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야동이 아닙니다/추적 60분 12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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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촬영 때문에 국민의 반인 여성이 수도 없이 죽어 갔는데 이게 큰일이 아니고 뭐가 큰일입니까!
찍는 놈 잡고, 보는 놈 잡고, 올린 놈 잡고, 파는 놈 잡으라는데, 범죄자·가해자 잡으라는데! ……왜 우리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합니까! 자매님들 우리 울어도 혼자 울지 말고, 아파도 혼자 아프지 맙시다. 그리고 절대 죽지 맙시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추적 60분 시작 장면, 혜화역 3차 시위 삭발 퍼포먼스 참가자가 한 말)

A.불씨에서 불꽃까지

내가 밤에 자지 않고 이 추적 60분 본방송을 챙겨본 것은 내가 디지털성범죄와 여성인권, 혜화역 시위에 관심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본 방송은  그 어떤 영화나 책보다 내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방송 내내 소름이 돋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분노와 경악, 슬픔으로 방송을 다 보고 그 여파에 그날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디지털성범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고 구설수도 많았지만 이렇게 핫하게 떠오르는 것은 전무후무하다. 많은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해도 묵살당해왔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피해를 숨기며 혼자 고통을 삭여왔다. 불씨는 유투버 양예원 님의 폭로였다. 그녀는 비공개사진촬영회에서 원치 않은 사진을 찍어야 했고 그 사진은 유출되었다. 양예원 님이 유투버로서 유명해지고 그 사진은 더 활발하게 떠돌아다녔다. 양예원 님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와 일상을 걸고 용기를 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사진회의 관계자가 자살을 하면서, 양예원 님은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어째서 가해자의 자살에 동정심을 갖고 피해자를 살인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가해자는 억울하다는 유서를 썼지만 억울하기는커녕 동조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자들의 심리는 뻔하다. 피해자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지만,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비난받는 것이 자기 딴에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죽으면서까지도 양예원님과 피해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쑤셔박았다.

 

5월에 <판의 미로>감상을 쓰고 받은 피드백을 반영하여 다른 글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추적 60분을 보고 이왕 쓸 거 익명의 힘을 빌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눈물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추적 60분에는 다양한 피해사례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들을 중점으로 글을 썼다.

 

B.인간의 탈을 쓴 악마 BJ

 

초반부 한 여성의 피해사례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재미 삼아 아프리카 티비 BJ의 방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게임으로 술을 한두잔씩 마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BJ와 시청자들은 그녀에게 더 많은 술을 마시도록 강요했고 결국 그녀는 만취해버렸다. BJ는 그녀의 의사가 아닌 시청자들이 보내는 별풍선과 요구에 따라 만취해 약해진 피해자를 데리고 선정적인 방송을 했다. 후에 시청자가 녹화한 방송 영상은 일파만파로 퍼져 손쓸 수 없게 되었다. BJ는 짧은 방송정지 처분만이 내려졌을 뿐, 그는 수많은 돈을 벌었고 기간이 끝난 후로 그런 방송을 계속 찍었다. 그게 가장 손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제작진과 통화한 BJ는 자신이 계속 방송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고 그 뜻은 곧 자신이 심의를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름만 거창하지 생각보다 아주 소규모인데다가 무능하고 제 일을 다하지 않는다. 악마같은 BJ도 문제지만, 돈에 환장한 아프리카 티비나, 무능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죄인이다.

영상이 유출되면 그 영상은 수많은 음란물사이트로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긴다. 어쩌면 영상 속 여자가 이미 세상을 뜬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특히 텀블러, 유튜브 같은 해외 사이트는 근거지를 해외에 두고 있기 때문에 단속이 더욱 힘들다.

