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마
사월은 앙상한 온기를 두드리고 [1]

※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폭력, 자살, 자해 등)

너는 도둑질조차 한 적이 없다. 길거리에서 싸움을 걸면 이마라도 붉게 익는다던데, 그러다 옷깃을 훔치면 조금이라도 달아오른다던데 눈이 오는 날에도 너는 두 손을 입에 가져다 놓았고 내뱉은 숨에는 근육처럼 뭉친 연기도 응결된 욕설도 없이 괜찮아 괜찮을 거야, 갈라진 입술을 손톱으로 긁는다. 뜯긴 딱지는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곧 있으면 사월이라고 말라버린 계절이 틀어둔 자장가 가운데에서 너는 보조개를 띠며 그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상반신이 불쑥 흔들린다고 했다. 나는 그건 병이라며 네 얼굴에 담긴 보조개를 토막 냈다. 한편으로 왼 가슴 아래 씨를 심어도 싹트지 않는다고 칭얼대는 버릇이 나의 고질병이었는데 물 주는 법과 거름을 덮어두는[…]

사월은 앙상한 온기를 두드리고
/ 2021-04-02
사랑하마
모래시계 [1]

모래시계에 호수를 만들자, 너는 칭얼거린다. 무너지는 삼십 초를 수천 번 뒤집어 하루를 채우고 유리관 속 오아시스에 둘러앉아 꽃샘추위를 피해. 천천히 물결에 포개진 두 얼굴 그림자가 쭉 기지개를 켜는 오후 해가 슬쩍 고개를 숙이는 각도 먼지는 날개를 달아 천장으로 솟아오르고 기침으로 목을 긁어내는 황사의 계절, 낮잠에 들면 눈꽃 타는 냄새가 바투 다가온다. 커피보단 자몽 에이드가 더 맛있는 카페 쇳독이 오른 동전을 수집하는 분수대, 너는 길거리의 그래피티를 흉내 냈고 나는 가파른 사막에 무덤처럼 섰다. 도시를 찾으려고 북극성을 검지로 누르는 것도 쓰러지는 언덕을 맨손으로 막아세우는 것도, 손 틈으로 삐져나오는 진득한 핏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모래시계
/ 2021-03-15
사랑하마
타투가 아닌 것도 피부에 새길 수 있을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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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위에 눌리곤 했다. 몸이 경직되어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했다. 울렁이는 두통 때문에 손으로 나의 머리를 움켜쥔다. 등 뒤에서 울리는 경적소리, 난 뒤돌아보았다. 핏줄이 돋은 살덩이가 한 움큼 잡힌다. 태반이었다. 마이크를 떨구어 울려 퍼지는 소음처럼 엄마의 울음은 날 휘감았다. 내가 태아로 돌아갔다니. 그렇다면 안락한 더위를 느껴야만 하는데. 붉은 그림자 사이를 헤매었다. 그저 누군가의 가슴 위에 조용히 귀를 포개고 싶었다. 난 겨우 몸부림치며 불쾌한 늦잠을 떨쳐냈다. 오른손으로 더듬어 핸드폰을 베개 아래에서 꺼낸다. 부스스하게 머리카락이 뻗힌 나의 모습을 화면에 비추었다. 눈곱도 제거하지 않은 자화상이 보였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지만 패턴을 풀고 다시 화면을 끄는 것을[…]

타투가 아닌 것도 피부에 새길 수 있을까
/ 2021-02-24
사랑하마
피멍 (퇴고) [1]

누가 누구는 흐르는 지구를 끌어다 쓴다 워터파크, 우리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 양손을 기도하듯 모아서 목에 욱여넣고는 주름을 누르고 뼈도 끊어 파도를 연주한다 차오른 기침이 기포가 되어 알알이 날아가면 한 뼘의 깊이 한 뼘보다 작은 발바닥 투명한 손을 쥐락펴락, 쥐어짜는 양수처럼 두터운 혀 위에 몸을 눕혀, 스며드는 캐러멜처럼 여린 심장으로 잃어버린 것을 잠시 되찾고 흰동가리는 눈꺼풀이 없어 불면증으로 죽는다던데 여린 피부마저 흩뿌려지고 동공이 녹아도 살점이 되어버린 지느러미를 움직여 죽음을 찾아가는 일 울컥 넘어가는 내 다리를 잡아빼지 않았더라면 난 뜬금없이 금붕어를 찾아 헤맸을 거야 땅으로 흐지부지 사는 사람은 바다를 모른다던데 자신을[…]

피멍 (퇴고)
/ 2021-02-21
사랑하마
피멍 [3]

누가 누구는 파아란 지구를 끌어다 쓴다. 기어가는 주름이 매끄러워 발가락으로 바닥을 끝없이 더듬어야 했다. 흐르는 살집은 꼬집을 수 없어도 주먹만한 입속에 가득 넣어 삼킬 순 있었다. 워터파크, 우리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 턱 위로 울컥울컥 드미는 피멍 나는 떨어지는 기포 대신 솟아오르고 시꺼먼 머리카락에도 그림자를 출렁 새긴다. 한 뼘의 깊이 한 뼘보다 작은 어린이 부어오른 손을 쥐락펴락, 다시 파고든 양수처럼 눈으로 핥을 수 있던, 소독약의 달달한 향처럼 잃어버린 것을 잠시 되찾는다. 눈꺼풀 없는 흰동가리는 수면 부족으로 배를 뒤집으면 여린 피부마저 흩뿌리고 둥그런 동공도 녹는다. 그럼에도 헤엄을 친다는 느낌으로 죽음을 찾아서[…]

