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나는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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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자다.

사람들은,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그것이 단순한 사고라 믿었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동생과 그리고 나만이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고, 나는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으므로 이 사실은 나와 동생,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

 

 

솔직히 어떨까 싶다. 살인자, 그것도 다름아닌 자기 친동생을 죽인 미친 소시오패스가 수많은 대중들 앞에 서는 가수가 된다는 것은.

아니, 가수가 된다 안 된다 이전에 그런 놈과 같은 공간에서 숨조차 쉬고 싶지 않아할 것이다. 살인자가 여전히 길거리를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건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랄 만치 기분이 나쁘다. 설마 하지만 나조차도 이렇게 당당히 생활하고 있는데 또 다른 녀석이 증거를 인멸한 채 나다니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물론 그거야 특수한 경우였지만.

그야 감시 카메라도, 행인도 아무도 없는데다 어두운 밤. 신장 100센치도 안 되는 작은 아이를 보지 못하고 빠르게 달려오던 이삿짐 트럭에 치여서 즉사.

어디로 보나 사고였다.

하지만 동시에 사고가 아니었다.

죽은 아이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며 죽음 그 직전까지도 함께했던 한 살 터울의 작은 여자아이. 용의자 선상에조차 오르지 않았던 않았던 일곱 살짜리 여자애가 진짜 동생을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생각을 특별히 정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리 말해 봤자 동생을 잃은 충격에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어버린 불쌍한 아이로 보던가, 아니면 내 정신 상태를 의심해서 나한테까지 이것저것 검사를 해 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귀찮았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금은 두려웠다. 한 살 연하의 남동생을 죽인 일곱 살짜리 여자애. 분명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언론에서는 그 일에 대해 떠들겠지. 온 세상에게 친족 살인자라 손가락질 받기는 싫었다. 설령 어린아이라 하여 처벌은 가볍게 피해갈 수 있을지언정 그것은 내 꼬리표가 되어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명백한 내 잘못이고, 또한 누구도 모를지언정 내가 떠안고 살아가야 할 짐이다. 설령 영원히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해도 동생이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용서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죽었으니까. 이미 생명이 떠나버린 시점에서 시체는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영혼이 둥둥 떠서 내 주위를 돌고 있지 않는 이상 무슨 일을 해도 그건 자기 만족일 뿐이다.

흐르는 상념을 곱씹으며 주머니에서 하얀 이어폰을 꺼내 양쪽 귀에 꽂았다. 한 가지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이 나이를 먹어가고도 MP3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이상하게 컴퓨터를 다루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라기보다는 인터넷 검색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정도인데, 유독 MP3만은 그 버튼이 이 버튼 같고 저 버튼이 저거 같아서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국에 생각한 결론은 늘 버튼의 용도를 표시한 설명서를 그 조그만 기기에 붙여놓는 것이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메뉴가 많긴 하지만 적어도 음악 리스트를 뒤적거리는 것쯤은 도움 받지 않고도 가능하다. 당연하지만 정리하는 기능 따위는 사용할 줄 모른다. 아마미에게 조금쯤 부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사용하는 데 있어 큰 불편함은 없기에 그럭저럭 참고 있다.

덜컹거리는 전차의 창 밖으로 상당히 복잡한 아파트와 자판기,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는 중고교생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다가, 이내 앞뒤로 흔들리던 덜컹거림이 멎으며 점차 그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몇 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검은 간판이 보이더니 이내 붉은색의 화려한 자동 판매기 앞에서 완전히 정차했다.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번화가이기에 사람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틀에 가둬놓았던 모래알마냥 푸스스 쏟아져 나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침 눈앞에 보이는 자판기에 130엔을 집어넣고 펩시 콜라 캔 하나를 뽑았다. 원래라면 근처의 패밀리 마트라도 들렸겠지만 오늘은 시간이 꽤 촉박해서 서둘러야 한다.

 

어라, 치하야?”

 

마주쳐버렸다.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딱히 그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저런 밝고 활기찬 류의 사람은 과거의 동생을 떠올리게 해 싫을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사정을 가지고 아마미를 탓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 없는 분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못 된다.

옅은 감정이 담긴 표정을 담담히 정리한 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마미를 마주보았다. 어두운 적갈색의 단정한 앞머리와 대조되는 밝은 표정과 맑은 눈동자가 마냥 싱그럽기만 하다.

아주 잘 나셨어. 나 같은 녀석이랑은 눈도 안 마주치는 편이 더 낫겠군.

