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는 미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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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메밀을 함부로 돌아다니게 하지 마십시오.

 

어린 국화들이 서식하는 곳에는 빛을 죽여야 합니다. 그 고운 것들은 다 녹은 달빛에도 못 이겨 희게 색이 바래버립니다.

 

가령 운동장 한가운데 같은 곳에 세워두지 말아야 합니다. 방방 켜진 불들을 보면 제 고향 같아 미친 듯이 쏘다닐 게 뻔합니다. 저기 스멀스멀 국화가 도깨비 혼혈이란 소문이 돌던데 사실이고 나발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나는 손으로 기고 내일은 가장 높은 가지에 목을 맬 거야

 

팔렐레레레 사리분별 못하고 웃어젖히는 국화한테 카페인을 주입한 건 도깨비밖에 없을 테니 일단 저 빌어먹을 비석들에 커튼을 치고 메밀밭을 밀어버립시다. 그리고 차라리 도토리나무를 심읍시다.

 

이건 어쨌든 국화 모르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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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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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쌀쌀해졌는데 다들 아무 것도 아니란다

나는 푸른색에서 나왔다 맑음으로 대표되는

 

 

투명한 수정에 우울하고 음침한 것만 들이대니 푸르게 빛을 내지

솔직해서 다 보여주니까 뒤엣것들이 비치잖아 날 위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강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나는 멍든 쪽빛 그것마저 자꾸 훔쳐보려든다

그냥 계속 흐려지고 싶은데 들어본 적도 없는 알러지가 난리를 쳐 걸핏하면 체한다

망할 과민반응 예민해서 뛰어내리고 싶은 날이 있다

 

 

정신 나간 놈들만 바다에서 허덕이니까

난 마음이 좁으니까 없다고 고고한 척 하기엔 잘못 디디면 순식간에 검어지는 거야

시체처럼 꼿꼿하게 서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게 많이 엉긴 거고 공명 따위 없는 속이 좋아

잠을 자지 않아도 돼도 평생 잘 작정이다

 

 

나는 푸른색에서 나왔다 청아하지 않아서

가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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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말-해로운 말-모든 사람이 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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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시입니다. 이전에 올렸던 시들을 퇴고하려다가 새로 써서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무해한 말>

 

 

말에 온점을 달고 싶어

긁어내리는 물음표는 싫은데

갈고리는 혓바늘로 돋아 떼어낼 수 없고

차가운 입술이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항상 웃을 수 있을까

물음표의 날을 내게 돌려

입술을 도려내었다

비치는 나는 웃고 있지만

부작용은 염증으로 번진 반점인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도대체,

 

 

흘러내린 가증은

꼬리를 가려 부드러운 결을 만든다

 

 

 

 

<해로운 말>

 

왜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 넌 저렇게 빛나는데 난 왜 아무 것도 아니지 너한테 난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일 텐데 뭘 더 바라는 거야 미안해

 

 

 

 

<모든 사람이 별이라면>

 

 

위성은 따위에 속하는 세상

사람들은 시끄러운 화소에 눈이 멀고

검은 것들은 귀에 설어 못 삼킨다

 

 

빛나지 않는 것들을 다 쥐기엔 그만큼 넓지 못하다

시간의 틈에 페트병을 버리러 온 사람조차

가진 것보다 바닥에 박힌 유리별을 잇새에 품고 싶어 하는데

 

 

불살라야만 발광하는 것들은 서로를 애틋해한다

스쳤던 온기, 착잡한 끝인사, 하얀 적막을 떠올린다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버릴 것들 무엇이든 조각은 제 가치를 안다

 

 

우리 둘만 있으니까 눈 살짝만 떠 볼래 유리별도 항상 가로등만 쳐다보고 있는 걸

번들거리는 욕망이 손에 가득해 깍지를 낄 수 있는 거야

우리는 은색 포장지 안에 숨어 빙글빙글 돈다

 

 

 

 

조언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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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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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사이를

부표로 표류하다

익은 발에

흰 물결이 걸리었다

 

 

환상은 몇 번이고 깨어진

돌가루보다 세밀하여

가라앉으니 희기보다는

투명하였다

 

 

숨이 짧아 내저은 손에는

흔적만 남은 버석한 아가미

돌고래의 눈물은 증발과 동시라

나는 대신 모래알들을 게워내었다

 

 

사막은 끝없이

모래알 같은 생애가 와르르

 

 

표정이 없는데도

자꾸만 따뜻해졌다

모래를 뒤집어쓴 돌고래는

다정이 무거워 못 헤어 나오고

 

 

