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의 기술(퇴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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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은 12시간 운전대를 잡는 것보다 12시간 자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난 날부터였다. 민식은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맨발이라 신발에 뒤꿈치가 쓸리는 것도 모른 채 뛰었다. 쇠 냄새와 녹 슬은 간판들이 가까워졌다. 회사 앞에 도착한 민식의 눈에는 주차장이 보였다. 트럭들이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민식은 속도를 줄이고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3층에는 사무실이라는 글자가 박힌 유리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칸막이 너머로 사람들이 민식을 흘낏거렸다. 면식이 있는 대리가 민식에게 웃어 보였다. 연락 못 받으셨나 봐요. 민식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오늘인가요? 대리가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오늘부터랍니다. 민식은 대리에게 눈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 뒤꿈치가 아파져 왔다. 민식은 계단에 앉아 신발을 벗어 상처를 보았다. 신발을 고쳐 신고는 그대로 앉아 생각을 반추해 보았다. 그러다가 왜 오늘 늦게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어제가 붉은 조끼와 구호, 돌고 도는 술잔, 그런 것들로 형상화되어 민식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밖으로 나와 공단이 즐비한 곳을 지나 8차선 횡단보도를 기다리면서 민식은 중얼거렸다. 파업이구나.

며칠 전부터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민식은 운전대를 잡은 지는 육 년이 넘었지만 트럭을 몰은 지는 일년이 조금 넘었다. 노동 강도나 그에 못 미치는 얄팍한 보상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다. 문제가 생긴 건 하루 이틀 미뤄지던 봉급이 석 달째 자취를 감추었을 때부터였다.  회사 사정이라며 며칠 지급이 미뤄지는 건 민식도 익숙했다. 그러나 3달은 아니었다. 사무실은 두 달을 시달린 끝에 아예 문 앞에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투의 종이를 붙여놓았다. 어떤 이들은 술을 마시고 회사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거나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에 잡혀갔다. 퇴근길 지나가듯 던지던 말들이 진지한 대화로, 모임으로 구체화 되어갔다. 민식이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물어볼 즈음에는 모든 사항이 결정된 후였다. 어제는 확정된 결론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민식은 그 틈에 끼어 보기로 했었다. 회사에 충성한다고 내일이 보장된 일자리도 아니었다. 아저씨들 측에 붙는 게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는 길이라고 민식은 결정했다. 그렇지만 민식은 파업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저 오늘부터 무직이었다. 민식은 군대 시절부터 모아둔 돈이 얼마 정도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한 몇 달은 버틸 수 있었다. 그 뒤는 장담할 수 없었다. 민식은 회사에 붙었다면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다가도 업계 사람들에게 밉보여 운전대도 못 잡는다면 큰 일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횡단보도 불이 켜졌다.

민식은 집 계단을 올랐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오늘은 놀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민식이 바닥에 눕자 마자 전화가 울렸다. 민식의 휴대전화는 아니었다. 민식이 사는 원룸 공동식당에 연결된 전화였다.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을 때 사용하거나 걸려온 전화를 주인집이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용도였다. 원룸 문을 꽉 닫지 않으면 아래서부터 벨소리가 울렸다. 민식은 어쩐지 전화를 직접 받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공동식당이 있는 일 층으로 내려갔다. 집주인이 이미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민식에게 건넸다. 학생한테 온 전화네. 고등학교 친구라는데? 민식이 아 예, 하고는 두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가 한 손을 뺐다. 여보세요. 민식아. 귀에 익은 목소리였지만 이름이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쪽에서 먼저 정체를 밝혔다. 오랜만이라서 까먹었구나. 나 형철이야. 박형철. 민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박형철이 자신과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침묵이 어색해질 즈음에야 민식은 박형철이 그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같은 반이었음을 상기해냈다. 사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것도 기억났지만 몇 번 스쳐 지나간 것 말고는 관계가 없었다. 민식은 전화를 끊는 쪽으로 유도하고 싶었다. 어중간한 사이의 고등학교 동창이 걸어오는 전화는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간단하고 어색한 관계증명과 그 뒤로 이어지는 대출 권유, 다단계, 공동투자 제의 같은 데 민식은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형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직 내가 누군지 잘 기억이 안 나는 것 같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다. 민식은 드디어 동창 등쳐먹는 방법도 진화한 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민식은 형철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려 노력해보았다. 그렇지만 도저히 떠올리려야 떠올릴 수가 없었다. 형철은 민식과는 다른 무리였고 말을 섞거나 했던 적도 없었다. 어쩌다 눈 마주치면 어색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왜 자신에게 형철이 전화를 했는지 민식은 알 수가 없었다.

