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죽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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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토론했다
영원히 끈적한 책걸상과 영원히 투명한 블라우스에
작별인사를 고하는 방법을
.
엄마도 아닌 여자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립글로스를 선물했는지에 대해서도
.
쿠키와 민트 향이 나는 입술을 쭉 내밀어 보며
나는 그녀가 다음 여름에도 행복하기를 바랐다
.
바나나가 멸종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바나나빙수를 시켜먹었다
우리에게 무심한 것은 죄가 아니었다
.
불꽃놀이처럼 주제가 휘익 퍼엉 교체되고
며칠 째 가방에 넣어둔 귤이 무서워서 들여다보지 못할 때에
우리는 항상 용서받았다
모두들 여름을 죽이기가 으레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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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기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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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보는데 2일 남았어요 공부하기 너무 싫어요
내일 보는 과목 3개 중 2개를,,오늘 처음 펴보는데 ㅎㅎ
고3이고 수시만 믿으면서도 이러고 있어요 그래도 마지막 내신이라서 반쯤은 기쁜데요
고3이라는 이름이 힘들기보다는 그냥 하기 싫은 공부를 그래도 해야 한다니 싫고
정말 모르겠네요 저는 고2때보다 딱히 공부를 하고 있진 않은데요…
그런데 정말…그럼에도 불구하고 고3은 왜 힘든걸까요 고3이라는 것에 뭔가 이상한 마법이 걸려있는 걸까요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 경쟁사회와 문제집 무게에 눌려있는 나
이런 진지하게 우울하고 불만스러운 마음 보다는…
아 공부하기 싫다 놀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 놀고 있잖아 음,망했군)
이런 마음이 드네요 으앙…제발 수능 안 보면 안될까요 ㅎㅎ ㅠ

그래도…다들 시험기간 화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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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난 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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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도 이제
착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나봐요
.
등 뒤에
새로 나려는 이가 간지러워요
셔츠로 꼭 싸매고 있을게요
깨끗해진 손톱 아래로
작은 싹이 자라고 있어요
날카로운 것은 가져다 대지 않을게요
.
배운 것들을
기억하기 시작했어요
.
오늘은 논리학을 공부했어요
.
꽃잎은
못생긴 소녀들의 배중률
다섯 장 봉선화는
p부터 시작할까요
.
짓이겨 달아난 자리마다
좋아한다,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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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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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깐만

지금부터 글자들을 외면할 거야

안그러면 말이지 얘네

슬금슬금 내 위

로 올라타

마침내

내가

갇히고

싶지 않아

도망칠 거야

여기 이 새처럼

반쪽 짜리라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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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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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 싶어요 감추고 감추고만 싶어
흘리고 싶어요 틈새로 조그맣게 흘려
꿰메요 할머니 만들던 한복처럼 꿰매
죽여요 괴로워 괴로운 벌레처럼 죽여
진짜가 뭔데요 잠시만 뭐라고요 그게
사람들 알아요 나한테 기대해요 뭐죠
비열한 시들을 써야지 형편없는 것들
다물지 못하는 시침질 기분나쁜 초크
차분히 있는법 몰라요 창피한건 알죠
원피스 입어요 립스틱 나도몰라 이젠
이것도 저것도 나예요 내거예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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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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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가 파도 앞에 서는 것은
내가 책상 앞에 앉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일까
갈매기처럼 한눈을 팔고
먼 바다의 소리를 초대한다
.
내 시는 계속 더 짧고 예쁘고 알아듣기 어렵게 될까
벙어리 아가씨가 뱉어내는 보석처럼?
방금 사용한 조잡한 상징과 은유처럼?
.
그러다 수많은 어린애들이 어리둥절해하며
호주머니에 난 구멍으로 흘리게 되었던 열매들처럼
발을 달고
지도도 없는 숲속으로 도망가버릴까
.
사라지는 것은 가벼운 것들이라고 믿었는데
모든 것들이 무겁고 복잡해진 채 들어앉았다
몸을 태워도 꼼짝하지 않는다
못된 내성이 생겼나보다
.
사실을 고백하자면 라이터를 켜지도 못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겁이 참 많으니까
.
이건 당신이 좋아하는 시가 아닐 것만 같다
그래도 아직은 붙잡아놓을 수 있었던 내 시다
.
밀물은 그물을 친다
사이사이로 사랑했던 내 단어들이 잡혀간다
썰물이 이것들을 거두어가면
다음의 달은 돌려줄 기력이 있을까
.
열여덟으로 열아홉으로 불렀던 날들은 지나는 걸까
어떻게 지날 수가 있는 걸까
모래성 꾸몄던 조개껍질 조각만 남겨놓고
나 혼자만 남겨두고 터벅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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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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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혀가 떨어질만큼 달콤한 케이크가 좋겠다고 했죠
네, 나도 좋아요!
엄마한테 계속 매달려 있을래
아침엔 코알라처럼 엄마의 유칼립투스 다리에
달라붙어 떼를 써요 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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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 담 안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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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림노래
설익은 사과
왜 어려웠는지 모를 말의 단추들
활짝 연 겉옷 안
눈 내리는 하늘 아래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린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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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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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를 참아가며
나는 병든 이빨을 대신하여
새하얀 경구피임약 한 줄을 조르르 박아넣었다.
장전
희고, 검고, 결백한
이 세계를 잡아먹기 위하여.
.
밤은 물질계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걸까?
칸에 맞지 않는 계산들은 모두
허벅지 사이로 빨갛게 잘라내고 싶어.
.
이곳은 세계의 잇몸.
왜?
가장 옳은 검댕들
덧나길 기도하는 딱지처럼 떨어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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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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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의 다리
체리의 옆구리
토끼가 소화시킨 체리의 앞머리
.
체리의 체조
체리의 체육복
체리가 신은 초록색 스타킹
.
체리의 얄궂은 이빨
체리의 커다란 귀고리
15층에서 떨어뜨려도 죽지 않는 체리
.
체리와의 심야자습
체리, 잘 안들리니까
이리 좀 더 좀
간지러운 체리
불 앞의 체리
달랑대는
체리의 파르팔레
깨물면
.
터진다,
.
체리!
체리!
체리!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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