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바치
그에겐 아가미가 없었다(퇴고) [1]

동쪽의 어느 바다에선 물고기들과 함께 사람 하나가 살았다 그는 자신이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깨달았다 주위의 다른 모든 것들과 달리 그는 사람이었다 아주 기뻤다   1. 나는 물고기가 아니었기에 바닷물에선 숨을 쉴 수 없었어 아가미가 없는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겠어 내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쉴 때마다 입에선 물줄기가 솟았지 물고기들은 그런 날 보고 고래를 애써 따라한다며 비웃었지만 난 대꾸하지 않았어 바다 속을 떠날 용기도 저 밑으로 내려앉을 용기도 없었거든 그저 잠시 머리를 내밀 뿐   2. 사람에게는 아가미가 없지 내게는 아가미가 없었어 물고기들은 나의 흉터를 아가미라 불렀어[…]

그에겐 아가미가 없었다(퇴고)
/ 2020-11-21
갖바치
바닷바람 [1]

아침 일찍 바닷가 파도 앞에 서서 바닷바람을 마신다 파도 소리를 듣고 희망을 보았을 선조들의 기쁨을 마신다 비바람을 헤치고 이곳에 도달했던 뱃사람들의 땀방울을 마신다 스스로 바다 속으로 걸어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잔인하고 성긴 괴로움을 마신다 모래에 새긴 연인들의 이름 위 보드라운 사랑까지 마시고 있으려니 파도가 내 발을 툭툭 밀친다

바닷바람
/ 2020-11-04
갖바치
악어의 눈물 [1]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걷고 있으면 발바닥에 눌린 바닥에선 쩌억 쩌억 소리가 난다   악어가 입을 벌리는 것만 같아 이곳이 늪지대일까 나는 탐험가가 아닌데.   나는 탐험가가 아니고 이곳도 늪지대가 아닌데 거울을 보면 악어 한 마리 서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웃으면 무서운데 울면 거짓 같다.

악어의 눈물
/ 2020-10-21
갖바치
그에겐 아가미가 없었다 [1]

어느 동쪽의 바다에서 한 사람이 물고기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자신이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물고기가 아니었기에 바닷물에선 숨을 쉴 수 없었다 그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쉴 때마다 입에선 물줄기가 솟았다 누구는 특이한 취미라고 말하고 누구는 고래를 애써 따라한다며 비웃었다 그는 못 들은 체 했다 그에게는 바다 속을 떠날 용기도 저 밑으로 가라앉을 용기도 없었다 그저 잠시 머리를 내밀 뿐이었다   그에겐 아가미가 없었다 물고기들은 그의 흉터를 보고 아가미라 말했다 언젠가 바다 위 하늘으로 올라가 태양과 마주하려다 낚시바늘에 찢긴 자국이었다 그는 그 뒤로 절대 하늘을 똑바로[…]

그에겐 아가미가 없었다
/ 2020-10-05
갖바치
[1]

인생이란 우리가 잠자지 않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이라 그랬던가요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아주 짧을 거에요 우리의 아침과 낮은 어디로 가고 당신은 하루 종일 밤만을 살며 잠을 자요   자고 있는 당신은 꼭 태아 같아요 아마도 당신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몇 배나 더 아름답나 봐요 꿈속에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흔들어 깨우려던 손을 내리곤 해요 그리곤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잠에 들어요   그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볼까요 혹시 그곳에선 보라색 갈대들이 자라나나요 그래서 노을이 질 때 주황빛 속에서 보라 갈대들과 함께 춤을 추나요   그 안에서 당신은 무엇이 될까요 당신은 그곳에서[…]

/ 2020-10-05
갖바치
두 개의 작은 별(퇴고) [1]

언젠가 네가 내게 그랬지. 나는 나중에 절대 도시에서 살지는 않을 거라고 빽빽히 들어찬 아파트들 사이서 네모난 하늘을 보며 살고 싶진 않다고.   시간은 흐르고 우린 여전히 도시에 사는데 문득 네 말이 생각나서 차를 끌고 시골에 갔어 그리곤 여름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과 그걸 담은 둥그런 어둠을 보았지 난 그 둥금의 중심으로 다가가 그걸 붙잡고 매달리는 상상을 했어 한 손으로는 중심을 단단히 쥐고, 수 많은 별들 틈에서 다로가 대화하는 상상을 말야 수 많은 별들.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거였지.   갑자기 도시의 별이 너무 외로울 것 같았어 우리가 살던 곳에선 단 하나의 별만이[…]

두 개의 작은 별(퇴고)
/ 2020-09-22
갖바치
그녀의 바다 [1]

그녀는 궁상맞게 울어대기가 싫었다 그래서 눈물을 삼키고, 그걸 고스란히 제 뱃속에 쌓았다. 강이요 호수요 그녀만의 바다였다   그녀가 목구멍 안쪽을 향해 눈물을 흘릴 때면, 바다는 항상 깊어졌다. 이따금 바다의 어둠 아래에서 심해어들이 다투기라도 하면 그녀는 웅크린 채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아야 했다.   어느 날, 해수면이 위험할 정도로 높아졌을 때 그녀는 턱 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모두 게워내었다. 지진해일이었다 텅 빈 뱃속에서 심해어들이 요란하게 팔딱거렸고, 눈 앞에 쏟아진 바닷물에선 물비린내가 났다. 그건 어쩌면 그녀 자신의 냄새였다.

그녀의 바다
/ 2020-09-16
9 가입인사 [1] 갖바치 2020-09-10 Hit : 79 갖바치 2020-09-10 79
갖바치
귀촌 [1]

  얼마 전에 시골에 갔었어 그곳에서 여름 밤하늘의 반짝이는 빛들과 둥그런 어둠을 보았지 나는 그 둥금의 중심으로 다가가서는 그걸 붙잡고 매달리는 상상을 즐겨하곤 했어 한 손으로는 중심을 단단히 쥐고 다른 손으로는 별들을 어루만지며 달과 대화하는 상상을 말야   돌아오는 길에선 논들도 보였어 너무나도 넓고 아름답게도 초록빛이라 그 위에서라면 한참을 굴러도 생채기 하나 없이 말짱할 것만 같은 논들 논을 뒤덮은 푸른 꼬마벼들은 또 얼마나 싱그러운지 그들은 내가 자기네들 사이로 몰래 들어가 숨는다 해도 나에게 화내지 않을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나는 차에서 내려 달이 마주보이는 곳으로 곧장 뛰었지 그 다음 논들을[…]

귀촌
/ 202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