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예
엉터리 [1]

생각하는 것도 습관이라 할 수 있다면 참 못난 습관을 들였어 미완의 이야기만을 잔뜩 풀어 놓고 도망치듯 떠나온 날들이 많았다 아무도 읽지 않아 표류하는 별들은 작자 미상의 블랙홀에 죄다 침잠할 테야   어제는 박스 귀퉁이에 동화를 적었지 흔하고 천진한 물활론적 사고 바람이 짓쳐도 등대는 다정하다 했어 지친 마음으로 썼기 때문일까 물보라로 부서져도 아무도 책하지 않는 바다, 바다가 되고 싶다 말하면 그 누가 나를 바다로 데려가 줄까   너는 신을 갈아신다 시든 목련을 밟았다고 투덜댔지 실은 네가 부러웠다고 말하면 믿어 줄래 나는 흰빛을 잃은 꽃잎에 다가갈 용기가 없고 한때 등불처럼 빛났던 영광을[…]

엉터리
/ 2019-05-01
송예
고백 [1]

동경하는 사람의 치부를 보는 것이 좋아 혹은 서툰 과거의 기록들 추상과 상징으로 점철된 감정의 시선들이 정제되지 않은 시어로 스민 것도 좋아   이런 내가 나쁜가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오히려 당신의 어떤 모습을 보더라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 거란 확신 약한 모습을 보더라도 연민 갖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에요   숨겨 왔을 흔극을 들여다보아도 그 어느 곳에도 소리쳐 내뱉지 않으리라는 그런 말을 하면 믿어 주실는지요   실은 내게도 보여 드릴 것이 많답니다 짙은 파동과 채 잘라먹지 못한 고독과 속눈썹 끝에 맺힌 호우주의보 공기가 탁하면 무너지는 마음도 당신의 귀엣말을 늘 되묻는 이유도[…]

고백
/ 2019-02-08
송예
편지 [1]

오늘은 무슨 말을 해도 용서해 주실래요   잃은 것들이 많아 가졌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밤에는 체화된 우울을 떼어내면 심장 박동마저 잃을 것 같았습니다   익숙한 단어들을 벼려내어 스스로 꽂아 넣는 일은 우습지요, 한 번도 충분히 날카로워 본 적이 없답니다   이쯤 되면 소란은 잦아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듣지 않은 말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듣지 못한 말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낱 미몽에 휘둘리는 일이 두려워 눈은 감지 말아야겠다 다짐한 날들도 헤매는 어린아이 같은 슬픔에 고개를 꺾었고 마땅히 건네어야 할 위로가 목에 걸려 도리어 당신의 찻잔을 받아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은 동경과[…]

편지
/ 2019-02-03
송예
열아홉 [2]

달의 속눈썹에 매달려 희게 울고 싶은 밤이다 불완전한 숫자에 기대어 힘겨워할 건 무얼까 평균대에 올라간 기분이라 -다만 무엇도 지지해 줄 것이 없고 ⠀ 어제는 가장 아끼는 편견을 모아 조각을 지었어 나의 열정을 삼켜버린 고래가 세상 그 무엇보다 밝은 춤을 춘다면 비로소 웃을 수 있을까 다시 나의 태엽을 감으며 어지럽게 나열된 백분위를 한데 모아 봉분을 만들어 토닥여 보자, 실은 다시 찾지 않아도 될 무덤을 꾸며 보고 싶었지 달마다 생겨날 언덕의 오르막이 두려워서 다리가 부러진 척 하는 건 질렸단 말야 ⠀ 어느 누가 아홉을 수의 끝으로 정했냔 말이에요 열이 되지 못해 자꾸 우는 수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물은 백 도에서 끓는다는 사실 판단을 오늘은 부정해 볼래요 원하는 만큼 열을 얻지 못해서 여전히 차갑다고 여겨지긴 싫어요 하필 열아홉에 열아홉이 되어서 흔들리는 게 당연해지잖아요 하필 구월을 생월로 삼아서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단 말이에요 ⠀ 채 차지 않은 달빛에도 호흡이 가쁘다고 말하면 웃음거리가 될까 실은 목이 졸려 죽었어도 몸은 젖었으면 좋겠다 달을 잡고 싶어서 바다에 들어갔단 핑계를 대기 좋은 사인이 아닙니까 ⠀ 필통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어 나진해 보면 해종일 뚜껑을 열어두어 부러 잉크를 말리고 싶은 것이 여럿입니다 그다음엔 아주 조각조각 끊어 내어놓겠어요 ㅍ/ㅏ/ㄹ/ㅏ/ㄴ/ㅍ/ㅔ/ㄴ 분절 음운이 아닌 것들은 조금 망설이다가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이를테면 철 지난 쪽지 같은 것들요 ⠀ 시리도록 푸른 월면이 보고 싶은 밤이다 지상의 천사는 오늘도 불완전을 표방하고 손엔 의미불명의 노트를 들고 전진한다 하루를 깨부수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침이 두려워 달빛 한 줄기 보는 것도 사치입니까 날이 흐려 시야가 트이지 못한 탓입니다 잠들기 썩 좋은 밤은 아니군요 차라리 숨을 참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열아홉
/ 2019-01-17
송예
가끔은 철없는 투정도 부리고 싶었다. [2]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과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한 날들이 있었다. ​  아주 어릴 때는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부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너는 이대로 괜찮아? 응,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악의 없는 질문에 상처받은 적이 없었다. 안경은 쓸 필요가 없었고 쓸 수 없었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눈이 좋은 편은 아닌데, 드림 렌즈를 껴요. 밤에 잘 때만 하면 하루 종일 잘 보이니까. ​  열한 살이 되자 안경을 낄 수 있게 되었다. ​  열세 살이 되자 봄이 찾아왔다. 그 다음 날은 어버이날이었고 나는 베드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하루의[…]

