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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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재

 

 

얇은 플라스틱으로 형성되었던 수통의 입구는 산산이 깨어져 흙모래를 입었다. 그 덕에 땅에 녹아든 물기를 긁어내며 연찬은 중얼거렸다. 아깝다. 그는 숨겨지지 않는 아쉬움을 묻히며 수분 어린 진흙을 문질렀다.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지고 난 이후에는 제 발밑에 되깔린 무언가의 9할은 더럽다고만 여겼는데 이렇게 부대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아니했다. 연찬은 무릎은 굽혔지만 둔부와 지면이 마주하지 않는 꽤나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흙을 할퀴었다. 잘라낼 시기를 한참 지나쳐버린 손톱 아래로 회황색 알갱이가 들이쳐 연한 살을 간질였다. 그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합당한 이유 없이 열량을 소모 중인 정형행동을 끝마치게 된다면 거친 돌멩이를 하나 구해 거슬리는 단백질 덩어리를 가루로 만들 예정이었다.

”애새끼도 아니고 흙장난이냐?“

다른 이의 발걸음에 줄이 풀려 나부끼는 먼지 무리는 야들한 신체 점막에 자극을 줌이 분명하였다. 맞이하지 아니한 돌가루에 상응하는 방어기제를 준비하는 비강 덕에 연찬은 재채기를 연발했다. 딱히 부끄러운 행동을 실행치 아니하였는데도 감추고 싶은 심통이 들어 손바닥을 문질렀다. 언뜻 강박적으로 보이는 행위는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시간을 쪼개어 수행하리만큼 간단했다. 쪼그려 앉던 자세를 바꾸어 그대로 주저앉은 연찬은 그에도 만족하지 못해 두 팔을 배어 뒤로 누웠다. 때에 맞춰 기상한 먼지가 다시 한번 그의 호흡기를 간질였다. 요란한 소음을 내며 먼지를 뱉을까 고민했다가, 이제는 배출을 위해 근육을 긴장시킬 가치조차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구겨진 깡통에 반사된 광에 눈동자의 색이 도드라졌다.

”애새끼가 뭐 어때서.“

목적 없는 대답을 받은 건우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친구의 옆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사내자식이 다소곳이 자리한 행실을 그들의 부모가 보았다면 작은 웃음거리가 될 게지만 실소의 화자를 맡은 둘은 타인의 시선에 고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신경을 던질만한 주변은 남아나지 않았으니까. 건우는 세 번 구멍을 기운 호주머니에서 주먹돌을 끄집어내 아래에서 위로 던져 받는 놀이를 반복했다. 연찬은 기운 없이 돌이 운동하는 대로 초점을 옮겼다. 점점 높이를 세우는데 박차를 가하던 손바닥은 얕은 잔재주를 부려 공중에서 돌을 가로챘다. 어느샌가 손 기름이 옮겨가 매끄러운 태가 났다.

”너 손톱 많이 길었더라? 특별히 갈아주려고 주워왔지.”

허락의 어투 없이 쥐어진 손길에 연찬이 별다른 거부를 얹지 않은 건 나름대로 신용의 뜻이었다. 낯살에 사그라진 여우 눈이 머무른 소년은 친구에게 평화로움을 선사하기 위해 돌을 부딪쳤다. 어쩌면 거칠게 느껴지는 굳어 튀어나온 마디마디며 단단한 살결은 무엇을 지나쳤는지 묻는 가벼운 동정을 함묵시켰다. 연찬은 퇴화한 지 오래인 손갈퀴 사이로 자각자각 부스러지는 조각을 느끼며 시간의 흐름에 체념했다.

