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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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이불을 덮고

탱크가 지나간 길에 안치된 국민에게서

배어나오는 핏물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으며

 

속죄할 것 없는 혼령의 입김으로

비가 내렸던 그 오전의

총성을 기억하는 나라의 탄환은

어디로 반환되고 있는가

 

금남로에서

기독병원에서

도청 상무관에서

나라의 관은 일제히

한 곳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주인이어도 두려운 총대를 매고 굳게 다짐하다가

중얼거리다가

눈 질끈 감다가

 

땀난 손바닥에 핏빛 훈장 아로새기고

어머니, 엄마 하다 고개 뚝 떨군

우리 삼촌이 바라던 세상이

그 세상이 빛이라면 나아가야 한다고

 

내일이 오지 않는 오늘에서

올 내일을 향해서

빛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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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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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간혹 앨범이 된다

 

날은 숫자로 지나가고 여백으로 후회한다 까만 네모 안에 당신은 지나가지도 않고 있다 후회로 치르는 장례는 남은 이의 몫, 나는 물 없는 바다에서 당신을 생각한다 언제부터 당신 있는 곳은 다 바다여야 했다

 

스프링의 녹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당신이 입주한 해구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뿐, 돌아오는 신발이 이제 여기 없다 바친 꽃마저 당신을 찾아 나섰다  가슴을 움켜쥐는 손아귀의 힘도 점점

 

십오와 십칠 사이 십육에 잘못 없는 당신이 묻혀 있다 꽃이 진다고 당신을 잊은 적 있는 우리는 사와 십육이 돌아와서야 잠깐 말이 없다 붉지도 않은 숫자들은 매일이 바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너는 물고기가 아닌데 아닌데

 

십오에 내뱉는 핑계

 

단 하루의 묵념은 칸에 갇혀 날이 지나자마자 미명으로 흩어지고

 

그리고 십칠

 

꽃이 진다 우리는 어김없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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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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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흉한 얼굴을 가진 익살꾼, 그리고 그의 슬픈 익살이 담긴 세 장의 사진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요조와, 요조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세 번이나 읽었다(그 결과 이 책의 핵심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익살’조차 일본어 원어로는 조금 더 세밀하게 표현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번역의 한계.). 그러고 나서도 이 깊은 우울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두 번째 차례에, ‘첫 번째 수기’의 첫 장에서 요조의 가장 솔직한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너무 일찍 죽어야했던 이유, 어쩌면 그를 제외한 모든 인간의 변명이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 역시 더 시도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너무 일찍 죽어버린 천사를 기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 책의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요조 뿐이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몰입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깊게 몰입시켰고, 어느새 우울해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세 부분에 대해 세 단어로 정의하려 한다.

 

소설의 순서와는 다르게, 나를 가장 우울하게 했던 순서대로 나열하면 질문, 놀이, 그림이 된다. 첫 번째, ‘질문’은 ‘세 번째 수기’에 나온다. ‘신뢰는 죄인가요? 과연 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누구의 입에서 나와 누구를 향하는 질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에서는, 요조의 경우에는 질문의 답이 이미 정해져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부터 신뢰는 죄, 무구한 신뢰심은 곧 무지함이며, 그래서 죄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고 정해져 있었다(다자이 오사무가 살던 시대는 더욱이 현실이 그러했다). 하지만 요조가 약간의 원망도 섞인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정답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조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서야 사실은 그러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더욱이 슬픈 것은 그 정답을 직면하게 된 이유가 바로 사랑했던 요시코의 추락이라는 것이다. ‘무구한 신뢰심’에서 비롯된 ‘무저항’이 요시코를 추락하게 한, 더러운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던 것이다. 그는 더더욱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왜 이게 답이냐’고 울부짖는다. 요조의 경우 이 질문의 착신자는 신이겠지만 결국 읽는 것은 독자인 우리이다. 과연 우리에게 이렇게도 적나라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두 번째 단어 ‘놀이’로 이어진다.

