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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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가 두 발로 선 순간 환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엄마는 바로 나에게 발레의 기본 발동작 두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포인. 발등을 쭉 펴서 발끝으로 서는 동작. 플렉스. 발끝을 몸쪽으로 젖히고 발근육에 힘을 주어 무릎 방향으로 당기는 동작. 돌이켜보면 내 모든 날들은 포인과 플렉스의 반복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끔씩 발에 긴장을 풀고 싶고, 구부정하게 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상했다. 숨 쉬듯 익숙했던 것들이 나를 억압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내 발을 꽁꽁 가두는 토슈즈와 나를 비추는 사면의 거울들이 지겹게 느껴지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이 마치 큰 법을 위배하고 있는 것처럼 심장에 무거운 돌 하나가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어느 봄날이었다. 붉은 노을이 산 너머로 져가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충실하고 우울하게 나를 따라왔다. 그때 마을버스 하나가 느리게 정거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창문을 쓸고 동시에 벚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버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내 발치에 나타난 큰 날개의 그림자. 날개를 펴고 비행하는 새의 형상이었다. 견고하고 우아하게 날개를 펄럭이는 게 분명 어딘가에서 날고 있는 듯 했다. 마치 까마귀처럼. 저 날갯짓이 자유로워 보여. 어째서인지 눈물이 차올랐다. 평생 발레를 하면서 새처럼 나는 연기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제처럼 연기를 하게 된대도, 진짜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새가 되고 싶었다. 새가 돼서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다. 허물을 내려놓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새의 비행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우연히 버스를 바라보았다.

창가 자리에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평범한 손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기형적으로 긴 손가락들이 춤추듯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손가락들이 새의 비행을 연출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손이 아닌 것 같아……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한창미. 남들보다 손가락이 1.5배는 더 길었을까. 열 살 때, 소풍을 가서 짝꿍이었던 창미의 긴 손가락과 닿아야 했을 때 나는 구겨진 종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창미의 엄지와 검지는 길이가 같았다. 친구들은 창미한테 온갖 별명을 붙여 놀렸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개구리였다. 창미가 학교 근처의 개구리가 살던 연못을 지나갈 때면 남자아이들은 개구리 흉내를 내며 깝죽거렸다. 나는 창미의 징그러운 손이 싫어 아무런 연루도 되고 싶지 않았다. 울음 대신 무표정으로 대하던 창미는 아이답지 않게 책을 끼고 다녔다.

눈이 마주쳤을까? 여전히 검고 투명한 눈이 창미가 확실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단풍이 붉게 물든 지금까지 이 장면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선명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자유롭게 날던 새와, 긴 손가락과, 눈이 마주쳐 투명하고 꼿꼿하게 얼어붙었던 나.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더운 땀에 젖어 줄기 같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클래식은 공기 중에서 물 타듯 흐르고 있다. 차가운 물을 들이켜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발레, 하늘을 갈망하는 새처럼 최대한 다리를 곧게 위로 뻗어 추는 춤이다. 누가 더 깃털처럼, 가볍게 날개 달린 새처럼 아름답게 춤추는가? 발레리나…… 발레리나. 입이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완성되는 예쁜 이름이다.

태몽부터 백조였던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발레를 추기로 운명 지어졌다. 엄마는 발레를 잘 하려면 사람보다는 새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6살에 발레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발레단에서 가장 잘 하는 건 나였다. 나를 경쟁자로 인식한 몇몇 친구들은 나를 싫어했다. 항상 앞에 서서 백조처럼, 항상 독무를 가졌던 나를 질투했다. 어떤 아이는 내가 맨 옆이나 뒤에 서는 기분을 모를 것이라며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엄마도. 어디에 껴있어도 발레만큼은 가장 잘 했다고 말했다. 외국 무용단에서 잠깐 활동했을 때도 돋보이는 건 엄마였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누릴 수 있었던 발레리나로서의 수명은 금방 끝나버렸다. 다리 부상과 겹쳐온 슬럼프 때문이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더 이상 백조를 연기할 수 없어 백스테이지로 뒤돌아서야 했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실기 1등을 해도, 대단하다는 대회에서 대상을 타와도, 한 번도 엄마는 나를 칭찬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하다는 듯. 아직 부족하다는 듯. 무대 위 똑같은 연기와 춤을 춰도 누구는 백조고 누구는 백조 흉내를 낸 오리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하얗다고 다 같지는 않다. 그냥 봐도 확실한 실력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에 오리에서 머무르고 싶지 않는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라도 백조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백조 중 가장 돋보이는 백조가 되는 길을 닦아주었다. 살면서 그 길만을 걸어왔고 한 번도 눈 돌린 적이 없었다.

백조라는 이름으로 양계장의 닭처럼 길러진 내가 무슨 결정이라는 걸 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하얀 칠을 한 닭이라는 것을. 비좁은 우리에서 제 시간에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존재 이유인 알을 기계적으로 생산해내고…….

나는 집에 와서까지 방을 개조해 사면이 거울인 연습실에서 몸 닳도록 연습하는데, 이게 몇 년 째인데, 한 번도 불평 한 마디 한 적 없었다. 음악이 흐르고 있다.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엄마가 끄기 전에는 음악도 춤도 끊을 수 없다.

아라베스크. 기교는 없지만 완벽한 균형을 요구하는, 기초이자 고난이도 동작이다. 그때 거울에 비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아라베스크를 성공해낼지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몸은 기우뚱했고 토슈즈 안에 갇혀있던 발가락이 접혔는지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흔들의자에 앉아 연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왼쪽 눈썹은 아래로 구부리고 오른쪽 입꼬리는 추켜올렸다. 엄마가 무언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짓는 엄마 특유의 표정이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노력했던 순간이 닥쳐온 것이었다. 엄마는 반쯤 벗겨진 내 토슈즈를 움켜잡았다.

“백연화, 너는 균형을 못 잡아. 항상 그 상태에 머물러있으면 너는 낙오자야.”

한심하긴, 하고 엄마는 유유히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사방의 거대한 거울들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만을 보여줬다. 우수에 찬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한 시간을 연습하고 터덜터덜 침실에 들어갔다. 창가에 강보처럼 하얀 달이 달무리에 기댄 채 둥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달을 향해 크고 검은 까마귀가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창미가 만들었던 그림자 새가 생명을 가졌다면 비슷한 모습일까.

 

검은 새가 나오는 꿈을 꿨다. 새는 산 건너편에서부터 날아와 내 머리 위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나는 새가 날갯짓할 때마다 일으키는 바람소리와 바람결을 따라 춤을 췄다. 발레가 아니라 질서 없이 몸을 흔드는 막춤이었다. 그리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덮쳐오는 미묘함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오늘 나는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근처 도서관에서 문학치료라는 것을 받게 된다. 내가 문학에 깊은 관심이 있는 것 같고, 분명 문학치료가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또래 아이들도 많이 신청하고 있다고. 엄마한테 걸릴까봐 신청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계속 생각나고 끌렸다. 뭔가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밤새 돌이켜보니 나는 수 년 동안 바쁘게 달려왔다. 작년 6월과 7월, 친구와 함께 학교에 딸린 상담센터에서 진행한 문학치료에서 새롭게 만난 문학이 나를 침체 상태에서 꺼내주었다. 후끈거리던 그 여름에 엄마 몰래 새벽 넘도록 책을 읽던 밤들을 기억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과자를 먹으며 선생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예비종이 울리면 15분 동안 마음의 소리들을 글로 쏟아냈다. 깊은 생각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구절들이 얼마나 나를 버티게 해주었는지. 언제부턴가 나는 깊은 곳에서 발레에 지쳤다는 소심한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그보다 나는 오늘 오전에 도서관에서 하는 그룹 문학치료에 엄마 몰래 신청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 아직 아침인데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저질러버리다니, 들키면 어쩌려고? 하지만 오랜만의 문학치료인데다가, 소수만 뽑는 거라 안 갈 수 없다. 여름방학에 전근 간 선생님께 말하지 못한 고민이 있다.

