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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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쌓인 키보드를 볼 때면 생각하곤 한다

날아갈 생각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그들은 진정 아름답지 않은가

지문이 묻은 휴대폰을 볼 때면 아득히 눈을 감곤 한다

그들 속에 사랑하는 이를 향한 자가 없으니 애석하지 않은가

가만히 내려앉은 구름을 보다  보니 태양이 말을 거네

나의 열기가 아닌 그의 고집됨이 이유이니, 나를 그르치지 말게

만물의 공통점을 한 번 확대하여 보자

결국 그들은 자신의 찬란함을 노래하고 있으니

이는 자신을 사랑한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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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없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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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파아란 하늘을 선망하며 사랑했다

"나는 네가 되고싶어"

구름은 염모하는 마음을 키워만갔다

하늘은 새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늘은 또 하나의 여지를 주고말았다

/

구름은 자신을 조금 떼어주며 말했다

"네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쭈뼛거리며 말하는 구름은 꽤나 심오했다

하늘이 조금씩 입을 떼었다

"그럼, 네가 내 안에 떠다니면 되지"

하늘은 구름을 살며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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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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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빌어왔던 소원들은

'어' '저거' '봤나'

따위의 것들이었으리라

안하느니만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감은

증폭시킬수록 아득히 멀어만 간다

/

그대가 빌었을 소원들은

무엇인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쏟아지는 별똥별에다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내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쯤에서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

찬란한 무언가의 뒤에는 누군가의 염원이

빛나는 무언가의 뒤에는 누군가의 한탄이

아름다운 무언가의 뒤에는 누군가의 소망이

그리고 별똥별에게는 누군가의 질투까지 스며들어

이루어지지 않는 오색의 꿈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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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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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게 울며 말했다. 아니 울부짖으며 말했다. 더는 해낼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감히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엄마의 목소리가 구슬퍼서인지, 나조차도 자신이 없었기에 인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내 자신에게°°°확신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살아온 줄만 알았다. 남들은 방학이 올 때마다 가는 가족여행을 못가도 불평하지 않으려 애썼고 더이상의 외식도 바라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왜 항상 내가 참아야하는지 생각했지 언제나 물러서있는 엄마의 발을 내다볼 아량이 없었다. 다이어리를 눈물로 적시며 감정을 토해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깨달은 후 더이상 울음을 흘리지 않았다. 슬플 때 울지 않고 행복할 때 웃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시기였다. 엄마와 아빠의 다툼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눈물을 삼키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다. 방안에서 오빠에게 나는 엄마를 따라갈 것이라는 통보아닌 통보를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와 아빠 모두의 피를 물려받은 몸이고, 엄마와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서류에 도장을 찍고나면 남이 되는 사이였다. 엄마는 내게 아빠를 따라가라고 하셨다. 그게 어린 나에게 상처였는지 아니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게 되고부터는 생각을 줄이기로 하였다.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하고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해서든 기어코 해냈다. 이런 나의 말에 생채기가 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나에게는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수학문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또다시 머리카락을 잘랐다. 내게는 암묵적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미용실을 가는 습관이 있다. 나에게도 한계라는 게 찾아왔다. 나름 노력하는 것마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으며 의지마저 서서히 상실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놔도 친구에게 기대도 역시나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을 나의 원칙에서 삭제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그건 설령 엄마라도 마찬가지였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아도 결국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나일 뿐이었다.

지금 가장 버티기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 슬픔의 크기는 잴 수 없다지만 나는 입을 열기로 하였다. 그건 아무도 아니다. 아무도, 절대, 누구도 슬프지 아니하다. 그저 비극만이 떠돌고 있다. 나는 안개를 헤쳐나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으며 먹구름으로 머무르고 싶다. 그 누구도 내게 사랑을 선사할 수 없다. 신은 더더욱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단순히 상처 투성이 어린 아이의 투정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횡설수설 쏟아낸 후의 나는 나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머저리에 불과한 사람일까. 어쩌다 엄마마저 밀어내는 경지에 이른 걸까. 나는 의식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비극은 도무지 아름답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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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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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까페 카운터의 영화관 쿠폰을 3장씩 챙기는 건 무심코 생긴 습관이었다. 종이 쪼가리를 빌미 삼아 영화관에 가는 일이 잦았고 그 영화관은 쿠폰 속 영화관이 아니었다. 몽롱한 기분이 들거나 하면 곧장 어디론가 가곤 했다. 혼자 먹는 밥은 맛이 느껴지질 않았고 혼자 보는 영화에는 흥미를 돋굴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혼자가 편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으리라.

