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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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바로 시간이다. 누군가가 죽더라도 세상은 계속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나는 가까운 사람 두 명의 죽음을 접했다. 3월달에 외할아버지가 먼저 가시고 11월달에 친할머니가 그 뒤를 따라가셨다. 2018년의 나는 입시 스트레스에 찌들어간 중학교 3학년이었고 지난 시간들보다는 죽음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알았으며,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은 사람이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다는 것은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죽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지금 죽으면 나는 언제 다시 눈을 뜨게 될까. 등등의 생각 정도이다.

 

 

 3월 말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었다. 응급실에 가신지 딱 3주째 되던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중 가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본 사망진단서와 입원하셨던 외할아버지가 힘겹게 숨을 쉬고 계시던 기억으로 난 외할아버지가 폐암에 걸렸으며, 그로 인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재발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소식을 들은 날 바로 당일에는 예상 외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외할아버지가 남기신 유품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신 큰이모의 모습을 보아도 실감은 나지 않았었다.

 

 내가 비로소 죽음을 실감한 때는 외할아버지의 입관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었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었기에 어른들은 나를 친할아버지의 입관에 데려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그때는 죽음에 대한 인식도 뚜렷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면 어린 나이도 아닌데.) 한 마디로, 내가 시체를 처음 본 때가 외할아버지의 입관때였다는 소리이다. 평소에 추리 만화나 그런 걸 좋아해 그림으로 그려진 시체는 많이 봐온 편이지만, 나는 실제 시체를 마주한 순간에 바로 눈물을 흘렸다. 온 몸에, 특히 다리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외할아버지의 시체가 관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평소에도 많이 우는 편이었으나 그렇게까지 운 적은 처음이었다.

엄마와 외가쪽 친척들이 우는 모습도 그때 거의 처음 보았다. 항상 웃으시던 외삼촌도 외할아버지 시체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 난 그때 그 모습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내 코에 이상하게 느껴지던 입관실의 그 지독한 냄새도, 좁은 공간에서 모여 통곡하는 그 목소리들도, 온갖 종이들에 감싸지던 외할아버지의 시체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나는 울고 있던 어른들의 모습이 마음에 박혔다. 아무리 어른이라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눈물을 흘렸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좀 달랐다. 그 죽음의 소식을 처음 접한 곳도, 장례식장도, 입관의 방식도, 울고 있는 사람들도. 모든 것이 다 달랐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때는 11월 달이었다. 나는 그때 1달 앞둔 입시를 앞두고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실기준비에 몰입하고 있었다. 학교에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하시면서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빨리 가봐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아빠는 내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친구였고, 그 친구의 어머니는 우리 아빠의 어머니셨다. 나한테는 친할머니가 되는 격이었고 말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눈물이 나왔다. 학교에서 집가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흘릴 눈물을 다 흘려가며 걷고 계속 걸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탓에 장례식이 준비가 되질 않아 장례식장은 다음 날에 들어갔다. 입을 만한 검은색 옷이 없던 나는 교복을 입고 장례식을 치뤘다. 친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장례식장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장례식장과 방식이 좀 달랐다. 입관부터 그랬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때에는 이미 상복까지 다 입은 상태셨는데 친할머니의 장례식은 유족들이 보는 앞에서 사망할 때에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몸을 닦이고, 상복을 입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 것은 아니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뤘었다.

친할머니의 장례식은 제대로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입시가 한 달 남은 입시생이였으나 그 당시에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정말 얼마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향해야만 했다. 결국 그렇게 원하던 고등학교에는 합격을 했지만 이 시간들은 나에게 아직 응어리로 남아있다. 일종의 죄책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왜 나의 주변이 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사람이 죽지만 어째서 우리의 주위 중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든다. 죽음을 인지한 그 순간에는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그런 순간이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싫은 시간이 많다.

 

죽음은 시간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후일에 내가 죽더라도 지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은 흘러갈 테니까. 지금과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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