물론 나도 안다. 아마미에게는 죄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나겠지. 저절로 드는 자조감과 약간의 질투를 속으로 삭히며 해맑은 어린아이마냥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마미에게 나지막이 대답한다.

 

“- 아마미.”

, 정말이지치하야, 하루카라고 불러도 된다니까?”

미안.”

 

칼 같은 거절에 아마미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깊게 안겨왔다.

 

, 이게 뭐 하는,”

빅 허그-? 말 안 듣는 아이한테 주는 벌이야!”

“…”

 

아연해진 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유독 저렇게 느끼하게 구는 일이 잦아진 걸 보면 밤늦게 연애 소설이라도 읽는 게 아닐지 무척이나 의심이 된다. 사람이 아예 바뀐 것도 아니고 딱 나한테 하는 태도만 조금씩 바뀌는데, 그게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천적과도 같은 반응이라 상당히 곤란하다.

하지만 차라리 이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때 하나 묻지 않은 맑은 표정으로 슬픔을 담아 바라보는 시선은, 내 마음을 훨씬 불편하게 하니까.

 

“… 그래, 마음대로 해.”

 

사실 선택권은 없다.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

 

 

 

내가 왜 그 날 그렇게 행동했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앞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랬다.

처음에는 자판기 아래에 10엔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동생이 언제쯤 바닥에 넘어져 울음을 터뜨릴지, 같은 반인 남자아이 하나가 다음날 독감에 걸린다던지 하는 일들이 내게 보였다. 그저 우연일 뿐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사건들에 나는 점점 두려워졌다. 그건 두려움은 지금까지 알았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미래를 알고 나서 더욱 커졌다.

내 동생은 내가 일곱 살이 되는 날 차에 치여 죽는다. 미래의 기억인지 아니면 그저 환상인지 알 도리가 없는, 기괴하게 비틀린 채로 쓰러진 모습이 동생과 겹쳐 보였다.

더, 더, 조금 더.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이 어떻게 죽는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건이 가까워진다는 증거다.

길 건너편에서 내가 동생을 부른다. 동생은 내게 서둘러 달려오다가, 빠르게 달려오는 검은 승용차에 사고를 당한다. 다행히도 내게는 미래를 바꿀 힘이 있었다.

12월 24일, 그 날이 찾아왔을 때 나는 동생을 부르지 않았다.

동생은 죽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점점 더 기괴해져만 가는 동생의 시체를 보았다.

왜? 왜? 왜? 왜지?

무슨 일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 나는 누구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공포에 잠겼다. 내가 본 일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여태까지는 미래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내가 정해진 미래를 틀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동생이 어떻게 죽는지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건 결과뿐. 그렇다는 건 조금의 유예기간이 남아 있다는 거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겨울 밤, 나는 원래대로라면 동생이 죽었어야 할 도로를 살펴보기 위해 살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제대로 목도리를 여매고 코트의 지퍼를 채웠지만 살을 에는 바람은 그대로였다. 작게 기침한 나는 어떻게든 미래를 읽어 보려고 도로 한복판을 가만히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미래를 보게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집중하면 사물이건 사람이건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도로만은 캄캄했다.

문득 드는 불길한 예감에 나는 몇 발자국 내딛어 도로 안쪽을 향했다.

그리고 뒤에서 나는 온 몸이 기이하게 비틀린 채 절뚝절뚝 걸어오는 시체를 보았다.

동생이다.

방금 전까지 읽었던 거리의 기억에 동생은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동생은 눈앞에 있었다.

 

"누나!"

 

반쯤 찢어진 입에서 동생의 앳된 목소리가 나왔다. 까만 밤거리에서 걸어다니는 시체는 환한 낮에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나는 두 눈을 감으며 주저앉았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이쪽으로 오지 마.

 

"누나!"

 

다음 순간의 일은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내게 달려온 동생의 눈이 흘러내리고 다리가 썩어 문드러지는걸 본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동생을 뒤로 밀쳤다. 그 때 있는지도 몰랐던 화물트럭이 동생을 덮쳤다.

우습게도 그 찰나 동생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믿을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동생은 순식간에 붕 날아가 도로 바닥에 처박혔다.

내 잘못인가? 내 잘못이지?

나 때문이잖아.

아무리 어둠과 동생의 모습에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한들, 나는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건 명백한 살인이었다.

그 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던 날.

나는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

 

 

"치하야, 괜찮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내게 아마미가 다가와 등을 도닥였다.

