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후루
공중전화 [1]

여섯 시 삼십 분, 계절 탓인지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숨이 헐떡이며 목구멍을 막았다. 들썩이는 어깨가 간신히 진정될 때 쯤에서야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쳤다. 이 정도면 낮이라 우길 수 있겠지. 숨을 고르고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받침대에 먼지가 한가득 쌓여 있다.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 하나를 찾아 넣는다. 반대편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하게 접힌 메모지를 꺼내 핀다. 미처 외우지 못한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그 밑에 작게 써 있는 이름 세 글자를 보니 괜히 심장이 쿵쿵거린다. 숫자를 하나 누르고 메모지를 보고, 다시 숫자 하나를 누르고 메모지를 보는 행동을[…]

공중전화
/ 2017-12-09
탕후루
얼룩 [1]

그 애가 울었다. 이걸로 세 번째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처럼까지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빨강부터 검정까지 세상 모든 색깔이 담긴 듯한 팔레트와 반쯤 채워져 있던 분홍색 물통을 잔뜩 교실 바닥에, 정확히는 반장의 티셔츠와 책상 밑에 엎지른 채 그 애가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아무도 그 애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반 아이들이 하고 있는 짓이라곤 엉엉 우는 반장을 달래 주며 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진 물을 물티슈로 닦아내는 일 뿐이다. 그걸 물티슈로 닦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마른 휴지로 먼저 닦으라고 말할 힘도 없었다. 선생님마저 반장을 타이르고 있다. 무언가[…]

얼룩
/ 2017-08-27
탕후루
싸이코 [2]

J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나였다.   그를 J라고 지칭하는 데에는 별 의미 두지 말길 바란다. 이니셜일 뿐이다. 오로지 나만이 그의 이름을 안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그에게 참으로 특별한 존재 같아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그의 의사가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히 가장 가까운 사이는 맞을 것이다. 우린 같이 살았고 매 순간 함께했고 사랑했다. 연인, 그래. 우선은 연인이라 치자. J와 나는 연인이었다. 목소리에 담뿍 설렘을 담아 말을 하면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경청하는 것이 퍽 예쁜 사람이었다. 어딘가 모를 교활함이 나를 미치게 했지. 그는 도통 입을 여는 법이 없어서 그가 입을 여는[…]

싸이코
/ 2017-08-10
탕후루
일기장 [3]

일기장   내 낡은 서랍 속 때 묻은 일기장 안 묻혔던 과거들을 이제야 꺼내 본다 지금은 찾아볼 수조차 없는 그때의 나는 아무리 모진 바람 내 뺨을 때린대도 태풍이 내 전부를 가져가 버린대도 나의 몸 그것 하나면 언제든지 일어서리라 언젠가 먼 훗날에 꿈꾸던 그 곳 도착하면 지금껏 바라 왔던 황홀경에 빠지리라 믿었던 나는 어디로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새 색이 바랜 때 묻은 일기장 안 먼지를 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지금의 나는 내 몸마저 잃어버렸나 툭 하고 떨어진 눈물이 누런 표지를 씻는다면 나도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까

일기장
/ 2017-08-10
탕후루
완연한 새벽 [2]

완연한 새벽   칸칸이 나누어진 검은색의 건물 중 한 칸만 하얗다 여름으로 출발하기 전 마지막 일요일을 기념하려 한다 커다란 적막이 이색적인 자정 고요를 깨는 주차장 경보음 소리 그 소리를 덮는 과거의 기억들 지난해 이 날에도 나는 깨어 있었을 것이다 도시 노동자들의 가난한 사랑 노래와 돌 같은 별에 허둥대며 써내려간 비망록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 바깥에서 들리는 빗소리를 이어폰으로 막으며 밤을 새던 지난 날들 돌이켜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더라 노력만큼 나오지 않는 점수에 애써 자기 위안을 하고 어차피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 이제 슬슬 눈 붙일 때 되지[…]

완연한 새벽
/ 2017-08-10
탕후루
당신의 웃음 [1]

당신은 웃었다 당신은 웃었고 그 웃음 하나에 나는 가둬졌다   당신은 그저 웃었을 뿐인데 봄바람처럼 코끝을 간질이다 사라지는 그런 웃음 톡 하고 맑게 터지는 그런 웃음을 지었을 뿐인데   어찌하여 나는 지금 울고 있는가 모를 일이다

당신의 웃음
/ 2017-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