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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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머물다 가는 이름이 있다 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양팔의 각도를 수평으로 맞추고 파란 것이 산들거리며 피어날 것 같은 나의 영은 음독하여 들것에 실려가고 박준의 영은 아침에 가만히 숨을 놓고 응급실에도 동명이인이 있겠지 어리고 맑아서 다른 세계의 영들은 가만히 죽는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종이 속으로 들어간다 도화지가 영의 허리를 삼켰고 영은 글자가 되어 납작하게 떠올랐다 나는 영을 읽었다 발음에 의식할수록 굵은 혀조차 아래에 꾹 눌어붙는다 영이 입었던 바지의 주머니에는 물이 찰랑이는 소리가 난다 온도를 알 수 없어 눈물인지 눈꽃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아마 금붕어가 담겨 있을 수도 영은 더는 말할 수 없어[…]

/ 2021-07-24
사랑하마
그렇게 어른이 될 우리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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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방에서 탄내가 올라온다. 나는 줄곧 이곳에서 다리를 꼰 채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쓴다. 안 그래도 질식할 것 같은 선풍기 바람을 옆에 두는데, 여름의 향인지 누가 담배를 피우는 것인지 코가 자주 텁텁하다. 냄새로부터 한층 민감해졌다. 비염은 많이 나았고 몸이 클수록 비강이 넓어져 그렇다고. 우린 자랄 때마다 피부가 너무 아프다. 찰흙 메꾸듯 불어 가는 몸집이, 문짝의 높이를 넘을까 봐 불안하다. 그리고 냄새는 거꾸로 쌓여만 간다. 나의 머리는 방바닥보다 천장에 가까우므로. 두통이 자주 일어나고 숨 쉬는 것을 잊으려고 한다. 아니 잊고 싶은 게 아닐까. 내 방의 창문을 무심히 열었다. 산소가 들어와[…]

그렇게 어른이 될 우리는
/ 2021-07-22
사랑하마
벗는 사람, 입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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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에서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수영도 배운 적이 있지만, 사실 탈의는 여전히 낯선 일련의 과정이었다. 몸을 드러낼 때마다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문득 느꼈다. 나의 왼쪽 허리에는 흉터가 있다. 한 번 크게 베인 것이 아니라 자잘한 직선들이 겹쳐있다, 누가 난도질한 것처럼. 살면서 이곳저곳 상처가 생겼고 반창고를 붙여도 간지러웠다. 발갛게 변한 부위를 애써 쓸어냈다. 손가락을 살짝 기울이고 손톱을 피부에 맞닿게 했다. 먹잇감이 죽어버린 걸 깨달은 고양이처럼 나는 상처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다. 완전히 방치했다. 피가 굳고 딱지가 올라와도 뜯지 않았다. 그렇다고 솜에 소독제를 묻히지도 않았다. 연고를 짜는 대신에 나는 수영복을[…]

벗는 사람, 입는 사람
/ 2021-07-19
사랑하마
동생의 순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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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 동안, 본 적 없는 동생 앞에서 수저를 놓는다 순대를 입에 넣어주고 맛있냐 묻고 싶은데 무릎 위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 다섯 통 물먹은 네 몸을 보며 혼잣말했다 베란다도 있는데 뭣하러 다리까지 간 거야 아파트 단지에서 물총놀이하는 애들 울리기 싫었나 아니면 내가 너의 허리를 붙들어맬까 봐 그랬나 하얀 운동화 신은 날엔 물길을 피해 걸었으면서 그 신발은 다리 밑으로 흐르며 눅눅해졌어 동네에서 국밥을 먹다가 우린 금방 체했지 오기가 나서 마주 앉아 팔씨름해도 뻔했던 승부 네 마지막 편지에서는 져주던 삶도 아름다웠다고 쓰러진 부모 대신 운동화를 닦고 말리며 나는 단 한 번도 널[…]

동생의 순대
/ 2021-07-08
사랑하마
하얀 얼굴 그리기 [1]

커튼이 바람에 밀려 창문 옆 책상을 삼켜버릴 때가 있었다. 자리 주인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몇 년 뒤에도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의 모서리는 둥글어졌다. 그렇다고 완벽한 원형의 모습은 아니었다. 곡선 끝에는 각각 다른 직선이 있어 우리가 흔히 엎드리던 책상의 모양이 되었다. 언덕을 네 번 넘으면 올해의 사진첩을 묻어두었던 곳에 도착할 것이었다. 우리 발에 묻은 먼지가 나무의 무늬를 따라 빙빙 돌았다. 세 번째 언덕을 걷던 나는 너에게 물었다. 사진을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그러기로 했다. 돌아온 우리는 맨손으로 책상에 뚫린 구멍을[…]