아마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

아마미의 잘못은 아니다. 전혀 아닌데도.

평소에는 그냥저냥 넘어가지만, 오늘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동생을 죽인지 꼭 십 년이 되는 오늘, 나는 나보다도 내 동생과 닮은 아마미와 마주앉아 있다.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에 사무소를 뛰쳐나왔다.

 

 

 

*

 

 

 

[수신인: 하루카]

[제목: 미안]

[오늘은 컨디션이 나빠서 먼저 가볼게. 좀 더 연습하다 와.]

 

[메시지를 전송합니다.]

[메시지 전송에 성공했습니다.]

 

몇 번의 조작으로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몸을 벽에 완전히 기댄 채 곧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습한 기후라 여름에는 당연히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이왕이면 맑은 날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니, 정정하자면, 나는 비를 싫어한다. 차갑고 축축하고,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 농가에서는 비가 급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쪽의 사정으로, 도시에 사는 학생인 내게 비라는 것은 그저 이동에 제약이 생기는데다 꿉꿉한 냄새를 만드는 주범일 뿐이다. 귀찮기 그지없다. 거기다가 비는…

그러고보니 오늘 아마미가 저녁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간다고 했었나. 평소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거나 날아온 야구공에 맞거나 늘 시비에 휘말리는 걸 보면 세계에게 미움이라도 받는 게 아닐까 싶다. 소소한 불행이긴 하지만 그게 쌓이면 제법 커지는 법이다. 물론 세계가 가장 싫어할 사람이 있다면 미래를 보는 나겠지만. 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범이 아닌가.

수많은 자살시도에도 죽지 못했던 걸 보면 나를 지독히도 미워하는 게 틀림없다.

 

‘… 오랜만에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차가운 유리창에 숨을 불어넣자 하얗게 김이 서렸다. 꼭 그 날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태연한 얼굴로, 친인척이나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심 어리고 순결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역겹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생을 이 두 눈으로 마주하지 않는 것도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애초에 나는 그 날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었었다. 거기서부터 모든 일이 틀어졌다. 만약 처음부터 나나 동생 둘 중 하나가 키사라기 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둘 중 하나는 지금쯤 아무것도 모른 채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키사라기 가에 먼저 태어난 것은 나이지만, 나는 차라리 내가 없었으면 모두에게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분명 부모로서도 나 같은 이상한 꼬마보다는 밝고 활기찬, 딱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 같았던 동생이 훨씬 마음에 들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나의 부모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동생의 희생으로서 나라는 위험 요소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었다. 그만큼 나는 누군가와 같이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서로를 다치게 할 뿐인,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관계밖에는 만든 적이 없으니까

흐렸던 하늘은 이제 어느 새인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장마 기간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산을 준비해온 듯 다들 우산을 펴들 뿐 돌아가는 사람은 몇 없었다. 하얀 운동화에 비 때문에 질척해진 진흙이 달라붙어 더러워졌다.

나는 사무소에서부터 여전히 맨손이었기에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동생의 묘소가 있는 산은 나무가 우거진 편이라 비에 젖은 생쥐 같은 꼴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소에 비 오는 날 우산도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오는 소녀는 얼마 없는지, 시선이 조금씩 모인다. 게다가 지금은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다. 사무소 애들은 학교에서도 조금 편의를 봐주는 편이라 출석 체크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꽤 잦고, 나 같은 경우에는 그냥 안 나간다. 딱히 아이돌 일을 한다고 알린 것도 아니라 학교에서의 이미지는 처참하지만, 그딴 건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공동묘지 (오른쪽)]

 

5, 아니, 3분쯤 지나자 갈림길과 함께 표지판이 나왔다. 나와 같은 전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대게 오른쪽으로 향했지만, 동생의 묘지는 여기에 없다.

썩어도 준치라고 내가 소학교 고학년이 되자마자 그 땅값 비싸다는 도쿄에 따로 집을 구해 줄 정도로 부유한 집이다. 부모는 동생이 죽고 나서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이 근방의 토지를 사들여서 거기에 동생만의 무덤을 만들었다.