 

C.방황하는 칼날

 

한 피해자는 어느날 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창문에 핸드폰을 든 팔이 그녀를 찍고 있었다. 들킨 남자는 도주했고 여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CCTV에 범인이 찍히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블랙박스는 보셨어요?"라는 피해자의 물음에 경찰은 잠시 정적을 유지하다가 "저희가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네요."라며 말을 흐렸다고 한다. 피해자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경찰이 생각하지 못한다니. 나는 경찰들이 블랙박스를 생각하지 못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들에게 샤워 중 알몸이 찍힌 것은 뻔하고 중대하지 않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얼른 상황을 무마하고 철수하려는 태도로 읽혔다. 경찰의 이런 태도는 이례적이지 않다. 실제로 기차에서 자신을 몰래 찍던 남자를 신고한 피해자는 경찰서까지 가해자 남성과 같은 차에 타야만 했으며, 그에게도 미래가 있으니 선처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검사도 몰카를 찍는 나라에서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상식은 상식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몰카 가해자는 성별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다. 남성일 경우 가벼운 벌금형에서 집행유예, 무죄를 받기도 한다. 징역도 길어봤자 3년 이내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전국적으로 크게 공론화된다. 경찰은 신속하고 끝내주게 범인을 잡는다. 처벌도 징역 3년은 기본, 남성 가해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초범인 점, 반성하고 있는 점, 사진에 심한 노출이 없는 점 등등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감형된다. 피해자들은 남성 가해자를 선처하지 않으면 "순간적인 충동 못 이기고 한 실수인데 꼭 그렇게 한 사람을 매장시키고 미래를 막아야 속이 편하냐"는 소리를 듣는다. 이건 내가 인터넷 기사에서 실제로 본 무수한 댓글 중 하나이다.

 

D.돈에 미쳐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들

 

추적 60분에서는 아프리카 TV 관계자들을 만나고, 앞서 언급한 BJ와 통화하고, 아프리카 TV와 손을 잡은 디지털 장의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 당국 등 가해자이거나 책임을 가지고도 피해자와 거리가 먼 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돈에 눈먼 죄인이라는 것.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한 사람의 생명을 끊을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사람이 겪고 느끼고 이룩해온 수 년의 일생보다 자신의 돈이 더욱 소중하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몰카 공화국이 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TV는 애초에 '성인'코너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BJ는 건전한 방송을 했을 것이고,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경찰은 노력하는 중이라는 말만 거듭하며 해명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디지털성범죄는 인격살인이다.

 

E.슬픔에 공감하고 범죄의 악순환을 예방하기

 

추적 60분에 나오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가슴 아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후회하고 자책하며 슬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영상을 즐기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공포에 떤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하지만 사실은 가면을 쓰면서 살고 있다. 양예원 님도 그러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웃으면서 재밌는 방송을 해왔지만, 그녀는 몇 년의 밤동안 불안과 슬픔에서 벗어나오지 못했다. 양예원 님의 팬들도 폭로가 있기 전까지 양예원 님이 그런 고통을 겪었으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상(또는 사진)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상처도 완전히 지워질 수 없다. 피해자들이 아무리 자신의 상처를 가리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통증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많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고 심지어는 즐겨왔다. 이제 여성들과 피해자는 일어나 울부짖는다. 우리에게 아주 큰 임무가 생겼다. 그들의 상처는 어떻게 보드담아줘야 할까.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의 위치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넋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디지털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깨달음을 주어야 할까.

 

F.나는 당신의 야동이 아닙니다

 

중반부에서 제작진은 여성 참가자들에게 한 집의 인테리어를 보라고 말한다. 제작진은 사전에 집에 몰카를 설치해두었다. 참가자들은 인테리어가 예쁘네요, 같은 말을 한다. 그곳에 몰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한다. 시계, 안경, 전등, 볼펜 등.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고서는 찾기 힘들다. 몰카는 진화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가 몰카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절반 이상을 찾지 못했다. 만약 내 집이 누군가 살던 집이었더라면 몰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집마저 몰카 범죄의 손이 뻗혔다.