 

놀이는 요조와 그의 친구 호리키가 자주 하곤 했던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와 ‘반의어 맞추기 놀이’를 말한다. 이 놀이는 무척 고차원적이다. ‘죽음’은 희극, ‘삶’은 비극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가 된다.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이 대응은 요조의 음침한 성격으로 보아야지만 이해가 된다. 물론 공감은 되지 않는다(언제나 그렇듯 공감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아주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죄’와 ‘벌’이 유의어가 아닌 반의어 관계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죄는 곧 벌로 이어진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건 현실의 당연한 논리이다. 하지만 못을 박듯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요조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죄라는 것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삶’, 즉 세상이 세운 잣대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죄’가 되어 ‘벌’을 받아야 하는 살인이, 저 어느 나라에서는 명예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죄’가 되지 않고, 당연히 ‘벌’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죄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벌’은 모두에게서 거의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인간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구속을 가하는 것. 이건 벌이 아니야, 라고 일컬어지는 벌은 세상에 절대 없다. 결국 벌은 절대적이고 죄는 상대적이다. 이것이 요조가 두 단어를 반의어라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이다. 이 말은 죄를 짓지 않아도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무서운 허용을 내포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세상이 규정하는 ‘죄’라는 것에 대해 요조를 통해 용기 내어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둡고 우울한 일본의 암흑기를 걷다 간 작가의 소신이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인간 실격자’라고 칭해야 했던 슬픈 삶에 대한 일말의 변명이었던 것이다. 작가답게 그것을 요조에 투영해 말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가 죽기 전에 그것을 알아준 이는 없었다.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쓸모없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첫 번째 단어인 ‘질문’ 중 ‘무구한 신뢰심’과 ‘무저항’에도 대입해봤다. 위에서 말했듯 사실 요조는 무구한 신뢰심이 죄와는 반의어 관계라고 생각했다. 신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의 죄는 자신이 인간의 자격을 잃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고, 신뢰는 순수한 것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 곧 유의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요조는 죄에서 멀어지기 위해 깨끗하고 순수한 신뢰, 요시코를 사랑했다. 그러나 결국 요시코의 추락을 목격하면서 순수한 것은 더럽혀지기 마련임을 깨달은 것이다. 즉 신뢰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임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무저항’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요조가 바라본 그 단어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기방어를 하기 위한 긴장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요조가 여태껏 해 온 익살꾼이라는 노릇과 솔직한 스스로를 희미하게 연결시켜, 자신이 가진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려는 것을 말한다. 단 한번은 그러했던 것이다. 그토록 두려운 존재에게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요조 수준의, 그의 삶만큼이나 고차원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다. 알아줬다면 달라졌을까. 쓸모없는 생각을 해 본다.

 

드디어 요조는 세상이 정의하는 ‘죄’는 곧 자신의 삶임을 알게 된다. 실없고 어려운 놀이 따위가 그의 존재성인 ‘인간 실격자’, ‘폐인’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다. 요조는 수기의 마지막에 ‘아무래도 폐인이란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라고 하고 웃어버린다. 세상 가장 자조적인 웃음이다. 이 정의의 이유는 더없이 간단하다. 너무나도 허무한 비극 속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그야말로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런 쓸쓸한 웃음을 유발하는 인간 실격, 즉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요조의 삶은 희극이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던 웃었으니까. 이유가 무엇이든. 누가 웃었든.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책을 두 번째까지 읽을 때만 해도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요조의 삶을 비극 그 자체로 바라본다. 순수한 영혼이 너무나도 강직해서 결국 꺾여버린 비극적 인생. 하나의 삶을 두고 요조는 희극, 우리는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그저 바라보는 거리가 다를 뿐 모두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비극은 희극이 된다. 희극은 비극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큰 모순이 생긴다. 놀이를 하던 중 죽음이 ‘비’이고 삶이 ‘희’라고 말하는 호리키에게 그렇게 되면 완전히 잘못되어버린다고, 삶은 ‘비’라고 고쳐 말하며 단단히 못을 박던 모습도 어그러진다. 하지만 이 또한 의도된 것이다. 어디선가 잘못되었다, 모순이 생겨났다, 이것을 인식하게 하려던 것이다. 끝내 모순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관철하기에 이른 요조의 허탈함을 통해,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순을 놀이라는 사소한 것에서 세상과 삶 전체로 확대한다. 그리하여 세상은 모순투성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결국 모순이 아닌 것은 이 결론밖에 없다. 얼마나 허탈한 세계의 엔딩인가.

