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블
사람 [1]

날은 깊고 아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땅 아래 사람 허리보다 낮은 방바닥에서 글을 쓴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실온의 물와 냉장고 속 음료 중 너는 하나를 고를 줄 모른다 우리는 그럴 때 섞어 마신다 나는 거울을 보며 말한다 사람은 사람을 보며 말해야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볼 줄 모를 수도 있다 사람 은 사람 은 사람 사람은 사람이라서 허리보다 낮은 방바닥에서 글을 쓴다 이것은 사람이라서 하는 말이다 날은 깊고 아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다 아들은 아 버지가 버린 스스로를 이미 버린 사람

사람
/ 2019-07-27
프블
머리통인형 [1]

섬에는 항구가 두개 있었다. 섬의 중심에서 동쪽과 서쪽을 가르는 선을 긋는다면 하나는 북서쪽 삼분의 일 지점에 다른 하나는 남동쪽 삼분의 일 지점에 있다. 둘은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이건 의도라기 보다는 우연한 일이다. 마치 우연히 손목시계를 볼 때에 특정한 시간이 자꾸 보이는 것처럼. 북서쪽의 항구는 육지를 오가는 배편이 항시 있고, 물류센터와 화학공단이 있어 큰 규모다. 남동쪽의 항구는 바다와 마주하는데 그쪽으로는 아무리 가봐야 대양밖에는 나오지 않고 가까운 곳의 섬 몇이 전부다. 섬 근처는 물살이 세지만 섬 주변을 따라 고기들이 많이 살아서 물고기를 낚는 어부들은 주로 남동쪽의 항구에 정박한다. 남쪽의 항구 근처에는 작은[…]

머리통인형
/ 2019-07-18
프블
꽃들을 위하여 [2]

빠삐용은 프랑스어고 뜻은 나비이다 나비는 꽃과 살아가는 곤충이다 곤충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곤충으로 분류했으므로 아마 맞겠지 사람들이 나비 이야기를 한다 나비는 아름답다는 이야기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의외로 징그럽다는 이야기 빠삐용은 또한 개의 종이기도 하다 나비같은 귀를 가진 이 종은 프랑스 귀족들이 키웠다 나비를 서커스에 세우고 싶어했다 나비는 흔들거리며 자신을 주체 못하고 날아다니기에 돈이 될거라고 했다 나비가 그 흔들거림으로 링을 통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했다 나는 돈이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이내 꽃이 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우리는 제 갈길을 갔다 나비는 프랑스어로 빠삐용이고 죽은 맥퀸이 출현한 영화이기도 하다[…]

꽃들을 위하여
/ 2019-07-05
프블
겨울에 태어났다 [1]

이불을 끌어안고 잠을 더듬다가 새벽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지난 밤 기워둔 가슴을 입는다 매년 겨울이면 깁은 자리 죄 터져 흉한 가슴인데 아주 오랫동안이나 퍽 열심히 입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한 새벽 가슴을 기워 입는 자들이 울 때에 꼭 저 소리로 울던데 침울한 기분으로 비척비척 창가에 선다 사방에서 김이 솟는 주택가 똑똑 맑은 물방울 연통에서 떨어지고 김 사이로 한 모녀 끌어안고 잠든 침실이 보인다   문득 열다섯 살 어느 밤에 골목을 쏘다니다가 알았다 연통 밑마다 좌절한 인간처럼 굽어자란 얼음들 외로운 사람 울리는건 다름아닌 보일러 연통임을 나는 창가를 등지고 발가락을 굽어보며 울었다   겨울에 태어나느라 봄은 보지 못했다..[…]

겨울에 태어났다
/ 2019-06-24
프블
길바닥의 녀석 [1]

몇년 전 도로를 새로 닦을 때 아스팔트가 한 줌 부족해서 길바닥 한복판에 구멍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장마철만 되면 마치 눈물을 머금은 눈이 되어 슬퍼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동네 사람들 모두 조심하자며 돌아 돌아 가는데 저는 급하게 뛰어 가다 이 녀석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제 신발은 속 시원하게 웅덩이를 들이켜 그놈이 깜짝 놀라 사방에 흩뿌린 몸체는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를 그렸습니다   발을 말리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기에는 밤만 되면 보름달이 갇혀있었고 어느 쓸쓸한 저녁에는 노란 가로등의 삶이 걸려있었고 길고양이들의 울음이 모여 있었던 것이   저는, 그래, 그래서 슬펐었구나[…]

길바닥의 녀석
/ 2019-06-13
프블
우울의 필터를 끼고 [2]

우울의 필터를 끼고 사는 사람들이 있대 글쎄 나도 본적은 없는데 말야 그래 건강한 사람은 많이 봐도 환자들은 보기가 힘들잖아 내가 입원 하지 않는 이상   그런데 이게 내 손가락 하나 날리고 나니 남들 손가락만 보게 돼 저 놈은 삐꾸가 아닌가 하고 그래서 뭐, 손만 보다 우울한 이들은 잘 못 봤어   어디 야산이라도 가 볼까 거긴 인기척이 잘 없으니까 가서 잎사귀다 날아간 나무가 사람처럼 보이면   혹시 알아 새 살 돋는 행복이라도 찾을지 사람이 나무처럼 서 있을지

우울의 필터를 끼고
/ 2019-06-06
프블
말이 어렵다고 [1]

공기는 수말의 가죽처럼 질기고 발굽이 열린 나무 아래에서 입술로 할 수 있는 것, 나 합니다   말은, 말은 너무 어려우니까 입술을 질겅거리며 씹는 일과 냅킨을 목에 걸고 자분자분 썰어 먹는 일 차라리 그걸 하겠어요 용기를 가지라니요, 용기보다 낮은 일회용 접시 가득히 고이는 불그죽죽한 즙 단숨에 넘지도 못하고 붙들려 있지도 못하고 내 피가 발목의 뼈를 다시 맞추는데요   그렇다고 내가 나무에 앉아있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그건 아니겠지요, 내가 말을 타듯이 나무를 타고 내려오고 싶어도 뎅겅뎅겅 잘려나간 나의 발굽, 아니 발목, 나무 아래에서 내가 까먹고 아직도 말이 어렵다고 말이 어렵다고   공기를 찢고 다시 태어나기 전에 냅킨을 닦으면[…]

말이 어렵다고
/ 2019-05-31
프블
봉오리 [1]

피우지 않는 꽃봉오리 봉오리 라는 꽃이 있다 이미 꽃이라는 허울을 내던져 벗어버린 꽃 화사하게 웃지 않아 멋쩍은 멋을 아는 꽃 서두르지 않는 꽃 그래서 시들지 않는 불로의 꽃

봉오리
/ 20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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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0] 프블 2020-11-02 Hi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