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모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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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딸에 대하여> 감상

‘딸에 대하여’는 단순히 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엄마와 딸, 그 딸의 여자 친구와 할머니 젠이 함께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을 만큼 이 책은 여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자 굳건히 뿌리박은 편견과 악습을 향해 맞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내용 자체는 우리 주변의 누구나 한번 쯤 겪어볼 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삶, 죽음, 늙음, 사랑, 불의 등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작가는 소설 속으로 끌어내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이해와 소통을 호소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현실적이고 암울하지만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여성일 수도 있고 소수자 일 수도 있는 우리는 괴로운 현실이라는 것과 부딪치며 살아가야 함을 작가는 알려주고 있다.

 

늙음에 대하여

 

늙는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곧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을 존엄하지 못한 살덩어리로 변화시킨다. 요양보호사이자 평범한 60대인 주인공 엄마는 자기가 돌보는 할머니 젠을 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들을 한다. 한평생 헌신과 봉사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젠의 노년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녀는 치매 증상으로 자신이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사람이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채 먹고 자고 싸는 일도 혼자서 하지 못하는 노인이 되었다. 요양원 직원들은 그런 젠을 짐짝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그저 빨리 죽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젠의 삶은 사람들로부터 늙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갖게 한다. 한 인간의 삶이 어떠했던 간에 결국 나이가 들어버리면 비참해지고 골치 아픈 존재로 남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녀를 보면서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주인공 엄마는 어떨까? 젠보다 조금 젊을 뿐이지 역시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암울함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느끼는 ‘늙음’은 바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녀는 본인이 더 이상 무엇인가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 안에 갇혀 있으며 딸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젊음으로 무장한 딸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고 떠올리기 싫어하는 것이지만 사실 우리 삶에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늙음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면 좋을까. 주인공 엄마는 자신이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민감하게 느끼고 본인을 자꾸 한정지으려 한다. 이는 늙음을 받아들이는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늙음의 초기 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기 증상이므로 아직 완전히 늦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늙음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이 늙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서른 살의 젊은 딸은 직장도 없고 남편도 없고 집도 없는 소위 말하는 ‘불안정한’ 삶을 헤쳐 나가고 있다. 나이 든 엄마는 제발 좀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라고,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엄마의 말에는 그녀가 자신의 딸보다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옳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아무래도 인생 경험이 많으면 충고나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연륜이 있기에 자기가 항상 옳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바뀌기가 힘들다. 주인공 엄마의 말처럼 나이가 들면 생각이 굳어버리고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 안에 점점 갇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고리타분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면, 늙었기 때문에 비참한 기분이 들고 싶지 않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드는 것을 그만 두자. 인생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한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단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접해보고 알아보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어느새 우리는 지혜롭고 존경 받는 늙은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늙은 게 죄라는 말을 아마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늙은 것은 죄가 아니다. 그저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주인공 엄마처럼 노인이라고 해서 괜히 주눅 들지 말자. 자신감을 가지고 변화하는 세상을 즐기자!

 

우리들의 사랑에 대하여

 