추적 60분의 후반부에서 전문가의 말과 나의 의견을 조합해 결론을 써보겠다. 야동은 남성들의 놀이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야동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없는 악인은 아니다. 그저 야동 속 여성이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이라기보다 이미지로 보이니 공감을 하기는커녕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날 다운받은 야동 속 여성이 낯익은 얼굴이라면? 내 엄마, 여자형제, 애인, 친구라면? 그때도 영상을 즐길 수 있을까? 사람이라기보다 이미지로 보이는 그녀들은 역시 누군가의 엄마이고, 여자형제이고, 애인이고, 친구이고, 소중한 사람이다.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라면? 내 일상이 몰래 찍히거나 사랑했던 사람에게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애인에게 보복하려고 유출된 영상 범죄)를 당한다면? 결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고 여성이다. 아무리 여성혐오가 만연하고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어도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좋다. 나는 좀더 쾌적하고 안전한 삶을 살고 싶다.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은 사회를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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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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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은 나와 병적인 우울증을 앓던 윤미는 병원에서 처음 만났다. 인조다리를 가진 남자와 수시로 자살시도를 하는 여자.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윤미는 입버릇처럼 어머니의 땅인 몽골이 지상낙원이었으며 죽을 때는 그곳에서 죽고 싶다고 했다. 그 꼴로 어딜 가나 비웃었지만, 우리의 연애가 마침표를 찍자마자 몽골로 떠났다. 그토록 진절머리를 냈던 윤미의 떡 진 머리, 거무칙칙한 얼굴색, 말라깽이 같은 몸도 그녀가 떠나자 아름다웠다고 느껴진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나도 몽골행 비행기에 탔다. 같이 한국으로 와 청혼을 하려고.

 

윤미는 몽골에서의 추억만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였다. 몽골의 쌍무지개와 별, 말고기의 맛, 델과 게르, 징키즈칸, 유목민들에 대해 말했다. 특히 내가 지겹다고 화를 내도 고비사막과 신기루에 대해서는 계속 말했다.

‘고비사막은 거대한 모래 운동장 같았어. 지평선 위로는 전부 하늘이었는데 그렇게 크고 파란 하늘은 처음이었어. 그리고 사막을 헤매다가 신기루를 봤는데, 죽은 몽골 여자가 나를 객사까지 이끌어줬어.’

신기루는 사막에서 보이는 허깨비. 오아시스나 망자의 형태를 하고 사람들을 홀린다. 신기루가 사람일 경우 망자의 마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린다는 말도 있었다. 내심 궁금했다. 사방이 모래뿐인, 동서남북조차 알 수 없는, 드넓은 사막에서 윤미의 신기루를 본다면 실제라 믿고 따라갈까. 아니면 신기루라는 것을 알지만 기대하고 갈까.

 

어쨌든 나는 윤미가 사막에 가지 않았길 바랐다. 윤미는 혼자 있으면 위험했다. 두 달 동안 수도 울란바토르와 한인 타운이 있는 수흐바타르, 유명한 관광지와 호텔들을 샅샅이 뒤졌다. 어떤 날에는 초원까지 가보기도 했다. 대사관에서도 윤미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는 차를 빌려 윤미가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고비사막의 객사에 갔다.

 

고비사막의 하늘은 윤미의 말대로 정말 파랗고 넓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공포였다. 나는 일부러 우리가 나눈 추억들을 떠올렸다. 떠오르는 거라고는 내 시답잖은 말들에 상처 입은 등이었다. 그 날 나는 왜인지 기분이 최악이었고, 윤미는 눈치 없이 또 사막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폭발했고 결국 크게 싸웠다. 가시 섞인 말들이 오갔고 유리가 깨졌다. 내 말이 심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윤미는 떠나거나 죽어서 현실을 도피하고자 할 뿐, 돌파할 의지는 없었다.

그때 차의 앞 타이어가 터졌다. 차는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걸어야만 했다. 눈앞에 모래바람이 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 몸이 자글거리는 모래에 긁혔다. 모래는 지옥의 사막에서 불어온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때 윤미가 나타났다. 윤미의 등 너머에는 객사가 있었다. 윤미는 나를 일으켰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재회의 기쁨에 눈물이 터졌다. 나는 윤미를 따라 객사로 걸어갔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줄줄이 늘어놓았다. 윤미는 왜 왔냐고 물었다.

“네가 없으니까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렸어…….”

윤미는 헤어질 때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 작은 것들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때 윤미가 나의 목소리로 말하더니 또 자신의 목소리로 말했다.