형철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 건 이틀 즈음 뒤였다. 민식은 전화벨이 다섯 번쯤 울리기를 기다렸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 박형철이야. 이제 내가 기억나니? 민식이 대답했다. 어. 고등학교 동기잖아. 너무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그때는 잘 기억이 안 나더라. 민식은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몇 초 지나서 민식의 귀로 형철의 대답이 들렸다. 다른 게 아니고, 운전 좀 가르쳐 줄 수 있나 해서. 운전? 민식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 너 운전 잘하잖아. 내가 운전 잘하는지는 어떻게 알아? 아니, 잘할 것 같다고. 너 고등학교 때부터 운전했잖아. 민식은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민식이 3학년 생일이 지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서 종종 아버지 차를 운전하고 다녔던 건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형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였다. 민식이 말했다.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너 나랑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아, 그랬지. 민식이 대답했다. 머릿속으로는 졸업앨범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민식은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내가 가르쳐주는 것도 좋은데 운전학원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내가 다녔던 데 괜찮은데. 민식이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운데, 아무 데서도 안 받아주겠대. 네가 좀 도와주라. 기본기만 가르쳐줘. 돈도 줄게. 민식은 마음속으로 통장잔고와 귀찮음을 양팔저울에 달아 보았다. 아직까지는 잔고에 대한 걱정이 가벼웠다. 그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운전 되게 잘하는 사람 있는데. 그 사람 소개해 줄게. 그게 더 나을 거야. 형철이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음. 그럼 일단 전화번호 좀 주면 내가 연락할게. 그래. 다음에 만나서 밥 한번 먹자. 민식이 전화를 끊었다.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식은 이제 누구를 형철에게 소개해줄 지가 고민이었다. 영민이 떠올랐다.

영민이 민식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건 다섯 달 전부터였다. 직전까지 군대에서 운전병을 하다 결국 운전하는 직업으로 굴러들어왔다고 영민은 말했다. 영민이 오기 전까지 민식이 하던 허드렛일은 영민의 차지가 되었다. 영민은 남의 말을 잘 믿는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사회경험은 이제 백지에 점 하나를 찍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오래지 않아 발생했다. 엔진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되자 그 일은 자연히 막내인 영민의 몫이 되었다. 그러고서는 며칠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민식이 영민에게 주문은 했냐고 물었다. 영민은 내일쯤 올 거라고 답했다. 다음날 민식은 출근하다가 한 켠에 쌓인 오일 통들을 보았다. 민식은 온몸을 차가운 침이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쓰던 파란색 통에 담긴 엔진오일이 아닌 회색 통이 쌓여 있었다. 민식은 가까이 다가가서 라벨을 확인한 후 머리를 감싸 쥐고 낮게 신음을 뱉었다. 그 모든 모습을 바라보던 영민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요? 큰 일 났지. 우리가 모는 차는 이 엔진오일 안 써. 이거는 배기가스 포집 장치가 달린 차량에 쓰는 건데 우리 차에는 그런 거 안 달려있다고. 그 말을 듣는 사이 영민의 피부가 하얗게 표백되어갔다. 가뜩이나 흰 얼굴이 투명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러고는 둘 다 말이 없었다. 민식은 침착하려 애썼다. 누구 한 명이라도 이 광경을 본다면 영민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싸잡아 화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야, 이거 다른 데로 치워봐. 환불한다고 연락하고. 내가 형님들한테 내가 잘못 주문해서 배송 늦어진다고 말할 테니까. 그 말을 하는 민식을 바라보는 영민의 눈빛은 사흘 굶고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오천 원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이미 눈을 푹 깔은 죄책감 어린 얼굴로 변해 있었다. 민식은 영민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돌아섰다. 퇴근할 무렵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었지만 민식은 그런 말들을 마음속에 담아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뒤로 영민은 민식이 시키는 일이라면 토를 달지 않고 해냈다. 성실하고 모나지 않아서 사람들 틈에 녹아 들었다. 민식은 영민 정도면 아무리 형철이 답답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부탁이니 거절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형철은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지 않아 한 달 전 통화내용을 뒤져서 전화를 걸었다. 영민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영민은 회사 지하 휴게실에 있다고 했다. 거기는 왜? 민식이 물었다. 여기가 노조 사무실이래요. 영민이 대답했다. 민식은 일단 그리로 간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민식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회사 건물 지하 휴게실로 향했다. 철문 둥근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오래된 먼지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비닐 장판이 깔린 바닥에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은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렁이고 있었다. 모두 빨간 조끼를 입었고 더러는 머리띠도 메고 있었다. 드물지만 머리를 민 사람도 보였다. 벽 한쪽에는 문구가 적힌 종이 피켓과 천으로 된 걸개가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영민아. 민식이 불렀다. 의자에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던 영민이 일어났다. 빨간 조끼에 짧은 머리였다. 민식이 영민을 한 번 더 불렀다.

영민과 민식은 지하에서 건물 주차장으로 올라왔다. 민식이 말하려는 찰나 영민이 퉁명스레 물었다. 형, 형은 회사 편이에요? 민식은 영민이 왜 갑자기 이렇게 물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나는 엄밀히 말하면 노조 편이지. 노조 가입도 되어 있고. 영민이 느릿하게 톤을 달리해서 말했다. 그러면 왜 노조에 가입은 되어 있는데 활동은 안 해요? 혹시 프락치 그런거에요? 누가 그러디? 아저씨들이 참여 안 하는 사람들도 회사랑 다 한통속이라던데. 민식은 대화가 의도치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그런 게 아니고, 나는 네가 내 친구 운전 도와주는데 관심 있을까 궁금해서 와봤어. 그럼 전화로 해도 되잖아요. 그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와봤어. 나도 노조원이니까. 민식이 말했다. 영민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말했다. 글쎄요. 집행부에서 노조 활동 이외에 금전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활동은 지양하라던데요. 어쩔 수 없어요. 영민은 고개만 숙여 인사를 하고 지하 계단으로 걸어갔다. 민식은 집으로 향했다. 민식 생각에 영민은 순하고 성실하지만 그만큼 백지처럼 물들기 쉬웠다. 민식은 점점 자신이 보라색으로 변해감을 느꼈다.

