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바치
여리고 어린 [1]

자주 울었다 나와 함께 울어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가끔은 혼자 눈물을 삼켰다   종종 외로웠다 아무도 내 앞에 서서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 세상은 울고 싶을 만큼 밝고 화사했다   이따금 머리가 아팠다 나를 둘러싼 다른 많은 문제들처럼 만성적인, 두통이었다 몸이 너무 일찍 늙었고 어린 마음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떄로는 쉽게 상처를 받았다 마음의 살가죽이 여려서 작은 가시가 박혀도 피가 똑똑, 떨어지곤 했다 손가락으로 대충 비벼 닦은 상처들은 그만큼 쉽게 덧났다   자주 울었다 마음이 여려 자주 울었고 마음이 어려 다시 웃지 못했다

여리고 어린
/ 2021-02-03
갖바치
청소(퇴고) [1]

엄마가 생일 선물로 가위를 사줬다 마땅한 종이가 없어서 대신 내 몸을 오렸다 3분의 2 정도 일직선으로 자른 다음 거꾸로 뒤집어 보았더니 가슴에 먼지가 가득 껴 있었다 나는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였다   청소기는 작년 생일 선물이었다 엄마는 선물을 주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했다 나는 청소기로 집안을 청소했고 방바닥의 머리카락을 빨아들였다 머리카락은 청소기 속에서 뭉쳐 주먹 크기의 공이 되었고 그것은 곧 심장 크기라는 것을 뜻했다 어쩌면 머리카락이 두 살 즈음의 생일 선물이었는지도 몰랐다   청소기는 덜덜덜덜 다시 털털털털 그리곤 아주 고장이 나버렸고 먼지는 안쪽에서 빠지지 않았고 나는 청소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통[…]

청소(퇴고)
/ 2021-02-01
19 글틴님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3] 갖바치 2021-01-27 Hit : 318 갖바치 2021-01-27 318
갖바치
간접흡연 [1]

구름이 짙다 회색의 안개는 사실 연기일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이곳도 실은 누군가의 재떨이 속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하늘서부터 내려오는 담뱃재를 피하려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되는 간접흡연으로 우린 공기를 마시면 마실수록 더 아파진다 인큐베이터 속 갓난아기를 빼곤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콜록거리며 눈을 감을 뿐이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이 태양인지 담뱃불일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구름이 짙다 어제저녁엔 눈이 왔다 신들의 담배에서는 하얀색 재가 내릴까

간접흡연
/ 2021-01-24
갖바치
눈구경 [1]

바깥에 눈이 내리길래 우리도 방구석에서 눈 관찰을 했다 네가 먼저 돋보기로 내 눈을 들여다보곤 정말 까맣다고 예쁘게 웃었다   돋보기 속 네 눈은 갈색이었고 몇 배로 커진 만큼 몇 배로 이뻤다 돋보기를 사이에 두고 내 눈과 만난 네 속눈썹이 엷게 떨렸다 내가 말했다   네 눈은 다른 눈들과 달리 흰색의 육각형 결정이 아니구나 그러므로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특별하다 내가 너를 가장 먼저 발견했으니 너의 학명은 사랑스러움이다   네가 살풋 눈을 감았고 밖엔 계속 눈이 내렸다

눈구경
/ 2021-01-12
갖바치
크로커다일(악어의 눈물 퇴고) [1]

1. 아무도 없는 방 안을 혼자 걷고 있으면 발바닥에선 쩌억, 쩌억 소리가 난다 꼭 악어 소리 같아서 그런 날은 꼭 꿈을 꾼다   2. 악어는 내 몸을 먹고 나는 악어의 초상화를 그려요 초록 몸 초록 다리 초록 꼬리를 악어가 내 다리를 우물거리는 동안 나는 그리고 눈을 그리는 순간에 오른팔이 먹힙니다 덕분에 왼팔로 찍은 화룡점정은 눈 아래로 내려가 점이 되고 나는 말해요 그건 미인점이라고 악어는 만족스럽습니다   3. 눈을 뜨면 방바닥은 노란색이고 아프고 휘청거려 장판 속으로 발이 푹 빠지고 나는 빼려 하고 다시 빠지고 또 빠지고 빠지고 그러다가 생각해 여기는 늪지대구나[…]

크로커다일(악어의 눈물 퇴고)
/ 2021-01-11
갖바치
청소 [1]

가슴이 좀 답답한 것 같아서 내 몸을 가위로 잘라 거꾸로 뒤집어 보았더니 가슴에 먼지가 잔뜩 껴 있었다 나는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였다 낡은 진공청소기는 덜덜덜덜 하다가 무언가 중요한 게 속에 들어갔는지 툭, 걸리곤 다시 털털털털 했고 먼지는 안쪽 깊숙히 빠지지 않았다 청소기 소리가 계속 울렸다  

청소
/ 2020-12-23
갖바치
고양이 가설 [1]

1. 언젠가는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분노로 멸종하고 고양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겠지   고고학에 흥미가 있는 고양이들은 아파트로 탐사를 나갔다가 인간의 뼈를 발견하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옹.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우리 고양이들은 수천 년 전엔 인간의 애완동물에 불과했습니다.) 야옹야옹. (인간은 지금은 멸종된 수천 년 전의 고대 생물이며, 대개 아파트라는 거대 석굴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옹야옹야옹야옹야옹- (웅성웅성-)   고양이들의 세상은 뒤집어질 것이다   2. 우리 집 고양이는 멍청하다 아마 고양이들의 세상이 와도 우리 고양이의 후손들은 여전히 멍청한 채로 가난하게 살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가 멍청한 건 나를 닮아서다[…]

고양이 가설
/ 2020-12-09
갖바치
외로움은 나의 것 [1]

사람들이 나와 함께 울어 주지 않아서 아무도 내 손을 잡고 함께 외로워해주지 않아서 참 많이 울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울어 본 적은 없어도 누구의 손도 잡은 적이 없어도 다른 이들은 그리 해 주길 바랐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외로움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었다   내 눈물은 나에게만 보이고 나는 늘 팔짱을 꽉 끼고 있다는 것을 항상 외로울 때는 모른다   함께 하는 외로움은 없다는 것을 내 감정을 남에게 떠넘기려 하면 할수록 외로움은 괴로움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항상 외로울 때는 몰랐고 늘 둘이서 괴로워했다

외로움은 나의 것
/ 2020-11-23
갖바치
아르키메데스??!?! [1]

욕조라는 건 사치품 아니겠어요? 온전한 부르주아지들의 세계 일어섰을 때 허리까지 차지 않으면 진정한 욕조가 아니라고 누가 나에게 그러더군요 일자로 누워 다리를 쭉 뻗은 채 몸을 녹일 수 없다면 목욕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더군요   그런 연유로 우리에게 욕조라 함은-진정한 욕조라 함은 감히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그 밖에 진정한 욕조가 못 되는-욕조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욕조 언저리의 물웅덩이쯤을 갖고 있는 우리 소시민들은 그 웅덩이에 물을 가득 채워 어느 그리스 철학자와 같이 -과학 역시 철학이라고 소시민의 아비 되는 소시민이 그리 말하더군요- 금덩어리를 담가보기밖엔 할 일이 없는 것인데 금덩어리 가진 사람들은 욕조에서 목욕을[…]

아르키메데스??!?!
/ 2020-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