만하면 된 것 같아, 애타게 부르지만 여긴 소리도 죽어버린 플루토 돌아오는 건 없는 차가운 메탄 왜 나야? 발을 쾅쾅 구르는데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 달래주지 않았어 여기서 나 혼자야 나 혼자야?

늘 누군가를 기다려 제인, 난 오래 전에 여기 왔어 아니 어제인 것 같기도 해 어쩌면 내일일지도 몰라 저 멀리에서 새까만 구멍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 나도 죽어 저렇게 될까 겁나 욕심이 가득해서 새까매지는 게 겁나 잊혀지는 게 두려워서 혼자인 게 겁나서 레테에 잠기는 게 무서워서 누군가를 계속 내 곁으로 끌어당길까봐 삼켜버릴까봐 내 욕심에 누군가를 지울까봐 겁나 망각의 축복을 받고 싶지만 영원히 남아있고 싶어 손을 잡고 싶어 그런데 난 여기 멀리 플루토에 있잖아 제인 넌 꼬박 밤을 쏟아도 여길 찾을 수 없잖아

제인, 우리 이름 대신 서로를 번호로 부르기로 하자 난 널 열일곱으로 부를게 넌 날 뭐라고 불러줄래? 우리 나중에 플루토 아닌 곳에서 만났을 때 우리를 잃어버렸을 때 그렇게 부르면 알아볼 수도 있잖아 내가 사랑하는 너의 열일곱 나의 열일곱, 넌 언제나 분홍이었잖아 그래서 그래 나의 너는 언제나 열일곱이라 그래

닳고 닳아 모래가 된 바위가 손끝에서 바스라졌어 저것도 누군가의 기억이었을까? 내가 잊어버린 사람 잊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사랑이 백조를 타고 날아와 난 더 이상 그것들을 기억해낼 수 없는데, 이를 악물고 달렸어 제인, 열일곱, 난 누구에게서 달아나는 거야? 무엇을 위해서 달리는 거야? 우린 언제나 이를 악물고 달렸잖아 그래야만 했잖아 너무 세게 물어 이가 상해도 난 괜찮다고 웃었고 넌 그때 처음으로 울었잖아 이 지루한 길 위에서 잔뜩 넘어져 까진 무릎을 못 본 체 하면서 저 앞에 선 누군가가 거의 다 왔다며 소리치는 걸 응원가 삼으면서 일어났잖아 달렸잖아 달렸었잖아, 난 누구를 위해서 달리는 거야? 너를 위해서? 열일곱, 너를 위해서?

있잖아,
저 달을 넘어도 저 해를 넘어도 넌 열일곱일까?
난 이제 정말
열여덟일까?

내 왼편에선 누군가가 사랑을 잃고 오른편에선 누군가가 사랑을 찾아 모든 게 나부터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정말 내가 문제야? 플루토, 나는 정말 혼자야? 나 혼자 열여덟이야?

시간은 늘 나보다 바쁘고 눈물나게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블루를 안고 있어 난 여기에 멈춰 있고 싶고 어른이 되고 싶고 더 많은 걸 알고 싶고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 세상에 나가고 싶고 아직은 세상이 두려워서 머뭇거려 너를 안아주고 싶지만 네가 안아줬으면 하고 누군가와 진하게 입을 맞추고 싶은데 심장은 창백해 우주를 가지고 싶고 손에 쥔 모든 걸 버리고 싶어 난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 날 사랑해?

사랑한다고 해줘 아직은 그래도 열여덟인데

 

 

 

지나치게 오랜만이라 오히려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선생님, 잘 지내셨나요? 저는 여전히 미숙하고 불안정하고 거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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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블루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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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가 떠오르면 기상, 목을 늘어뜨린 삶이 엔진을 달구죠 정의되지 못한 활자들은 입 밖으로 튀어나가고 혀가 엉키면 조용히 가라앉자 어제의 페이지를 망각한 눈알이 왈츠를 딴딴딴, 던져버리자 레퀴엠을 울리고 줄을 당기는 너는 날 마치 뒤바리 부인 보듯, 난 적어도 그처럼 울부짖지는 않아 다만 예쁘게 죽고 싶을 뿐

 