 

결국 민식은 형철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노조에서는 시위 일정과 선동 포스터를 단체 메세지로 보낸 뒤 미참가자는 제명하겠다는 협박을 했고 동시에 사측에서는 회사 법무팀 명의로 이러저러한 법에 의해 불법 시위로 규정되었으니 참가자는 제명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민식이 택한 방법은 방 안에 틀어박히는 것이었다. 습한 이불에 모로 웅크리고 있으면 멀리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민식은 귀를 막거나 잠을 청했다. 티비를 틀면 뉴스는 보지 않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소리지르고 때로는 악수를 했다. 일주일 동안 함성소리가 민식의 반지하방 창문을 때렸지만 월요일의 기세는 화요일만 못했고, 토요일 정도부터는 차 다니는 소리가 더 요란했다. 금요일 쯤 문을 두드리던게 영민이었던 것이 민식은 그렇게 생경하지 않았다. 트럭들은 잘만 돌아다녔다. 앞에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작은 현수막을 붙이고서. 민식은 창문 밖을 바라보다 트럭이 농성하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큰 길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유리창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차는 고가도로로 천천히 올라갔고 멀리서 보아도 수염이 거뭇한 사람들은 천천히 올라가는 , 상승하는 옛 생계수단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나마도 해 질 무렵 놀이터처럼 하나 둘씩 수가 줄어갔다. 민식은 대충 밥을 차려서 상을 내왔다. 형 나 좀 도와줘요. 영민이 국에 말아서 밥 한공기, 김치랑 밥 한공기, 반찬을 비벼서 한 공기를 먹어치우고는 말했다. 노조고 뭐고 배고파서 못하겠어요. 트럭 지입도 갚아야 하는데 수입이 없어요. 형, 그 저번에 형이 말한 그 운전 도와주는 거 있잖아요, 제가 할게요. 동생 한 번만 살려줘요. 영민은 밑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민식은 형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민식은 가끔 공사장에 나갔고 밤에는 편의점에서 새벽까지 지샜다. 근근이 먹고 살 만은 했지만 잔고가 조금씩 줄어드는 건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노조에서는 회비를 내지 않으면 노조에서 자동으로 탈퇴된다고 문자가 왔다. 민식은 번호를 차단했다. 구인신문을 뒤져보았지만 가위표만 줄을 이어 그릴 뿐이었다. 민식은 형철에게 영민을 소개해 준 것이 아쉬워졌다. 그깟 운전이 뭐 대수라고. 형철에게 돈을 좀 더 올려 받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시간쯤 기초를 가르쳐 주고 나면 괜찮게 수입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영민의 좌절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단념시켰다. 민식은 한 달 간격으로 트럭을 임대했지만 영민은 트럭을 덜컥 사버렸고, 달마다 돌아오는 할부금은 영민이 감당해야 할 빚이었다. 민식은 이런 생각으로 공사장이나 편의점에서의 시간을 보내려는 자신을 역겨워하며 번뇌를 끝맺고는 했다.

영민이 연속으로 전화를 건 밤 민식은 편의점에 있었다. 민식은 급하게 바코드를 찍고 앞치마 안을 뒤져 전화를 찾았다. 형, 나 운전 도와주는 거 그만뒀어요.  무슨 일인데? 그 사람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도대체가 몇 번을 알려줘도 감을 못 잡더라고요. 아니 운전은 고사하고 시동도 못 걸더라니까. 겨우 시동 걸고 액셀이랑 브레이크 밟는 것까지 가르쳐줬죠. 그러니까 자기가 이 정도면 됐다고, 운전학원 가본댔어요. 몇 주동안 한 게 그게 끝이야? 그거라도 한 게 다행이죠. 알았어. 회사 소식은 듣냐? 영민이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요새 회사에서 대체인력 뽑아서 운행하는 거로 모자라서 노조원들은 해고한다는 소문때문에 다들 난리예요. 형은요? 나? 모르겠어.

