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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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속눈썹에 매달려 희게 울고 싶은 밤이다 불완전한 숫자에 기대어 힘겨워할 건 무얼까 평균대에 올라간 기분이라 -다만 무엇도 지지해 줄 것이 없고

어제는 가장 아끼는 편견을 모아 조각을 지었어 나의 열정을 삼켜버린 고래가 세상 그 무엇보다 밝은 춤을 춘다면 비로소 웃을 수 있을까 다시 나의 태엽을 감으며
어지럽게 나열된 백분위를 한데 모아 봉분을 만들어 토닥여 보자, 실은 다시 찾지 않아도 될 무덤을 꾸며 보고 싶었지 달마다 생겨날 언덕의 오르막이 두려워서 다리가 부러진 척 하는 건 질렸단 말야

어느 누가 아홉을 수의 끝으로 정했냔 말이에요 열이 되지 못해 자꾸 우는 수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물은 백 도에서 끓는다는 사실 판단을 오늘은 부정해 볼래요 원하는 만큼 열을 얻지 못해서 여전히 차갑다고 여겨지긴 싫어요
하필 열아홉에 열아홉이 되어서 흔들리는 게 당연해지잖아요 하필 구월을 생월로 삼아서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단 말이에요

채 차지 않은 달빛에도 호흡이 가쁘다고 말하면 웃음거리가 될까 실은 목이 졸려 죽었어도 몸은 젖었으면 좋겠다 달을 잡고 싶어서 바다에 들어갔단 핑계를 대기 좋은 사인이 아닙니까

필통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어 나진해 보면 해종일 뚜껑을 열어두어 부러 잉크를 말리고 싶은 것이 여럿입니다
그다음엔 아주 조각조각 끊어 내어놓겠어요
ㅍ/ㅏ/ㄹ/ㅏ/ㄴ/ㅍ/ㅔ/ㄴ
분절 음운이 아닌 것들은 조금 망설이다가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이를테면 철 지난 쪽지 같은 것들요

시리도록 푸른 월면이 보고 싶은 밤이다 지상의 천사는 오늘도 불완전을 표방하고 손엔 의미불명의 노트를 들고 전진한다 하루를 깨부수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침이 두려워 달빛 한 줄기 보는 것도 사치입니까 날이 흐려 시야가 트이지 못한 탓입니다 잠들기 썩 좋은 밤은 아니군요 차라리 숨을 참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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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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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행위의 차원에서 지속성을 지니는 직업이라는 위치로 그 위상을 달리할 때, 내가 처음 가진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꿈은 작가였다. 작가 이전에, <21세기 학생 백과>의 보석 부분을 달달 외우고선 보석이 예쁘다는 이유로 하고 싶었던 보석 공예가라든가,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으면서 단순히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당차게 결정했던 만화가 같은 직업은 내 인생을 책임질 생계 수단, 궁극적 삶의 지향점을 실현해 줄 도구로써의 꿈이라기보다는 그 대상에 대한 흥미와 관심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순서였는지도 모른다. 말 이외의 수단으로 더욱 정교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내게도 충분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곱 살에 처음 쓰기 시작한 일기는 그 나이 또래가 으레 그렇듯이 모든 끝마무리가 ‘참 재미있었다.’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고도 귀여운 종결 멘트가 아니었나 싶다. 작가를 본격적으로 꿈꾸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였지만, 그 전부터 항상 어떤 형태로든 글을 써 왔던 것 같다. 가령 동시를 쓴다든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마음의 고향 같은 ‘빨간 머리 앤’의 후속편을 쓰는 식이었다.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를 읽고는 감명을 받아 내용을 드라마화하고 싶어서 드라마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그 밖에도 많은 책을 읽으면서 웃음 짓고 때로는 눈물 흘리기도 하면서 가지게 된 '나도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때로는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내가 처음으로 ‘직업을 얻는 것’ 이상의 목표를 설정한 것이었다.

장래희망이 바뀌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있었던 수술이 잘못되고 난 후였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린 나는 숨을 곳이 필요했고, 기댈 곳이 필요했다.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 곁에 나를 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경험하지 못 하는 일을 나는 겪고 있었지만, 그래서 설령 그들이 내 감정과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존재 자체가 주는 안정감은 분명히 실재했다. 어떻든지 밖으로 티가 나는 변화였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나는 그날 이후부터 누구에게도 먼저 ‘너 왜 그래?’라든지 ‘너 얼굴이 이상해.’ 따위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지금처럼 의연하게 대답할 수 없을 때, 아무것도 묻지 않는 무언의 배려는 당시의 나를 견디게 해 준 힘이었다. 그리고 너무 지친 날 주변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내 이야기는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위로됐다. 나도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그 경험으로부터 싹을 틔웠다. 스스로 나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더는 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 그즈음부터 심리상담사가 되어 누군가의 내면에 더 가까이, 직접적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까지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 심리 쪽으로 진학을 준비했지만, 현시점으로서는 조금 다른 분야에 관심이 간다. 장애인을 대하는 특수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특수교육 또한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대하는 것, 그래서 심리적인 요소에 대해서 완벽히 노선을 달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래서 심리상담사를 꿈꾸는지, 특수교육학자 혹은 특수교육교사를 꿈꾸는지를 묻는 말에는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아마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 아닐까. 그 방식이 내게는 누군가의 흉금을 읽어 주는 심리상담이나, 혹은 필연적으로 나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 특수교육의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닐까 싶다.

