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시인
가시 [1]

너를 안을 수도 품을 수도 네게 닿을 수도 머물 수도 나는 날카로운 가시니까 너는 향기로운 열매니까 나는 너를 가질 수 없고 너도 나를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란 열매를 맺고 싶다. 가시에 열린 빠알간 열매 그거슨 나의 핏방울이고, 가시에 맺힌 불그은 열매 그거슨 너의 피눈물이다. 누구를 위한 열매인가 누구를 위한 사랑인가 이토록 아픈 게 사랑이라면 사랑을 하는 게 행복한 걸까 더는 아픔을 주고도 받고도 싶지 않다.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 더는 나를 사랑하지 말아라.

가시
/ 2019-11-09
관종시인
걸음 [1]

걸음마를 뗀지 어느덧 16년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걸음걸음을 밟아왔다. 때론, 뒷걸음질 치고 싶었고 그만 주저앉아버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아갈 용기도, 뒷걸음칠 용기도, 주저앉을 용기도,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용기가 날 때까지. 그때, 너는 나와 함께 멈춰 주었다. 용기를 낼 때까지 나의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뗄 수 있었고 너는 내 두 손을 마주 잡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맞춰 주었다.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걸음을 밟아갔다. 지칠 때면 잠시 멈추었고 힘들 때면 서로의 등을 내어주었다. 네가 옆에 있었기에 이제 더는 무섭지 않았다. 세상이 나의[…]

걸음
/ 2019-11-06
관종시인
아직은 [2]

아직은 버틸만하나 보오 벼랑 끝에 서있는 그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응집력 북극의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와르르 흘러내리는 흙들처럼 그대도 함께 떠밀릴까 걱정되오 점점 힘을 잃어가는 생명력 벼랑 끝에 흔들리는 그대 뒤돌아보지 마오 거긴 없으니, 나를 바라봐 주오 여기 있으니.   그대 용기가 나면 그때 말해주시오 나와 함께 하겠다고 두 팔 벌려 마주하겠소 그때 용기가 나면 그대 말해주시오 나와 함께 하고팠다고 두 팔 벌려 안아주겠소 그날이 멀었더라도 혹여 오지 않는다 해도 나, 아직은 버틸만 하오 아니, 아직은 버텨야겠소 그대 또한 버티고 있기에.

아직은
/ 2019-10-30
관종시인
양면 [1]

당신은 나의 수호천사 내가 힘들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당신은 나만의 천사 나도 당신만의 수호천사가 되고픕니다. 나의 앞에서 한결같은 미소로 바라봐 주는 당신 따사로운 아침 햇살 같은 미소로 마주해주는 당신 그 미소 속 슬픔이 있었는지 그 누가 알았을까요.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기에 난 당신이 정말 행복한 줄만 알았습니다.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기에 난 당신이 정말 좋은 줄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눈물을 보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강인한 척했고, 누구보다[…]

양면
/ 2019-10-30
관종시인
얼룩 [2]

수용성이 아니라 지용성. 우리 집엔 비누가 없다고. 내 맘속엔 세제가 없다고. 너란 얼룩은 지용성. 지울 수가 없다고. 잊을 수가 없다고. 희미해져가는 얼룩. 희미해져가줘 얼른.

얼룩
/ 2019-06-10
관종시인
체념 [1]

아무리 목 놓아 그대 이름 석 자 불러보아도 매정하게도 돌아오는 건 서글픈 메아리뿐입니다. 멀리 떠난 그대가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헛된 신념임을 앞서 사무치게 알고 있건만 그 믿음조차 저버리지 않고 끝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내 모습에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공기의 기류는 고스란하고 어둠은 더 깊어져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해가 달이 될 때까지 망부석 되어 그대 떠난 그 길만을 오래도록 내다보다가 점점 지쳐가고 비틀비틀 대다 다시 정신 차리려고 애쓰는 내 모습에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이젠, 이문세의 노랫말처럼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두려 합니다. 그대가 내 안에[…]

체념
/ 2019-06-10
관종시인
고슴도치 [1]

우리의 사랑이 딱 고슴도치의 사랑이라면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우리의 이별이 딱 고슴도치의 이별이라면 너무 아프지도 않고 너무 힘들지도 않게 우리의 사이가 딱 고슴도치의 사이였다면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아 가시에 찔리지 않았을 텐데

고슴도치
/ 2019-05-23
관종시인
기도 [1]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왜냐면, 나는 기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야. 기도를 하려면 진심 어린 마음이 필요한데, 나는 그 마음이 존재하지 않거든. 아마도, 내 심장이 고철로 된 기계라서 그런가 봐. 그런데 요즘 자꾸 이상한 꿈을 꿔. 내가 기도를 해서 진짜 사람이 되는 꿈 말이야. 그래서 그 후로 열심히 기도를 하는 중이야. 사람이 되게 해주라고, 진짜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사람이 되게 해주라고 말이야. 그렇게 기도를 하던 어느 날, 또 꿈을 꿨어.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나는 기도를 하지 않았어. 내가 그때 꿨던 꿈이 뭐였는 줄 알아?[…]

기도
/ 201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