‘저는 발레에 지쳤고 방향을 못 잡고 있어요. 이건 잘못된 거죠?’

 

네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른으로 보였다. 초면인지 어색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구석진 뒷자리에 앉았다. 초조하게 있는데 창문 밖 나무에 까마귀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까마귀는 몸집만큼 큰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창문을 따라 직선으로 비행했다. 까마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아가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기다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의 주인은 역시 창미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를 보면 어떡하지? 뭐라고 말하지? 보지 말아줘. 근데 이대로 어물쩡하다가 한 마디도 못하고 헤어지면 어떡해? 그러면 후회할 거야. 하지만 창미는, 날 못 알아보고 있었다. 하긴 몇 년 전인데……청바지를 입은 중년의 선생님이 들어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원탁에 앉아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손에 집힌 시를 골라 읽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은 이런 시를 남겼다. 종이에 눈물방울이 떨어져 쭈글쭈글해졌다. 그동안 엄마가 한 흉기 같은 말들, 익숙하게 넘기려고 했지만 잘 빠지지 않는 날카로운 날이 가슴에 꽂혀있다. 그때 창미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안화초 다녔던 백연화?”

나는 맞다고 했다. 창미는 얼굴 가득 반가운 미소를 띄었고, 나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지겹도록 벚꽃이 만발하던 그 봄날에, 그림자 새를 만들어 보여줬던 창미다. 비록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손가락이 징그럽다고 놀렸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그림자 새를 타고 일출을 가르는 상상을 했다. 창미가 내 옆에 앉아있다니.

우리는 읽은 시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열여섯 살 백연화이다로 시작한 글을 멈추지 않고 써내려갔다. 발레, 백조, 닭, 아무리 노력해도 날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와 폭언, 어쩌면 평생 꼭두각시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근원 모를 억울함…….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다른 내가 눈을 떴다.

호기심에 곁눈질로 창미의 글을 봤다. 창미는 아직도 오랫동안 자기를 괴롭혀왔던 개구리라는 별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항상 내려다보는 눈으로 아이들의 말에 상대하지 않길래 당당한 줄 알았는데. 창미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몰래 울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손을 향한 무수히 많은 평범한 손들의 손가락질을.

우리는 발을 맞춰 걸으며 문학치료에 대한 대화를 했다. 창미는 예전에 접했던 문학치료를 계기로 문학에 관심이 생겼었다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한 편 쯤은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창미의 긴 머리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버스 정류장까진 금방이었다. 함께 한 시간들이 짧아 아쉬워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다. 이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창미와 그림자 새를 봤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와 같이, 창미는 창가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집에 오고 나서도, 시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가 잊혀지지 않았다. 엄마의 안전한 그늘에 있는 게 맞을까? 기약 없는 시간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언제쯤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때 거실 구석 서랍장에 먼지가 앉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더러운 걸 싫어하는 엄마의 앙칼진 소리가 듣기 싫어 나는 물티슈를 가지고 서랍장으로 갔다. 서랍 안에는 앨범들이 빼곡이 줄 서 있었다. 나는 앨범들을 꺼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몰라볼 정도로 통통했다. 내가 어딜 가서 뭘 할 때마다 엄마는 사진을 찍어 앨범에 모아뒀었는데, 언제부턴가 그것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게 앨범을 다 보고 넣으려는데 밑바닥에 깔린 낡은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오래돼 끝부분이 낡아 쪼그라든 앨범이었다. 그것의 사진들은 어딘가 이상했다. 내가 아닌 엄마의 사진들이었다.

이십 여 년 전의 엄마는 발레단에서 제일 예뻤다. 하지만 표정은 소름끼치도록 어두웠다. 중심이 아닌 맨 뒤의 맨 끝에 있었다. 프랑스의 어느 발레단에서 활동한 적 있다고 했지만 그런 사진은 없었다. 딱 봐도 엄마의 아라베스크는 어색하고 힘들어 보였다. 외국은커녕 우리나라 발레단에서도 받아주고 싶지 않아할 것 같은 수준 이하의 자세였다. 사진 속 아마추어 같은 엄마의 발레 동작들을 몰라볼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여자는 분명 엄마였다. 내 롤모델이자 한 번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발레리나.

그간 나와 엄마를 비교하며 스스로 채찍질해왔는데.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엄마가 발레 하는 모습이나 영상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잘 했다고만 말했다. 허무했다. 정말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시간이 허무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앞서 존재하지 않던 사람에게 열등의식을 느끼던 내가 불쌍했다.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바를 잡고 있는 쓸쓸한 사진 한 장을 들고 안방으로 뛰어갔다. 더 이상 엄마는 변명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나는 엄마한테 사진을 냅다 내밀었다.

“왜 날 속였어요?”

엄마는 갑자기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눈을 떴다. 그러고는 왼쪽 눈썹을 아래로 구부리고 오른쪽 입술을 위로 추켜올렸다. 엄마는 시끄럽다며 그저 연습하러 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결국엔 의자에 있던 가방을 냅다 던졌다. 가방은 내 뺨에 정확히 던져졌다. 그때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눈물이 주룩주룩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콧물이 눈물과 섞이고 목이 텁텁하게 말라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하고 싶었는데, 웅얼거리는 발음 때문에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하려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꼭 너처럼 잘하는 애들은 몰라. 못 하는 아이들의 설움도, 존재감도. 너나 관객들은 몰라. 난 네가 영원히 모르길 바랐어. 그 뿐이야.”

처음으로 엄마가 나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진실 되지 못할까, 궁금했다. 엄마의 부르짖음을 뒤로 하고 집을 뛰쳐나와 나는 창미의 집 주소를 찾아갔다. 의지할 곳이 없었다.

 

창미는 토끼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눈물로 범벅된 내 얼굴은 아직도 허무함으로 가득 찼다. 알록달록한 창미의 집엔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려서 낯선 손님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진들, 왕년에 잘 나갔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나는 소음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 큰 대회에서 상을 타고 발레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온 날, 평소처럼 자려고 누웠다. 엄마는 흥얼거리며 거실에서 자줏빛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곧 내 방에 들어왔고, 나는 자는 척을 했다. 취침 시간을 어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이마에 다정하게 뽀뽀를 하고 속삭였다.

‘우리 연화, 너라도 잘 해서 기뻐. 엄마로서 너를 더 잘 키울게.’