애초에 꿈이라는 게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특수교육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내 태생부터 기저를 이루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직접적으로는 남들과 다르다는 걸 몸으로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과 간접적으로는 특수교육을 가르치시는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오면 이상한 끌림을 받는다. 처음에는 단순히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하는 연민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이 감정을 선뜻 열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학교에 진로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일이 있었다. 큰 의미를 부여했던 대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가치를 느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밟아 온 흔적을 되돌아봄으로써 잊고 지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닿고 싶은 미래를 정리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포트폴리오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낸 기록이지만 ‘내가 이런 걸 꿈꾸고 있다’는 작은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꿈을 꾸게 한 나의 삶인지도 모른다.

 

 

 

 

+)문단 들여쓰기가 안 되는 이유는 뭘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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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철없는 투정도 부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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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과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한 날들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부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너는 이대로 괜찮아? ,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악의 없는 질문에 상처받은 적이 없었다. 안경은 쓸 필요가 없었고 쓸 수 없었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눈이 좋은 편은 아닌데, 드림 렌즈를 껴요. 밤에 잘 때만 하면 하루 종일 잘 보이니까.

 열한 살이 되자 안경을 낄 수 있게 되었다.

 열세 살이 되자 봄이 찾아왔다. 그 다음 날은 어버이날이었고 나는 베드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하루의 얼만큼을 잠든 채로 있어야 했는지 몰랐으므로 어버이날 편지는 미리 보내 놓았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나를 깨우는 손길에 눈을 뜨고 머리를 감고 자리를 옮겼다. 대기실은 추웠고 떨리지는 않았다. 이미 한번 해 본 건데 뭘!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서 자꾸만 생각했다. 무엇이라도 생각해야 두렵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생각을 계속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이상한 냄새 나는 가스로 마취를 안 하네. 이제 잠들어서 깨면 몇 시일까? 눈을 뜨자 오후였고 열 없이 마취가 풀렸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들었는지 모르겠다. 왼쪽 얼굴이 마비되었대. 신경을 건드려서. 처음으로 죽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열세 살 어린애한테 그럴 깡은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일부러라도 다른 곳에 마음을 두려고 애썼다. 처음으로 연예인을 좋아해 본 게 그즈음이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얘네가 없었으면 난 죽었어, 라고 말하지만 실은 진짜인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내 안으로 파고들어 가 나를 다치게 했을 것 같다. 그런 날들이었다.

 살아 있다는 걸 알려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반장 선거가 있으면 나가지 않고는 못 배겼다. 초등학교 때는 방송부에도 들었다. 이유는 우습지만, 당시 유일한 상설 동아리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도서부에,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학생회에 들었다. 엄만 그걸 권력욕이라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갉아먹는 만큼 내가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소개하는 전날 밤에는 수십 번을 연습하고야 잠이 들었다. 안녕, 나는 어렸을 때 수술이 잘못돼서 잘 못 웃어. 나랑 얘기하다가 비웃는 것처럼 웃어도 진짜로 즐거운 거니까 상처받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가끔 네 얘기를 못 들어도 그러려니 해 줘. 같이 걸을 땐 내가 왼쪽에 설게. 왼쪽에서 나는 소리를 잘 못 듣거든. 그날 밤엔 한참을 울다 잠들었고 자기소개를 할 땐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참 이상하지, 내가 그렇게 부탁을 해 두었는데도 가끔 친구들이 얘길 하다 아, 하고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때때로 숨이 막혀 온다. 그렇지만 내 얘기를 미리 해 둘 수 있다는 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른 척하는 걸 예의로 여기니까. 차라리 물어 주면 좋을 것을.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데 안경이 자꾸 떨어지거나 하면 하루종일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너는 마스크 왜 안 해? 그냥 일찍 죽어야지 뭐.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면 돌아오는 질문이 없어서 어깨만 으쓱하고 지나간다.

 언제부터인가 식사 기도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신을 원망하는 건지 부정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려서 가끔 하는 기도 내용이 똑같아졌다. 그냥 없다고 믿게 해 주세요. 나는 원망할 곳이 필요해요. 기도를 끝내고 나면 이율배반적인 내용이란 걸 깨닫는다. 그렇지만 그 말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다.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가겠지, 별 영양가 없는 생각만 하니 이것도 죄를 짓는 것일 테야. 믿음은 없지만 장학금을 받으려고 꼬박꼬박 교회는 나간다. 갈수록 죄명이 는다. 스물 몇 살 때 신앙심을 터뜨려 줄 사건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네. 천국에 갈 기회는 미래의 내가 만들어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만 남기고 오늘은 죽지 말아야지 다짐만 한다. 이를테면 변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겪고 있는 일은 일종의 불행이니 어느 정도는 어긋나는 생각을 해도 되는 것 아닐까. 비논리적인 당위성을 부여하면 그제야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지옥문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조금 지웠다.