가끔은 철없는 투정도 부리고 싶었다.
/ 2018-12-29
송예
일탈

이름을 바라면 잃는 것들 변하지 않는 걸 바라볼 바에야 나를 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 여섯 번 꺾인 꽃대를 손에 쥐고 달리며 죽지 않은 가시를 손톱 밑에 박아 넣었어 익숙해지고 싶었는지도 몰라 ⠀ 눈앞에 다가온 총구를 보면서도 이다음엔 꽃잎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웃음을 터뜨리는 날들이 잦았지 ⠀ 우습지, 분명 나는 네게 더 이상 후회로 가슴 아릴 일은 없을 거라 했었잖아 시답잖은 감정이라기엔 마음이 소란해서 ⠀ 상실의 승리를 쟁취하여라 신의칙이 산산이 부서지고, 오늘은 시금석을 깨부수고 달릴 테야 ⠀ 잃었던 이름을 부르짖고 어떤 기치라도 좋으니 내걸어 보아 월면 그 너머를 본[…]

일탈
/ 2018-12-29
송예
오르막 [2]

어제를 부정당한 청춘들은 울었다 흐득흐득 숨죽여 울었다 ⠀ 다정함을 무기로 삼은 눈빛들이 많았다 베일 걸 알면서도 모가지를 가져다 대었지 서로를 비난할 건 또 무언가요 ⠀ 사랑 따위의 말은 쓰고 싶지 않았다고 너무 쉽게 정의되는 것 같지 않냐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들은 페이지 끝자락을 사랑으로 갈무리하곤 입을 닫았어 ⠀ 아직은 못마땅한 것일 테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낮았다 ⠀ 산을 오르면 해가 뜰 것 같아 아직은 낙양을 좀 더 보고 싶은걸 어둔 기억에 갇혀서 실컷 머물고 싶단 말이야 ⠀ 형벌 같은 포옹으로 내일을 기약하지 말아요 눈을 뜨고 걸음을 딛고 뼈마디가 마멸되고 바람이 헤부치는[…]

오르막
/ 2018-12-17
송예
흐린 [2]

무엇에 반反해 불을 사를까 살아온 날은 눈 위의 흔적같이 지우려 하면 그 대가의 자국을 남기는 것을 ⠀ 실은 어른이 되는 게 두려웠어 심장이 얼은 이가 되지 않을까 ⠀ 오늘은 다만 침묵하여라 바람이 마음을 흐너뜨리는 날이야 다시 쌓기는 부끄러운 생각들이 아주 산산이 부서지는 날이야 ⠀ 오늘 같은 날의 낙양은 붉다 뺨을 감출 걸 그랬지 나는 밤의 잔가시를 너흘고 영영 사라져 버리고 싶었거든 ⠀ 꿈을 먹은 이여 안녕하신가 실없는 인사도 건네 보고 싶었어 ⠀ 평범이 주는 무게에 호흡이 짓눌리는 날이야 ⠀ 작별을 고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야

흐린
/ 2018-12-15
송예
긍정

오늘은 호선을 그리며 생긋 웃어도 볼까 시간을 깎아 짓는 미소는 아름다워라 ⠀ 열락에 전율하며 기뻐해도 될까요 손에 들린 작은 환희가 오랜만이거든요 ⠀ 춤추는 활자와 온기와 바람과 겨울 같은 것들 마땅히 해를 품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 ⠀ 감당치 못할 생경함이 버거워도 한동안 녹여 먹을 다정함으로 치부해도 되는지 ⠀ 좁은 마음에 과분한 음악이 찹니다 선율이 부유하고 음표들이 떠돌아요 ⠀ 높은음자리표를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 끄트머리에 그넷줄을 매달고 싶어서요 ⠀ 나어린 생각이 부끄러워도 머무르고 싶은 소망입니다

긍정
/ 2018-12-14
10 가입인사 드립니다 [0] 송예 2018-12-14 Hit : 13 송예 2018-12-1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