허공은 체감상으로 약 넉 달 전부터 낮과 밤의 구획에서 외줄을 뛰었다. 내리쬐는 태양과 나누는 어색한 인사치레가 그리워지리라고는 족집게로 유명한 점쟁이조차 예지하지 못했다. 전쟁은 선량한 군중들을 무지한 바보로 만들었다. 사람은 일상에 녹아 들은 소중함에 무뎌지기 마련이며 모두는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불감증에 몸을 묶었다. 약간의 간과가 씨앗을 품은 채 고동하는 대지를 쓸어냈다. 산짐승이 홀짝이던 샘은 전부 증발했다. 필사적으로 문명화 이전의 생존법을 들춰야 숨을 붙이는 시대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네, 적응의 동물은 너를 지칭해. 연찬은 마을에서 열다섯 번째로 시름시름 죽어가던 친구가 붙여준 칭호를 떠올렸다.

화약이 가득 들어찬 탄두를 사이좋게 교환한 주동자는 계약서에 휘갈긴 평화를 가볍게 씹어먹었으며, 달갑지 않은 선물을 껴안고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가를 노래하지 못할망정 강력한 핵무기를 쏟아주었다. 인류의 과학은 철저하게 이기적이었고, 하필 찬장에서 썩어가는 라즈베리 잼 병의 동북편을 지키던 라디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연찬은 아무런 정보를 얻어내지 못하였다. 필요없는 고철덩이와 교환한 행운권은 재앙을 쥔 남풍이 마을로 내몰아치지 않은 것이었다.

구름이 회색으로 덧칠된 오전 11시 42분 무렵. 처음으로 탈수기에 던져진 물젖은 수건처럼 피를 뿜던 사람은 즉석식품이 다 익을만한 시간을 뒤로 돌렸을 때만 해도 그의 아버지가 짚으로 만들어준 공을 차고 놀며 해사한 웃음을 그리던 열 살배기 어린아이였다. 아이가 눕혀진 자리에는 새빨간 그림자가 선명했고, 없는 형편에 이불을 겹치고 난로를 떼어도 언어를 잃어버린 앵무새처럼 추위를 표현했다. 아이는 중심을 잃은 지 사흘 하고도 열여섯 시간 뒤에 숨을 몰아쉬더니 파랗게 변해버린 입술을 두고 떠나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멍청하고 순해 빠진 주민들은 보자기를 둘러매고 대피한다든지 일구어놓은 터전을 버린다든지 따위를 이끌어줄 용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원인 모를 죽음에 수십 가구가 비통에 빠졌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떨어뜨린 눈물은 검붉게 산화했다. 마을 이장은 부부가 자식의 뒤안길을 떠받들었으니 원귀 꼬락서니는 누리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 옆에서 연찬은 이 궤변이 조롱인지 푸념인지 고민했다.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도 못한 채 마을은 공황으로 소용돌이쳤다. 이장은 삼 일 이내로 정부에서 지원이 올 거라며 급한 대로 안정제를 투입했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 훈련을 받은 대로. 국민이 위험에 빠지면 어떠한 상황에 부닥치든 정부는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었다.

도움의 속삭임은 달콤했을지는 몰라도 진통제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해와 달이 총 열두 번씩 교대하며 하늘을 지키던 때에, 신뢰는 보기 좋게 빗나갔고 이장의 신용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마을을 지키려 노력하던 그는 병상에서 아무도 해독해주지 않는 신음을 울리다가 심장을 멈췄다. 백 명 남짓한 인구가 밭을 매던 땅에는 연찬만이 남아 말라가는 사철나무에 흙탕물을 부었다. 그는 제 손으로 가족을 묻은 공터를 떠날 마음이 없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지 목숨을 부지하려 아등바등 구르고 싶지 않았다. 무력했다. 이따금 덩그러니 버려진 식료품점에서 먹을거리를 훔치고 돌아오면 먼지 쌓인 식탁만이 그를 환영했다. 연찬은 지독하리만치 먼지를 싫어했다. 처음 세상이 뒤바뀌던 시발점이 먼지구름으로 아로새겨졌던 기억이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구겨진 종이봉투를 이용해 먼지를 때렸다. 공중에서 부유하다 바닥으로 가라앉는 티끌 덕에 명치가 따가워 발칵 역정을 내려다 전신거울과 마주쳤다. 살이 좀 빠졌네. 많이 빠졌네. 까만 풀씨가 달라붙은 바지가 척 보기에도 넉넉했다. 식구를 잃고 야윈 소년에게 말동무의 부재함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외로웠다.