 

마지막 단어인 ‘그림’은 일찍이 요조가 그린 도깨비 그림을 말한다. 요조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그렸다. 인간은 사실 도깨비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목격해 그린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보며 스스로도 더없이 음산하다고 말한다. 음산한 존재가 보기에도 음산한 그림이라니, 얼마나 음산한 그림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서문에 소개된 세 장의 사진으로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서로를 속이고, 서로에게 속으면서도 그걸 모른 채 살아가는 인간. 요조는 그러한 인간들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이유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것은 바로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에서의 웃는 모습으로 설명된다. 스스로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웃게 만들기 위해 익살꾼이 되어 갖은 노력을 했던 모습이다. 하지만 그가 부여잡은 마지막 지푸라기인 순수조차 무참히 꺾인 이후로, 세상에 대한 일말의 믿음마저 꺾이게 된다. 이윽고 자신이 인간의 자격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잃었다’가 아니라 ‘잃은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더 파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천사, 그래서 불행할 수밖에 없던 이를 욕보이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사진의 ‘계속 봐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어두운 표정’은 인간 실격자가 된 그의 최후를 담는다.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는 그의 최후를 담는다. 그리하여 ‘인간 실격’이란, 천사가 끝까지 쫓았던 온갖 새하얀 것들이 불러온 새카만 결과를 단언하는, 요조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호칭이 되는 것이다.

 

다자이는 죽었으나 요조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이 수기의결말에 서서, 내가 나를 위로할 명분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이 요조가 되던 순간부터 그를 참 많이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끈질긴 삶이 드디어 끊어지는 그 순간에 요조의 아픈 삶까지 다 그러안았을 것이다. 이밖에는 내가 나를 위로할 방법이 없다. 이밖에는 끝내 여기에서 죽은 요조의 장례를 치룰 수 없다.

 

책의 마지막에 와서야 드러나는 요조의 진짜 정체,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 요조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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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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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자는 언제나 헤진 월드컵 운동화

주황에 옆구리를 쓸린 건물들이

하품하며 아침으로 빛날 때

소리도 내지 않고 걸어나갔던

사실은 뒤돌은 채 걸어나갔던

 

오래된 주공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열다섯 명, 천 키로를 다 태우지 못한다

그러나 그만큼 채워야 하는 엥겔지수가 있어서

 

당신 이걸 왜 버려 아까운 걸

이러니 영수증이 그렇게 길지

하다가도 운동화의 주인은 눈치를 보고

 

밟히고 밟혔어도 풀린 지 몰랐던

신발끈을 새 걸로 바꾸는 데 만족한다

 

닳은 밑창으로 돌이라도 밟는 날에는

차라리 맨발이 부러웠다

무릎으로 걸으면 될 일이었고

 

당신의 발을 위해… 초특가… 효도 상품…

눈을 잠깐 돌렸다가도

오늘 새벽 자식놈 머리 맡에 둔

오천원이 뿌듯해 아직 신을 만 하다

 

신발 가게를 하는 친구도 더 이상

싸게 준다고 동정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한 가장의 명예, 실은

 

피로가 지독한

냄새도 못지 않은

그러니까 훈장 같은

 

아, 껌으로 패인 곳을 메운다면!

깡소주 한 잔에 유레카를 외치며

뜯어진 앞코를 주워 챙기며

피니시 라인을 끊는

헤진

월드컵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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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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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다로든 떠나야 했다

사람보다 집이 많고

집보다 과부가 많은 이 마을의 항구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오래된 항구에는 어머니의 결혼반지처럼 쓸쓸한 것이 많다

나는 한 때 자동차의 꿈을 꾸었던

폐타이어에 걸터앉아

 

멀리 매어둔 배들의 수다를 엿들었다가

비어있는 소주병의 장례를 치러줬다가

그들의 주인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듣는 이 없는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자각을

수많은 아버지를 위한 눈물로

별 대신 수면으로 빛낸다

별은 처음부터 먼 곳의 것

 

바다에 고인 달

달에 고인 바다

나는 자백하듯 아버지를 떠올린다

쓰지 않은 마지막 용돈이 주머니를 배회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부둣길,

느닷없이 일어나는 파도는

부서지고 일어나면서도 설피 울었다

아직 나의 사랑들이 새근대는 집,

그들이 돌아눕는 기척에 나는 귀를 적셨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남편을 잃은 아내의 슬픔,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낼 절개같은 것에 대한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과부의 노래라는 생각을요.

