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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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찾아온 비가 학교 현관을 세차게 때렸다. 자그마한 우산 하나에 세 명, 네 명이 모여 평소보다 더 왁자지껄했다. 오늘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굵은 빗방울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드집업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는 학교 대문을 향해 뛰어갔다. 이런 모습을 한 내가 괜히 부끄러워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보니 내 모습이 꼭 물에 빠진 쥐 꼴이다.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샤워기로 몸을 적셨다.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뿜어 나와 머리카락에 닿았다. 상쾌해야하는데 오히려 찝찝하기만 하다. 어쩌면 난 벌을 받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치지도 않고 비가 계속 쏟아졌다. 회색빛인 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간 갑작스럽게 바람이 불어왔다. 꽉 잡은 손 덕분에 우산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우산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다시 고쳐보려 해도 우산살이 아예 부러져서 다시 붙이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샛노란 우산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 노란빛이 꼴도 보기 싫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 욕설을 중얼거렸지만 기분도 상황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학교에 늦을지도 모른다. 우산을 애써 꾸겨 접고 허겁지겁 뛰어갔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의 시끌시끌한 말소리가 들렸다.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들이 힐끔 쳐다봤다.

“야 쟤 머리 꼬라지 좀 봐.”

“와 진짜 꼴 보기도 싫다.”

깔깔깔. 말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짐짓 들으면 청아하게도 보였다.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의미는 너무나 날카로워서 나는 입을 다물고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띵-동”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화들짝 일어났다. 교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직 정적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낯선 복도가 어느 때보다 길어보였다.

운동장에 나오자마자 선생님은 왜 이렇게 늦었냐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의 질책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생님의 고함소리보다 더 듣기 싫은 건 아이들의 비웃음 소리였다. 대놓고 웃는 아이들, 무표정인 아이들,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신경도 안 쓰는 아이들. 만약 누구 한 명이라도 도와줬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귀는 막지 못했다.

집에 가는 길에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집이 학교 앞에 바로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하철역까지 걷는 길이 유달리 멀어보였다.

지하철 자리에 앉자 피곤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지하철 창문 너머로 불빛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숨을 내쉬자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3월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늦은 눈이 살포시 온 세상을 덮었다. 패딩으로 몸을 싸맸지만 맨살이 그대로 보인 채 드러난 다리는 바람이 불때마다 칼로 베이는 듯했다. 저 멀리 입학식 현수막 밑에 서있는 걔가 보였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걸 보자 하니 나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그쪽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10시가 넘었지만 습한 공기에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늦게까지 학원에 남아 집에 오는 길이었다. 집에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학교 쪽문과 대문은 평일이면 항상 열려있기에 편하게 들락날락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유달리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이 길이 무섭다고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무서웠다. 그냥 빙 돌아가면 되지만 괜히 오기가 생겨나는 운동장으로 발을 들어놓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나뭇가지가 괴기하게 흔들렸다. 바람이 지나가며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손이 축축이 젖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이었다. 학교 옥상에 검은색 무언가가 휙 떨어졌다. 나는 그대로 뒤로돌아 다시 문으로 뛰쳐나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교실은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시끄러웠고, 그와 동시에 더 조용하기도 했다. 기이한 분위기가 교실을 감돌았다. 에어컨 바람 탓일까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너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순간 불안한 생각이 스쳐갔다.

“걔 있잖아, 걔. 걔 어제 학교에서 자살했대.”

“뭐?”

“지금 학교 다 난리 났어. 왕따 가해자랑 방관자 다 조사한데. 우리도 걔 뭐라고 했잖아. 막 잡혀가고 그러면 어떻게 해.”

“언제, 어디서?”

“그 어제 10시 즈음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나 봐.”

쿵. 무언가가 가슴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그러면 그때…….

“헉!”

눈을 떴더니 불빛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불빛?’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안이었지.’