 

‘망할 몽골에 가려면 너 혼자 가서 돌아오지 마. 너 같은 정신병 환자랑 살기 질렸어. 또 징징거리면서 돌아오면 그때는 내쫓아버릴 거야.’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윤미가 사라졌다. 모래바람과 함께 증발하듯. 객사는 바위 덩어리 두 개에 불과했고 차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와있었다. 그때의 공포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사막에서 죽은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망자의 마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린다고. 그렇다면 너는 죽어 신기루가 되었나. 몽골에서 죽겠다는 꿈을 이룬 것인가. 얼마 안 가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게 윤미와의 마지막 기억. 나는 우연히 지나가던 아저씨들에 의해 구조되어 울란바토르로 돌아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길을 걷다가도 바람이 불면 뒤를 돌아본다. 신기루처럼 왔다가 신기루로 떠나간 나의 연인이 나타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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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자장가/판의 미로 감상/스포일러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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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자장가/영화 판의 미로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승리한 독재정권이 나라를 지배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받아들이지 않는 반군들은 숲속에 숨어 게릴라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 반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스페인 곳곳에 배치되었다.

 

여기 오필리아라는 한 소녀가 있다. 오필리아는 사춘기를 앞둔 소녀로, 동화를 좋아한다. 그녀의 엄마 카르멘은 비달 대위와 재혼하여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비달은 자식의 탄생을 직접 보고 싶어 만삭의 카르멘을 오게 한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낯선 환경. 있는 거라곤 자신을 싫어하는 무서운 아빠와 어두컴컴한 숲과 군인들 뿐. 그러나 오필리아는 숲에 있는 판의 미로에 들어가게 되고 판이라는 요정(비주얼만 보면 괴물)을 만나 자신이 지하세계의 공주 모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아나는 사람들의 말을 어기고 밖으로 나갔다가 햇빛에 죽어버렸다. 왕과 왕비는 모아나가 인간의 몸을 빌려서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오필리아는 공주의 자리를 되찾고 지하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숙제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오필리아는 우여곡절 끝에 그 숙제를 해결하고 지하세계로 돌아간다.

 

핵심적인 배경과 줄거리만 써놓으면 <판의 미로>는 마치 동화 판타지처럼 들린다. 유치한 어린이용 영화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절대 그렇지 않다. 판타지와 역사극을 섞은 영화로, 다소 잔인하고 징그러운 장면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특히 이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창백한 남자'라는 괴물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판타지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가 구분되어있다. 유명한 판타지 영화 <나니아 연대기>나 <해리포터>는 한 지점을 경계로, 현실에서 판타지세계로 넘어간다. 그러나 <판의 미로>는 현실과 판타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현실은 참혹하다. 특히 오필리아의 새아빠인 비달 대위는 만삭의 아내를 무리해서 오게 하는가 하면, 무표정하게 죄없는 농부를 유리병과 총으로 죽여버린다. 엄연히 딸인 오필리아에게 첫 만남부터 "악수는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하는 거란다"하며 왼손을 세게 움켜쥐는 장면은 그를 잘 설명해준다. 산통으로 고생하는 엄마는 오필리아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심지어 숲속에서 언제 반군이 쳐들어와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이러한 환경은 오필리아 같이 어리고 순진한 소녀가 견디기에는 너무 힘들다. 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끔찍한데 오필리아는 오죽했을까. 제일 가슴 아픈 것은 카르멘이 아이를 낳고 죽어버린 것이다. 그것에 더해 아내의 죽음에 무감각한 남편의 모습은 한숨만 나오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오필리아가 왜 지하세계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라이언킹처럼 그냥 내 운명이고 정체성이니까? 아니다. 오필리아가 지하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이 환경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주라니, 얼마나 완벽한가. 누구나 한번쯤은 동화같은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가령 백마탄 왕자라든지, 알고 보니 부잣집의 잃어버린 딸이었다든지 하는 상상들. 오필리아는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 판과 요정, 지하세계와 모아나는 오필리아의 상상이었다. 오필리아가 도피할 곳은 오직 상상 뿐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거의 없다. 판이 오필리아에게 직접 찾아오거나 엄마의 산통을 낫게 할 맨드라크를 주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보면 아리송하지만 뒷부분에 결정적인 장면이 나온다. 오필리아의 마지막 숙제는 순수한 피를 얻는 것이었다. 순수한 피가 있어야만 지하세계로 갈 수 있다. 오필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미로에 가지만, 차마 아기를 죽일 수 없다고, 차라리 공주의 권한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오필리아를 따라온 비달은 오필리아가 허공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본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오필리아의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게 모두 오필리아가 만들어낸 상상인지, 아니면 정말 공주였는지 논쟁이 분분하다. 바로 결말 부분에 있다.