오전 열 시의 소녀들은 슬프게도 로맨스를 꿈꾸네 오, 로미오를 기다리는 저 수많은 쥴리엣, 쥴리엣! 이름자를 탓하기 전에 사랑할 생각부터 했어야지 쥴리엣만 가득해도 혀는 만나고 그 열기는 절대 혼자가 아니지 하느님, 당신의 어린 양이 길을 잃었어요! 자욱한 우리를 벌하실 건가요 여긴 차라리 천국이죠 날 봐요, 아무리 목소리를 눌러담아도 문은 열리지 않아 하느님, 닫으면서라도 들어갈 테니 에덴의 문을 열어주세요 오, 하지만 에덴도 에덴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죠 여긴 이브를 닮은 얼굴만 가득하고

 

잔뜩 헤져선 팔락이는 커튼 너머에서, 얼마나 사랑하면 그런 마음이 되니? 어떻게든 울지는 말아줘 머리가 아뜩하거든 햇살 가득한 오후 두 시, 도로시를 부르자 새하얀 머리칼을 본 적이 있나요? 바스라진 태양이 꼭 그런 모양이었죠 사랑이 바래면 그렇게 돼요, 있지, 앨리스는 죽었어 그 멍청이, 퀸 앞에서 신발을 부딪치면 어쩌자는 걸까? 돌아가고 싶다면 이겨야 하는데

 

사랑을 죽이고선 토하기 바쁜 심장은 피나타*처럼 터뜨려버리고 핏방울 가득 배를 채우면 미처 버리지 못한 시선들이 질척하게 달라붙어 색 있는 걸 처음 본다는 듯이, 철근으로 대신한 심장은 파란색이지 시리도록 눈부신 코발트 블루, 입술을 쭉 내밀면 글쎄, 키스는 사양할게 네 눈 뒤에서 흔들리는 포니테일이 칠판을 건드리면 오, 딩동댕동, 가라앉던 오렌지는 언젠가 던진 눈알에 맞아 산산조각나고 은빛 마음이 흩어진 하늘 밑에서 심장을 되찾을게 잃어버렸던 사랑조각이 죽었던 목소리가 언젠가의 오렌지가 다시 굴러오면 하늘을 봐, 가로지르는 저 불꽃이 유성인지 위성인지 버렸던 우리인지,

 

얘 그거 들었니 5반에 S가 죽었다며 난간에 목을 달고 죽었다던데 그 애 매달린 꼴을 본 애들은 다 화장실로 뛰어갔다던데 그 아이 다시 이과로 간다고 했다던데 그다지 좋은 애는 아니었다던데 그래도 참, 참 착했다던데
유학을 가고 싶었다던데 캐나다인이 되어보고 싶다고 오래도 바랐다던데 음악 공부를 하고 싶었다던데 시인을 그렇게나 바랐다던데
그러면 뭐하니 죽었잖아

 

 

 

*이제 알았지, 앓았지, 그러니까 우리 만나기 전에 같이 떠나자 분홍은 산산조각이 났는데 파에서 반음 더해 낭자해도 변하는 게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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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化, 불사조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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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化, 불사조의 노래

 

 

날 때부터 황제였던 죄로
지고 있는 불명예
지나간 세대는 이 밤을 괴로워한다

 

어둠을 약간 몰아내기 위한 횃불을
꺼내 드는
대신 우리는 우리를 태우지
우리는 예카테리나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까닭은
다만 황제를 황제로 대우하라는
당연한 요구 하나
용포는 말하지도 않았다
어째서 그대들은
감히
비질을 하게 하느냐

 

주거니 받거니 날아드는 소식에
우리는 서로에게 기름을 뿌리며
괜찮아요, 우리는 이길 거예요,
타오르는 저 불은
번지고

언덕 위에서
별을 읽는 이가 우리를 향해 잔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부터 흘러온
물줄기를
이제는 기화하기 위하여
내 딸의 딸의 딸들은 절대로 울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불사조를 불렀다, 노래하라
수많은 자매들이여, 형제들이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잃어버린 우리의 이름을
이제는 되찾기 위하여

 

우리는 여기 있다, 너를 위해 여기 있다

 

 

 

* 이제 나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그대를 사람으로 만들겠다 진흙으로 빚어진 그대의 두 눈에 숨을 불어넣겠다 그대가 세상을 볼 수 있게 막힌 그대의 두 귀에 말을 속삭이겠다 그대가 들을 수 있게 그대의 막힌 입을 뚫겠다 그대가 말할 수 있게 그대의 굳은 팔다리에 근육을 붙이겠다 그대가 움직일 수 있게 그리고 그대의 두개골 안에 텅 빈 두개골 안에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넣어 주겠다 그대가 생각할 수 있게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가 우리와 함께 타오를 수 있게

 

 

 

 

 

 

*****

마땅히 일기가 되어야 할 글이지만 일기를 여기에 올려도 되는 것 같아서. 전례가 있더군요.