몇몇 사람이 띄엄띄엄 앉아있을 뿐, 지하철은 황량했다. 시계룰 보니 8시 5분을 가리켰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보니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비는 계속 쉬지도 않고 쏟아졌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조명들이 거리를 밝혔지만 으슥한 분위기에 덜컥 겁이 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가출 청소년처럼 보이는 내 자신이 비참했다.

“저기요.”

갑작스러운 부름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검정색 모자를 쓰고 검정 후드티를 입은, 한 거구의 남자였다.

“제가 버스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딱 2천원만 꿔 주실래요?”

“저…….저 돈 없어요.”

머리가 어지러웠다.

“야 씨, 쟤 뭐래니?”

웃음을 머금었던 얼굴이 한순간에 확 바뀌었다.

나는 팔을 힘껏 밀치고 지하철 출구로 냅다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왜 도망쳐?”

그 남자였다.

“이리로 얌전히 따라와. 어딜 도망치려고.”

작게 속삭이는 그 목소리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도와줍…….”

내 소리침은 남자의 손에 막혀 잇지 못했다. 달아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보지 못한 걸까? 아님 보지 않은 걸까? 서둘러 제 갈길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남자의 손이 나를 힘껏 끌어당기는 게 느껴졌다. 점점 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구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구나. 너무나 당연한 것을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이렇게 죽는 걸까? 아니야. 그럴 수는 없다. 눈물이 흘렀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아이씨. 넌 또 뭐야.”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니까 진정하시고 그 손 놓으시죠.”

남자는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느슨히 하고 방금 전 소리친 그 사람으로 다가갔다.

“신경 끄고 네 갈길 가라고!”

소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남자는 당황한듯해 보였다. 한 사람이 핸드폰을 꺼내들자 남자는 나를 팽개치고 사람들을 밀쳐 계단 쪽으로 튀어갔다. 남자가 간 것을 확인하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기 학생 괜찮아요?”

누군가 말을 걸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 후, 나는 바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장마라는 것을 자랑하듯이 근 2주간 비는 폭포처럼 쏟아졌다. 아이들 우산에 빗방울이 부딪혀서 경쾌한 소리를 냈다.

“야 나 우산 좀 빌려주라. 응?”

“고마워. 잘 쓸게.”

강제로 우산이 빼앗기자 그 반동에 우산을 갖고 있던 아이는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넘어진 것도 서러운데 하필이면 그 자리가 커다란 웅덩이가 위치한 자리라 치마 전체가 흠뻑 젖고 말았다. 넘어진 채로 고개를 푹 쑥이고 눈물인지 비인지 모르게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 모습은 안쓰러워 보였지만, 주변의 학생들은 힐끔 쳐다보거나 비웃고 지나갈 뿐 아무도 가까이 갈려고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던 그는 인기척에 깜짝 놀라서 그는 위를 올려다봤다. 밝은 노란빛 바탕에 아무렇게나 붙인 테이프가 눈에 띄었다. 노란빛 우산이 흐릿한 하늘과 대조되어 더욱이 환해보였다.

*5월달에 처음 올린 소설인데, 수정후 다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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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찾아온 비가 학교 현관을 세차게 때렸다. 자그마한 우산 하나에 세 명, 네 명이 모여 평소보다 더 왁자지껄했다. 오늘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혼자 우산을 쓰고 가는 현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현정아.”

못들은 걸까. 몇몇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뛰어가는 현정이의 뒷모습을 도저히 원망할 수는 없었다. 굵은 빗방울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드집업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는 학교 대문을 향해 뛰어갔다. 이런 모습을 한 내가 괜히 부끄러워져 귀가 화끈거렸다. 혹시라도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보니 내 모습이 꼭 물에 빠진 쥐 꼴이다.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샤워기로 몸을 적셨다.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뿜어 나와 머리카락에 닿았다. 상쾌해야하는데 오히려 찝찝하기만 하다. 자꾸 그때 생각이 난다. 모든 걸 다시 돌려받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핸드폰을 켰다. 조용한 핸드폰도 죽도록 싫었다. 핸드폰을 끄자 컴컴한 어둠이 나를 둘러쌌다. 그 어두움이 마음에 들었다.

