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사랑으로 기억할까, 나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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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의 공기를 기억한다. 단 둘이 남았던 교실. 나른한 창을 타고 일렁이던 금빛. 네가 골라준 옷을 입은 나. 이거 보여주려고 온거야? 응, 사실 너보려고 온거야. 그날의 냄새, 촉감, 온도 모두 아직 내 코에, 피부에, 눈에 남아있다.

 

그래, 나는 우리의 입맞춤을 기억한다. 천장이 별들로 일렁이던 놀이터. 빤히 보던 눈. 그 안에 담겨있던 너의 별. 뽀뽀해도 돼? 응. 아니, 제발 안돼. 내가 목 끝까지 차오르던 단맛을 잊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간단한 질문에도 말이 없던 너를 기억한다. 너 나 사랑하긴 하니. 너는 나의 손 끝만. 그냥 계속 손 끝만 쥐었다. 육교를 다 내려 왔을 때 너는 내 손을 조용히 놓았다.

 

나는 한 번의 이별을 기억한다. 대체 이유가 뭔데? 그냥, 내가 왜 아파했는지 평생 궁금해 하면서 살아. 울음을 터트린 나. 가본다며 돌아선 너. 네가 없던 날들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추웠다.

 

행복을 찾았던 그날을 기억한다. 안녕, 오랜만이야. 쉼표 섞인 너의 대답을 기억한다. 이거 너네 엄마 번호 아닌데? 나랑 연애해줘. 다시 사랑해줘. 너 어딘데? 그냥 한번만 여기로 오면 안돼? 흔들리는 시선으로 너는 나를 바라보았다. 야, 그냥 나 한번만 안아주면 안돼? 응, 아직은 안돼. ‘아직’이라는 짧은 단어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너의 아픔을 기억한다. 우린 분명 다시 힘들어질 거야. 하지만 사랑하잖아. 응, 나는 너만 보면 많은 것들을 잊어. 작은 달보다 예쁜 손끝에 묻어나오던 후회를 나는 보지 못했다. 되찾은 사랑이 애틋하고 기쁘고 또 그럴 뿐이었다.

 

나는 나의 거짓말을 기억한다. 나, 네가 싫어. 너의 진심 또한 기억한다. 할 말 다했으면 일어날게. 어딜가, 난 할 말 남았어. 구질구질한 자존심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네가 정말 미운 듯 했으니까. 그러나 너의 평온한 얼굴만이 맺힐 뿐이었다.

 

너는 나를 사랑으로 기억할까.

나는 사랑이었다.

 

 

 

 

 

 

 

약 7개월 전쯤에 3년간의 연애를 청산했습니다. 사실 시로 시작한 글인데 쓰고 나니 수필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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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랙홀을 가장 경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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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찾아오는 인생의 무게는 같더래도
내 행성의 질량 가속도는 남들보다 조금쯤 가파른 편이었다.

 

매일 밋밋하게 오는 행운에 차라리 최악이기를 기도한다.
가슴 속 부유하는 납덩어리가
너의 압도적인 중력에 소멸하는게 싫어서,

 

나는 블랙홀을 가장 경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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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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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이 가진 것들에는 불행이 묻어나고, 그가 떠난 후 그녀는 사소한 끄적임에도 불행이 묻어나오곤 했다.

 

불행들이 갈라진 펜촉을 타고 스며들던 밤. 그녀는 잔인하게 그를 묻어, 아직은 분명히 살아 숨 쉬는 그녀의 행복을 끝내 묻어. 일상의 평온을 찾고자. 끝내 그를 묻어.

 

나의 행복. 당신은 죽음조차 나의 것이니까.

 

차마 칼로 찌를 수는 없었다.

눈앞에 거세게 튀어오를 그의 힘줄이 그녀의 목을 조일 테니. 혈관은 그녀의 손을 묶고. 붉은 피는 그녀 눈을 가리고. 차마 저항조차 할 수 없을 테니.

풀 한 포기 없이 붉은 땅. 그 위에 놓일 푸른 주검 옆에, 똥오줌을 질질 흘리며. 지독한 고통을 버티지 못한 눈은 압출. 수줍음 많아 몰래 숨어 있던 도톰한 혀도 압출.

그녀는 죽음조차 아름답지 못할 몸을 누일 테니.

그녀 자신의 평온을 위해서라도 아아, 안될 일이지.

 

목소리가 귓가에 지끈거리던 밤을 그녀는 기억한다. 그녀의 행복은 귀 언저리에서 울부짖었지.

떠나지마, 아직 나를 떠나지마. 여긴 너무 춥고, 어둡고, 답답해. 가지마, 아직 나를 떠나지마.

그러나 외치는 것은 그녀의 행복. 그가 아니었다.

 

홀로 남겨질 그녀의 행복. 흙이 채워진 코. 백골 사이를 유유히 지나다니는 흰색의 단백질들.

그러나 깊은 땅 속 남겨질 그녀 행복의 안위는 글쎄,

그녀도 그도 이제는 잘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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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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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어 줄래

우리 손을 붙잡아

미지근한 맥박의 떨림에

코 끝을 맴도는 악취는 그만 잊고

은근한 배고픔을 배울 정도로만

 

나는 가끔 축축한 식감에

입맛을 버려

세상을 뱉어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있어 줄래

 

쉬어빠진 김밥에

상해버린 마음을 덮듯

계란옷 정성껏 부쳐놓는 것처럼

내게 살아있어 줄래

 

습기가 낀 나를 끌어안아

쉬어버린 네 상태에

위벽이 시큰하니 반응해도

억지로 머금을테니,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단물처럼만

너는 살아있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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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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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시큼한 커피를

한 손엔 싸구려 볼펜을

 

그 끝에

이제는 나의 가치로 변모한

우리의 가치를 잉크삼아 묻히다

 

창 밖의 햇살이 몰아보낸

시린 겨울의 한기에

번저버린 자국들을 조용히 메만진다.

