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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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부서지는 안개 속으로

유난히 짙은 그림자는

어느 아이의 그림자일까

 

아버지 잡은 나비는

유난히 느리게 날았더래지

 

"낮 뜨거우니

나비 느릿느릿 날 수 밖에"

삼촌 말했었대지

 

아버지 키우시던 나비는

2주를 못 넘겨 떨어졌대지

 

2주뒤 삼촌

"낮 뜨거우니

나비 떨어질 수 밖에"

 

.

.

.

 

햇살이 부서지는 안개 속으로

유난히 짙은 그림자는

어느 아이의 그림자였을까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진

느린 날개짓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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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눈을 비비면

너질러진 옷들, 썩은 종이컵들…

너는 전혀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아야 하는데

좁은 방에 너도

썩어가는 시간에 몸이 껴서

어…어… 빠져나오질

못한다.

차라리 눈을 감았다.

젊은 신음을 낸다.

녹슨 시간에 기름칠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냥

다시 잠든다.

 

일어나

아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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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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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거칠은 시멘트 담사이

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서

보는 건 남자아이의 무표정

남자 아이의 투박한 시선에

투박한 회색벽이 담기고

부서진 벽틈 작은 벌집이 담기고

틈새 끼워진 오래된 십원짜리가 담기고

듬뿍 추억을 담구고서

이 길로 쭉 들어가면

고동색 벽돌로 지은 오래된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는

오래된 아버지들의 유년의 집

오랜 젖비린내가 아직 나는 기분은

나 역시 남자아이로 이 길을

이 집을 추억속에 담고

몇 년만에 꺼내보기 때문일까

 

그런데 그런 시간의 향수조차 얼마못가

정말 기억이 되어버린 것은

내 투박한 유년의 기억을

어린왕자며 여우며 장미며

알록달록하고 짙은 그림들이 덮었기 때문이다.

 

투박한 추억들이

페인트 속에 담겨

여기에 남아있질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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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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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점차로 쌓이던 눈이

점점 거대해지더니

점점 무거워지더니

결국 가지를 부순다.

 

그냥 점 찍듯 내리던 게

나중에는 하얀 짐덩어리가 됐다.

 

뼈만 드러낸 가지에 붙을게 뭐있다고,

거 쌓이면 또 얼마나 쌓인다고

 

그런데 그만 투욱.

 

아아, 나목은 인간적인 절규를 토해낸다.

 

별이나 바람으로도 씻어내지못한

무심히도 여린 속 깊이 상처들을 쌓고 쌓아

결국엔 결국을 부숴버렸던

뻗치는 하얀 절규

뿌리깊은 밤.

 

그 절규들이 살을 찢고 솟는다.

 

살을 찢는 절규는 침묵이렸다.

 

절규로 만들어낸

지독한 침묵을 나는

무시하지도 이겨내지도 못하며

침묵아래서 숨을 못쉬다……

 

나는

 

그냥 가만히

아름드리 나무에서

꽃피는것을 본다.

 

아, 상처난 나무가 봄옷을 입는다.

 

사랑, 스스로의

사랑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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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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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깨졌다.

고쳐 써오던 나의 눈인데

안경 깨졌다.

 

각막, 동공, 시신경을 거쳐

뇌에 종착하는 거친 세상을

내 앞에서 가로막아

선명하게 비춰주던 나의……

……은 깨져 버렸다.

이제 세상은 흐드러져

나에게 곧장 부딪히는데

나는 마냥

케세라세라

케세라세라 하던 나의 삶조차

 

그런 될 대로 됨조차

무언으로 이뤄진게 아니었나

 

들이닥치는

형형색색의 소음에

덜덜달달

질려 눈을 감는다.

 

그러나 케세라세라 조차

나의 필요였으니

눈 감고 세상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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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잇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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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뭍혀논 흙은

걷는새 앉은 바람에 씻긴다.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

주머니에 손 쥐여넣고

밤길을 걷는다.

 

심심한 나머지

희미한 별들에 선을 그어

검은 종이위로

검게 스친 지난 꿈들을 그려본다.

 

별은 반짝이며

거인의 몸이 되었다가

여인의 몸이 되었다가

멍든 얼굴이 되기도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희미한 것들을 애써 그려본 밤

드문드문 떠올리던 지난 날을

마지막이라며 마지막이라며

몇 번 그려본다.

 

북두칠성 작은곰이

겁먹은 눈초리로

허공을 째리는

부끄러운 자존의 밤

 

내가 그려버린 것은

거인과 그림자와 나의 형상

검은 도화지를 검게 채운 어두운 밤

걷는새 일어선 바람에

모두 씻겨날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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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 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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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안에서

창밖으로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을 봅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새하얀 봄옷을 입은

성숙한 봄,

성숙한 여인

 

가만히 서서

가끔 바람에, 스륵

웃음을 흘리면

 

창밖에서

교실안으로

나는 볼 빨갛게

수줍습니다

 

교실안에서 창밖으로

창밖에서 교실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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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을 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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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가운데 작은 몸뚱이가 보인다

 

끝없을 시련들이 떨어지는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작은 의지가 날고있다

 

춥고 젖은 날개를

결코 쉬지못하는 작은 심장

그 가득찬 몸부림이

고작 몇미터위에 있다

 

그것이 행복하기위한 고민 아래

행해지는 것이 아니란건

그저 먹고살기 바쁜 우리도

고작 새 한 마리라는 걸까

 

비바람 아래로

한 몸뚱이가 걷는다

그 걸음엔 고민이 없다

그럼

나는 새일까

나는 새와 다름없을까

나도 비바람속에 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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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뜨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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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마을이 있다.

마을 외곽에 밭이 있다.

밭에 사람도 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

ㄱ자로 등을 굽힌 원시인이 있다.

 

원시인이 있다.

그를 위한 마을이 있다.

그의 삶이 있다.

그 삶은

작은 그리움의 삶이요,

충동이 부재한 삶이요,

인간적인 절규가 있는 삶이요,

별을 노래하는 삶이다.

 

이곳으로 뜨는 별들은

도시를 미워한 늙은 홀어미의

그리움이요,

이제 남은 절규요,

찾지않는 신음 소리.

 

잊혀진 원시가 있다.

그 원시에 삶이 있다.

버려진 지붕위에

금빛 이끼핀 마을이 있다.

이런 곳에 원시가 있다.

아직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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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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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있습니다.

 

가만히 누워 악을 쓰는 표정으로

갑갑한 방안에 침잠하여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어데 두고온 것들을

옆에 앉아 지그시 떠올려봅니다.

 

-붉게 녹 슬어버린 당신의 시간

언젠가 당신이 그리워 했던

아련한 사랑-

 

어데 언저리에 떨구고 온 그것은

나에게 스스로를 불살랐던 살신성인의 사랑이요,

짧고 강렬했고 홀로 안았던 젊은 사랑이요,

이젠 아지랑이같은 당신의 어머니,

젖먹이에게 시름없던 모성애…..

배냇웃음에 모이는 평생의 사랑입니다.

 

잃어버린 그리움을

남의 손으로 그려보는 당신입니다.

 

당신의 이마에는

굵은 주름들이 젖어있습니다.

 

때 탄 이마에서 녹슨 시간의 냄새가 납니다.

파아란 웃음에 어린 젖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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