비달은 아이를 뺏고 오필리아를 쏘아죽인다. 오필리아의 피는 지하세계를 여는 비석으로 떨어진다.

 

아이를 안고 미로를 나온 비달은 메르세데스와 반군들에게 포위당한다. 그제서야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비달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시계를 깨서 아들에게 자신이 죽은 시간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이 아이는 당신의 존재 따위도 모르고 자랄 거야."

그리고 총으로 쏴죽인다. 이 말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기지의 스파이이자 반군파인 메르세데스는 죽은 오필리아의 시체를 보고 울면서 가사 없는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 후 오필리아는 환한 빛과 함께 일어난다. 예쁜 공주님 옷을 입고 왕좌에 앉은 왕과 왕비를 만난다. 마지막 세번째 숙제는 희생이었다. 오필리아는 가장 어려운 숙제를 해낸 것이다. 수많은 백성들의 환호와 환영 속에서 오필리아는 공주의 자리를 되찾는다. 오필리아는 공주가 되었는지, 그냥 죽은 건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필리아가 자신이 진정 있어야 할 행복한 지하세계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오필리아는 자유로워졌고, 행복해졌다. 다만 그 자유와 행복이 현실에는 없었다는 점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바로 한국 배급사에 있다. 마치 포스터를 아동용 판타지 영화로 꾸며놓아서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까무러쳤다는 후문이 있다. 개봉 당시에는 2006년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가면 포스터만 보고 영화를 결정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 영화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라는 쓸데없이 판타지를 강조하는 부제를 지었다. 앞서 언급했듯 <판의 미로>는 전혀 아동용 영화가 아니다. 15금 영화이고, 미국에서는 19금 영화로 개봉했다. 판이 처음 나올 때 나는 놀랐다. 요정이라는 판의 비주얼은 괴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이 오필리아에게 소리를 지를 때는 나도 놀라서 움찔했다. 날개달린 작은 요정은 그나마 인간 모습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팅커벨 같은 모습은 아니다. 오필리아가 숙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괴물들이 있다. 하나는 구더기로 가득한 썩은 나무에서 사는 거대한 두꺼비인데, 두꺼비는 찐득찐득한 구토를 뱉어낸다. 그리고 '창백한 남자'는 정말 보면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이를 잡아먹는 그 괴물은 비달을 상징한다. 정말이지 오필리아를 쫓아오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이다. 이걸 보면 오필리아같이 어리고 순진한 아이가 이런 괴물을 직접 떠올렸을까…아리송하다. 잔인한 장면도 있다. 비달이 농부를 죽이는 장면, 반군을 고문하는 장면, 메르세데스가 비달의 입을 찢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잘 부각시킨다.

 

이 영화는 오필리아같이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위로이다. 아이들 뿐 아니라, 당시 강한 남성들에 의해 억압받은 여성들은 상징으로 나온다. 나무를 썩게 하는 두꺼비는 독재정권을 상징하고, 그 나무는 자궁의 모양을 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런 상징들을 통해 감독이 얼마나 상징을 잘 이용하고 세심하게 연출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판의 미로>를 4월에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판의 미로>를 보고 한동안은 영화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결코 쉬운 내용의 영화는 아니었고 그래서 인터넷의 리뷰와 해석을 다 찾아봤다. 이 글도 해석에서 따온 부분이 적지 않게 있다. 내가 오필리아의 슬픔에 공감하고 이 영화에 감탄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배경인 스페인 내전과 군부독재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배경을 일제시대 혹은 독재정권 시절로 한다 해도 어색함이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많은 아이들과 여성이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과거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수많은 오필리아들…….

 

나는 곧 어른이 된다. 어른은 자신만의 이득만을 좇을 게 아니라 미래세대의 안녕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평화로워보이지만 그 평화가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다. 나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위해 더 현명해질 것이다. 메르세데스와 같은 스파이였던 의사는 비달에게 말한다.

"복종을 위한 복종은 당신같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모르는 새에 복종을 위한 복종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수많은 오필리아들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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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의사

반듯하지만 잔머리로 헝클어진 올림머리, 하얀 의사 가운과 대조되는 빨간 렌즈, 190이 넘는 장신……

“와, ‘죽음의 천사’ 님, 정말…… 뭐랄까…… 겉은 냉혈한이지만 속은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상처투성이 의사 같아요! 뭘 해도 어울리시니, 역시 코스프레의 완성은 얼굴이군요.”