 

***

 

실밥으로 되돌아간 옷소매와 손을 잡고 배구부실에 들어가기 창피한 나머지 아스팔트가 끓어오르는 열기를 피하기에 넉넉한 두께를 지닌 콘크리트 담장과 등을 맞대며 휴대전화와 떠드는 놀이는 참으로 장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달콤한 이탈을 누리다가 찰나의 순간 망막에 박힌 풍경은 명멸하는 섬광이었다. 굉음으로 끝나는 종말의 맞은편에서 고개를 기울이는 시작은 더욱 징그럽기 이를 데 없었다. 건우는 제멋대로 쌓인 판자 더미를 제치고 어깨를 뒤틀어 끼인 몸을 빼낸 다음 옆구리가 찢겨나간 스포츠 백을 움켜잡고 기립했다. 갈 곳을 잃은 유리 파편이 새로운 터전으로 택한 왼팔이 요동했다. 그는 위험한 물건투성이로 모자이크된 운동장을 딛고 구역질 나는 바람을 가르며 무작정 걸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태양의 고도가 가라앉기에 필요한 시간 만큼을 쉬지 않고 이동에 사용했다. 손목에 둘린 시계는 톱니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야속한 고철덩이를 흔들며 거친 말을 뱉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발모가지를 조이는 염좌가 체육시간에 토끼뜀을 하다 삐끗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함이었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건우는 화상으로 복부가 녹아내린 채 죽은 노인의 지팡이로 디뎌지지 않는 발을 대신했다.

도롱이도 우산도 없는 몸으로 가뭇한 빗방울을 받아내기에는 너무 지쳤으므로 건우는 앙상한 뼈대가 함석지붕을 업은 집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건우는 무너진 가구 사이에서 편평한 공간을 찾아 숨을 몰아 뱉었다. 그는 욕심 많은 불씨가 일렁이는 모퉁이에서 재로 변해가는 사각 틀을 응시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액자를 덮었던 판은 그을린 장판 위로 추락해 초라하기 그지없어졌다. 그것은 어느 단란한 가족이자 이 집의 마지막 주인이 아끼었을 소중한 추억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건우는 팔뚝에 박힌 유리를 끌어내고 남겨진 수평선에 -오전까지만 해도 학습 준비물이었다- 스테이플러를 대어 눌렀다. 스프링이 찰칵이는 소리는 딱 그만큼의 고통을 암시했다. 이질적인 찌릿함과 먹구름이 함께 잦아들자 그는 타들지 않은 서랍에서 옷가지를 주웠다.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찾기에는 많은 것들이 사라진 상태였다. 출렁이는 위액이 식도를 타고 올라옴에 건우는 가까운 담벼락 밑에서 구역질을 반복했다. 경황이 없는 탓에 그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어지럼증을 못 이겨 짚은 손의 맞은편에서 이는 불길에 손뼉이 데워지고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버석하게 익은 표피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미끄러지는 의식에 매달리며 건우는 저 멀리 멀쩡해 보이는 주택을 발견했다.

 

버릇없게도 다짜고짜 문을 걷어차는 소년을 연찬은 쫓아내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했다고 수정하는 편이 원 목적과 알맞을 것이다. 그는 걸레짝이 된 이방인을 업어 올리며 남의 소중한 동네 입구에 운동화 자국을 남긴 이유를 애써 묻지 않았다. 연찬은 절박한 발길질에 미약하게나마 섞인 공포를 감지했고, 그의 눈치가 빈약했다면 건우는 황야를 떠돌다 탈진으로 까무러쳤을 것이다. 연찬은 축 늘어진 나그네의 무게를 버거워하며 내일은 마을 어귀를 청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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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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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론 우정을 사랑이라 여기고 사랑을 우정으로 여길 때가 있었다.