하얀 얼굴 그리기
/ 2021-07-03
사랑하마
칠월이 오늘도 우리에게 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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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 왔다 양팔을 내밀고 다녀야 하는 계절이라서 더위는 겉옷을 붙잡아 팔 부분을 서걱서걱 잘랐다 비린내 나는 온기가 손목에 묻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흉터만 고요히 앉아있었다 반창고를 한 움큼 챙기고 너덜거리는 옷을 바느질하고 계절은 점점 두꺼워져 갔다 매달린 채로 밧줄이 팽팽해지는 잡음 육교에서 도로와 줄다리기하다 들리는 경적 몸통이 불길에 묶여 멀어지는 유성우와 아파트에서 추락하던 몸이 궤도를 스치는 소리 간혹 여름의 중간에 서서 귓불을 접으면 쓰러진 매미의 울음과 함께 들리는 것들이었다 칠월을 대충 발음하면 춥다 귓속에 강한 발음이 침과 함께 들어왔다 침은 이미 숨을 끊어버린 사람의 것이라 서늘했다 아직도 꽃이 머무는가 보다 취준생이[…]

칠월이 오늘도 우리에게 왔다
/ 2021-07-01
사랑하마
눈발이 세 가지 방향으로 흩날리는데 [2]

사랑은 하나가 되어 겨울로 흘러갔다.   1. 삶은 바람처럼 고요히 엎드리고 얼어버린 바다의 내부에는 얕은 윤슬조차 묻지 않았다. 약한 몸으로 견디기에 턱없이 무겁고 감싸 안기에 허리가 두꺼웠다. 사람들은 심해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생겼다고 믿었다. 나도 그랬고 우리 엄마도 그랬다. 바닷물이 울컥 밀려오면 짠내가 요동치듯이, 우리는 늘 겹겹이 코에 올라선 피비린내에 익숙했다. 두 팔을 벌려도 스치는 것은 양수뿐이다. 부들대는 진동과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은 발끝까지 전이되었다. 열 달간 작은 단칸방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는다. 나는 살덩이가 하루하루 불어 가고 있었고, 미끄러운 촉감에 잠식되었다. 누군가의 심장 아래에 나의 심장이 덤으로 파생되었다는 우스꽝스러운[…]

눈발이 세 가지 방향으로 흩날리는데
/ 2021-06-30
사랑하마
봄이 자상을 핥을 때까지 [1]

봄날에 시를 쓰며 혓바닥에 붙은 솜털을 떼어낼 때마다 자상을 스스로 핥는 고양이가 된다 햇볕은 창틀을 꽉 쥐어 도통 놓아주질 않는데 작은 어미는 굳은살이 정갈히 피어난 손으로 내 이마의 열을 잰다 열감을 식히자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적이며 얼음을 찾는 어미, 나는 한 발짝 물러나 입을 가린다 어미는 마음껏 토해도 괜찮다는데 아니 엄마, 구역질은 그저 하는 것이지 내용물을 하나하나 만지는 게 아니에요 바닥에 들러붙은 소변의 시큼한 향 단정히 죽는 것을 포기하니 짧아지는 그림자 생애 숨 단칸방 모서리, 그 위에 웅크린다 한 줄 읽어달라고 한 줄만 더 읽어달라고 어미는 원고지를 주워 나의 손에 포개어준다[…]

봄이 자상을 핥을 때까지
/ 2021-06-20
사랑하마
당신의 지구는 평평한가?-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시속 1600km로 자전하는 구체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 구체는 시속 110,000km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그 태양계는 시속 880,000km로 움직이면서, 은하를 가로지르고. 그 은하는 시속 수백만 km로 우주를 누비지만 우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시겠죠. 실제로 우리가 있는 곳은, 거대한 플라네타리움이자 테라리엄이면서 사운드 스테이지 겸 할리우드의 야외 촬영지입니다. 여러분과 지금까지 살면서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죠.” -마크 서전트- 행성과 항성의 자전 및 공전이 없는 세상. 낭만적이게도 상식적인 지식을 선택한 사람과 평면 지구인은 각자 다른 땅에서 다른 물리적 현상을 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당신의 지구는 평평한가?-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
/ 2021-06-16
사랑하마
하나의 삶 위에 또 다른 삶을 포개어 본다 (종현 '하루의 끝 ', 이하이 '한숨') [1]

볶음밥을 먹기 위해 달걀을 깨는 것이 힘들 때도 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편의점에 겨우 들러 삼각김밥을 샀으나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지도 못한 채 다시 잠들고는 한다. 한 발짝 내민다는 것, 비록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사소한 일조차 내 등을 억눌렀다. 어쩌면 이 무게가 다른 사람에게도 붙어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우리는 기분 부전 장애라고 스스로 처방했다. 내가 아픈 게 정말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한편 더 쉽게 느껴지는 단어인 우울증으로, 언론과 에세이 작가들 그리고 평범한 우리들 사이에서 우울이 주로 언급되었다. 나는 눈을 뜨면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불쾌했다. 그 아침을 혐오하고 지워버리고[…]

하나의 삶 위에 또 다른 삶을 포개어 본다 (종현 '하루의 끝 ', 이하이 '한숨')
/ 202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