갈림길에 들어서자마자 사유지라는 표시와 함께 접근 금지 팻말도 함께 붙어 있다. 딱히 막아놓지는 않았지만, 근처에 인가도 없을뿐더러 여기까지 오는 호기심 많은 어린애들은 주변 어른들에 막혀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동생이 죽은 이후 매달 찾아오는 장소지만 여태까지 부모와 마주친 적은 없었다.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편이니 이렇게 날짜가 안 겹치는 것을 보면 그냥 운명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도 아니면 저쪽에서 거의 찾아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부모는 우리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렇게 사랑해주지는 않았다. 나와 동생은 방과 후 언제나 집에 혼자 남아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은 내가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동생은 내가 불러주는 노래를 사랑했다. 평생동안 자기를 위해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할 만큼 말이다. 그 때는 그저 웃어넘겼지만, 지금 나는 정말 그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하고 있다.

끼니는 대부분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지만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어머니가 해주는 밥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우리는 늘 저녁 8시만 되면 배달음식 하나를 주문해 탁자 앞에 놓고 소파에 앉아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어린이 만화영화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가지고 싶은 게 생기거나 유치원에서 뭔가를 가져오라고 할 땐 부모가 넉넉하게 채워 둔 용돈 카드로 샀다. 으레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동생과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마다 사 들고 들어왔지만 다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주 아주 가끔 간단한 요리를 시도해보면서 주방을 엉망으로 어지럽힌 적도 있었다.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된 주방을 보며 어머니는 아연실색한 채 우리를 혼내지도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었다.

 

[키사라기 유우]

 

발걸음이 점점 멎는 것에 맞추어 상념을 지워낸다. 나는 또다시 동생의 앞에 섰다.

이미 죽은 채 고깃덩어리가 되어 썩어 들어가고 있을 어린 동생을 마주할 때마다, 이제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 사실이 혐오스러우면서도 다행스러웠다.

 

누나.

-… ?

누나는 어른이 되고 싶어?

, 글쎄

 

나는 경건한 신을 맞이하는 신자처럼, 그러나 또한 막역한 친우를 마주하는 이처럼 유우의 시신이 묻힌 곳 바로 앞에 서 무릎을 꿇었다.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다섯의 봄, 유우가 한 말처럼, 유우는 다시는 어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유우에게는 행복일지도, 혹은 불행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내 손으로 유우의 가능성을 산산이 부숴버렸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

 

 

 

휴대폰에 남겨진 짧은 메세지를 읽은 하루카는 비가 세차게 내리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동생의 일이 커다란 스캔들이 되어 메스컴에 퍼진 치하야는 스스로 목을 메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굴러 들어올 황금빛 미래를 포기하고, 자신의 파멸을 대가로 시간을 돌렸다.

시간을 되감은 건 죽은 치하야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만 죄책감에서 벗어나 행복해졌으면 했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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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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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수줍음이 많고 사교성이 없는 해미에게 친구란 자기와는 영 동떨어진 종류의 세상이었다. 적어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내훈과 만날 때까지 기억 속에서 해미는 늘 혼자였다.

산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해미가 살던 작은 동네에는, 평범한 동네에 자주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 아니라 진짜 산이 있었다. 놀이터의 나무 기둥 뒤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만을 지켜 보았지만 산에서는 달랐다.

시원한 공기. 맨발 사이를 간질이는 푸른 잔디와 온갖 작은 동물들은 해미만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해미는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는 외진 곳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당연하게도 해미는 산속 지리를 훤히 알고 있었다.

어디에 빠지기 쉬운 구덩이가 있는지, 어디로 가면 뱀 같이 위험한 동물들이 나오는지, 어느 길이 더 평평하고 걷기 좋은지, 어떤 곳에서 사슴 같은 산짐승들이 많이 몰려 있는지를, 어린 해미는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초반에는 무서웠던 산길도 무섭지 않았다. 유자는 자신이 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고, 더 이상 앞을 자세히 살피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니까.

 

“아…”

 

그러나 주의하지 않는 어린 아이에게, 산속은 그리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애초에 해미가 그렇게 조심성 많고 신중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일어났을 것이다.

생각보다 깊은 구멍에 빠졌다. 코 안을 파고드는 흙냄새가 짙었다. 150센티미터는 될 것 같은 구덩이는 겨우 여섯 살 어린아이가 스스로 빠져 나오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아직 마르지 않은 땅 안쪽이 질척거리며 신발에 엉겨붙었다. 벽에 손을 짚어 보았지만 진흙만 묻어나올 뿐 지탱할 만한 돌이나 나무뿌리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적한 산속은 수줍은 해미에게 좋은 놀이터였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줄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단 한 명도.