무슨 이런 노래가 다 있나- 했던 노래들은 재생목록의 한 귀퉁이에 스며들었다.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찍는 사진이 유행한대도 의미를 두지 않겠다던 나의 책상 위엔 조그만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시덥잖은 농담이나 주고받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생각을 굳혔지만 그러한 관계를 수십 번이나 만들고 없애길 반복했다. 조금은 이상한 머리나 미소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단지 나의 옆엔 언제나 사람이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어린 시절이 떠오를 때면 그렇게도 귓볼을 만졌다.

정성스럽게 쓰는 글씨는 꽤나 마음에 들었지만 생각이 모나지는 새벽즈음이면 아무리 눌러 담아도 글씨는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이었다.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쫓아가고픈 심정을 녹여 담아야만했다. 그런 시간 속에는 어김없이 네 목덜미에서 나던 향수 내음이 뭉게뭉게 코끝에 걸렸다. 포기하고 싶으면 동네 미용실에 들리면 그만이었다. 머리카락은 사정없이 길어만갔고 나는 5개월에 한 번 꼴은 중단발인 상태에 머물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더욱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나는 나의 머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시 네 보조게를 항해하고픈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적어내리고 싶다. 한 페이지의 종이를 가득 채우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허나 뜨거운 이마에 잠을 뒤척이던 날에는 언제나 공책의 한 페이지에 꾹꾹 눌러담은 글자가 가득 맴돌았다.

한 번 입은 옷이 절대 새 옷이 될 수 없는 것과같듯 너와 나는 어딘가 닮아 있었다. 그것이 입꼬리든, 눈웃음이든, 한숨소리든, 손가락이든 무엇이든 어떠하리 싶었다. 그저 세탁기 속에 넣은 옷은 새 옷이 되려 애쓸 뿐이고 나는 그 옷을 털어 널 뿐이었다.

네 SNS 속 한줄소개는 내 글 속의 한 문장도 꿰차지못했다. 감추었기 때문이지만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나의 태도가 우스워 코웃음쳤고 사랑스러운 네 향기가 다시금 떠올라 헛웃음 치었다. 그래, 너와 나의 공간은 종이를 채우기 위해 간격을 넓히던 글씨와도 같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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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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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그었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고도 새빨간 선을 그었다.

더이상 울타리를 쌓을 필요도, 구름으로 가릴 필요도 없었다.

들짐승들은 거들떠도 못보는 다람쥐의 집 안은 고요했다.

/

도토리를 숨기었다.

나중이 되면 생각나지 않을 자리에 두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다람쥐의 집에는 아무것도,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되었다.

/

잇는 것에 대한 나태에 빠졌다.

묶지 않아도 남을 것은 남는다며 코웃음 치었다.

주변엔  회의감이 맴돌 뿐 어느 것 하나 선명하지 않았다.

이제는 도토리의 자리를 찾아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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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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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내가 느꼈던 것을 모두 먹구름에 담아 훠이훠이 떠나보낼 테야.

한없이 왜소하고 초라해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말이야.

나는 어떠한 사람이었기에 나를 닮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는 걸까?

나를 닮은 나를 보고 나서 나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까?

/

나는 그렇다. 저기 저 노오란 개나리를 보고서도 아름답다 할 수 없을 것이야.

흐르는 개울에 비쳐 빛나는 나조차 예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렇다. 조그만 나팔꽃같이 사랑스러운 그 장면을 외면하고 말테야.

다가갈수록 다가오는 건 푸르고 시린 냉기뿐이란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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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4천원 인생'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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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공장이 넘쳐나는 다른 나라와 다름없이 공장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수없이 많다. 그들은 4천원이라는 시급을 받고 하루 종일 일한다. 말 한마디 하기도 벅차는 혹독한 노동에 땀 닦을 시간조차 없다. 여름엔 땀띠가 겨울엔 털옷을 입어도 난로 하나 없어 떠는 노동환경에서도 불평조차 할 수 없다. 공장에 들어와서 4일뒤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대다수였다. 과연 이러한 환경이 적절하다 말할 수 있을까.

‘9번 기계’ 노동일기는 한달간의 실험을 토대로 쓴 일기다. 난로 기계에 배치되어 한달간 노동하는 실태를 그대로 기록했다. 작성자는 마지막 단락에서 실험이라 다행이라는 말을 썼고 첫 단락에 “오전 10시가 되자 허기로 멍해졌고, 11시가 되자 다리를, 오후로 들어서자 머리를 떼어내고 싶었다.”라는 말을 썼다. 글로 써도 느껴지는 노동의 고통을 우리나라 국민들은 겪고 있다. 시급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도 일하며 노동 환경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도 일한다.

