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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수상했다는 말에 후다닥 달려와서 몰래 응원해주다가 저도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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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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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의 꿈 〉

  조각난 손톱들이 책상 한 쪽에 모였다. 이빨로 자른 탓에 울퉁불퉁하게 잘린 손톱들은 손톱 주인의 성격이 이처럼 모난 성격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영어 모의고사 지문에 이런 내용이 나왔었다. 책상은, 사람을 표현한다고. 그렇다면 나의 책상은 모난 성격일까. 누군가 내 책상을 보고 평가해 준적은 없으나 나는 6000일치의 나를 평가하는 말을 들어보긴 했다. 착하다, 성격이 밝다, 에너지가 넘친다,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혹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이 정도의 말로 나를 가둬놓고는 나의 이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겉이 밝은 아이는 속도 밝을 거야. 쟤가 무슨 속이 까맣겠어. 나의 이면을 보려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도 이면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둥글다고 평가하는 나는 사실 조각난 손톱들처럼 성격이 모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내가 모난 성격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알아채려 하지도 않는다. 성격이 왜 모났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내 어린 시절을 핑계를 삼는다. 나의 기억이 닿는 어린 시절은 언제나 혼자였고, 부모님과 지낸 시간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내 기억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아 즐거운 추억들이 많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뭐 있었다고 한들 원래 사람은 내게 사랑을 준 사람보다 상처를 준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내 기억에 상처 낸 추억들만 그득그득 담아두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득한 추억들은 외로움이었고, 혼자 있어도 힘든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하는데, 어린 시절의 나, 어린이의 정단아는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모난 성격을 감추고 애써 둥근 척을 해야 했다.

  초등학교 때 반 친구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불렀던 ‘네모의 꿈’은 사실 내 주제곡이었다. 남몰래 정한 나의 주제곡. 네모의 꿈 가사를 보면 이런 가사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 그래, 어른들은 세상을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데 나만 홀로 네모로 살아가면 눈엣가시로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노래를 접한 건 초등학생 때였지만 내 어린 시절은 이미 이 노래를 겪고 왔는지 이 가사 그대로 실천하고 다녔다. 2년 전 설날에도 그랬다. 따끈한 전기장판 위에서 뒹굴 거리며 나는 핸드폰을, 어른들은 모여서 술이라던가 고기를 먹고 있었다. 갑자기 할머니께서 고기를 먹다 말고 주름이 가득 진 인중을 움직이며 말씀하셨다. “우리 단아, 어렸을 때 할머니랑 같이 살았던 거 기억 나?” 그 말에 속으로 나는 헛웃음을 쳤다. 그걸 잊을 수가 있을까.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곤 친구들이 빠르게 보내는 메시지들을 보며 낄낄거렸다.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건드려지는 건 사양이었다. “단아, 할머니 집에서 다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어?” 엄마와 아빠의 장난이 가득한 말투에 나는 그게 장난이라는 건 알았지만 기분은 딱히 좋지 않았다. 감옥에서 방금 나온 사람한테 다시 감옥에 들어가라고 하면 참도 웃으며 들어가겠다. 마구 비꼬고 싶었다. 내가 겪은 고통을, 엄마 아빠는 이해 못할 거면서. 속으로 원망하면서도 나는 동그란 원처럼 말했다. “왜, 나 또 두고 가게?” 내가 이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나,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말했다. 부드럽지만 뼈대 있는 말에 나조차도 놀랐지만 어른들은 나의 뼈대를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오히려 장난처럼 받아치는 내말을 듣곤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단아 그래도 씩씩하게 잘 있었어. 그치 단아 아빠?” 엄마의 말에 아빠는 술을 따르며 동조했다. 속이 깊었지. 아빠는 술을 먹기 직전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입에 술을 털어 넣었던 것 같다. 나 속이 깊었나. 속이, 깊었니? 묻고 싶었다. 너는 버림 받기 싫어서 좋은 척을 했던 거니, 속이 깊어서 엄마 아빠를 이해했던 거니. 그 때 6살이었으니 후자일 확률도 있겠다. 우리 집이 반 지하라는 사실, 또 아빠 어깨 너머 이야기들로 우리 집 형편이 마냥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날 버리지 않겠지. 그 생각이 엄마 아빠가 날 버릴까? 로 바뀐 건 내가 할머니 댁에 맡겨진 이후였으니 내게 할머니 댁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알 리가 없지.