 

본질을 내몰아 펜 끝에 서린 실존

허락조차 구하지 않고

촉 끝을 타고 올라와

어둠을 아릿하게 울리는 것들이

 

그를 중력에 저항시키는

손가락 근육 섬유

안의 세포 조직

 

미세한 것 하나만 어긋나도

악취의 향기를  쏟아내며

낮은 바닥에서 최후를 맞이할

 

싸구려 커피,

그 무력한 파동에 불과함을

 

이제야 간신히 알기에

 

조용히 되뇌이는거지

죽어서 이름을 남길 수 없다면

살아서 당신께 고통의 향기나마 남길 수 있도록

 

목적을 잃어가는 섬유 조직 하나의 이성에

나는 자유의지를 불어넣고,

간신히 펜을 쥐고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어느덧 펜촉에는 다시 가치들이 묻어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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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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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나 텅빈

어느 포장지 재질 속

미약한 바람에도 자지러지게 떨던 그녀는 생각한다

 

어울릴 수는 있었지만

같은 줄기가 될 순 없었나봐

 

조그마한 나는

붉게 타오르는 그로 인해

녹아내리고 또 부피를 늘려가

온힘으로 감싸안았었는데

 

그러다 바람이 거세지고

움칫 하던 그녀는 가만히 그것을 마주한다

 

어쩌면 그가 유난히 붉었던 게 아니라

내가 유난히 허였던 건 아닐까

 

자신의 흰색을 철저히 부정하듯

거세게 고개를 저어보지만

누우런 빛깔 상처로 남겨졌을 뿐

한 잎 한잎 도망치던 떠나간 그는

예전에도 그랬고 또 앞으로도 그렇듯

뜨겁기만,

계속 붉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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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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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랑이 아니기에
우리가 함께하는 그 핑크빛 무언가로 취해있기보단
미련에 니가 좋아했던 매실 장아찌처럼 푹 절어 지내고 있다.
시큼하지만 꽤나 달짝지근한 맛이 나긴 하더라.

 

이제는 사랑이면 안되기에
밥상을 앞에 놓고 저녁은 먹었을까 니 속을 걱정하는 대신에
밥맛이 없다며 깨작이던 귀여운 네 얼굴을 조금씩 깨작이고 있다.
천천히 곱씹으니 나름 소화잘된 느낌이긴 하더라.

 

이제는 사랑일 수 없기에
네게 들인 매몰비용이 아쉬워 투자실패를 극복하고자
개미 투자자 주삭시세 확인하듯 네 깨끗한 타임라인을 체크하고 있다.
차분히 분석해보니 괜히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이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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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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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이다
떠나기에, 참 추운 날이다

 

길을 나선다면, 더 이상 세계는 없을 테다
문밖에 서 노크하는 너도
손목에서 움직이는 시계도
아스라이 번지는 달빛도
온 순간을 담던 내 세계는 없을 테다

 

북적한 세상에 적막함을 담고 싶었던 소망
차가운 유리파편으로 조각조각 사라지고
틈 사이로 들어간 잔재만이 당신의 세계에 존재하겠지

 

추억이라 불릴 것은 없었으면 한다
네 세계를 무너트릴 감정의 독을
고대해온 끝에서 주고싶지 않다
다만 사라져가는 존재가
너에게 티끌의 무게 정도 남기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고요한 숨결로 굳게 닫힌 문을 열어다오
뜨거운 눈물로 시린 내 몸을 안아다오
부드러운 손짓으로 굳은 내 팔을 끌어다오

 

추운 날이다
네가 어지간히 뜨거워서, 추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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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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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사랑을 받는 주말 그 년놈들처럼
탄내 날 때까지 지지고 볶고
그런 마음은 아니었지만

 

메마른 땅 잦은 모래바람 속
서서히 파묻힌 그것들은
길었던 시간을 도둑길 삼아
슬그머니 걸어나오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모래바람 한 가운데에 서
아무도 모르게 깨진 보물들을 발굴해 본다.

 

더 이상 무엇일 수 없는 그것들은
한 때는 우리도 너의 반짝이던 기쁨이었노라고
부서진 몸뚱아리 떨어가며 외쳐대었지만
아, 그럴때면 나는 날카로운 잔해들을 맨손으로 주워내어
차곡차곡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상처에 베어나온 빨간 그리움을
건조한 땅바닥이 모조리 집어삼킬때까지
나는 그 모래바람 한가운데 서
아무도 모르게 초라한 쓰레기통 하나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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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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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사람인걸 알아서 나는 우울해요

옆에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내 우울로 그 사람들을 울려

오늘도 많은 사람에게 티내고 위로받았지만

하나도 안 괜찮아

나한테만 불행과 우울이 찾아오니까

가장 원할때 놓쳤고

제일 필요할때 떠났으니까

그들도 겪어봤을지라도

나의 무게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힘내라고요?

아니요, 나는 힘낼수 있는애가 아니에요.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요?

아니요, 나는 열심히 하는 애가 아니에요.

위로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인걸 알지만

나는 지금 좋은 마음과 기분이 아닌걸 어떡해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 될수는 없으니

고마워 하고 마는거지.

그래도 차마 힘낼께요 열심히할께요는 못하겠더라

그냥 지금은 내게 아무도 힘내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바랄뿐이지.

근데 있잖아

나는 욕심이 많아서

네가 힘내지 않아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줘도

놓을 자신이 없어

그냥 나만 죽어나가는거지

지금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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