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마
죽기 전에 읽어보는 글 [1]

나는 우리 집 주변에 약국 7곳 정도가 있는 걸 알았다. 집 주변 마트의 모퉁이를 쭉 돌기만 해도 약국이 세 곳, 버스를 타고 두 블록을 건너가면 두 곳이 더 나온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약국이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그곳들에 왔다 갔다 하며 수면 유도제 60정, 타이레놀 8정을 구했다. 확실히 나는 버틸 수가 없었다. 현 선생님은 그 점을 꼬집으셨다. 당신이 나를 도와주는 이유는 나의 의지 덕분이었다. 난 입시미술을 계속할지 정하기는커녕 삶에 대한 선택도 포기하기로 했다. 딱히 죄송하지는 않았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까. 나는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수면 유도제들을 모아서 사진을 찍었다.[…]

죽기 전에 읽어보는 글
/ 2020-12-20
사랑하마
풍선껌 나눠주고 싶은 사람 [1]

1. 항상 잠들기 전에 풍선껌을 씹는다. 밤에는 생각이 많아지니까. 혓바닥 아래에는 청포도 맛 껌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입안에서 단물이 가득 스며들고 껌 뭉텅이는 앞구르기를 한다. 나는 공기를 살며시 불어넣었고, 풍선껌이 터지면 내 입술 주변은 끈적거린다. 접착제를 바른 듯이. 마치 턱에 붙어버린 풍선껌 조각처럼 나의 잔해도 누군가의 심장에 붙어있다. 특별한 정신질환을 겪게 될 때, 우유부단한 스스로에게 지칠 때. 나는 증오심에 매달린다.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부리를 뜯긴 새가 된다. 나 자신을 잃어버려 간단한 식사조차 하지 못한다. 짙은 어둠에 빠져 아침과 점심을 먹어야 할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얇은 다리는[…]

풍선껌 나눠주고 싶은 사람
/ 2020-12-15
사랑하마
목덜미에 핀 진달래 (퇴고) [1]

벌거숭이 나뭇가지 흔들리는 날에도 툭툭 불거진 검버섯은 우리 할머니 뒷목에 핀다. 낙엽이 쪼개져도 살아있는 꽃잎 자국이다. 여섯 살의 나는 할머니께 눌어붙은 점들을 까만 진달래라며 깔깔거렸다. 진달래, 진달래 울 할매, 부드러운 침묵 그는 주름이 넘쳐흐르는 얼굴을 들이밀어 머리숱이 별로 없는 내 정수리에 코를 포갠다. 짭짤한 멸치볶음 맛이 혀끝에 맺히고 설거지하며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뒤적이고 침식된 굳은살에는 하나의 바위가 서있다. 활짝 편 다섯 손가락처럼 할머니 품속에서는 나의 모든 감각이 허리를 펴고 앉는다. 삼 백일마다 오는 겨울에, 흰 머리카락 둥둥 띄어놓은 물살은 달리고 손주는 얼음으로 한 층 단단해진 거리를 달렸다. 여린 뺨에 한[…]

목덜미에 핀 진달래 (퇴고)
/ 2020-12-15
사랑하마
목덜미에 핀 진달래 [1]

첫눈이 흩어진다. 벌거숭이 나뭇가지 흔들리는 날에도 툭툭 불거진 검버섯은 우리 할머니 뒷목에 핀다. 낙엽이 쪼개져도 살아있는 꽃잎 자국이다. 여섯 살의 나는 할머니께 눌어붙은 점들을 까만 진달래라며 깔깔거렸다. 진달래, 진달래 울 할매, 부드러운 침묵 그는 주름이 넘쳐흐르는 얼굴을 들이밀어 머리숱이 별로 없는 내 정수리에 코를 포갠다. 짭짤한 멸치볶음 맛이 혀끝에 맺히고 설거지하며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뒤적이고 침식된 굳은살에는 하나의 바위가 서있다. 활짝 편 다섯 손가락처럼 할머니 품속에서는 나의 모든 감각이 허리를 펴고 앉는다. 삼 백일마다 오는 겨울에, 흰 머리카락 둥둥 띄어놓은 물살은 달리고 손주는 얼음으로 한 층 단단해진 거리를 달렸다. 지독한[…]

목덜미에 핀 진달래
/ 2020-12-13
사랑하마
수능 [1]

D-2 잘 있어, 수능이 끝나면 떠날 거야. 그러세요, 학생. 4만 7000원입니다. 기다란 표에 적힌 번호는 6자리 외국어도 응시하면 번호 7자리로 추가됩니다. 괜찮아요. 6자리면 충분합니다. 손에 잡힌 지폐는 빳빳하게 고개 쳐들고 골격이 무너질 듯한 두 어깨가 나란히 서서 무거운 얼굴을 받들고 있는 사진은 풀칠해 두었습니다. 4개의 서명은 파란 종이에 차곡차곡 올렸어요 제 연락처로 예비 소집 정보 좀 보내주세요. 마지막 문자는 소중히 다뤄야죠.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나갔지만, 재수학원비 날리고 기대에도 못 미치고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점괘 좀 보려고요. 어차피 꽝이겠지만. 옆에 서있는 재수생들은 하나 둘 스카이로 행진, 저는 갈 곳이 없어[…]