형철이 예의 힘없는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던 건 두 달 뒤였다.  운전학원에 다니면서 면허를 땄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영민이 도와주었던 이야기나 시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민식은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 때마침 손님이 물건을 한가득 들고 오는 것을 보았기에 잠시만, 이라고 말하며 형철의 말을 끊었다. 형철은 조금 있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운전면허를 따기는 했는데 완전한 건 아니야. 민식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형철은 연습면허를 땄다고 말했다. 도로주행 중이라고 차에 붙이면 도로에서 주행은 가능하대. 그런데 2년 이상 운전한 사람이 동승해야된대. 민식은 형철 주변에는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도와달라고? 응. 돈도 줄게. 형철이 너무 스스럼없이 말해서 민식은 당황했고 얼버무려 대화를 끝냈다. 민식은 정작 약속 전날까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만취한 채로 늦잠을 자다 알람이 울리고서야 민식은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해냈다. 민식이 약속 장소로 가니 형철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법한 회색 경차였다. 아직 뒤에는 도로주행이라는 글자가 없었다. 형철이 왼손에 들고 있는 종이가 그것인 것 같았다. 민식이 어떻게 차를 구했냐고 물었다. 형철은 웃으면서 렌터카라고 말했다. 도중에 운전면허 없이 여기까지 차를 운전했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조금 긁히긴 했지만, 하고 덧붙이기는 했다. 형철은 동네를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민식이 할 일은 조수석에 앉아서 그가 어떻게 하는지 도와주면 되는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 몰랐지만 민식은 차 시트에 앉자마자  눈꺼풀이 조금씩 감기는 것을 느꼈다. 애써 참아보려 했지만 몸을 웅크리고 싶어졌다. 형철은 더듬거리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차가 주차된 모퉁이를 돌 때는 몇 번이나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민식은 잠시 졸다가도 뒷 차가 울리는 경적에 몇 번씩 고개를 쳐들었다. 형철과 민식은 시내를 빠져나와서 강 바로 옆 4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교통량이 많지는 않았다. 덕분에 민식은 팔짱을 끼고 잠에 취할 수 있었다.

민식은 타의로 잠에서 깼다. 길게 경적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옆을 보니 형철이 겁먹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앞 신호등을 보니 파란 불이 선명했다. 민식이 풀썩 소리 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지금 출발해야 돼. 형철이 조금씩 속도를 냈다. 뒤차들이 경적을 울리고는 앞질러 갔다. 제기랄. 민식이 중얼거렸다. 이제 그는 잠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민식이 흘낏 보니 형철은 뒤에서 악마라도 쫓아오는 듯한 얼굴이었다. 속도계는 30킬로를 넘지 않았고 뒤로 따라오던 차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깨닫고 탈출을 시도했다. 민식은 형철이 운전하는 차선 뒤에 단 하나의 자동차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형철은 편안해 보였다. 민식은 엔진 소리가 커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원형교차로를 무사히 통과했지만 오거리가 나왔다. 형철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민식은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며 찰나의 잠에서 깨어났다. 형철이 이제껏 올렸던 속도를 갑작스레 늦추었다. 민식은 차 앞부분에 거의 닿을 만큼 몸이 당겨졌다. 민식은 운전을 도와주러 왔다는 것도 깜빡한 채 자기 잠을 방해한 게 무엇인지 파악에 나섰다. 민식은 형철이 거의 걷는 정도 속도로 운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야, 뭐 하는 거야? 민식이 물었다. 아까 도로에 속도제한 09라고 적혀있던걸. 60이 아니고? 민식이 말을 끝낸 순간 앞에서 트럭 하나가 미친 듯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민식은 형철을 보았다. 그는 운전대를 잡고 민식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민식은 안전띠를 풀었다. 엑셀에 올려진 형철의 발을 밟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트럭은 민식과 형철이 탄 차 트렁크 부분을 스치듯 지나갔다. 민식은 그대로 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차선을 바꾸었고, 갓길에 세웠다. 민식이 조수석 의자로 돌아가서야 몸에 힘을 풀었다. 형철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민식이 형철의 뒤통수를 쳤다. 다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역주행을 한 거야? 형철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몰랐어. 그게 뭔지 몰랐다고. 민식은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미친 듯 긁었다. 차 문을 열고 나갔다. 형철은 시동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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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볼 일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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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서 발버둥 친다고 벗어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있을까. 태어나면서 들고 왔던 이를 죽을 때까지 쓰는 이로 바꾸는 과정만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싫어했던 일들이 대개 그러했듯 언제나 끔찍하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구강 검진만 하러 가지만 어렸을 때는 이를 뽑으러 두세 달에 한 번은 치과에 가야 했다. 혼자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 형과 함께였다. 나와 달리 형은 충치가 잘 생기는 편이었다. 내 이가 흔들리면 형 이도 까맣게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 이를 뽑는 겸 형의 충치 치료도 했다. 이를 뽑으러 가는 치과는 걸어서 5분이면 가는 상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1층 약국 빼고는 꼭대기까지 병원만 있는 건물이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어야 했는데,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실내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발에 맞지 않아도 억지로 신었다. 이름이 불리면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 통유리 너머로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삼 층 건물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은 평온하게 삶을 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나는 상관없다는 듯 그들은 걷고 뛰었다. 간호사는 몇 번 입을 살핀 뒤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수 초 안에 이를 뽑았다. 어금니가 아니면 피가 많이 나거나 아픈 기억은 없다. 거즈를 물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치과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이를 뽑은 뒤에 있었다. 나는 만화를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집에 만화책이 꽂혀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집에 만화라고는 학습만화뿐이었다. 그런데 치과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만화책이 서가 한 쪽에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형의 충치 치료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그동안 나는 입을 앙다물고 빠르게 만화책 책장을 넘겼다. 한 권이 끝날 때쯤이면 얄밉게도 형이 걸어 나왔다. 집에서는 만화책을 볼 수 없었기에 어머니가 계산하는 동안에도 나는 만화에 코를 박고 있었다. 이가 흔들리면 이를 빼러 가는 괴로움보다도 만화책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초등학교를 지나면서는 영구치가 자리 잡으면서 이를 뺄 일이 없어졌다. 치과에 발길을 들이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검진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했고, 지정된 치과에서만 진찰을 받았다. 언젠가부터는 만화책이 집 서가에 꽂혀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만화보다 다른 일이 더 재밌어졌다. 이렇게 되니 나는 그 치과 앞 건물은 자주 지나쳤지만, 치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2층에 있는 다른 병원에 가고 1층의 약국에서 약을 샀지만 3층 계단을 오른 적은 없었다. 계절이 몇 번 돌고 돌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검진하러 그 치과에 들렀다. 어릴 때 신던 실내화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벽지나 가구는 바뀐 것이 없었다. 손님은 나뿐이어서 곧바로 검진에 들어갔다. 지난날에는 침대 커버에 신발이 닿아서 더러워질까 봐 신발을 벗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의사가 옆에 앉았다. 침대가 뒤로 젖혀지고 주황색 불빛이 보였다. 의사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 없이 이를 들추어 보았다. 치아와 금속이 맞부딪히며 똑딱거렸다. 기구를 치우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똑같은 만화책들이 낡고 바랜 채로 그 자리에 있었다. 간호사가 내 진료기록이 적힌 주황색 파일을 보여주었다. 여기 어렸을 때 기록도 있네, 하고 어머니가 종이를 들춰보다가 말했다. 의사가 서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렸을 때가 기억난다면서 웃어 보였다. 나도 미소를 지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치과 문을 열고 나왔다.