이러한 노동 실태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동자들이 학창 시절을 보낼 때 성실하지 않았던 것 때문 아니냐며 그들의 성실성과 게으름을 판단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른 방향에 있다. 그들의 학업이 어찌되었던 전 직장이 어디였건 그들은 공장이라는 ‘직장’에서 알맞은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다.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당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질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다른 방향의 시선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우리들은 그들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간 사람들도 있다. 사업이 부도나서, 학자금 대출이 벅차서, 가족 중 한 명이 아파서 등 자세히 귀기울여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상황들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회 구조는 지독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다. ‘틀’에 갇힌 삶을 살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 당장의 금전적 상황을 쫓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이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깃줄 보수공사를 하는 한 아버지가 있다. 공사를 하다 두 팔이 잘려나간 아버지는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는 시장에 내몰려 장사를 시작했고 공부를 출중히 하지는 못했던 아들은 전기관련 학과와 소방관련 학과에 지원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냈다. 두 팔을 잃고서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것이 노동 상황의 그림자이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을 하다가 신체적 피해를 받는 상황에서 기업은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피해보상’의 개념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데모를 일으킨다고 해봤자 소용없다. 우리는 다 함께 일어서 소리쳐야 한다. 그래야 이 끔찍한 사회의 매듭을 풀어나갈 수 있다. 한 번 엉켜버린 실타래를 푸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과같이 이러한 사회 노동자들의 상황을 풀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바꿔나가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점에는 사람들의 인식이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이런 아주머니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반말은 물론 언성까지 높여가며 노동자들을 몰아세운다. 이것도 하나 못해주냐는 마인드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건지 머릿속으로 이해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오래된 한국의 인식인지 군중이 만들어낸 심리적 인식인지를 떠나 이것은 바뀌지 않는 우리의 인식에 달려있다. 고생하신다는 말 한마디가, 나갈 때 수저 조금 간추려놓는 배려가 그들의 마음을 울린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노력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떤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인식에는 많은 힘이 담긴다. 사람들의, 군중의 인식은 사람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고 사회를 만든다.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4천원 인생의 저자는 머리말에 ‘가장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생살 그대로의 기록’이라는 말을 썼다. 그렇다. 우리는 ‘본질적인 모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머지 것들은 절로 본질에 따라갈 뿐이다. 우리는 언제가 되어야, 몇세기가 되어야 사람과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에 살아갈 수 있을까. 단순히 노동자 뿐만이 아닌 사회 약자 모두가 따뜻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그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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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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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맺고 끊는 게 확실치 않았다. 그것이 사람 관계에 있어서든, 자아에 있어서든 언제나 두리뭉실하게 흘려보냈다. 그렇게 행복만을 쫓다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 배를 탔다. 그저 한없이, 그지없이, 끝없이, 그렇게 나는 가라앉고만 있었다.

살면서 속좁은 사람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지만서도, 나는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거절은 속에서 차오르는 한숨과 함께 하지 못했다. 싫은 소리를 누가 잘하겠냐만은 나는 나로써 회피했다. 나는 의사표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옷을 고를 때,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좋아하는 음악을 고를 때. 나는 항상 얼버무렸다.

나는 어쩌면 나로 산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닌 행인으로 산 것이 아닌가. 끝없는 의문과 함께 한 배신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펑펑 우는 것이 속 편하다며 흔치 않은 울음을 속으로만 삼키는 걸 죽어도 싫어하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 깊이 넘겼다. 사람 관계에서는 어째서 배신이 필요할까 하는 증오는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나는 나였던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나의 삶을 산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내 자아를 지켜낸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나의 삶을 방관했다.

나는 범죄자이다. 나는 그렇게 아파했음에도 피해자의 신분은 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배신했던, 나에 대해 어떻게 지껄였던 나는 한평생을 피해자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루 하루 나를 죽여만 갔고 나는 결국 배를 탔다. 내가 나였다면 나는 조금 더 불행하지 않은 나를 마주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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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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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소리를 들을 때면

어김없이 머릿속엔 풍선이 떠오른다.

의문점을 불어넣고 띄우다 보면

먹구름의 부피와 같다하여도 그지없다.

“비의 소리란?”의 대답은

과연 한결같을 수 있을까

 

여리디 여린 빗방울들이 소리치는 소리

냉정한 빗방울들이 소복이 쌓이는 소리

억울한 빗방울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외로움에 바람과 손잡고 휘날리는 소리

단지 어느 비인가와 더불어

비의 소리는 정의할 수 없지 않은가

 

소리만이라도 풍선에 담기위해 녹음기에게 속삭였다.

풍선이 뒤얽혔을 때에는 천둥번개와 같고

유유히 떠다닐 때에는 잔잔한 소나기와 같으니

소리의 말들은 가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소리가 음소거일 때 비로소 ‘소리’가 들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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