레인과 그린. 이 두 여자는 단순히 친구가 아니다. 서로의 가족이고 남편이고 아내이다. 사랑은 국경도 넘는다지만 이 커플의 사랑을 주변 사람들은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워 보인다. 그린의 엄마는 무엇이 잘못되어서 자신의 딸이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괴로워하며 둘의 사랑을 그저 소꿉장난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이성과 사랑을 나눈 본인으로서는 동성 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린과 레인을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그녀들의 사랑을 반대한다. 반대하는 시위를 열고 그들의 사랑을 혐오하고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어떻게든 파괴하려고 애를 쓴다. 레인과 그린은 안정적인 직업과 집을 얻지 못한 채로 매일매일 힘겹게 세상과의 투쟁을 이어나간다. 두 여자가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여자들의 사랑에는 남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 엄마는 집안에 남성이 하나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궁색하고 초라한 처지’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변변한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유는 그녀가 적당한 남자를 만나지 않고 여자를 만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남성중심사회이고 우리 사회는 아직 ‘남성’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여자들 사이의 관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그린과 레인을 궁핍한 떠돌이로 만든 것은 남자의 부재에서 이유를 찾기 보다는 여성끼리의 연애와 결혼, 경제활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레인과 시간 강사인 그린의 관계는 겉보기에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둘은 여자이기 때문에 결혼으로 맺어질 수도 없고 사랑의 결실이라고들 하는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린의 엄마도 둘의 관계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모습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런 감정을 굳이 서류나 관행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 되고 숭고한 사랑,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힘 이런 것들에 대해 말하곤 하지만 이런 사랑들이 왜 결혼으로 증명되고 자식이라는 결실을 맺고 꼭 다른 성별끼리만 가능한지는 아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린과 레인은 7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고, 그 사랑 때문에 그린은 투쟁하고 레인은 일하는 힘겹고도 불완전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둘의 사랑은 ‘소수의 사랑’ 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이성애자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예 없는 존재처럼 무시하고 싶어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으려고 한다. 이는 꼭 성적 취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성애자들은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동성애를 멋대로 판단하고 억압하려고 든다. 나 자신도 이성애자라는 다수의 위치에 서서 동성애를 바라보고 있다. 막연하게 동성끼리의 사랑을 반대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편견에 사로잡혀서 그들의 사랑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랑과는 매우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린과 레인은 성별만 같을 뿐이지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이상하고 비뚤어진 그런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가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숭고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과연 내가 이 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문장이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냥 우리는 여기 있어요. 여기 있다고요. 그래, 너희가 여기 있구나, 그렇게 알아주는 것. 저희가 원하는 건 그뿐이에요.”

 

동성애라는 것은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성간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듯이, 동성 간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알아주는 것, 그것이 우리 스스로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지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소수자’들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에 그렇다.

 

엄마와 딸에 대하여

 

딸 ‘그린’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무서워 할 그런 딸이다.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지만 적당한 직업도 없고 집도 없는데다가 남들은 다 결혼할 나이에 ‘레인’이라는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오기까지 한다. 또 남의 일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뛰어들어서 시위하고 투쟁하기까지 한다. 엄마 말은 또 어찌나 안 듣는지, 충고를 하려고 하면 다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하며 돈이 필요할 때나 대화가 가능한, 어떻게 보면 불효녀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 중 하나를 이런 딸에 대한 엄마의 현실적인 생각묘사라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자기 스스로나 딸을 변호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딸을 보며 ‘하필이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하고 생각한다. 모녀 사이에도 돈이 개입되어 딸이 엄마에게 마땅한 액수를 지불했으므로 더 이상 자신은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그 애의 엄마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기 자신이 싫다고 한다. 자랑스럽던 딸이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여기면서 딸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이토록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는 딸의 모습이 참신하면서도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착한 딸 콤플렉스’ 때문인 것 같다. 가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 그대로 물불 안 가리고 치열한 삶 속으로 뛰어드는 딸의 모습은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딸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괴로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딸이 꼭 저렇게 행동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저돌적이고 버릇없는 딸은 이 세상에 아주 많다. 다만 사람들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효도하는 딸의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에 소설 속 딸인 ‘그린’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딸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고 싸가지 없는 딸이든, 돈 먹는 하마 같은 딸이든 엄마들은 이런 다양한 종류의 딸들과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안타깝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이제 순종적인 딸들의 시대는 갔기 때문이다.