 

그때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같은 건물 2층 안과에서 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상가 벽에 임대라고 큰 글씨로 쓰여 있고 그 밑에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 안쪽 엘리베이터 층 안내를 보니 그 치과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처음에는 평거동이나 충무공동 혁신도시로 이사를 하였겠거니 했다. 그곳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비례해 이곳 근처의 인구는 줄어들었다. 가게들도 건물을 비우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임대 종이만 나붙었으니 나는 옮긴 것도 아니고 폐업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다른 지역으로 갔다고 했다. 영업을 그만둔 것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이제는 찾아가기가 힘들어졌다는 생각에 낡고 바랜 만화책들도 버리고 떠났음이 틀림없었기에 씁쓸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주황색 파일들을 생각해보았다. 10년 전 한 번 오고 말았던 사람도, 이사 하루 전 처음 와서 검진했던 사람도 저마다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이사하며 주황색 파일까지도 버렸을지 궁금하다. 더는 찾아오지 않을 사람들의 기록이라 파쇄기에 집어넣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도 카운터 서랍에 쌓여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주소를 찾아가는 일이 있어도 내게 익숙하던 모습은 볼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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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싫어서 밤을 새운 날이 많았다. 오늘은 아니었다. 정신은 깨었지만 눈은 감고 있었다. 그 상태로 몇 초 정도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깨달았다. 새벽 내내 체온으로 더워진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등이 식는 느낌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아침밥을 차려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눈을 떴다. 몸을 양옆으로 움직여 등을 찬 바람에 조금씩 적응시켰다. 턱에 힘을 주고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눈앞이 깜깜해졌다가 맑아졌다. 다리를 하나씩 지상으로 내리고 발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소파 앞 탁자를 보니 펴진 신문지와 짜장면 그릇이 남아있었다. 눈을 감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더듬거리며 불을 켰다.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물을 손으로 모아 얼굴에 끼얹었다. 정신이 돌아왔다. 옷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부엌으로 갔다. 조그만 창으로 밖을 보니 해는 떴지만 사람은 없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도 냄비 하나 없었다. 냉장고를 털어 유통기한이 이틀 남은 콩나물로 국을 끓였다. 거품들이 열을 이기지 못해 아우성을 지를 때쯤 아버지는 일어나 말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국과 밥을 퍼서 그릇에 담고 옮길 즈음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목에 수건이 둘려 있었다. 소반을 거실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국물을 한 숟갈 마시고는 밥을 퍼서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나도 숟가락을 입으로 날랐다. 아버지는 작업복을 입고 목에 흰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상의 주머니에 목장갑이 삐져나와 있었다. 지금 나가시려고요? 내가 물었다. 늦게 나가면 일도 안 주더라. 아버지가 국물을 소리 나게 마시고 말했다. 쉬엄쉬엄하세요. 내가 말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밥알이 제대로 씹히지 않았다. 아무리 씹어도 침이 나오지 않아서 밥알은 바수어지지 않고 입안을 부유했다. 아버지는 밥공기를 비우고 물을 채워 마시고 있었다. 그릇을 내려놓고 아버지가 말했다. 참, 운동 안 하면 너 이제 뭐 할 생각이냐? 일단 아무 데나 일할 자리 알아보고 조금 있다 복학해야겠죠. 아버지는 이를 쑤시며 말했다. 막일 같은 건 할 생각 말고, 내일인가 김관장이가 대회를 연다고 난리던데 저번에도 말했지만 너는 그런데 들러리 설 생각 마라. 제가 왜 그런 데를, 하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는 등이 축축했다.