엄마는 취했을 때 잠들어있는 내게 가끔씩 내가 축복이라고 말했다. 내가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정말 뛰어난 발레리나가 될 거라며 웃었다. 하지만 엄마가 맨 정신일 때, 내가 깨어있을 때 그런 칭찬은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와인을 꺼내는가 싶으면 저녁에도 방으로 뛰어가 이불을 덮고 엄마가 취하기만을 기다렸다. 기분 좋아서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다정한 목소리와 손길이 좋았으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오래 전부터 내 실력을 인정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엄마한테 지나치게 열등의식을 느낀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중심의 꽃을 꾸며주기 위해 장식된 안개꽃처럼 군무만 춘다는 것은 무용가로서 얼마나 큰 서러움일까. 나는 그런 슬픔을 잘 몰라 예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정말 서러울 거라고……내 발레단의 탈의실에서 매일 우는 아이가 그렇게 슬플 거라고……그 정도로 엄마가 말했던 ‘못하는 아이들’의 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 엄마는 뭘 하고 있을까. 가만히 앉아 책을 읽던 창미에게 다시 만나자고 하고 나왔다. 닫히는 문 틈 사이로 창미의 따뜻한 미소가 나를 더 빨리 달리게 만들었다.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삐끗하더니 철퍽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은 채로 수풀 사이 버스정류장 의자가 보였고, 익숙한 슬리퍼가 보였다. 엄마였다.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 앞에 섰다. 엄마는 늘 그렇듯 감정을 감춘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껴안으며 사과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피폐해 보이는 엄마를 일으켜 집 방향으로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걸었다. 오랜만에 보는 높은 하늘이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적막이 흐르는 집이었다. 엄마는 연습을 하라고도 하지 않았고 간단한 밥을 차려준 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방에서 책을 읽으려 했지만 도무지 글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방에서 나와 넓은 집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엄마 방 앞에 다다랐을 때,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엄마가 보였다. 한쪽 눈으로 본 주황색 스탠드 빛을 받은 엄마의 얼굴은 고뇌에 차보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몸을 웅크렸다. 나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서 방으로 갔다. 오늘은 그냥 일찍 자려고.

 

아침 열한 시가 지나도 엄마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에 다녀오겠다는 짤막한 쪽지만 남기고 집을 나왔다. 집에서 할 게 없었고, 무력하게 자고 있는 엄마를 계속 보고 싶지 않았다.

시험기간이 끝난 도서관은 한적했다. 읽을 소설을 고르려는데 건너편 책장에 유독 긴 손가락이 책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창미인가?

 

우리는 자판기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 벤치에 앉았다. 창미는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여유를 즐긴다고 했다. 직원들과도 인사하는 사이라고. 그리고 창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제 도서관에서 그랬듯, 가을바람이 또 불어왔다. 꽤 오랫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손이 시려와 무의식적으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바스락거리는 무언가가 잡혔다. 어제 주운 단풍잎이었다. 단풍잎의 잎맥이 마치 두꺼운 화장 뒤에 가려진 엄마의 옅은 주름 같았다. 어제 엄마는 단풍잎을 주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더럽다고 했을 텐데. 단풍색 같은 스탠드 빛을 받으며 생각하고 있을 엄마의 옆얼굴이 떠올랐다. 얇은 토슈즈를 그대로 신은 채 수많은 단풍잎을 밟으며 길을 걷는 어린 엄마를 떠올리자 마음 한켠이 시큰해져왔다.

그리고 나는 창미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엄마가 내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없는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게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었는지. 창미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별로 싫은 기색은 없었다. 다 말하고 보니 남의 암울한 가정사를 말해서 괜히 분위기마저 가라앉아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됐다. 하지만 슬픔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여야 하는 이 상황이 외로워 말하고 싶었다. 그런 후 창미는 톡톡 내 등을 다독여주었다.

 

도서관에서 창미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창미와 헤어졌을 때에는 초저녁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야광별을 세는데 똑똑 하고 누군가 노크를 했다. 엄마였다. 엄마는 말없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뒤를 따라갔다. 엄마의 방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엄마는 앨범들을 하나씩 꺼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몇 살 때, 뭘 해서 뭘 찍었는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사진 속 나는 대부분 발레복을 입고 있었고 여러 대회에서 수상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기도 했다. 내가 열두 살이 된 시점부터 엄마는 사진 모으기를 멈췄다. 왜냐면 내가 자신이 닦아준 길을 걸으며 발레를 계속 하리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설명해주다가 끝에 앨범을 덮었다. 그리고 이불 아래에 얼굴을 빼꼼 내민 종이가 보였다. 문학치료 시간에 쓰고 방에 아무렇게 던져두었던 글이었다. 엄마는 나의 속내를 읽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지금, 엄마가 입을 열었다. 눈을 마주친 채로 조용히 앉아서.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을 너는 누리길 바랐어. 그래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어. 이제야 알아. 재능과 명성을 누린다고 네가 행복한 건 아니었어.”

순간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울 것 같아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엄마의 미소를 계속 보고 싶어서.

 

창미는 큰 대회에서 소설을 쓰고 상을 탔다. 나도 발레 단원들과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모녀는 얼마나 여유 없이 살아왔는지. 종종 같은 책을 읽고 엄마와 느낀 점을 나눴다. 침대 아래에 숨어있던 책들은 당당하게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

이제야 엄마에게 엄마의 발레는 어떤 것인지 들을 수 있었다. 발레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엄마는 주인공 백조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의 재능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창미가 그랬듯 엄마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동안 엄마를 향해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강한 힘이 나를 밀어내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운 모녀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제 좁은 양계장을 벗어나 날개를 펼치고 광활한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다. 땅이 가르쳐준 하늘의 결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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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30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불공평하고 잔인하다. 1989년, 식물인간이 되어 아득한 어둠에서 30년을 보냈다.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기쁨이나 환희 따위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예상대로 며느리와 18살 손주는 난데없이 나타난 나를 모시기 싫다고 했다. 으리으리한 저택마저 좁다면서. 내가 가져온 연탄을 오래된 유물 보듯 했던 손주의 얼굴도 떠오른다.

나는 내가 살던 동네를, 사흘에 걸쳐 찾아냈다. 그 많던 밭, 그 푸르던 산은 어디 가고 큰 아파트가 하늘을 가린다. 느티나무 한 그루만이 나를 기억하고 있노라 말할 뿐이었다. 나는 지붕이 달린 평상 같은 것에 앉아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시간을 구경한다. 내가 가졌어야 할 중년의 시간은 부질없이 사라지고 노년이 되어버렸다.

“저기요, 할머니. 이곳 주민 아니시죠?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여기 울타리 넘어오시면 안 돼요. 추운데 얼른 돌아가세요.”

경비원과 한 여자가 나를 일으켰다. 앉기만 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따지려던 차, 건너편 아파트단지를 보았다. 허름하고 낮은 아파트였다. 덩치 큰 그들 앞에 나는 작은 난쟁이이자 가난하고 불순한 불청객이었다. 나는 젊음으로 빛나는 양지를 뛰쳐나와 필순이 사는 음지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한 마디도 못하고 나왔어?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해줬어야지.”

필순이 분을 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옥탑방에서 혼자 살던 필순은 치매 초기 판정을 받았음에도 나를 살갑게 챙겨주었다. 난방조차 잘 되지 않는 이 집에서, 나는 밤이 올 때까지 기억나는 옛 지인들과 연락을 시도했다. 그들은 젊어봤자 70살 안팎. 모두 연락두절이거나 이미 세상을 떴다. 장장 30년이니 나는 부모님과 오빠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나의 많은 시간은 송두리째 사라졌고 세계는 변화했다. 내가 가졌어야 할 시간, 사람들과 공유하고 누렸어야 했던 순간들이 찰나의 사고로 사라졌다. 잔인하다. 이제 슬픔이 가시고 남은 것은 허무 뿐이다.