하지만 과부의 이야기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부부의 아이, 그 아이의 입장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한 때 아버지의 삶의 터전이었을 부둣가에 나가 홀로 슬픔을 삭여내는 모습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세계 어딘가에 적잖이 존재할 모습입니다. 그 입장에 서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상처가 새로워진다
못오는 님이면 이마음도 보낼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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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모든 외로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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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을 어긴 동생처럼

주황이 거실 바닥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신발 없는 현관처럼 나는 오래 기다려야 했고

귀가에 늦는 가족들이 보고싶지 않았다

 

저녁에는 저녁을,

혼자 밥을 먹어도 됐다

 

수저가 한 벌 뿐인 식탁은 자주 울컥하고

텔레비전 소리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아찔함과

한때 왁자했던 이 시간이

대화 대신 혼잣말로 흩어지는 밤,

 

밥알대신 생쌀이 씹혔다

모래를 삼켰다

배는 부르지 않았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담긴 것이 적은 설거지통을 바라보다가

 

담백한 설거지를 했고 온기를 남겨두었다

밥이 밥 아니게 되는 동안,

밥그릇들은 꾸벅꾸벅 졸았고

남은 음식도 덩달아 조도를 낮췄다

 

저녁에는 저녁을,

그러나

 

이 집의 사방으로

밥 끓는 냄새는 자꾸 나고 있었고

빠르게 돌아가는 전기계량기들마저 모여 앉아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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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 들, 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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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 들, 꽃에 대하여

 

 

우기가 시작된 들과 나부끼는 꽃

같은 판잣집과 사람들

그 데칼코마니에 대하여

우기가 시작된 캔버스에 대하여

나부끼는 사람들에 대하여

 

금이 간 판자 사이로 잡초가 자라고 있다

예쁘게 그리면 들꽃이 될까

그럼 우리는 무엇으로 예쁘게 그려질까

같은 생각을 하며 계속 흔들린다

 

선풍기에 널린 덜 마른 속옷은

제 가진 것이 습기뿐인지 오래되었다

습기는 덜 마른 냄새로 수채화 들꽃을 피웠다

붓질로 시작된 우기를 조금씩 두려워한다

 

습기와 냄새와 판자 지붕의 무책임

섞일수록 어두워지는 3원색

판자 틈으로부터 국지성 호우가 쏟아진다

거실은 이제 다 씻겨나간 수채만을 갖고 있다

 

언니는 대야로 자꾸 물을 퍼냈고

나는 젖은 수건으로 바닥을 닦는다

우리는 잡초 아닌 들꽃, 그러나

오래된 집은 전원이 자주 나가는 냉장고처럼 버릴 것이 많다

 

창 밖으로 펼쳐진

캔버스들은 저마다 들을 품었다

그 안의 가난한 들꽃들은 유화를 꿈꾸며 뭘 자꾸 버려야만 하고

 

언니, 언제쯤 우기가 끝날까

우리는 언제쯤 잡초가 아닐까

대답 대신 잎맥 같은 손이 다시 수건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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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를 쓰며 국어교육과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고3입니다.

한 때 시가 좋아 과외까지 들으며 문창과 입시를 준비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등단보다는 지속적인 시작에 가깝다는 생각에 원래 꿈이었던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박준과 허은실, 소설가로는 정유정과 김영하, 김애란이 있습니다. 박준과 허은실의 따뜻하게 흐르는 단어들을 좋아합니다. 정유정과 김영하의 벌처럼 쏘는 문장을 사랑합니다.

문학의 모든 갈래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 시를 사랑하고, 비평도 조금 더 좋아합니다. 신형철 평론가를 존경합니다.

고등학교에서 문학과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제가 받았던 선한 영향력을 돌려줄 것입니다. 더불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큼 힘들고 어두운 시기를 밝혀주는 참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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