 

 

저항에 대하여

 

소설 첫 머리에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엄마의 생각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생각이 아주 살짝이라도 바뀌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에 그렇다. 엄마는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고 참견하고 보는 딸의 성미가 싫다. 어차피 자신의 일도 아닌데 그렇게 열을 내다가는 손해를 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딸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고당한 강사들을 위한 시위에 뛰어들자 식음을 전폐하며 남을 위해 싸우는 그 모습에 기가 찬다. 요즘 사람들은 상대방 생각도 하지 않고 떼쓰고 억지 부리는 데 아까운 시간을 길에 내 버린다는 생각으로 가게 주인 여자와 대동단결한다. 그렇지만 엄마의 언행에는 어딘가 모순이 있다. 딸한테는 제발 나서지 말라고 하소연 하면서 본인은 가족 없는 노인 젠이 다른 열악한 병원으로 옮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젠을 자기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한다. 만약 이 엄마에게 왜 남의 일에 그렇게 신경 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 그녀는 늙은 젠이 꼭 미래의 자신의 모습 같아서, 남 일 같지가 않아서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세상에 ‘남 일’이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극적인 일들은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아는 데도 당장 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동성애, 성소수자 이야기는 자기하고는 동떨어진 이야기인 줄 알았던 엄마는 한 쪽에서는 강사해고를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이유 없는 해고는 부당하다는 폭력시위 한 복판에서 깨닫는다. 마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말하던 딸은 단단한 땅 위에서,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목숨을 걸어가며, 안정된 삶을 포기하며 투쟁하는 딸에게 더 이상 침묵하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딸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딸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부당한 것에 맞서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실에 부딪치고 잃을 것이 두려워서 실천을 하지 못 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현실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싸워야 한다. 현실과 부딪치며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한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서 결국 결실을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린과 레인이 처한 상황은 끔찍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항을 그만 둬 버리면 아무 것도 해결될 수 없고 여전히 그대로인 끔찍한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 투쟁에 동참해야 하고 그 것이 어렵고 무섭다면 조금의 도움이라도 주어야 한다. 저항은 그 어려운 생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긴 소설은 아니지만 무척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떠올리기는 조금 거북하고 힘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야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소설 속에서 엄마와 딸이 부둥켜안고 화해하는 그런 바람직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바뀐 것은 있다. 엄마는 딸이 투쟁하는 이유와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 나가야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동참이 모여서 바뀔 수 있다. 책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과 공감대는 각각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솔직하고 딸을 위하는 ‘엄마에 대하여’ 조금은 알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순수하고 존경 받아 마땅한 ‘젠에 대하여’, 불의에 맞서 행동 할 줄 아는 이 시대 진정한 혁명가 ‘그린에 대하여’, 따뜻하고 든든한 버팀목인 ‘레인에 대하여’ 알게 되었을 것이다. ‘딸에 대하여’ 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엄마와 딸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슴 속 깊이 깨달음을 주는 그런 책이다. 무엇을 깨닫든 상관없다. 책을 읽고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한 나 자신을 발견한 다면 ‘딸에 대하여’를 제대로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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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베리의 가입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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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독서와 글쓰기를 사랑하고 요즘 시나리오 쓰는 일에 관심이 많은 생쥐베리입니다

생쥐베리라는 이름은 제가 별명이 생택쥐페리라서 짓게 되었어요

왜 친구들이 생택쥐페리라는 별명을 지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쥐를 닮았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저처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네요

좋아하는 작가는 당연히..ㅎㅎ 앙투앙 드 생택쥐페리고요 너무 어린왕자만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작품들도 꾸준히 읽어보려고요. 또 좋아하는 작가는 다자이 오사무, 알베르 까뮈, 김수영 시인 등등이 있습니다. 최근에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소설을 읽고 박상영 작가님도 좋아하게 되었구요. 좋아하는 작가가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가 없네요.

요즈음 제가 관심있는 글쓰기 분야는 시나리오와 비평이에요.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평을 적는 일이 제 적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나리오라는 분야도 정말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앞으로도 꾸준히 공모전 등에 참여하면서 글쓰기 내공을 쌓고 시나리오도 완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원으로서도 열심히 활동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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