“차라리 계속 잠들어있었더라면, 그러다 편하게 죽었더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내 목소리는 찌개 끓는 소리와 TV소리에 묻혔다. 그렇게 30년이라는 시간은 한국전쟁에서 잃은 내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거두어갔다.

자는 사이에 손끝이 축축해졌다. 일어나보니 필순의 흰 바지가 노랗게 젖어있었다. 잠깐이었지만 필순은 나를 몰라봤다. 그애를 씻기니 아침이 왔다. 이불을 가지러 가는데, 웬 남자가 서있었다. 필순의 아들이었다. 그는 무작정 화를 내며 필순의 어깨를 억세게 움켜잡았다.

“고집 부리지 마시고 요양원에 가세요. 정신병원에 보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필순이 며칠 내로 요양원에 가기로 했다. 네가 가면 나는? 너마저 가면 나는 어디에 있어?……. 하지만 내겐 발언권이 없었다. 그저 우는 친구를 달래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정신이 멀쩡할 때 못 다한 30년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애는 이야기 도중 동문서답을 하거나 하던 말을 잊어버렸다, 나를 엉뚱한 이름으로 부르고 눈치채지 못하기도 했다. 내가 지적하면 그랬느냐, 모르겠다고 답했다. 필순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시간여행의 끝은 결국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리라.

오후에는 근처 번화가가 시끄러워졌다. 큰 무대에 이상한 불빛, 북적북적한 사람들, 어린 광대들이 춤을 췄다. 필순은 저들이 가수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어떤 광대, 아니, 가수들은 속옷 마냥 남사스러운 옷을 입었다. 밤이 깊어가는데 환호를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조금은 방탕해보이는, 하지만 즐겁고 자유로운 젊음이었다. 어느새 공연이 끝나고 무대가 철수되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하늘에서 튀었다가 사라졌다. 오래 전 TV에서만 봤던, 내가 잠들기 전 88올림픽에서 하던 것이었다. 계속 보고 싶었지만 필순의 상태가 안 좋아보여 다시 돌아왔다. 필순의 아들이 미리 제 엄마를 데리러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만간 며느리를 만나서 아마 같이 살 계획을 짤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그러자 필순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나와 작별했다. 곧 나도 이 옥탑방에서 짐을 싸고 나와야한다.

사람들도 가고 필순이도 갔는데 나는? 내 생(生)과 희망마저 갔는데 나는 어디로 가?…….

어쩌면 답은 정해져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혼자가 되긴 싫다. 하지만 환영받지 못할 무리에 억지로 끼어있을 수도 없다. 나는 종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시간을 기다린 아들에게. 나같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보내달라고. 요양원이든 병원이든 나는 다시 잠들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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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그것 뿐이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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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봄이었다. 창문 너머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아빠가 화단에 벚꽃나무 묘목을 심었을 때가. 1m도 안 되던 그것이 아빠의 의도대로 2층 내 방 창문에 보이도록 자라 꽃을 활짝 피워냈다. 저렇게 자랄 때까지 몇 년을 침대에서 누워있었던 걸까. 그 따뜻한 분홍색이, 사랑스러운 모양새가,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흔들린다. 내 마음 속으로 벚꽃 한 송이가 날아와 곤히 너를 위해 꽃을 피웠노라고 속삭였다. 굳었던 내 다짐도 흔들린다. 살고 싶어졌다.

 

벚꽃, 그것 뿐이지만서도.

 

나는 취한 듯 벚꽃을 바라보았다. 이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대면 A가 병문안을 온다. 사고 이후 몇 년 동안 이렇게 찾아온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하늘을 향해 암벽을 오를 수 없다. 선수로서의 수명이 완전히 끝나버렸다. 무력해진 나의 곁에 남아있는 건 A와 가족들뿐이다. A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A는 평소처럼 내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하늘을 향해 걸었던 오른쪽 다리를 주물렀다. 나는 창문 너머 눈부신 벚꽃나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미처 보지 못했다고 했다.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왜 재활 관둔 거야?”

“돈도 많이 들고, 힘들고, 설령 해도 내가 예전만큼 다리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A의 표정이 어두웠다. 잠깐의 정적 뒤, 그가 바싹 마른 입술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극복 의지도, 조금의 생기도 없이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나한테 지쳤다며. 언제나 이별하는 날이 올 것을 예상했기에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나를 사랑해달라고, 찾아와서 위로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자 이기심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창문 너머에 있는 벚꽃나무의 떨어진 꽃송이 하나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빛나는 벚꽃나무를 향해 빛나는 A가 걸어가고 있었다. 거의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목발이 구석에 쓰러져있었다. A 말대로 나는 무기력하다. 벚꽃을 보기 전까지 나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 괜찮은 꽃을 살피던 A가 갑자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날, 환한 벚꽃나무 아래서 서글프게 우는 A라니. 다리만 아니었다면 달려가서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슬퍼하지 말라고, 네가 있어서 살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꽃송이를 주운 A가 창문에서 사라졌다. A는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도 바로 2층으로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A의 심정을 생각하니 다시 죽고 싶어졌다. 하지만 모두가 집에 있고, 무엇보다 벚꽃나무가 저렇게 잘 보이는 한낮에 죽을 순 없었다. 드디어 노크소리가 들렸다. 나름 숨겼겠지만 A의 목소리에는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묻어있었다. A가 따뜻한 손으로 차가운 내 손에 벚꽃을 쥐어주었다. 볼품없는 손에 환한 벚꽃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A는 벚꽃나무가 참 예쁘다며, 이제까지 본 나무 중 제일이라고 칭찬했다.

“있지, 난 네가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저 벚꽃나무처럼 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봐, 저렇게 예쁘잖아. 적어도 네가 피어있는 동안에는 너를 버려두지 마. 네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A는 아까 한 말에 대해 사과했다. 모진 말을 해야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대답 대신 그저 싱긋 웃었다. A는 최선을 다했다.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내가 저 벚꽃나무처럼 내 자리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린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하지만 창문 너머 벚꽃나무는 그럼에도 죽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A는 작별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정말 A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서 무언가 우르르 무너졌다. 창문에 다시 A가 나타났다. 난 드디어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일단은 걷는 것. 나는 목발이 있는 구석으로 기어가 안간힘을 써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그 다음은 밖에 나가는 것. 조심스럽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가구 배치가 바뀐 거실을 나서 문을 열었다. 햇빛이 살결에 닿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만질 수 있는 벚꽃나무는 방에서 맡지 못했던 향기도 났다. 그리고 또 다음은 내 진심을 보여주는 것. 나는 힘껏 A의 이름을 불렀다. A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지 않아.

“고마워. 나 앞으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게. 나를 버리지 않을게.”

A가 생긋 웃고 뒤돌아 걸었다. 나는 벚꽃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꽃 사이로 태양이 빛을 내고 있었다. 더 이상 암벽을 오를 순 없지만, 이 나무에 오르고 싶다. 봄에는 벚꽃과, 여름에는 푸른 잎사귀와, 가을에는 단풍과, 겨울에는 마른 가지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내 콧등에 꽃잎이 올라앉았다. 벚꽃이 또 다시 속삭였다. 너를 위해 꽃을 피웠노라. 나는 아주 오랜만에 웃었다.