다하에게 있어 준는 그런 경우였다. 가끔씩 준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었다. 사실 눈 아래의 점이 어릴 적 좋아하는 배우를 따라하다가 생겨버린 것이라거나, 아직도 아플 때면 포카리를 꼭 먹는 다는 것 같은. 그래서 다하는 늘 준을 가장 잘 알면서도 알지 못했다. 준은 비밀이 많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 부분에 대해선 다하 또한 침묵했다. 다하는 때로는 자신도 준에게 있어 그런 존재이기를 바랐다. 다하 늘 준에게 조금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어떠한 대상을 볼 때 문득 생각이 나는. 준이 다하에게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다하는 드라마를 싫어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다하는 드라마의 연애가 싫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갈등을 빚을 때면 다하는 자꾸만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끌고 가거나 위협할 지도 모름에 가슴이 조여왔다. 언젠가 이 서두를 꺼냈을 때, 다하의 친구들은 남자를 너무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 아니냐며 질책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다하는 늘 어딘가가 답답했다. 준은 그 일이 있은 후로 처음 이러한 이야기를 한 상대였다. 준과 이야기할 때면 이전에 답답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존재했고 다하는 그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다하는 이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관계에 애착을 가졌다. 생각해보면 다하 또한 준만큼이나 뜬끔없이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았다.

다하는 자신의 이름이 좋았다. 다하의 이름은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이름이었다. 돌림자를 쓰라는 집안의 은근한 압박을 무시한 채 다하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한 독단이었다. 아직도 다하의 아버지는 그 일을 들먹이며 친척모임에서 어머니를 무안하게 만들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하의 어머니는 다하에게 자신은 결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다하의 어머니의 이름은 이희남이었다. 아들을 바라던 집안이 지은 이름으로, 어릴 적에 놀림도 많이 받아 상처가 되었다고 하였다. 언젠가 준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준은 처음 보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은 아무런 뜻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3녀 1남 집안의 셋째라고도 말해주었다. 그 외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다하는 생략된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표정의 의미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다하는 자신의 이름을 쓸 때마다 준이 떠올랐다.

다하는 타투를 해보고 싶었다.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보고도 싶었다. 귀를 뚫고 싶었다. 다하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면 다하의 어머니는 잠시 애매한 얼굴을 보이다 이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련의 행동이 다하에게 있어 가장 큰 족쇄였다. 다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어 오르다가도 다시 잠잠해졌고, 애잔한 마음이 들다가도 저항감이 느껴졌다. 다하는 늘 머리를 단정히 빗고 묶었지만 가끔 빗이 칼로 변해 긴머리가 후두둑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을 할때마다 다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다하는 가장 싫어하는 순간은 샤워 후 등허리에 붙은 길다란 머리칼을 느낄때였다. 다하는 준이 가진 짧은 머리에 부러움을 느꼈다. 다하는 늘 준이 자신보다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준의 까끌한 머리칼 끝을 매만질때가 그랬다.

다하는 기립성 저혈압을 앓았다. 순간 눈 앞이 새까매지고 주저앉아 버리게 되는 그 증상의 명칭조차 모를 적에는 목소리마저 막힐 만큼 무서웠다. 이제 다하는 그 증상에 대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가끔씩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암전이 시작될 때면 여전히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무엇보다 티낼 수 없는 병증이란 것이 속을 곪게 했다. 영원히 떼어낼 수 없는 감기같은 병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깊이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억울했다. 크게 아픈 병이 아님에 감사를 느껴야 했지만, 그 감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하는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감사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감사보다는 끔찍한 우월감이나 멸시에 가까웠다. 결국 고통은 온전히 그 자신의 몫이었다. 불행의 가치는 결코 잴 수 없었다. 만약 다하가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위안으로 삼는 부류였다면 결코 준과 이토록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준은 그런 부류를 혐오 그 이상으로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하도 마찬가지였다. 다하는 적어도 준이 자신의 이러한 점을 좋아한 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다하는 생각이 많았다. 다하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명상이었다.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조차 없었다.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여도 곧 숨의 박자,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 밖에서 들리는 소음, 집의 퀴퀴한 냄새 등이 철자화되어 머릿속을 채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을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소개하기엔 무언가 부끄러웠다. 생각이 많다는 수식어는 좀 더 철학적인 개념에 대해 고심하고 파고드는 이들에게 마땅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하의 생각은 1차원적이며 단순하고 상당히 시각에 의존된 잡념들이었다. 그것이 다하의 생각이었다. 다하의 생각들이 가장 박차를 가하는 때는 바로 준과 함께 있을 때였다. 준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보통 다하가 어떠한 주제를 꺼내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고, 둘의 대화는 보통 그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앞서 말했듯 준이 뜬금없는 화두를 꺼낼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가끔의 경우였다. 그래서 다하는 사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준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준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희망어린 의문을 품었다. 적어도 가끔은, 하루의 한두번 쯤은, 자신이 준을 떠올리는 만큼은 준이 자신을 떠올려주길 바랐다.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릴 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것은 앞으로도 오롯이 준만이 알고 있을 테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준의 모습처럼 말이다.