아직은 해가 떠 있었지만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다. 숲의 밤은 평지보다 더 일찍 찾아온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 한 시간 후 즈음에는 완전히 깜깜해 질 것이다. 다가올 어둠에 해미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츠렸다.

 

‘설마 이대로 아무도 오지 않는 걸까?’

 

적어도 그러지 않을 확률보단 높았다. 원래부터 사람이 없는 산인데, 해미는 지금 등산로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조난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그 누가 저녁 시간에 여기로 오겠는가. 그리고 이 산은 조난당하기에는 턱없이 낮았다. -뭣보다 진짜 조난객이 오면 그것대로 큰 문제가 아닌가.

… 무섭다. 정말로, 너무 무서웠다. 만약 서너 살만 더 나이가 많았다면 발돋움으로 금세 빠져나갔을 구덩이에서, 해미는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흐려졌다.

 

“우와! 여기에도 내 또래가 있었구나!”

 

그때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는 정의의 용사나 다름없었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안도감에 눈물이 비져나왔다.

 

“어, 어? 왜 울고 있는 거야? 혹시 어디 아파?”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 또래의 아주 어린 아이였다. 남자애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아이가 해미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방울에 크게 당황하며 허우적댔다. 그 모습이 퍽이나 우스워, 해미는 씩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실수로 구덩이에 빠져버렸어요. 혹시 끌어올려 줄 수 있나요?”

“응, 아! 물론이지!”

 

아이는 고개를 파닥파닥 끄덕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곧 길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가지는 별로 튼튼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해미를 지탱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부분 하나 없이 미끄러운 구덩이의 벽면을 밟고 올라가기는 꽤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있는 힘껏 끌어당겨 준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었다.

 

“어쩌다가 여기에 온 거야? 사람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그, 놀다가-“

 

해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는 이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장난감 쌍안경을 매만지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디 살아? 데려다 줄게.”

“아… 저, 괜찮아요. 전…”

“안 돼. 방금 전처럼 또 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여기는 뱀도 나온단 말이야.”

 

짐짓 엄한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해미는 우물쭈물하며 기억하는 집 주소를 읊었다. 아이는 그걸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미가 놀라지 않도록 부드럽게 한 쪽 손을 꼭 잡았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 또래 남자아이와 손을 잡아 본 적 없던 해미는 그에도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손을 놓고 싶었지만 아이는 기어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에 땀이 차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기가 진짜 너네 집이야?”

“네.”

“집 진짜 크다! 부러워!”

 

으리으리한 전통 가옥에 우와아 입을 벌리고 감탄하던 아이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미련이 뚝뚝 남은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잠시만요!”

 

불러놓고도 해미는 아차했다. 불러서 도대체 뭘 어쩌려고 부른 건지. 커다란 눈동자에 담긴 은근한 기대감에 살짝 주춤한 해미는 곧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저기… 나중에 놀러와 주지 않을래요?”

“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곧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내일 보자!”

 

그리고는 등을 돌려 이번에는 신나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골목 너머로 사라지는 작은 등을 바라보던 해미는 슬쩍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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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화가 라시현의 눈물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라시현이라는 인간은 여태껏 마음 여리고 바보같이 착했던 오정화조차도 인정할 만큼 냉정했다. 찌르지도 않은 선임을 날려버렸다는 죄목으로 기수열외가 된 지도 거의 1년이 다 지나가는 만큼 슬슬 포기하려던 차였다. 사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게 남들 보기에는 도려 이상할 정도로 경멸받고 있었으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그날 밤의 그 일만 없었더라면 오정화는 결국 라시현이라는 존재를 영원히 마음 속에서 놓아버렸을 것이다. 설령 그러한다 해도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서서히 쌓여 온 혼자만의 애정은 마음에 작은 흠을 남기겠지만,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 흔적이니 시간에 의해 자연히 옅어지고 끝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중대에 67기의 신병 넷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내무반 안에서 홀로 동떨어진 채 가만히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것 밖에 허락받지 못하는 오정화는 하루의 반 이상을 오로지 그녀만을 바라보며 지냈다. 그렇기에 그녀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타 대원들과 달리 누구보다 그녀의 이상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상하다. 오정화는 눈을 깜빡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에도 생기 있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더 메마르고 지쳐 보였다. 행동이 느려졌고, 후임들을 괴롭히거나 책을 읽는 대신 기수열외인 자신처럼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연달아 저질러 중수에게 불려가 맞고 왔을 때도 그저 멍했다. 삶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공허한 그 모습은 마치 속이 밀랍으로 채워진 감정 없는 인형 같았다. 유일하게 이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은 맞선임인 설유라와 함께 있을 때 뿐이었지만, 그것조차 예전과는 달랐다.