이 글은 심사에서 제외해 주세요. 저조차 좋아하지 않는 글입니다. 목적이 분명해서 지리멸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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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나는 문득 반대편 시간축의 당신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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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백육십칠년 그 화가의 수영장에서 크게 물이 튀었다

이천십팔년 그 파동이 겨울을 녹였다

 

―나는 다만 버텼을 뿐

 

 

 

 

 

 

 

*David Hockney, 'A Bigger Splash',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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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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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 뜨지 않아 파아란 하늘을 뒤로 너는 쌓인 눈 위에 있다

눈 덮인 지붕들은 너의 활주로, 너는 날고 싶다고 했다

빛바랜 전신주들은 넘어질 듯 얽혀있다

가로등 하나 빛나며 너의 머리 위로 쌓이는 눈을 비춘다

 

나는 너를 바라본다

너는 하얗게 웃고 있다, 너보다 높이 쌓인 눈보다

너의 태아는 분명 투명하도록 말갔을 것이라고, 너의 목소리가 부서진다

사람 키보다 높게 눈이 쌓인 이곳에서

너는 날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너를 뱄을 때 큰 뱀이 용을 물어 죽이는 꿈을 꿨다고 했다

너는 그 말을 듣고 웃기만 했다

뱀이 용을 시기했던 탓이라고

너는 날고 싶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 지금 여기 서서 너의 이름을 부른다

너는 눈 쌓인 그 위에 서서 두 팔을 벌린다

신새벽의 끄트머리에서

눈을 감은 너의 모습은 어느 이국의 성녀라도 되는 양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른다, 그 목소리를 타고 너는 날아간다

눈 덮인 지붕을 박차며 너는 날아간다

가로등이 꺼진다

마침내 너는 날았다

 

 

 

 

 

 

누구의 사진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제 겨울을 한 장으로 표현한다면 이 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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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이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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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이름 2>

0
나는 당신 이름이 알고 싶어요

 

1
당신은 늘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과거를 읇조리는 사람이었죠 우리는 아마도 등을 마주대고 사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래서였을까요 우리는 모두 지금을 살지 못하고 시간의 경계에 갇혀버렸죠 그리고 반짝이던 당신의 이름은,

 

2
계속 누군가를 찾고 있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눈이 마르는 날이 늘어났어요 자꾸만 눈물이 나서 과거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번지는 잉크와 구깃해지는 종이 따위의 것들을 바라봐요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
등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대화는 하지 않아요 우리는 정반대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나는 우리가 살지 못하는 지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절대 대답하지 않았죠 당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미래뿐이었고 나는 당신을 지나온 시간만 말할 수 있었으니까 그 시차 때문에 나는 한참을 앓았죠

 

당신도 모르는 시간이 내게는 있었어요

 

4
언제쯤 우리는 마주볼 수 있을까요 시간이 뒤틀리면 만날 수 있을까요 과거는 반복되고 돌고 돌아 미래가 되니까 계속 이 길 위에 있다보면 우리가 마주볼 수 있을까요

 

5
당신의 이름이 알고 싶어요 나의 이름이 알고 싶어요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죠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은 내일이라고 하고 지나간 오늘은 어제라고 해요 오늘을 살지만 오늘을 살 수 없는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꿈이라고 하고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라고 해요 흐르는 시간 속에서 멈춰있는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시간을 뒤틀까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당신이 돌아봐줄까요

 

6
가끔은 간절한 것이 독이 되는 일도 있어요

 

7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무엇인가요

 

8
흘러가는 세상 생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건져올렸어요 빛나는 이름은 많아요 하지만 우리의 것은 없죠 언제쯤 이름을 받게 될까요 이름을 알게 되면 이 삶의 이유도 알게 될까요

 

9
당신 이름을 너무 알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누구도 알려주지는 않으니까, 멋대로 사전을 펼쳤어요 당신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를, 나를 말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서 시간 틈새를 뒤졌어요 그렇게 찾은 당신의 이름은, 나의 이름은,

 