다하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건 다하가 홀로 오래 간 숨겨 둔 하나의 덩어리였다. 그리고 그 비밀은 영원히 다하를 간지럽힐 것이며, 계절이 변하고 학교가 변하고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변해도 그 비밀은 잊히되 사라지지 않고 묻히더라도 싹을 틔울 것이다. 다하가 계속해서 나아갈지라도 그녀의 일부는 그 자그마한 비밀과 함께 묶인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바다처럼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볼 때에도, 끝없는 천구의 일부를 사진기에 담을 때에도, 다시 봄이 찾아올 때에도. 다하가 그 비밀을 영원히 간직할 터이다. 그 비밀은 그녀가 오래 전에, 그 때에 한 하나의 착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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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잇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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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건 인생과도 닮아 있습니다.

가끔 글을 쓰다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올만큼 마음에 박히는 문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글 전체가  그렇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 사이에 꽤 괜찮은 문장, 혹은 어느정도 마음에 드는 문단, 그저 그런 내용들이 있고, 때론 지울 수 없어 아쉬운 내용이 있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또한 이와 같다 느낍니다. 아무리 행복해도 매순간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기억하고 싶을 만큼 행복한 날들이 있는가 하면, 그 날 하루의 행복으로만 남는 날들이 있고, 돌이킬 수 없어 아쉬운 날들이 있습니다. 결국 글 사이에 낀 거슬리는 문장도, 삶 사이에 얽힌 실수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지운다 한들 존재했던 곳에 하나의 흔적을 남길 것 입니다. 있었던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이에 완벽주의자라 분류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 사이들을 참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끝내 완벽을 얻진 못할 터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이란 것이 과연 있습니까 ? 있다면, 어느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평생이 이 곳에서 살면서도 완벽에 발끝조차 다다를 수 없습니다. 마치 지평선 위에 뜬 신기루를 잡지 못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달갑지 않은 삶 사이의 문장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저는 그것들을 사잇글이라 말합니다. 글과, 삶 사이에 끼어든 무언가 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왕이면 맞는 길로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완벽을 알 지 못하는 곳에 맞는 길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요.  때론, 하나의 사잇글을 만들어 그 부분을 고이 접어두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해질수없다면, 사잇글이라는 핑계로나마 도피해보는 것입니다. 정면돌파라는 것은 참 멋있습니다. 하지만, 박수치는 이들은 부딪힌 이들의 파편까지 품어주진 않습니다. 파편도 그들의 일부일텐데 말입니다. 도피는 의외로 나쁘지 않습니다. 도피라는 것도 하나의 대응방식입니다.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이자, 도움닫기를 시작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

마치 인생의 사잇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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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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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줄어든 그 부족은 곧 사라졌다.

그것을 지켜본 이들은 그들의 머릿속에 한 줄의 깨달음을 아로새겼다.

번식은 곧 생존이었다.

그 기억은 이내 그들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흘러내려갔다.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은 수단이었고 번식 또한 수단이었으며

그저 생존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태초의 목적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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