나는 진달래처럼 어여쁜 사진사 아가씨의 손등에 키스한다. 나는 코스프레계의 남신으로 불리는 ‘죽음의 천사’. 첫 창작 코스프레를 촬영하기 위해 동네 병원에 왔다.

 

좋은 인물 사진이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아우라를 느끼게 해야 한다.

나는 의대 출신의 유능한 의사에 빙의한다.

나는 아픈 과거가 있다. 초짜 시절, 자살기도를 한 환자가 죽었다. 뭐가 뭔지 모르고 머뭇거리다가 그만…….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환자가 죽은 것이다! 그는 죄책감의 형상을 한 유령으로 밤마다 나의 침대를 찾아온다……. 그 뒤로 나는 패쇄적이고 차가워졌다. 그리고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갑자기 큰 앰뷸런스 소리가 났다. 한 여자가 들것에 실린 채 응급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자살기도를 한 걸까? 손에 피가 흥건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웬 여자가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자고 말한다. 나는 이상한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의사예요. 제 천명을 방해하시는 겁니까?”

나는 응급실로 뛰어갔다. 역시나 자살기도를 한 환자이다. 일단 생명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이니 신속하게 뭐라도 해보아야 한다. 나는 심장재세동기를 환자의 가슴에 가져다댔다. 아, 전원이 꺼져있다. 지혈을 해야 하니 상처에 붕대를 감는다. 환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다. 내 가슴도 고통에 울부짖는다. 최후의 수단……MSY를 투여할 수밖에!

“간호사! MSY(M뭐든지 S살리는 Y약)를 가져와요! 지금 당장!”

간호사와 실습생들은 술렁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나는 선반에 있던 주사기를 꽂는다.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MSY일 것이다. 일단 찌르자. 용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투여한다. 간호사가 끼어들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초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위대한 의사니까! 나만이 해낼 수 있다!

 

자살이라니,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불행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의 민낯을, 여린 당신은 부정하고 싶었겠지.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 하지만 죽지는 말아줘.

환자가 점점 의식을 잃어간다! 안 돼! MSY로도 역부족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우리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매가 최고의 약이라고. 나는 환자의 뺨을 때린다.

“눈을 떠요!(철썩) 이렇게!(철썩) 죽으면!(철썩) 흐흐흐흑……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고요!(철썩) 당신은 세상에 유일한,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잖아요!(철썩) 아닐 것 같지만 의외로 세상은 아름다운 면이 아주 조금은 있기도 해요!(철썩)”

감동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아연실색한 간호사가 어딘가로 뛰어간다.

 

“당신 뭐야! 우리 병원 의사가 아닌 것 같은데? 끌어내!”

의사들이 나를 억지로 일으킨다. 이제야 환자를 보러온 주제에! 안 돼!……

그때 그녀가 의식을 되찾고 상체를 일으켰다. 응급실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볼에 핏방울이 맺힌 그녀가 나를 안는다.

“흐흑! 고마워요, 선생님. 나 사실 죽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더 고맙지, 당신의 영혼이 다시 세상에 발을 디뎠으니. 나는 경이로운 존재의 손등에 키스를 한다. 그리고 천사의 날갯짓처럼 유유히 빠져나간다.

집에 가자. 이런 날에는 잠만큼 좋은 게 없지. 나는 집에 도착해 편안한 잠이 든다. 오늘의 꿈자리는 부디 평안하길.

 

잠에서 깼다. 밤 열한 시, 기분이 이상하다. 낮에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 거 아니겠지. ……착잡한 마음에 TV를 킨다.

“속보입니다. 오늘 낮 수원의 병원에서 의사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남성이 환자에게 소독용 포르말린을 치사량 투여하고 폭행, 도주했습니다. 환자는 충격으로 깨어났지만, 15분 뒤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남성의 행방을 뒤쫓고 있습니다.”

포르말린이라니! 세상에 미친놈들이 많군.

……그 순간 TV에 나오는 병원 CCTV의 남자의 빨간 눈과 마주친다. 거울에 비친 의사 가운에 묻은 빨간 피가 눈에 들어온다. 핏자국이 묻은 내 얼굴도. 오늘 낮에 나는 뭘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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