 

벚꽃, 그것 뿐이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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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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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음에 굉장히 민감하다. 특히 사람 목소리에 민감하다.

내 모든 감각 중 가장 발달한 청각은 작은 속삭임도 선명하게 느낀다. 굳이 큰 소리가 나지 않아도 나를 거슬리게 하면 모두 소음이다. 소음에 노출되면 머리가 터질 것처럼 끓는다. 신경이 곤두서고 몸이 차가워진다. 무섭다기보다는 심하게 불쾌해진다. 정말 심할 때는 이 장소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들기도 한다. 한 마디로, 미칠 지경이다.

학교는? 최악이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고2까지 차분하지 못한 분위기와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물론 어른들에게 그것은 학교를 관둘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 역시도 친한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었고 대학교 때문에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용케 다니고 있다.

원래부터 이러진 않았다. 남들보다 청각이 발달하긴 했지만 이렇게 소음에 공격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아마 중1 때부터였을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소리 때문에 내가 피폐해지기 시작한 것은.

소외되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쉬는시간에 혼자 앉아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는 기분을. 당시 나는 혼자라는 사실만으로 너무 창피해서 계속 엎드려 자는 척했다. 엎드리면 잠이 오기는커녕 오히려 그 소리가 더 잘 들렸다. 각각의 무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왜 웃는지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

나는 평소처럼 자는 척을 했다. 얼른 수업이 시작되길, 아니면 다른 반 친구가 찾아오길 기다리면서 최대한 존재감을 죽이고 있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다음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내 이름은 더 자주 언급되었다. 들리지 않을 거리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웃으며 어떤 어조와 높낮이로 어떤 말을 했는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교실에만 열 명 가까운 아이들이 같은 시공간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듣고만 있었을 아이들까지 합하면 몇이 될지 모르겠다. 내 귀는 날카로운 욕과 상스러운 웃음소리로 더럽혀졌다.

그맘때쯤부터 주변의 소리에 과민하게 반응했다. 날 욕할 사람이 없어져도 그랬다. 갈수록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대화소리 그 자체가 듣기 싫었다. 어떻게든 소리를 덜 받아들이려고 한 모든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소리를 피해 조용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나서기 좋아하던 활발한 소녀는 점점 소극적이고 패쇄적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굳이 구석자리를 고집했고, 집에서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마저도 시끄러워지면 화장실로 피했다. 팝송을 그렇게 좋아했었지만 자연스럽게 잔잔한 클래식만 듣게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던 놀이동산이나 맛집, 번화가도 발길이 뜸해졌다. 가장 편안할 때는 모두가 잠든 밤,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였다.

일상에서 점점 사람들의 인기척이 사라질수록 나도 외로워졌다. 친구가 있었지만 더 많은 친구를 만들고 싶었고, 뛰어놀러 나가고 싶었고, 연애도 하고 싶었다. 중앙에 서고 싶었다.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 행복에 따라오는 소음과 스트레스, 주어지는 기대와 실망과 욕이 두려웠다. 내가 편하게 있을 곳은 오직 최소한의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파고들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문자 속에서 울리는 총성과 비명소리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방구석에서 세계 방방곡곡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참 묘한 일이었다. 나는 외국고전을 많이 읽었고, 대다수의 책 작가들은 이미 죽었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여전히 책 속에 살아있었다. 세계의 대단하다는 작가들을 따라한답시고 노트에 글을 조금씩 끄적였다. 의외로 재밌었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작가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글을 쓰는 것은 군중들 앞에 서지 않아도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소리가 아닌 문자를 해독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내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사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글을 통해 당신이 존재감 없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글쓰기는 독자와 작가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떨어져있어도 교감할 수 있다. 아직 멀었지만, 글을 쓰면서 점점 사교성과 활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나의 열망은 야마다 무네키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작품으로 방향성을 찾았다.

지금 나의 바람은, 얼른 대학에 합격하는 것. 왠만한 사람들처럼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등단을 하고 내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 그럼으로써 독자들과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다. 순전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나처럼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

글을 쓴다고 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네가 정의하는 문학은 뭐야?

그러면 나는 답할 것이다. 문학이란 내가 나를 아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자 타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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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야동이 아닙니다/추적 60분 12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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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촬영 때문에 국민의 반인 여성이 수도 없이 죽어 갔는데 이게 큰일이 아니고 뭐가 큰일입니까!
찍는 놈 잡고, 보는 놈 잡고, 올린 놈 잡고, 파는 놈 잡으라는데, 범죄자·가해자 잡으라는데! ……왜 우리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합니까! 자매님들 우리 울어도 혼자 울지 말고, 아파도 혼자 아프지 맙시다. 그리고 절대 죽지 맙시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추적 60분 시작 장면, 혜화역 3차 시위 삭발 퍼포먼스 참가자가 한 말)

A.불씨에서 불꽃까지

내가 밤에 자지 않고 이 추적 60분 본방송을 챙겨본 것은 내가 디지털성범죄와 여성인권, 혜화역 시위에 관심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본 방송은  그 어떤 영화나 책보다 내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방송 내내 소름이 돋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분노와 경악, 슬픔으로 방송을 다 보고 그 여파에 그날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디지털성범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고 구설수도 많았지만 이렇게 핫하게 떠오르는 것은 전무후무하다. 많은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해도 묵살당해왔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피해를 숨기며 혼자 고통을 삭여왔다. 불씨는 유투버 양예원 님의 폭로였다. 그녀는 비공개사진촬영회에서 원치 않은 사진을 찍어야 했고 그 사진은 유출되었다. 양예원 님이 유투버로서 유명해지고 그 사진은 더 활발하게 떠돌아다녔다. 양예원 님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와 일상을 걸고 용기를 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사진회의 관계자가 자살을 하면서, 양예원 님은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어째서 가해자의 자살에 동정심을 갖고 피해자를 살인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가해자는 억울하다는 유서를 썼지만 억울하기는커녕 동조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자들의 심리는 뻔하다. 피해자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지만,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비난받는 것이 자기 딴에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죽으면서까지도 양예원님과 피해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쑤셔박았다.

 

5월에 <판의 미로>감상을 쓰고 받은 피드백을 반영하여 다른 글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추적 60분을 보고 이왕 쓸 거 익명의 힘을 빌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눈물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추적 60분에는 다양한 피해사례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들을 중점으로 글을 썼다.

 

B.인간의 탈을 쓴 악마 BJ

 

초반부 한 여성의 피해사례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재미 삼아 아프리카 티비 BJ의 방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게임으로 술을 한두잔씩 마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BJ와 시청자들은 그녀에게 더 많은 술을 마시도록 강요했고 결국 그녀는 만취해버렸다. BJ는 그녀의 의사가 아닌 시청자들이 보내는 별풍선과 요구에 따라 만취해 약해진 피해자를 데리고 선정적인 방송을 했다. 후에 시청자가 녹화한 방송 영상은 일파만파로 퍼져 손쓸 수 없게 되었다. BJ는 짧은 방송정지 처분만이 내려졌을 뿐, 그는 수많은 돈을 벌었고 기간이 끝난 후로 그런 방송을 계속 찍었다. 그게 가장 손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제작진과 통화한 BJ는 자신이 계속 방송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고 그 뜻은 곧 자신이 심의를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름만 거창하지 생각보다 아주 소규모인데다가 무능하고 제 일을 다하지 않는다. 악마같은 BJ도 문제지만, 돈에 환장한 아프리카 티비나, 무능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죄인이다.