10
당신의 이름은 빛,
나는 그림자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그렇게 정했어요
빛은 눈이 부시어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요 그건 미래도 마찬가지죠 당신 또한 제대로 알 수 없어요
그림자는 빛이 아니라 똑바로 볼 수 있어요 그건 과거도 마찬가지죠 나는 다시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아니라서 오늘에 가려진 당신을 보지 못해요 당신을 가리는 오늘의 그림자에 묻혀 살고 있답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는 거예요 지나갈 시간이 있기에 지나온 시간도 있어요 그건 나와 당신도 같죠

 

나는 아마 영원히 당신 앞에 설 수 없겠죠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죽어버리니까 빛나는 내일을 두고 어두운 어제를 볼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 남을게요 언젠가 당신이 오늘을 넘어올 때를 기다릴게요 그때가 되면 부를 수 있게 될까요 닿을 수 있게 될까요 알 수 있을까요,

 

11
당신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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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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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눈을 닮은 한이에게

 

1
잘 지냈어? 나는 아주아주 잘 지냈어 있지, 나는 지금 한국에 없어 여기는 세상에서 제일 큰 땅이야 눈을 돌리면 눈이 있는 곳 사람들은 다정해 친절하고 따뜻해, 그건 내가 흰 피부와 노란 머리 파아란 눈을 가졌을 때만 일어나는 기적 그 따뜻한 냉정함에 나는 오늘도 몸부림쳤어 끔찍해 그런데 여기서밖에 숨을 쉴 수 있어서 다시 눈물에 지우개를 마구 문질렀어

 

2
있지 나 여기 볼에 서리가 피었어 예쁘지? 반짝이는 얼음꽃이 질 때 나도 여기에 남아있을까
어제는 여기보다는 훠얼씬 다정한 서쪽나라의 여왕님 꿈을 꿨어 아주 신기한 힘을 갖고 있다지 얼음과 눈을 다루는 힘 나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를 정교한 얼음동상으로 만들텐데 봄이 오면 녹을텐데 사라질텐데

 

3
너는 어떠니 잘 지내? 거기는 눈이 온다며 하이얗게 소담하게 눈이 쌓였다며 새카만 구름에서 새하얀 눈이 내렸다며 있지 눈은 죽은 사람들의 말이 부서진 거래 저 멀리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외치는 말이 별처럼 부서져서 내리는 거래 저 눈송이 중에 내 말도 있을까 우주 너머에서 부서진 내 눈물도 있을까

 

4
한아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해 너무 행복해서 어떨 정도냐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야 그러니까 만약에 나를 다시 못 보게 된다면 그때는 날 위해서 눈처럼 하얀 장미 한 송이를 태워줄래?

 

5
내 장례식에는 오지 마요 부탁이에요 오려거든 국화 말고 작은 하얀 장미를 가져다줘요 화려하게 다 핀 장미 말고 덜 핀 장미 말이에요 다 핀 건 금방 죽으니까 죽은 사람에게 죽을 꽃을 가져다주는 건 너무하잖아요

 

미안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다시는 이런 이야기 하지 않을게요 나한테 제발 따뜻하게 대해주지 마세요 제발

 

6
한아 사실 엄청나게 추워 마음이 추운건지 아니면 정말로 추운건지는 잘 모르겠어 너는 괜찮아? 눈이 쌓였다며 새하얗게 깨끗하게 쌓였다며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해야지 눈을 덮어야지 눈을 감아야지

 

7
한아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더는 편지를 못 쓸 것 같아 네가 내 눈이었어 내 눈이 되어줘서 고마워 너는 눈처럼 살지 말아줘 내 몫까지 행복해줘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우리 그때는 꼭 같이 스ㅋ,

 

[글씨가 끊어져 있다. 눈이 녹은 것처럼 점점이 젖은 자국이 남아있다. 마지막 일기는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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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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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경아, 경아 우리는 아직 어린 별이니까 아직 피지 않은 민들레니까 경아

 

1

경아 어디에 있어?

 

온통 검은 세상에서 너 홀로 하양이었어 경아

 

경아, 경아 어디 있어 나 여기 있어 혼자 손 흔들어 인사하고 뒤돌아 그대로 사라지는 삶을 살고 싶다며 경아

 

2

너를 만나러 왔어 오래 돌아서 드디어 너를 만나러 왔어

 

경아 어디 있어 하얀 밤이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잖아 파랗게 뜬 달에 잡아먹히기 전에 도망치자고 했잖아 경아

 

이러는 게 어딨어 경아 같이 살아남기로 했잖아

 

3

영아

 

노랗게 밀려오는 파도에 끝에서부터 천천히 부서졌어
차마 도망칠 수는 없었어 그래서 나는 그냥

 

그림자 없는 사람이, 온기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미안해, 근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4

나 아까 오랜만에 만난 아이랑 인사를 했어

 

안녕 나 누군지 기억 나? 안 난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기억해 나는 네 그림자야 네 그림자라고 다시는 날 떠나지 마, 응?