나는 몸을 띄우려

수천의 생애를 꺽꺽

돌고래는 얽힌 내 발은 풀어주지도 않고

건조한 숨만 불어넣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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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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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는 벌레가 많다. 바닥에 깔린 머리카락을 제때 안 치워서인 것 같다. 바닥을 기거나 날아다니다 걸리는 놈들은 가차 없이 죽이곤 했는데 거미는 왠지 망설여졌다. 백석의 수라 때문이다. 다른 벌레는 죽이면서 거미 앞에서 망설이는 게 웃기지만 거미는 익충이니까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래서 침대 바로 위에 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미와 함께 삼 일을 잤다. 삼 일째 되는 날 자려고 누우니 거미가 없었다. 자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일어나서 처음 보는 시커먼 덩어리가 없으니 기분이 이상해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천장을 살피다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거미는 덩칫값을 하듯 새끼를 어마어마하게 쳤는데 거미들이 차지하는 영역이 내 영역보다 더 넓었다. 내 집인데! 소름이 오소소 돋아 빗자루로 거미집을 다 부쉈다. 포획한 새끼거미들은 변기 물에 내려버렸다. 수라는 잊힌 지 오래였다. 거미들을 이십 분 넘게 잡아들였으나 모든 일의 원흉인 큰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큰 거미를 잡기위해 천장을 샅샅이 뒤졌다. 큰 거미가 나보다 세력을 넓히지만 않으면 같이 살아도 상관없었겠지만 큰 거미는 정도를 몰랐다. 일주일이 꼬박 지나고서야 큰 거미를 찾을 수 있었는데 막상 죽이려 보니까 큰 거미가 생각보다 더 커서 에프킬라를 사왔다. 한두 번 뿌려선 꿈쩍도 안 하기에 등이 하얗게 덮일 때까지 에프킬라를 뿌려댔더니 거미가 다리를 꼬며 거미줄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곡예를 하더니 바닥에 내려와서 파들파들 기었다. 괴로워하는 게 눈에 보여서 조금 미안했다.

사실 처음이 어려웠지 그 다음부턴 쉬웠다. 큰 거미가 문제가 아니었는지 거미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나는 거미를 볼 때마다 망설임 없이 에프킬라를 뿌렸다. 뒤돌아보면 생겨 부수기도 포기한 거미집 곳곳에 팔다리를 옹송그린 채 죽어 있는 거미들이 늘어났다. 하루는 창문을 반대로 열었다. 방충망도 없는 창이 거미줄 때문에 뿌옜다. 항상 열댓 마리는 보이는 큰 거미집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어 나오는 거미들의 본거지였다. 내 집 안에만 안 들어오면 괜찮다고 놔뒀는데 들어올 때마다 일일이 죽이는 것도 귀찮아 그냥 다 죽여 버렸다. 마흔세 번째 거미를 죽이고 침대에 누우니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졌다. 잊힌 지 오래인 수라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대식구를 전부 죽인건가?

침대에 누워 본 휴대폰엔 5월 4일이 날짜로 찍혀 있었다. 원래 꿈속에선 꿈인 걸 모른다는데 날짜를 본 순간 꿈인 걸 바로 알아버렸다. 말도 안 돼, 지금 수능이 50일도 안 남았는데! 처음으로 자각몽을 꿨다. 거실엔 안방이 달려 있었고 문을 여니 엄마가 자고 있었다. 동생한테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화장실에 있다고 했다. 다 됐고 엄마 옆에서 자고 싶어 자리를 좀 비켜 달라고 엄마를 깨웠다.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내가 깼다. 집에는 나 혼자였고 서러웠다.

가족은 이사를 했다. 나 없는 우리집에 나는 열 번을 채 안 가봤다. 이사할 때 바꾼 비밀번호는 갈 때마다 잊어버려 새로 물어보았다. 빨래바구니랑 쓰레기통 위치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서 엄마, 아빠, 동생 딱 세 자리 있는 칫솔거리를 보고 기분이 묘했다. 수능이 끝나면 우리집으로 들어갈 거라지만 약간 내쳐진 기분이었다.

거미한테 내 상황을 투영하는 건 아니지만 의도치 않은 가족해체를 시킨 게 마음에 걸렸다. 에프킬라를 든 순간부터 의도치 않았다는 건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좀 외로운데 그냥 거미랑 같이 살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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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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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은 얼굴이 벌게진 채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베이스는 허공에서 부서지고 조각들은 부메랑인양
동네 한 바퀴를 돌고서야 우리 귀에 닿지
낮말은 새만 듣는다고 꼭대기층으로 쫓겨났으나
우리의 낮은 학교가 다인 걸 밤이 더 시끄러운 건 우리 탓이 아니야
컴퓨터한테 전원잭을 빼앗겨 넋 나간 앰프는 누가 옮기고
이 빠진 키보드 틀니는 누가 챙길 건데
해체는 했지만 조립할 줄 모르는 드럼을 들고 멍청히 서 있는 표정들이 좋아
부러진 드럼채는 푹푹 꽂아 무덤을 세우자
집까지 피크가 따라오기 전에 주머니를 비우자
지나치게 긴 손톱과
지나치게 짧은 손톱
스무 살이 되면 모두가 같은 손톱을 가질까
중압감은 곧 중력 시간은 멈춘 것만 같았는데
창문은 열어놓고 문단속은 철저히 이 습관만 남겨놓을래
그래 그래 기타가방 같은 건 죄다 태워버리자
불은 무서우니까 조명 위에 얹어놓고 기다릴래 어쩔 수 없어
물에 퍼지는 약가루가 불꽃놀이보다 화려했는데 뭘 기대하는 거야?
손톱 밑 굳은살이 흐늘거릴 때
우린 아무 어른이 되는 거야 아무 어른이 되는 거야 어른이 되는 거야
야 어른이 뭐야 달력이 한 장밖에 안 남았는데 아무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냥 술냄새 숨기려 아이스크림을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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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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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스스로를 화인이라 칭했다. 인간은 낯설어했다. 차라리 수인이면 용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짐승은 씨가 마른 지 오래라, 그것도 푸념뿐이었다.