 

몇 주 전 주말이었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고 찬장을 뒤졌지만 남아있는 건 먼지뿐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집 앞 구멍가게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한 블록 너머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으로 가야 했다. 라면 한 봉지를 사서 걸어오는데 도로 건너편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곳까지 가려면 집을 지나쳐서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했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다 조금 더 걸어서 도로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니 포스터가 한 장 붙어 있었다.  근처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벽이며 바닥에 똑같은 포스터를 열심히 붙이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무늬에 굴림체와 문서프로그램 티가 나는 말풍선들이 보였다. 찬찬히 읽어보니 동네 체육대회가 열린다는 소리였다. 종목마다 상금이 붙어 있었다. 나는 무심코 복싱을 보았다. 1등 500만 원.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 바라보았다. 5만 원 상품권도 50만 원도 아닌 500만 원이었다. 지원자격을 보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들어와서 바깥으로 밀려났다. 별 볼 일 없는 듯해서 몸을 반쯤 뺀 탓이었다. 다시 어깨에 힘을 주고 팔꿈치로 밀어 포스터 앞까지 갔다. 갑자기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졌다. 라면 봉지가 대신 벽과 충돌하며 박살이 났다. 얼굴을 찡그리고 뒤를 살피다가 지원자격을 보았다. 무상체육관 문의라고 적혀있었다. 아버지 합의금 400만 원을 생각해 보았다. 우승하면 벌금에다가 100만 원까지 보태는 셈이었고, 준우승만 해도 200만 원 정도는 어찌어찌 손을 빌리면 가능할 것 같았다. 문제는 무상체육관까지 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포스터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앳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장님 바꿔주세요. 내가 말했다.

 

어려서부터 집에는 트로피나 상장이 많았다. 자라면서 내 이름이 적힌 것도 몇 개 추가했지만 아버지가 현역 시절 따온 게 대부분이었다. 상장은 집에서 유일하게 책을 꽂아놓는 장소인 허리까지 오는 삼단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양한 펀치 자세를 취한 채 트로피들은 먼지만 쌓여갔다. 중학교 대회부터 전국체전까지. 국제대회는 하나도 없었다. 강 회계사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대표 결정전만 되면 맥을 못 추던 당신의 정신력과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딱 한 번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기대에 부풀어 친구들을 모아 텔레비전 앞에 앉았던 나는 아버지가 초장부터 남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고 보여야 했다. 아버지는 몇 년 더 버티다가 아무도 모르게 링을 떠났다. 자기 이름을 딴 체육관을 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런데 옆 골목에 프랜차이즈 체육관이었던 무상체육관이 생겼고 설상가상으로 임대료까지 높아졌다. 몇 달마다 이삿짐을 쌌다. 같은 동네를 맴돌았지만 건물은 갈수록 초라해져 갔다. 무상체육관 김 관장은 그렇게 아버지와 마주치기만 하면 말싸움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는 말싸움을 하고 나면 술을 마시고 무상체육관이 얼마나 별로인지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무상 체육관 관장인 김 관장에게 머리를 숙이러 간다. 그런 생각을 하니 미간 모양이 복잡해졌다.

 