꿈을 꿨다. 그 아이가 서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면 그 아이가 보일 것 같았다. 왜 또 나타난 거야. 나는 이제 너무 지쳤다.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나는 눈을 감고 주저앉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다 끝내버리고 싶다.

지치지도 않고 비가 계속 쏟아졌다. 회색빛인 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산을 잡은 손이 땀으로 젖었다. 학교에 가는 발이 질질 끌렸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의 시끌시끌한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아이들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쟤잖아. 쟤가 죽였다면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아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띵-동”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화들짝 일어났다. 교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직 정적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낯선 복도가 어느 때보다 길어보였다.

“너 왜 이렇게 늦었어! 체육복은 어디다 버렸고!”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은 큰 소리로 질책했다. 뒤를 돌아봐 가지런히 줄을 서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무서웠다. 내 눈을 피하는 현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체육관에 부딪히는 비의 소리가 아이들의 말소리를 집어삼킬 듯 했다. 그 빗소리가 듣기 거북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늘만큼은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가 낯설었지만 좋았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은 2년 내내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걷고 또 걸었다. 저 멀리 지하철역이 보였다. 뒷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데 무슨 상관인가. 내가 이렇게 힘든데. 비를 맞아서 그런지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그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눈을 떴더니 불빛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불빛?’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안이었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보니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비는 계속 쉬지도 않고 쏟아졌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조명들이 거리를 밝혔지만 으슥한 분위기에 덜컥 겁이 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가출 청소년처럼 보이는 내 자신이 비참했다.

“저기요.”

갑작스러운 부름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데다가 검정색 모자를 쓰고 검정 후드티를 입은, 내 또래처럼 보이는 한 거구의 남학생이었다.

“제가 버스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딱 2천원만 꿔 주실래요?”

“저 돈 없어요.”

머리가 어지러웠다.

“야 씨.. 쟤 뭐래니?”

웃음을 머금었던 얼굴이 한순간에 확 바뀌었다.

나는 팔을 힘껏 밀치고 지하철 출구로 냅다 뛰었다. 주위가 환해지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자 나는 뛰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왜 도망쳐?”

그 남자였다.

“이리로 얌전히 따라와. 어이가 없어서.”

낮게 갈라지는 그 목소리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도와줍…….”

내 소리침은 남자의 손에 막혀 잇지 못했다. 달아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려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게 맞긴 한가. 어쩌면 처음부터 보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달아나려고?”

몸이 뻣뻣이 굳어 움직이지가 않았다. 두려움이 몸을 다 먹어버린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원망스러웠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여기서 누가 날 도와주겠는가. 눈물이 볼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 순간 호루라기소리가 좁은 지하철역에 울렸다. 경찰과 함께 어떤 젊은 여성이 달려왔다.

“모두 멈추세요!”

“아, 씨, 재수 더럽게 없네.”

남자는 나를 잡았던 손을 풀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요. 괜찮으세…….”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뒤로는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 젊은 여자가 역의 경찰서에 신고했다고 한다. 나와 젊은 여성 그리고 그 남자는 인근의 경찰서로 이송되었고 나는 곧 집으로 보내졌다.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나를 감싸주는 듯한 느낌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방을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직도 그 남자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눈을 돌리는 그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경찰이 달려올 때 나는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가만히 책상으로 다가가 구석에 뉘여 있는 액자를 들었다. 너무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 눈에 담겼다. 눈물이 사진을 적셨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절망만을 안겨준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닷없이 찾아온 비가 땅으로 무심히 떨어졌다. 많은 아이들 속에서 모자를 뒤집어 쓴 채 뛰어가는 현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우산을 피고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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