수능
/ 2020-12-01
사랑하마
우리는 필라멘트 위에서 걸음마를 떼는 거야 (퇴고) [1]

1. 화장실에서 하혈로 죽은 언니는 개밥바라기에 산다고 지식인들은 나를 속이더군요 상현 옆에 앉아 홍조 띤 별은 금성입니다 라고. 나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야. 어둑어둑한 동네 머리맡에 누운 점들은 전구입니다. 당신은 필라멘트에 집을 짓고 쉬어가는 것이죠. 또, 허리가 굽은 지평선과 휘어진 유성우의 꼬리는 둥그런 유리구의 굴절로 생기는 허상입니다. – 어찌 보면 지평선과 유성우도 크고 작은 전구이지요. 산소 없이도 부절히 꿈틀거리는 은하수 나는 아르곤 가스를 들이켭니다. 몸을 웅크린 햇살 언니는, 민들레의 솜털도 솔방울도 없이 메마른 절대온도서 옷 한 벌 없이도 살아간 지 스무 해 되었습니다. 수치스럽게 나는 햇빛마을에 살면서 햇살을 잊고 평생을[…]

우리는 필라멘트 위에서 걸음마를 떼는 거야 (퇴고)
/ 2020-11-30
사랑하마
우리는 필라멘트 위에서 걸음마를 떼는 거야 [6]

1. 화장실에서 하혈로 죽은 언니는 개밥바라기에 산다고 지식인들은 나를 속이더군요 상현 옆에 앉아 홍조 띤 별은 금성입니다 라고. 나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야. 어둑어둑한 동네 머리맡에 누운 점들은 전구이며 당신도 필라멘트에 집을 짓고 쉬어가는 겁니다. 허리가 굽은 지평선과 휘어진 유성우의 꼬리는 둥그런 유리구의 굴절로 생기는 허상입니다. – 어찌 보면 지평선과 유성우도 크고 작은 전구이지요. 산소 없이도 부절히 꿈틀거리는 은하수 나는 아르곤 가스를 들이켭니다. 낭만을 뒤집어쓴 지식인이 말하기를 몸을 웅크린 햇살 언니는, 민들레의 솜털도 솔방울도 없이 메마른 절대온도서 옷 한 벌 없이 살아간 지 스무 해 되었습니다. 수치스럽게 나는 햇빛마을에 살면서[…]

우리는 필라멘트 위에서 걸음마를 떼는 거야
/ 2020-11-24
사랑하마
살아가는 겸 휘파람도 불지요 [1]

계절 막바지에 흩뿌려진 비는 미움받습니다. 보드 블록에 박힌 소나기의 핏줄이 바싹 마르면 눈물 나게 시원한 하늘이 양치를 끝냅니다. 움츠려드는 공기 아래 그는 파아란 콧바람을 흥얼거립니다. 내복을 입어도 스며드는 영하의 벌 굳은 손바닥에 벌게진 주름이 깊게 파이고 네 개의 손 틈 사이로 드나드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초봄에 뱉어낸 부슬비 한 모금은 꽃봉오리를 시기하는데 초겨울에 매섭게 떨어진 양칫물은 누굴 시기합니까? 썩은 벚나무 잎, 감나무 잎 그리고 목련 잎, 또 다른 잎, 잎과 잎, 가진 것 없는…….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껑충 건너뛰던 웅덩이에는 한 뭉텅이 낙엽의 익사체들이 담겨있습니다. 저는 맨손으로 웅덩이 속에 두 손을[…]

살아가는 겸 휘파람도 불지요
/ 2020-11-23
사랑하마
마지막 산책 [1]

네 살부터 열네 살까지, 십 년 동안 저는 허름한 빌라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이사했지만 여전히 도보로 20분 정도되는 거리에 그 빌라가 서있습니다. 재수학원이 끝나면 가끔씩 과거의 흔적에 취해,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벗어나 산책을 합니다. 저에게 고향을 찾는 일이란 핏자국을 따라 걷는 일입니다. 예민한 인격이 살해당하는 순간, 퍼지는 피비린내는 오직 저만 기억합니다. 섬찟 몸서리를 치며 다시 죽임당할지 걱정하다가 뜬금없이 향수에 젖습니다. 저는 과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걷다가 가로등의 뿌연 빛 아래로 들어가서 숨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한발 내디딜 때마다 주홍 빛깔은 얕아지고 옛 것의 소음은 짙어집니다. 옆 도로에 차가 지나가며 과속[…]

마지막 산책
/ 2020-11-13
23 오류인가요? [0] 사랑하마 2020-11-13 Hit : 123 사랑하마 2020-11-13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