네온사인이 물들인 도로를 건너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틀자 벽을 조잡한 그리스풍 조각으로 장식한 건물이 보였다. 불투명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인테리어는 시대와 발맞추기를 포기한 듯했다. 주황색 불빛이 먼저 반겼다. 수채화풍 꽃이 진흙 색 벽지를 장식했지만 색감은 칙칙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들어가니 온통 붉은색에 조명까지 붉은색이었다. 긴 테이블 상석에 김 관장이 앉아 있었다. 여기 앉게. 그가 말하자 혈색이 좋은 얼굴이 번들거렸다. 턱과 코가 튀어나와 있어 살짝 보아도 잊어버리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매끈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는 흰머리가 몇 가닥 보였다. 은색 양복은 그의 얼굴만큼이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의 오른쪽에 앉았다. 요새 경기가 안 좋다는데 아버지는 잘 계시나? 일하느라 바쁘십니다. 벌금 갚아야죠. 김 관장이 갈색 병을 기울여 격자무늬 유리잔에 술을 따랐다. 아, 사고 났다고 했었지. 무슨 사고? 폭행 사건에 휘말리셔서요. 먼저 때린 건 상대방이었죠. 내가 입술을 한 번 모으고 대답했다. 아아. 그런데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지는데. 김 관장이 고개를 높여 잔을 비웠다 나는 잠시 입을 닫았다. 김 관장이 잔을 놓았다. 텅하고 나무 테이블이 울렸다. 내가 말했다. 그 동네 체육대회 말입니다. 잘 안 들리는데. 김 관장이 왼쪽 눈썹을 세우고 표정을 찡그렸다. 체육대회 복싱에 제가 참가해도 되겠습니까? 김 관장은 그 표정 그대로였다. 다시 술을 따르고 마셨다. 잔을 내려놓았다. 호탕하게 웃었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묻나? 그냥 우리 체육관에 가서 신청서만 쓰면 되는 것을. 그게, 저희 아버지하고 김 관장님하고, 내가 말끝을 흐렸다. 김 관장이 내 오른쪽 어깨를 잡았다. 사람들이 살기가 각박하고 그러면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이웃사촌이 되어서 쩨쩨하게 굴면 쓰나. 지난 거는 지난 거고, 그래 따지고 보면 자네하고 내가 원수진 것도 없잖나. 김 관장이 자네를 강조해서 말했다. 그거야 그렇죠. 내가 말했다. 김 관장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체육관에 말해 놓을 테니 신청서는 아무 걱정 없이 내게. 힘들다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기회를 막으면 안 되지, 암. 김 관장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가 취해서인지 정말 선심을 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잘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김 관장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려는 찰나였다. 김 관장이 물었다. 그런데 자네, 복싱 말고 할 줄 아는 운동은 없나? 내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초등학교 때는 씨름을 좀 하다가 복싱으로 옮겼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봉서 체육관에 들렀다. 돈을 들이지 않고 연습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원래는 열려있던 입구가 차단막으로 덮여 있었다. 임대, 권리금 없음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다행히 차단막은 자물쇠로 잠겨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체육관 열쇠를 어디에 두었냐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은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났다. 아버지는 이미 나간 뒤였고 상만 거실에 놓여있었다. 그릇을 갈무리해 개수대에 갖다 놓았다. 상을 휴지로 대충 훔치고 다리를 접어 벽에 비스듬히 세웠다. 흰 티셔츠로 갈아입고 검은색 트레이닝복 반바지를 입었다. 거울을 보고 비뚤어진 티셔츠 목 부분을 바로잡았다. 삼단 서랍 맨 위 칸을 열었다. 열쇠 여러 개가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체육관 예전 주소들이 열쇠 몸통에 적혀 있었지만 제일 최근 것만 없었다. 아버지가 따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옷걸이에 걸린 아버지 등산복 바지 주머니를 만져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옷걸이 밑 아버지 권투 글러브에 눈이 갔다. 무릎을 굽혀 꺼냈다. 먼지를 털고 흔들어 보았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안에 열쇠 세 개가 달린 고리가 있었다. 주머니에 넣었다. 길을 걸으며 동선을 그려보았다. 무상체육관에 먼저 들러야 할 것 같았다. 무상체육관은 집에서 십 분 정도 걸어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3층 상가의 1층과 2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동문 안으로 들어가니 미세하게 땀 냄새가 느껴졌다. 사물함이 좌우로 늘어섰고 직선상으로 안내석이 보였다. 안내석 위에는 궁서체로 적힌 무상체육관이 금빛을 냈다. 앞으로 가니 기다렸다는 듯 신청서를 주었다. 나는 몇 가지 정보를 써서 냈다. 직원은 서류를 보고 잠시 전화 통화를 하고는 알겠다고, 가도 좋다고 했다. 나는 무상체육관을 나와서 왼쪽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짧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넜다. 조금 더 가서 봉서체육관 앞에서 멈추었다. 양손으로 차단막을 걷어 올렸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냈다. 유리문에 달린 자물쇠에 꽂았다. 잘 돌아가지 않았다. 열쇠 손잡이가 휘어지기 시작할 즈음 열쇠가 돌아갔다. 자물쇠를 풀었다. 위를 보았다. 붉게 봉서체육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오랜만에 다섯 글자를 입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차단막 안의 격자 창살까지 걷어내고 유리문을 열었다. 높이 달린 창에서 계시처럼 빛이 한 줄기 떨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선명했다. 몇 달 비웠지만 발자국도 없어진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전부 열고 먼지를 대충 훔치고 있는데 누가 문을 열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다 말았다. 누구 있수?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 쪽을 보다 강 회계사와 눈이 마주쳤다. 강 회계사는 대학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뛰었던 동료였다. 선수를 일찍 포기하고는 공부를 선택했고 회계사가 되었다. 알음알음 아버지에게도 도움을 많이 주는 모양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소주를 들고 집으로 찾아오고는 했다. 예, 회계사님. 강 회계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문이 열려 있어서 도둑이라도 들었거나 팔린 줄 알았네. 팔려고 내놓았는데 연락도 없네요.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자네 아버지 만나러 가다가. 아버지 계시나? 일하러 가셨죠. 벌금 때문에 무리하시는 것 같아요. 강 회계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경을 벗고 눈두덩을 비볐다. 미안하구나. 부상은 어쩌구? 