 

거기다가, 종종 눈이 마주칠 때에는 예전처럼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대신 무언가 끔찍한 치부를 들킨 것마냥 시선을 피했다. 언뜻 스쳐지나간 표정은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

 

라시현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왜, 어째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백하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은 동기에게 잠시간의 원망을 품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리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죽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였다. 한 밤중에 신고도 하나 없이 일어나서 비척비척 내무반을 걸어나간 라시현을 몰래 뒤쫓은 것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위태롭게 걸어가던 라시현은 힘겹게 서의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모퉁이에서 털썩, 쓰러지듯 주저얹았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뒤적거렸지만 원하는 게 잡히지 않는지 점점 신경질적이 되어가더니 이내 담배갑을 잡고는 던져버렸다. 약간 열려 있던 사제 담배갑에서 비싼 담배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라시현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무릎을 구부린 채 고개를 묻었다. 이상하리만치 처연한 모양새였다. 오정화는 골목 귀퉁이에 선 채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곧이어 숨죽인 흐느낌이 들려왔다. 횡설수설, 뭔가를 토해내듯 하는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울어? 운다고? 그 라시현이, 울고 있다.

 

이유는 모른다. 애초에 알 리가 없다. 제대로된 대화조차 나눠 본 적 없는 동기였다. 동기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렇지만 확실히 같은 기수로 입대한 최고 엘리트. 그게 라시현이었는데.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낙옆을 밟았는지 조용한 자대 안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화들짝 놀란 라시현이 고개를 들었고, 이내 둘의 눈이 마주쳤다.

 

울음기가 가득한데다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라시현. 그리고 당황한 표정의, 그러나 멀쩡해 보이는 자신. 상황 없이 누가 보면 명백히 라시현 쪽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 너, 왜 따라왔어?"

 
정적 속 분위기를 깬 것은 약간 잠긴 라시현의 목소리였다. 오정화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동안 당해왔던 온갖 종류의 폭력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지만, 그래도 이상하리만치 용기가 들었다. 오정화는 한 발자국,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라시현에게로 다가갔다.

 
"오지마."

 

"-싫어. 나한테 명령하지 마."

 
떨리는 목소리었지만 확연한 의지가 담겨 있어, 이번에는 라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실 의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투가 어떻던, 어조가 어떻던, 지금 두 명의 뇌리에 박힌 것은 단 하나였다.

 

기수열외 오정화가 상경 라시현의 말을 거부했다.

 

아, 아, 어떻게 해야 할까. 괜히 말했나? 뒤늦은 후회와 공포에 오정화가 도망치려고 할 때쯤 라시현의 표정이 웃는 듯 우는 듯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에 몸이 굳었다.

 
"… 그래, 안 할게. 명령."

 
그러나 연이은 말에 둔탁한 통증이 골을 울렸다. 인간은 지나치게 충격적이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겪으면 순건적으로 뇌의 활동을 정지시킨다는 그것, 그 사건 이후로 다시 경험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라시현이 꼬리 내린 강아지마냥 가만히 있자 슬슬 용기가 생겨, 오정화는 그 앞에 라시현과 비슷한 자세로 쭈그려 앉았다. 꺼리는 마음과 호기심, 그리고 일말의 희망이 섞인 몸짓이었다.

 
"이상해."

 

"뭐가."

 

"시현이 너."

 
돌아오는 퉁명한 말투에 오정화는 라시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 곧은 시선에 일순간 흔들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난 언제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을 또라이 새끼잖아. 너한테는. 아니, 너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야. 그냥 다들 그렇게 보잖아. 그렇지?"

 

"-"

 

"나보고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어느날 깨 보니까 여기였단 말이야. 난 입대하려면 한참이나 남았었다고! 그런데 다들 날 싫어해.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대체 왜! 이럴 거면 그냥 그 상태가 나았어, 시발…!"

 

"시현아."

 

"그냥 죽어버렸이면 좋겠어. 아하하, 어차피 죽어봤자 좋아할 사람이 더 많을 거 아냐. 너한테도 좋을 거 아냐. 난 그런 인간인데. 하, 하하하…"

 

"그건 아니야!"

 
나, 난. 네가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어. 기묘한 확신이 담긴 그 말에 라시현은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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