  당시 6개월 동안 할머니와 지낸 게 내겐 큰 충격이었는지 나를 만나러 온 아빠에게 나는 ‘아저씨.’ 라고 불렀었다. 그 때의 나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미취학 아동이었지만 확실히 이것만은 기억난다. “아저씨, 여기 와서 커피 한 잔 드실래요?” 그 때나 지금이나 밝은 척하는 건 똑같았다. 그 때 아빠의 표정이 뭐였는지, 기억이 얼핏 나긴 하지만 왜곡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론 쓰디쓴 한약을 먹어도 쓴 표정을 짓지 않던 아빠가 쓴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나를 곧장 목욕탕으로 데려가 때를 벅벅 벗겨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위치한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잠시 놀았다고. 지금에서야 아빠가 말해줬는데, 촌년도 그런 촌년이 없었다고 한다. 머리는 산발에, 얼굴하고 옷은 꼬질꼬질 해선 삼촌이 간간이 가져다 준 과자를 먹고 있던 나를, 아빠는 촌년이라고 표현했다. 뭐, 인간이 습관을 기르는 데는 21일이면 충분하다는 데 6개월이면 변할 법도 했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 일로 아빠를, 또는 엄마를 상처 받게 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 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를 원망하고 있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나도 이기적이다. 성격이 모난 ‘정 단아’는 더 이기적이다. 나는 결국 나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던 거다. 나를 할머니 댁에 맡겨 놓은 엄마와 아빠 심정은 헤아리지 못했던, 그런 머저리였던 거다. 아빠가 소주를 3병 째 깠을 때, 할머니가 방 안에서 편지 하나를 들고 왔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아빠를 향해 썼던, 맞춤법도, 글씨 크기도 모두 내 맘대로인 엉망인 편지를. 엄마, 보고 싶어요. 그 글자를 썼던 과거의 내가 너무 안타까워서 나는 삐져나온 눈물을 남몰래 훔쳤다. 이 때까지만 해도 눈물이 분명 고여만 있었는데, 아빠가 말한 문장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엄마가, 나를 할머니 댁에 맡겨 놓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울었다는 것. 아빠도 역시 울었다는 것.아무렇지 않은 척,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 시킨 나는 끝까지 눈물을 보여주지 않았다. 눈물을 흘릴 자격이나 있나. 이기적이고 모난 성격을 가진 내가, 나만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터라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보지 못했으나 나는 엄마 아빠의 표정도 그리 밝지 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눈물 흘리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의 기억은, 나만 괴로운 게 아니라 … 엄마 아빠도 분명 괴로우셨을 테니까. 할머니 댁에서 다시 반 지하로 돌아와서도 혼자 집을 지켰을 때도, 또 다시 할머니 댁에 가서 한 달을 더 머물렀을 때도. 우리 세 가족은 괴로웠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힘듦을 표현하지도 않았고, 생색내지도 않았지만 우린 계속된 시련을 침묵 속에서 이겨가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뭐, 내가 어렸을 때 저렇게 지냈다고 동정을 바라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기는 있으며, 그 시기의 고통의 강도가 나만 세다는 건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생각이다. 밝아 보이는 친구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고, 그렇게 시련을 겪으며 우리는 모두 성장한다. 유명한 말 중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없으면 자식이 없는 것처럼, 실패를 하지 않으면 성공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의 과거가 실패라는 건 아니지만, 계속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될 것도 안 되지 않을까?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얽매이지 않는 ‘척’을 하라는 거다. 괜찮은 척하면 언젠가는 괜찮아진다는 말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둥근 척하는 네모라고 비난해도 좋다. 하지만 훗날 정말 둥글어 질지도 모르니까. 내가 나중에 정말 둥글어진다면 그 비난을 거두어주기만 해준다면 좋겠다. 둥근 척을 하며 살아가면 나도, 네모도 모난 부분이 마모되어 둥글어지지 않을까. 나와 네모의 공통점은 꿈을 꾼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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