피멍
/ 2021-02-16
사랑하마
서울 [1]

서울 토박이 104번 버스는 중년을 맞이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나는 뻘쭘하게 지갑을 뒤적이며 다른 카드를 꺼낸다. 두 사람이요. 내 뒤에 서있던 어느 커플. 너의 내부에서 숱하게 자라나는 승객의 메아리. 화장을 하는 옆 남자는 수전증이 있다. 그 옆의 여자는 코골이를 한다. 사거리의 비명, 자동문을 여닫는 울림, 야무진 아기 목소리, 혼란. 도심을 거꾸로 재생한다. 그녀는 코골이를 집어삼키고 비틀어진 허리를 편다. 그는 손을 띄엄띄엄 흔들며 구릿빛 피부를 어루만진다. 수 백 장의 영혼을 기르던 가로수가 앞으로 튀어나온다. 한 평짜리 각진 땅 위에서, 생명으로 타오르는 이파리.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신이 있다. 나무는 허리를 잘록하게 자르지 않으면 독이[…]

서울
/ 2021-02-07
사랑하마
소울 [2]

인간은 걷고 있다. 바윗길을 지나며 거친 발꿈치를 손질한다. 우리는 의자에 앉은 채로 일어선다. 영혼은 마비된 채로 발작한다. 오감은 포장된 도로 위에 눕는다. 단풍잎의 여로는 가을을 밟고 있습니다. 툭툭 불거진 나뭇가지에는 신록이 매달려 있었다. 알몸으로 태어난 너의 피부는 질기다. 꿈의 저편으로 뿌리내리는 태동을 끝이라 한다. 음악을 위해 살아간다고 했다. 가슴을 영혼이라 하자. 쿵쿵 땅을 억누르던 너를 기억합시다. 선선한 바람을 심장 구석으로 쓸어낸다. 한 뭉텅이 쓰러지는 아파트 그늘. 그 아래 공기가 있다. 공간은 시간을 지불한다. 우리는 매 순간을 바치며 살고 있다. 영혼이 걷는 순간 뇌는 기억의 형태를 어루만진다. 혈관으로 들어찬 몸은 항상[…]

소울
/ 2021-01-31
사랑하마
언니의 겨울은 나의 우주를 삼킨다 [3]

언니야, 우리 언니야. 몰아치는 삶의 끝까지 살아남아서, 내 눈동자의 뚜렷한 잔상을 기억해 줘. 찢어진 홍채는 나무의 등허리처럼 갈라졌고 옅은 실핏줄은 어색하게 뿌리를 내렸어. 거울에 반사된 나의 눈, 그 뒤편에서 손 시린 밤하늘을 봤거든. 수줍은 은하수는 별빛 무늬 스타킹을 신고 천억 개의 먼지를 달아놓은 치마를 흩뿌렸어. 그림자로 덧칠한 동공 위에서 무릎을 꿇었지. 유성우가 사뿐히 속눈썹에 앉으면 눈을 못 떠. 그야 매끄러운 물줄기로 얼굴을 씻은 뒤, 눈곱을 나 혼자서 떼는 일은 확실히 고되었지. 숫자도 배우기 전에 홀로 지구의 흰머리를 세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별을 안아주었고 언니는 겨울을 사랑했어, 거꾸로 피어난 안개꽃을 축복이라[…]

언니의 겨울은 나의 우주를 삼킨다
/ 2021-01-15
사랑하마
코드 블루 [1]

구부정한 주름이 넘실거리는 손바닥, 그대로 납작 엎드린 바다가 됩니다. 입술은 쌓아올린 손금을 밟고 올라서지요. 스무 알의 시퍼런 기포를 혀 위에 떨구니 낯설게 잦아드는 창밖의 소음. 파도 뒷면에는 그림자가 끈적하게 묻어있지만 그건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어둠은 한 뼘 길이의 조그만 물결 아래, 특히나 핏기 없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숨어있으니. 거무죽죽하게 변하는 발등을 보고 뒷걸음칩니다. 바닥이 뒤섞이고 주먹을 휘두르는 해일에 모래알이 튀어요. 서서히 금빛으로 물드는 시야 구토를 해도 나오지 않는 한 주먹의 기포 뭉텅이, 침식하는 고동소리에 왼 가슴이 조여옵니다. 홀로 느끼는 뱃멀미에 경련을 일으켜요. 온기 한 줄기 흐르지 않는 방바닥에 누워 끝없이[…]

코드 블루
/ 2020-12-24
사랑하마
죽기 전에 읽어보는 글 [1]

나는 우리 집 주변에 약국 7곳 정도가 있는 걸 알았다. 집 주변 마트의 모퉁이를 쭉 돌기만 해도 약국이 세 곳, 버스를 타고 두 블록을 건너가면 두 곳이 더 나온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약국이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그곳들에 왔다 갔다 하며 수면 유도제 60정, 타이레놀 8정을 구했다. 확실히 나는 버틸 수가 없었다. 현 선생님은 그 점을 꼬집으셨다. 당신이 나를 도와주는 이유는 나의 의지 덕분이었다. 난 입시미술을 계속할지 정하기는커녕 삶에 대한 선택도 포기하기로 했다. 딱히 죄송하지는 않았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까. 나는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수면 유도제들을 모아서 사진을 찍었다.[…]

죽기 전에 읽어보는 글
/ 202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