인간은 오랜 도륙에 지쳤다. 그래선지 화인의 변화를 한참 뒤에나 알아차렸다. 화인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어설프게 인간을 따라했다. 수술과 암술이 부끄러워 꽃잎을 땅에 처박고 뿌리로 벙긋벙긋 말을 걸었다. 아담과 하와의 신화를 새로 쓰려는 그들에, 인간은 뱀이 무엇인지 부러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을 불쾌한 골짜기 한가운데 빠뜨린 죄로 화인은 그 옛날 짐승들처럼 배척당했다.

제초제통이 유독 무거웠다. 다기는 지구 마지막 구역에 다다를 때까지 내내 얼떨떨한 낯이었다. 화인은 도망친 지 오래고 아직 부끄러움을 모르는 풀들만이 꼿꼿이 땅에 뿌리 내린 채 하얀 분말을 뒤집어썼다. 프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말을 살포해댔다. 다기는 그런 그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프그는 몇 안 남은 인간의 대장격이었고 또 몇 안 되는 믿을 만한 인간 중 하나였다. 다기는 화인에 대한 감정보단 프그에 대한 믿음 그 비슷한 무언가에 기대 통을 탈탈 비웠다. 전지구라고 해봤자 네 시간이면 빠짐없이 밟을 수 있는 땅 위로 내려앉은 가루들이 퍼석했다. 식물들은 곧 말라죽을 테고 식물에게서 힘을 얻는 화인도 곧 말라죽을 터였다. 다기는 언젠가부터 온 적막에 실없이 어깨를 주무르며 프그의 눈치를 살폈다. 앞으로의 계획 따윌 물을 생각이었으나 곧 어설프게 올라간 프그의 입꼬리에 엉켜있는 불안을 읽었다. 다기는 턱까지 늘어진 말을 애써 삼키고 항상 그랬듯 속으로 되뇌기만 했다.

식물이 없으면 화인은 죽겠지만, 인간은요? 짐승도 식물도 없는 땅에서 인간은 무얼 먹나요? 인간? 역시 다음 토벌은 인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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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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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넌 쟤의 발그레 분홍바다 같은 미소를 지워버리고 싶단 거잖아

눈싸움 해봤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곱고 노란 흙만 솎아 섞어 응 더 꽉꽉 눌러 뭉쳐야지

맞혀버려 쟤 얼굴에 홍조가 걷혀야 숨이 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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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1시가 조금 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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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벌써 네가 처음 내게 담긴 여름이 돌아왔어요. 끈적끈적한 운동화가 껌 때문인지 아스팔트 때문인지 모를 때 문득 네가 생각났어요. 요즘은 울컥울컥 무언가가 올라와요. 감정이라는 뻔한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건 사실 가라앉은 지 오래죠. 너는 심심하면 툭툭 건드렸지만 너무 덩어리져서 몇 바퀴 채 못 돌고 내려앉고 만답니다. 그냥 나는 위장약을 털어 넣어요. 가을 겨울은 혹독했지만 봄만큼 모질지는 않았어요. 봄은 네 인사 그 자체였으니까요. 선생님이 꿈이라는 너의 목소리는 너무 나긋해서 그만 기숙사를 나왔어요. 우정과 배덕 그 어딘가의 균열이죠. 나는 로프도 매지 않고 뛰어내렸어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는 건 행운인가요? 나는 사실 잘 지내요. 어쩌다 일기장을 봐버렸네요. 너는 항상 잠이 부족하다했으니까,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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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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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입안에서 굴리는 중이야

네가 내 말이 초록색이라 한 이후로 내가 얼마나 말을 다듬고 주는지 모르지

둥글게 둥글게

너는 아직도 말이 단 줄로만 아니까

다른 스펙트럼은 다 씹어 없애고 무지개 가운데 빛만 줄게

아차 그건 보라색이야

까득까득 교정기 사이로 새어 나가네 미안 주의할게

넌 푸른 안개꽃을 좋아해? 맞아 네 웃음소린 푸른 겨울새벽

중도의 길은 힘들지

넌 언제나 푸르르고 내가 어쩌다 빨간색을 덜 쪼개고 건네면 넌 도망갈 거야?

따뜻은 넘치고 따듯한 색에게도 관심을

아 웃네 예쁘게 이것도 초록색이었니? 그래도

심해는 싫어 내게 옅은 말을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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