영상이 유출되면 그 영상은 수많은 음란물사이트로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긴다. 어쩌면 영상 속 여자가 이미 세상을 뜬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특히 텀블러, 유튜브 같은 해외 사이트는 근거지를 해외에 두고 있기 때문에 단속이 더욱 힘들다.

 

C.방황하는 칼날

 

한 피해자는 어느날 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창문에 핸드폰을 든 팔이 그녀를 찍고 있었다. 들킨 남자는 도주했고 여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CCTV에 범인이 찍히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블랙박스는 보셨어요?"라는 피해자의 물음에 경찰은 잠시 정적을 유지하다가 "저희가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네요."라며 말을 흐렸다고 한다. 피해자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경찰이 생각하지 못한다니. 나는 경찰들이 블랙박스를 생각하지 못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들에게 샤워 중 알몸이 찍힌 것은 뻔하고 중대하지 않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얼른 상황을 무마하고 철수하려는 태도로 읽혔다. 경찰의 이런 태도는 이례적이지 않다. 실제로 기차에서 자신을 몰래 찍던 남자를 신고한 피해자는 경찰서까지 가해자 남성과 같은 차에 타야만 했으며, 그에게도 미래가 있으니 선처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검사도 몰카를 찍는 나라에서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상식은 상식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몰카 가해자는 성별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다. 남성일 경우 가벼운 벌금형에서 집행유예, 무죄를 받기도 한다. 징역도 길어봤자 3년 이내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전국적으로 크게 공론화된다. 경찰은 신속하고 끝내주게 범인을 잡는다. 처벌도 징역 3년은 기본, 남성 가해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초범인 점, 반성하고 있는 점, 사진에 심한 노출이 없는 점 등등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감형된다. 피해자들은 남성 가해자를 선처하지 않으면 "순간적인 충동 못 이기고 한 실수인데 꼭 그렇게 한 사람을 매장시키고 미래를 막아야 속이 편하냐"는 소리를 듣는다. 이건 내가 인터넷 기사에서 실제로 본 무수한 댓글 중 하나이다.

 

D.돈에 미쳐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들

 

추적 60분에서는 아프리카 TV 관계자들을 만나고, 앞서 언급한 BJ와 통화하고, 아프리카 TV와 손을 잡은 디지털 장의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 당국 등 가해자이거나 책임을 가지고도 피해자와 거리가 먼 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돈에 눈먼 죄인이라는 것.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한 사람의 생명을 끊을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사람이 겪고 느끼고 이룩해온 수 년의 일생보다 자신의 돈이 더욱 소중하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몰카 공화국이 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TV는 애초에 '성인'코너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BJ는 건전한 방송을 했을 것이고,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경찰은 노력하는 중이라는 말만 거듭하며 해명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디지털성범죄는 인격살인이다.

 

E.슬픔에 공감하고 범죄의 악순환을 예방하기

 

추적 60분에 나오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가슴 아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후회하고 자책하며 슬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영상을 즐기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공포에 떤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하지만 사실은 가면을 쓰면서 살고 있다. 양예원 님도 그러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웃으면서 재밌는 방송을 해왔지만, 그녀는 몇 년의 밤동안 불안과 슬픔에서 벗어나오지 못했다. 양예원 님의 팬들도 폭로가 있기 전까지 양예원 님이 그런 고통을 겪었으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상(또는 사진)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상처도 완전히 지워질 수 없다. 피해자들이 아무리 자신의 상처를 가리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통증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많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고 심지어는 즐겨왔다. 이제 여성들과 피해자는 일어나 울부짖는다. 우리에게 아주 큰 임무가 생겼다. 그들의 상처는 어떻게 보드담아줘야 할까.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의 위치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넋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디지털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깨달음을 주어야 할까.

 

F.나는 당신의 야동이 아닙니다

 

중반부에서 제작진은 여성 참가자들에게 한 집의 인테리어를 보라고 말한다. 제작진은 사전에 집에 몰카를 설치해두었다. 참가자들은 인테리어가 예쁘네요, 같은 말을 한다. 그곳에 몰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한다. 시계, 안경, 전등, 볼펜 등.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고서는 찾기 힘들다. 몰카는 진화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가 몰카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절반 이상을 찾지 못했다. 만약 내 집이 누군가 살던 집이었더라면 몰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집마저 몰카 범죄의 손이 뻗혔다.

추적 60분의 후반부에서 전문가의 말과 나의 의견을 조합해 결론을 써보겠다. 야동은 남성들의 놀이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야동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없는 악인은 아니다. 그저 야동 속 여성이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이라기보다 이미지로 보이니 공감을 하기는커녕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날 다운받은 야동 속 여성이 낯익은 얼굴이라면? 내 엄마, 여자형제, 애인, 친구라면? 그때도 영상을 즐길 수 있을까? 사람이라기보다 이미지로 보이는 그녀들은 역시 누군가의 엄마이고, 여자형제이고, 애인이고, 친구이고, 소중한 사람이다.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라면? 내 일상이 몰래 찍히거나 사랑했던 사람에게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애인에게 보복하려고 유출된 영상 범죄)를 당한다면? 결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고 여성이다. 아무리 여성혐오가 만연하고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어도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좋다. 나는 좀더 쾌적하고 안전한 삶을 살고 싶다.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은 사회를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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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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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은 나와 병적인 우울증을 앓던 윤미는 병원에서 처음 만났다. 인조다리를 가진 남자와 수시로 자살시도를 하는 여자.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윤미는 입버릇처럼 어머니의 땅인 몽골이 지상낙원이었으며 죽을 때는 그곳에서 죽고 싶다고 했다. 그 꼴로 어딜 가나 비웃었지만, 우리의 연애가 마침표를 찍자마자 몽골로 떠났다. 그토록 진절머리를 냈던 윤미의 떡 진 머리, 거무칙칙한 얼굴색, 말라깽이 같은 몸도 그녀가 떠나자 아름다웠다고 느껴진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나도 몽골행 비행기에 탔다. 같이 한국으로 와 청혼을 하려고.

 

윤미는 몽골에서의 추억만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였다. 몽골의 쌍무지개와 별, 말고기의 맛, 델과 게르, 징키즈칸, 유목민들에 대해 말했다. 특히 내가 지겹다고 화를 내도 고비사막과 신기루에 대해서는 계속 말했다.

‘고비사막은 거대한 모래 운동장 같았어. 지평선 위로는 전부 하늘이었는데 그렇게 크고 파란 하늘은 처음이었어. 그리고 사막을 헤매다가 신기루를 봤는데, 죽은 몽골 여자가 나를 객사까지 이끌어줬어.’

신기루는 사막에서 보이는 허깨비. 오아시스나 망자의 형태를 하고 사람들을 홀린다. 신기루가 사람일 경우 망자의 마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린다는 말도 있었다. 내심 궁금했다. 사방이 모래뿐인, 동서남북조차 알 수 없는, 드넓은 사막에서 윤미의 신기루를 본다면 실제라 믿고 따라갈까. 아니면 신기루라는 것을 알지만 기대하고 갈까.