 동성을 대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고 이성을 대하는 걸 사랑한다고 치자면 사랑하는 건 오래전에 그만뒀다.​ 제대로 웃을 수 없다는 걸 머리로 받아들이고 나서는 사 년 동안이나 했던 짝사랑도 접었다. 그 애는 너무 빛나서 동경한 것일 뿐이야, 앓았던 날이 길었던 것치고 접는 게 빨랐다. 친구들과 하는 대화랑은 달리 또래 이성이랑 하는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감정을 소모하게 돼서 지금은 될 수 있으면 피한다. 여고에 진학했으니 잘됐다. 본인도 부둥켜안기 힘든 사람이 누굴 사랑해서 무엇 하겠어. 그렇지만 이렇게 살다가 정말로 메말라 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줄리아하트의 <Plan B> 같은 노래는 숨겨 듣는다. 바보 같은 일이다.

 거울 앞에 서서 손가락 끝으로 왼쪽 입꼬리를 올렸다가 떼 본다. 이천육십일 하고도 이틀이 지났지만 마음이 덜 아물었는지 자꾸 아프다. 돌을 던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 깊이를 가지려면 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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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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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라면 잃는 것들

변하지 않는 걸 바라볼 바에야

나를 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여섯 번 꺾인 꽃대를 손에 쥐고 달리며

죽지 않은 가시를 손톱 밑에 박아 넣었어

익숙해지고 싶었는지도 몰라

눈앞에 다가온 총구를 보면서도

이다음엔 꽃잎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웃음을 터뜨리는 날들이 잦았지

우습지, 분명 나는 네게

더 이상 후회로 가슴 아릴 일은 없을 거라 했었잖아

시답잖은 감정이라기엔 마음이 소란해서

상실의 승리를 쟁취하여라

신의칙이 산산이 부서지고, 오늘은

시금석을 깨부수고 달릴 테야

잃었던 이름을 부르짖고

어떤 기치라도 좋으니 내걸어 보아

월면 그 너머를 본 체도 해 보자

철없는 축포를 쏘아 마멸된 가슴을 달래고

동그란 위로를 문지르고 포말을 걷어내고

무엇인가 당연한 듯 고개도 끄덕여 보아

정의定義가 두려우면 사전을 버리고

정의義가 두려우면 너를 버리기로 해

아이야, 네 사도道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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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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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부정당한 청춘들은 울었다

흐득흐득 숨죽여 울었다

다정함을 무기로 삼은 눈빛들이 많았다

베일 걸 알면서도 모가지를 가져다 대었지

서로를 비난할 건 또 무언가요

사랑 따위의 말은 쓰고 싶지 않았다고

너무 쉽게 정의되는 것 같지 않냐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들은

페이지 끝자락을 사랑으로 갈무리하곤 입을 닫았어

아직은 못마땅한 것일 테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낮았다

산을 오르면 해가 뜰 것 같아

아직은 낙양을 좀 더 보고 싶은걸

어둔 기억에 갇혀서 실컷 머물고 싶단 말이야

형벌 같은 포옹으로 내일을 기약하지 말아요

눈을 뜨고 걸음을 딛고 뼈마디가 마멸되고

바람이 헤부치는 기나긴 여정을 재촉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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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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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반反해 불을 사를까

살아온 날은 눈 위의 흔적같이

지우려 하면 그 대가의 자국을 남기는 것을

실은 어른이 되는 게 두려웠어

심장이 얼은 이가 되지 않을까

오늘은 다만 침묵하여라

바람이 마음을 흐너뜨리는 날이야

다시 쌓기는 부끄러운 생각들이

아주 산산이 부서지는 날이야

오늘 같은 날의 낙양은 붉다

뺨을 감출 걸 그랬지

나는 밤의 잔가시를 너흘고

영영 사라져 버리고 싶었거든

꿈을 먹은 이여 안녕하신가

실없는 인사도 건네 보고 싶었어

평범이 주는 무게에

호흡이 짓눌리는 날이야

작별을 고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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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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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호선을 그리며 생긋 웃어도 볼까

시간을 깎아 짓는 미소는 아름다워라

열락에 전율하며 기뻐해도 될까요

손에 들린 작은 환희가 오랜만이거든요

춤추는 활자와 온기와 바람과 겨울 같은 것들

마땅히 해를 품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

감당치 못할 생경함이 버거워도

한동안 녹여 먹을 다정함으로 치부해도 되는지

좁은 마음에 과분한 음악이 찹니다

선율이 부유하고 음표들이 떠돌아요

높은음자리표를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 끄트머리에 그넷줄을 매달고 싶어서요

나어린 생각이 부끄러워도

머무르고 싶은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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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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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해요. 좋아하는 작가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작품이 많은 편입니다. 관심분야는 시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글틴에서 많은 경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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