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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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은 시끄럽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잠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누구를 위한 벽이 수년 째 서있고

그것을 두드릴수록 말솜씨가 늘어나는 책장들

 

내일은 비가 오기로 했는데요

아마 약속을 어길 수도 있겠습니다

 

집의 일을 대신하는 중이라고

티브이 광고에서 들었는데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른손을 들어주세요

노동의 소문을 바꿔드리겠습니다

 

왼손은 서재에 필요한 일

자주 읽는 책을 바꾸는 것도

좋은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머리를 비우는 연습을 하면

가능한 상황입니다

 

책장마다 못 다한 말이 있다고

와르르 넘어지는 중입니다

 

하나하나 책장에 이불을 덮어주는 것

아무도 바꿔가지 않은 것이

덩그러니 서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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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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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함구증이 있었다.

 

 

가장 익숙해야 할 곳이 낯설었던 적이 있다. 매일 밤, 습관처럼 눈물을 삼키고 내일을 생각했다. 침대 위에서는 시간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웅크릴수록 멀어지는 새벽이었다.

 

 

피곤한 등교는 없었다. 항상 긴장하면서, 경직된 시간을 걸었다. 어디서든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는 내가 산만한 교실에 앉아있는 게 어지러웠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사람과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외침이 표출되지 않았다. 토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말을 걸면 그저 몸짓으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다. 그리고 멀어졌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고립되었고, 침묵은 고질적으로 변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못하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사람을 멀리했다. 주말에는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으며 창문을 열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속앓이를 했다.

 

 

2학년이 되자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과묵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었으니 발표를 시키는 선생님은 없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의 말이 오가는 쉬는 시간이 문제였다. 모두가 대화로 관계의 끈을 이어갈 때, 엎드려 있는 게 편했지만 내가 만든 암흑이 비참해졌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소설이었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곧 나의 세계였다. 어정쩡하게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과묵해지는 게 편했다. 책으로 벽을 쌓자 버틸 힘이 생겼다. 웬만하면 울지 않았다.

 

 

시간은 여전히 더디게 흘렀지만 3학년이 되었다. 과묵한 책벌레가 되었다. 침묵을 지키면서 울지 않는 법을 배웠고, 어색했던 내가 나를 적응했다. 다행히도 나를 이해해주는 교실이 있었다. 아주 가끔 말을 했지만 답답해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습관적인 긴장을 하지 않았다. 나는 벽을 허물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창문을 열었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느낌이었다. 그러자 하루하루가 빨라졌다. 교실에서의 시간과 침대의 시간이 비슷해졌다. 하지만 금세 졸업이었다. 입학식의 감정과 졸업식의 감정은 동일했다. 똑같이 슬펐지만 각각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과묵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두렵거나 슬프지 않다.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던 책으로 다시 도망갈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있고, 더 이상 질책하지 않는다. 현실은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고, 나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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