 

어쨌든 나는 윤미가 사막에 가지 않았길 바랐다. 윤미는 혼자 있으면 위험했다. 두 달 동안 수도 울란바토르와 한인 타운이 있는 수흐바타르, 유명한 관광지와 호텔들을 샅샅이 뒤졌다. 어떤 날에는 초원까지 가보기도 했다. 대사관에서도 윤미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는 차를 빌려 윤미가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고비사막의 객사에 갔다.

 

고비사막의 하늘은 윤미의 말대로 정말 파랗고 넓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공포였다. 나는 일부러 우리가 나눈 추억들을 떠올렸다. 떠오르는 거라고는 내 시답잖은 말들에 상처 입은 등이었다. 그 날 나는 왜인지 기분이 최악이었고, 윤미는 눈치 없이 또 사막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폭발했고 결국 크게 싸웠다. 가시 섞인 말들이 오갔고 유리가 깨졌다. 내 말이 심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윤미는 떠나거나 죽어서 현실을 도피하고자 할 뿐, 돌파할 의지는 없었다.

그때 차의 앞 타이어가 터졌다. 차는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걸어야만 했다. 눈앞에 모래바람이 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 몸이 자글거리는 모래에 긁혔다. 모래는 지옥의 사막에서 불어온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때 윤미가 나타났다. 윤미의 등 너머에는 객사가 있었다. 윤미는 나를 일으켰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재회의 기쁨에 눈물이 터졌다. 나는 윤미를 따라 객사로 걸어갔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줄줄이 늘어놓았다. 윤미는 왜 왔냐고 물었다.

“네가 없으니까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렸어…….”

윤미는 헤어질 때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 작은 것들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때 윤미가 나의 목소리로 말하더니 또 자신의 목소리로 말했다.

 

‘망할 몽골에 가려면 너 혼자 가서 돌아오지 마. 너 같은 정신병 환자랑 살기 질렸어. 또 징징거리면서 돌아오면 그때는 내쫓아버릴 거야.’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윤미가 사라졌다. 모래바람과 함께 증발하듯. 객사는 바위 덩어리 두 개에 불과했고 차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와있었다. 그때의 공포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사막에서 죽은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망자의 마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린다고. 그렇다면 너는 죽어 신기루가 되었나. 몽골에서 죽겠다는 꿈을 이룬 것인가. 얼마 안 가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게 윤미와의 마지막 기억. 나는 우연히 지나가던 아저씨들에 의해 구조되어 울란바토르로 돌아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길을 걷다가도 바람이 불면 뒤를 돌아본다. 신기루처럼 왔다가 신기루로 떠나간 나의 연인이 나타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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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자장가/판의 미로 감상/스포일러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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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자장가/영화 판의 미로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승리한 독재정권이 나라를 지배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받아들이지 않는 반군들은 숲속에 숨어 게릴라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 반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스페인 곳곳에 배치되었다.

 

여기 오필리아라는 한 소녀가 있다. 오필리아는 사춘기를 앞둔 소녀로, 동화를 좋아한다. 그녀의 엄마 카르멘은 비달 대위와 재혼하여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비달은 자식의 탄생을 직접 보고 싶어 만삭의 카르멘을 오게 한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낯선 환경. 있는 거라곤 자신을 싫어하는 무서운 아빠와 어두컴컴한 숲과 군인들 뿐. 그러나 오필리아는 숲에 있는 판의 미로에 들어가게 되고 판이라는 요정(비주얼만 보면 괴물)을 만나 자신이 지하세계의 공주 모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아나는 사람들의 말을 어기고 밖으로 나갔다가 햇빛에 죽어버렸다. 왕과 왕비는 모아나가 인간의 몸을 빌려서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오필리아는 공주의 자리를 되찾고 지하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숙제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오필리아는 우여곡절 끝에 그 숙제를 해결하고 지하세계로 돌아간다.

 

핵심적인 배경과 줄거리만 써놓으면 <판의 미로>는 마치 동화 판타지처럼 들린다. 유치한 어린이용 영화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절대 그렇지 않다. 판타지와 역사극을 섞은 영화로, 다소 잔인하고 징그러운 장면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특히 이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창백한 남자'라는 괴물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판타지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가 구분되어있다. 유명한 판타지 영화 <나니아 연대기>나 <해리포터>는 한 지점을 경계로, 현실에서 판타지세계로 넘어간다. 그러나 <판의 미로>는 현실과 판타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현실은 참혹하다. 특히 오필리아의 새아빠인 비달 대위는 만삭의 아내를 무리해서 오게 하는가 하면, 무표정하게 죄없는 농부를 유리병과 총으로 죽여버린다. 엄연히 딸인 오필리아에게 첫 만남부터 "악수는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하는 거란다"하며 왼손을 세게 움켜쥐는 장면은 그를 잘 설명해준다. 산통으로 고생하는 엄마는 오필리아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심지어 숲속에서 언제 반군이 쳐들어와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이러한 환경은 오필리아 같이 어리고 순진한 소녀가 견디기에는 너무 힘들다. 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끔찍한데 오필리아는 오죽했을까. 제일 가슴 아픈 것은 카르멘이 아이를 낳고 죽어버린 것이다. 그것에 더해 아내의 죽음에 무감각한 남편의 모습은 한숨만 나오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오필리아가 왜 지하세계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라이언킹처럼 그냥 내 운명이고 정체성이니까? 아니다. 오필리아가 지하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이 환경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주라니, 얼마나 완벽한가. 누구나 한번쯤은 동화같은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가령 백마탄 왕자라든지, 알고 보니 부잣집의 잃어버린 딸이었다든지 하는 상상들. 오필리아는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 판과 요정, 지하세계와 모아나는 오필리아의 상상이었다. 오필리아가 도피할 곳은 오직 상상 뿐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거의 없다. 판이 오필리아에게 직접 찾아오거나 엄마의 산통을 낫게 할 맨드라크를 주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보면 아리송하지만 뒷부분에 결정적인 장면이 나온다. 오필리아의 마지막 숙제는 순수한 피를 얻는 것이었다. 순수한 피가 있어야만 지하세계로 갈 수 있다. 오필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미로에 가지만, 차마 아기를 죽일 수 없다고, 차라리 공주의 권한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오필리아를 따라온 비달은 오필리아가 허공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본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오필리아의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게 모두 오필리아가 만들어낸 상상인지, 아니면 정말 공주였는지 논쟁이 분분하다. 바로 결말 부분에 있다.

비달은 아이를 뺏고 오필리아를 쏘아죽인다. 오필리아의 피는 지하세계를 여는 비석으로 떨어진다.

 

아이를 안고 미로를 나온 비달은 메르세데스와 반군들에게 포위당한다. 그제서야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비달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시계를 깨서 아들에게 자신이 죽은 시간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이 아이는 당신의 존재 따위도 모르고 자랄 거야."