 

(웃기지 나는 그림자가 있을 수가 없는데 내 이름이 뭔지는 알아?)

 

있는 힘껏 발버둥쳤어 발끝부터 노란 모래색으로 변해 가는데

 

5

경아 같이 잠자리 잡으러 갈래 같이 별을 피워내러 갈래 경아

 

달빛을 잡으려 달렸어 경아, 아직 피어나지 않은 약속을 하고 우리 같이 파랑에 뛰어들자 어느 날 이 파랑이 보랏빛이 되고 그건 아마도 우리가 흘린 빨강이지 경아

 

(아주 오랜 꿈을 꿨어 언젠가 도망치다가 별에 머리를 부딪쳤던 날의 잔상이)

 

괜찮아 분홍이 되고 싶었던 건 너뿐이 아니잖아

 

6

영아

 

사실 바다가 보고 싶었어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크게 소리쳐도 아무도 모를 공간에서 너랑 나랑 둘만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

바다가 울었어, 영아

나는 그냥 다정해지고 싶었어

 

7

경아, 오늘도 꿈을 꿨어?

 

8

영아 나 친구가 생겼어, 볼래? 환이야. 나랑 같이 살아. 내가 숨 쉴 때 같이 쉬고 내가 먹을 때 같이 먹어. 내가 젖으면 같이 젖고 내가 자면 같이 자. 근데 내가 파랑에 잠겨 있을 때는 절대로 따라서 잠기지 않는다, 영아

 

(경아 안 되겠다 너 조금 더 자 괜찮아)

 

도망쳤던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래도 되는 줄 몰랐어

 

9

경아 나 갈수록 감정이 격해져 어떤 날은 동이 트기 직전까지 깨어 있고는 해 불면이 심해진 밤이면 나는 사고가 정지된 채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넘쳐나는 생각 틈에서 허우적거려

 

경아

난 어디로 가야 해?

 

10

덜 피어난 민들레를 꺾었어 너도 언젠가는 씨를 뿌릴 테니까 그러고 나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내가,

 

(환아 그만해줘 제발)

 

경이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11

경아 아무도 도망쳐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며 근데 너는 그래도 돼

있지 경아 나 가끔 너랑 손잡고 죽어라 달려들었던 파랑이 나를 짓눌러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경아

 

(환이 뒤를 돌았다. 뭔가를 손에 쥐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 다 피지도 않은 제비꽃.)

 

경아, 나 별에 머리를 부딪칠 것 같아

 

12

무서워, 경아

 

눈 뜨면 마중 나와 있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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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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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마주하게 된 사람을 위로하고 위로하는 동시에 위로받고
향기로운 단어들을 쏟아내고 미처 정리할 틈도 없이
부끄러워하고 실수로 쏟았다고 변명하고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애써 숨긴 전부를 알아듣고

 

각자의 방식으로 파랑을 표현하고 물감을 풀어 하양에 쏟고
네 파랑은 아름답구나 오늘은 유독 파랑이 짙구나 바다 색이구나
빛바랜 노을이구나 잿빛 분홍이구나 하는 예쁜 말로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고

 

파랑이 검푸른 빛이 되면 곁에 있지 않아도 짓누르는 무게를 알아차리고
정신차리라고 끊임없이 텔레파시를 보내고 깊어지는 물 속에서 끌고 나오고
아프지 말라고 제발 당신만은 아프지 말라고 마음 졸이면서 두 손 가득 빌고

 

너의 내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언어로 서로를 걱정하고 기억하고 동시에 볼 붉히며 분홍으로 가만가만 웃고
서로를 다정하다 하고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다정한 말로 애써 진짜 분홍을 가리고

 

서로에게 직접 말해주기 부끄러운 말을 모두가 보는 곳에 쏟아내고
우리는 언어의 바다 속에서 서로의 메세지를 알아보고 또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고

 

이 풋내 나는 게 어떻게 사랑이 아니야?

 

ㅡ입을 맞춰야만 사랑이라고 하는 바보들에게

 

 

 

 

어쩐지 오랜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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