그리고 총으로 쏴죽인다. 이 말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기지의 스파이이자 반군파인 메르세데스는 죽은 오필리아의 시체를 보고 울면서 가사 없는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 후 오필리아는 환한 빛과 함께 일어난다. 예쁜 공주님 옷을 입고 왕좌에 앉은 왕과 왕비를 만난다. 마지막 세번째 숙제는 희생이었다. 오필리아는 가장 어려운 숙제를 해낸 것이다. 수많은 백성들의 환호와 환영 속에서 오필리아는 공주의 자리를 되찾는다. 오필리아는 공주가 되었는지, 그냥 죽은 건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필리아가 자신이 진정 있어야 할 행복한 지하세계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오필리아는 자유로워졌고, 행복해졌다. 다만 그 자유와 행복이 현실에는 없었다는 점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바로 한국 배급사에 있다. 마치 포스터를 아동용 판타지 영화로 꾸며놓아서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까무러쳤다는 후문이 있다. 개봉 당시에는 2006년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가면 포스터만 보고 영화를 결정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 영화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라는 쓸데없이 판타지를 강조하는 부제를 지었다. 앞서 언급했듯 <판의 미로>는 전혀 아동용 영화가 아니다. 15금 영화이고, 미국에서는 19금 영화로 개봉했다. 판이 처음 나올 때 나는 놀랐다. 요정이라는 판의 비주얼은 괴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이 오필리아에게 소리를 지를 때는 나도 놀라서 움찔했다. 날개달린 작은 요정은 그나마 인간 모습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팅커벨 같은 모습은 아니다. 오필리아가 숙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괴물들이 있다. 하나는 구더기로 가득한 썩은 나무에서 사는 거대한 두꺼비인데, 두꺼비는 찐득찐득한 구토를 뱉어낸다. 그리고 '창백한 남자'는 정말 보면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이를 잡아먹는 그 괴물은 비달을 상징한다. 정말이지 오필리아를 쫓아오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이다. 이걸 보면 오필리아같이 어리고 순진한 아이가 이런 괴물을 직접 떠올렸을까…아리송하다. 잔인한 장면도 있다. 비달이 농부를 죽이는 장면, 반군을 고문하는 장면, 메르세데스가 비달의 입을 찢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잘 부각시킨다.

 

이 영화는 오필리아같이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위로이다. 아이들 뿐 아니라, 당시 강한 남성들에 의해 억압받은 여성들은 상징으로 나온다. 나무를 썩게 하는 두꺼비는 독재정권을 상징하고, 그 나무는 자궁의 모양을 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런 상징들을 통해 감독이 얼마나 상징을 잘 이용하고 세심하게 연출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판의 미로>를 4월에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판의 미로>를 보고 한동안은 영화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결코 쉬운 내용의 영화는 아니었고 그래서 인터넷의 리뷰와 해석을 다 찾아봤다. 이 글도 해석에서 따온 부분이 적지 않게 있다. 내가 오필리아의 슬픔에 공감하고 이 영화에 감탄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배경인 스페인 내전과 군부독재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배경을 일제시대 혹은 독재정권 시절로 한다 해도 어색함이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많은 아이들과 여성이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과거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수많은 오필리아들…….

 

나는 곧 어른이 된다. 어른은 자신만의 이득만을 좇을 게 아니라 미래세대의 안녕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평화로워보이지만 그 평화가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다. 나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위해 더 현명해질 것이다. 메르세데스와 같은 스파이였던 의사는 비달에게 말한다.

"복종을 위한 복종은 당신같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모르는 새에 복종을 위한 복종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수많은 오필리아들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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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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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의사

반듯하지만 잔머리로 헝클어진 올림머리, 하얀 의사 가운과 대조되는 빨간 렌즈, 190이 넘는 장신……

“와, ‘죽음의 천사’ 님, 정말…… 뭐랄까…… 겉은 냉혈한이지만 속은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상처투성이 의사 같아요! 뭘 해도 어울리시니, 역시 코스프레의 완성은 얼굴이군요.”

나는 진달래처럼 어여쁜 사진사 아가씨의 손등에 키스한다. 나는 코스프레계의 남신으로 불리는 ‘죽음의 천사’. 첫 창작 코스프레를 촬영하기 위해 동네 병원에 왔다.

 

좋은 인물 사진이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아우라를 느끼게 해야 한다.

나는 의대 출신의 유능한 의사에 빙의한다.

나는 아픈 과거가 있다. 초짜 시절, 자살기도를 한 환자가 죽었다. 뭐가 뭔지 모르고 머뭇거리다가 그만…….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환자가 죽은 것이다! 그는 죄책감의 형상을 한 유령으로 밤마다 나의 침대를 찾아온다……. 그 뒤로 나는 패쇄적이고 차가워졌다. 그리고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갑자기 큰 앰뷸런스 소리가 났다. 한 여자가 들것에 실린 채 응급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자살기도를 한 걸까? 손에 피가 흥건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웬 여자가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자고 말한다. 나는 이상한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의사예요. 제 천명을 방해하시는 겁니까?”

나는 응급실로 뛰어갔다. 역시나 자살기도를 한 환자이다. 일단 생명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이니 신속하게 뭐라도 해보아야 한다. 나는 심장재세동기를 환자의 가슴에 가져다댔다. 아, 전원이 꺼져있다. 지혈을 해야 하니 상처에 붕대를 감는다. 환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다. 내 가슴도 고통에 울부짖는다. 최후의 수단……MSY를 투여할 수밖에!

“간호사! MSY(M뭐든지 S살리는 Y약)를 가져와요! 지금 당장!”

간호사와 실습생들은 술렁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나는 선반에 있던 주사기를 꽂는다.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MSY일 것이다. 일단 찌르자. 용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투여한다. 간호사가 끼어들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초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위대한 의사니까! 나만이 해낼 수 있다!

 

자살이라니,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불행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의 민낯을, 여린 당신은 부정하고 싶었겠지.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 하지만 죽지는 말아줘.

환자가 점점 의식을 잃어간다! 안 돼! MSY로도 역부족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우리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매가 최고의 약이라고. 나는 환자의 뺨을 때린다.

“눈을 떠요!(철썩) 이렇게!(철썩) 죽으면!(철썩) 흐흐흐흑……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고요!(철썩) 당신은 세상에 유일한,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잖아요!(철썩) 아닐 것 같지만 의외로 세상은 아름다운 면이 아주 조금은 있기도 해요!(철썩)”

감동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아연실색한 간호사가 어딘가로 뛰어간다.

 

“당신 뭐야! 우리 병원 의사가 아닌 것 같은데? 끌어내!”

의사들이 나를 억지로 일으킨다. 이제야 환자를 보러온 주제에! 안 돼!……

그때 그녀가 의식을 되찾고 상체를 일으켰다. 응급실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볼에 핏방울이 맺힌 그녀가 나를 안는다.

“흐흑! 고마워요, 선생님. 나 사실 죽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더 고맙지, 당신의 영혼이 다시 세상에 발을 디뎠으니. 나는 경이로운 존재의 손등에 키스를 한다. 그리고 천사의 날갯짓처럼 유유히 빠져나간다.

집에 가자. 이런 날에는 잠만큼 좋은 게 없지. 나는 집에 도착해 편안한 잠이 든다. 오늘의 꿈자리는 부디 평안하길.

 

잠에서 깼다. 밤 열한 시, 기분이 이상하다. 낮에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 거 아니겠지. ……착잡한 마음에 TV를 킨다.

“속보입니다. 오늘 낮 수원의 병원에서 의사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남성이 환자에게 소독용 포르말린을 치사량 투여하고 폭행, 도주했습니다. 환자는 충격으로 깨어났지만, 15분 뒤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남성의 행방을 뒤쫓고 있습니다.”

포르말린이라니! 세상에 미친놈들이 많군.

……그 순간 TV에 나오는 병원 CCTV의 남자의 빨간 눈과 마주친다. 거울에 비친 의사 가운에 묻은 빨간 피가 눈에 들어온다. 핏자국이 묻은 내 얼굴도. 오늘 낮에 나는 뭘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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