너 체육관 열어놓은 이유가, 강 회계사가 숨을 골랐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 회계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왕 하는 거 보는 앞에서 실력 보여줘라. 다 나은 거냐? 앞으로는 선수로 뛸 생각은 없구? 부상은 다 나았죠. 그냥 실력에서 밀리니까 그만두려고요. 저도 다른 학과로 전과해서 복학하고 회계사님처럼 살길 찾아야죠. 그리고 가뜩이나 쪼들리는데 놀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뭐라도 해봐야지. 강 회계사가 회색 양복 상의 안쪽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대를 뽑았다. 불을 붙이고 숨을 내뱉자 먼지가 날리면서 연기도 퍼졌다. 봉서한테는 아무 말 안 하마. 그가 말했다. 강 회계사가 나간 뒤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체육관 중앙에는 정사각형 회색 바닥이 빨간 로프와 대비되는 링이 있었다. 코너 기둥 맨 위를 보니 먼지가 기둥 모양대로 쌓여 있었다. 걸레로 슬며시 훔쳤다. 로프를 벌리고 링 안으로 들어가 서 보았다. 중학생 때부터 이 링에서 아버지를 상대하고는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그게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악을 쓰는 나와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며칠 동안 운동만 계속했다. 그동안 흘린 땀만 모아도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데 문제없을 것 같았다. 집에서 체육관까지는 가볍게 뛰어서 오갔다. 러닝셔츠에 폴리에스터 반바지를 입고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휘날리는 이들이 집에서 나설 때마다 눈에 띄었다. 갈수록 늘어났다. 동네 놀이터 옆의 타이어로 둘레를 쌓아놓은 씨름장은 이미 중년들로 북적였다. 정작 아이들은 저 멀리 밀려나서 모래 장난을 했다. 이따금 사람들의 고함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을 지나가면 항상 모래가 얼굴에 튀었고 입에서 가래를 뱉고 다시 뛰었다. 운동은 줄넘기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 시절 쓰던 밝은 연두색 줄넘기로 뛰어야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서야 아령이라고 부르던 묵직한 줄넘기를 써도 체력이 버텨주었다. 부상 기간이 짧아서 군살이 많이 붙지는 않았다. 매일 아침 체육관으로 향했고 셔터를 열었고 돌아오며 모래 섞인 가래를 뱉었다. 하루는 방에서 글러브와 줄넘기를 숄더백에 넣고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였다. 예의 작업복 차림이었다. 손에는 새벽에 들고 나갔을 안전화가 들려 있었다.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손을 거두고 일어섰다. 무릎이 뿌드득 소리를 냈다. 내가 한 뼘은 더 컸기에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 웃옷 가슴팍의 뜯어진 자국을 보고 있었다. 갈고리 같은 것이 잡아챈 것 같았다. 그 사이로 흰 러닝셔츠가 비쳤다. 이때쯤 일어나냐? 아버지가 말했다. 말투는 평이했다. 예, 요즘 군살이 많이 붙어서, 빼려고요. 그제야 아버지가 내 발치를 보았다. 나는 괜히 운동 이야기를 했나 생각했다. 눈알만 굴려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는 내 발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글러브가 삐죽 튀어나와 있을 것이었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내가 당황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아버지, 오늘은 일 안 나가세요? 사람이 많아서 오늘은 공쳤다. 아버지가 방을 나가며 대답했다. 고개를 돌린 채였다. 문과 거실 경계에 아버지가 서 있었기에 뒤통수가 말을 해서 방이 윙윙대고 울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왼손에는 안전화가 들려 있었고, 자세히 보니 오른손에는 연한 개나리색 고지서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고지서를 거실 탁자에 놓고 안전화를 어지러운 신발장 사이에 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방을 나와서 탁자의 고지서를 펼쳐보았다. 경찰청에서 온 종이였다. 거기 놔둬라. 아버지가 작업복을 벗어 손에 들고 걸어왔다. 일주일 있다가 수도랑 전기 끊는단다. 그게 사람 사는 거냐. 아버지, 그럼 어쩌시려고요, 라고 말했던 것 같다. 노역 들어가야지. 가서 조용히 일만 하고 돌아오면 끝나는 거다. 거기도 사람 사는 데고, 노가다패들도 알고 보니까 노역 갔다 온 사람 많더라.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는 목소리 한 번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말하기 힘들었다. 그러면 감옥에 있는 거잖아요. 길어봤자 열흘인데 뭘. 별일이야 있겠냐. 운동 갈 거면 가라. 그러고는 아버지는 드러누웠다. 나는 집 밖으로 나왔다.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대회 다음날이 아버지가 노역 유치가 되는 날이었다. 그날이 지나면 수배가 걸릴 것이었다. 잡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평소보다 더 훈련량을 늘렸다. 녹초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서야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니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켠 채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라면을 끓였다. 라면 냄비와 탁자를 들고 가니 아버지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흰자위가 불그레했고 초점이 희미했다. 텔레비전은 뭐가 웃긴지 몇 초 걸려 웃음소리가 나왔다. 내가 손을 뻗어 전원을 껐다.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가 일어섰다. 조금 있다가 아버지가 냄비 채 라면을 들고 왔다. 한 손에는 김치가 든 보존 용기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가 탁자에 나무 받침을 깔고 스테인리스 냄비를 두었다. 김치를 놓고 뚜껑을 열었다. 시큼하기보다 쉬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사이 나는 냄비를 다 비우고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아버지가 한 입을 크게 먹고 김치를 집어서 우물거렸다. 형수야, 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라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대회 나가려고 하는 거냐?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끊임없이 가정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낸 결론은 말 돌리기였다. 최대한 대회와 관련 있으면서도 핵심으로 파고들지는 않는 주제로. 그런데 아버지, 김 관장이 아버지랑 무슨 원수를 졌길래 아버지를 못살게 구는 거죠?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둥그렇게 떴다. 씹던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고는 입술을 움직였다. 내가 말을 안 했었나? 딱 너만 할 때였나, 나랑 그놈이랑 딱 한고비만 넘으면 국가대표였는데, 거기서 만났지. 간단히 말해서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인데, 김 관장이 재수가 없었던 거지. 너도 알잖니, 사람 몸이 마음대로만 되는 게 아닌 것을. 그러고서 김 관장이는 운동 대신 체육관 사업을 일찍 시작했던 거고, 나는 운동이야 계속했지만 잘은 안 되었던 거고. 내가 늘그막에 은퇴하고 체육관 차리려고 하니까 김관장이는 전국구로 사업을 하더라고. 내가 못마땅했겠지. 개인적인 원한에다가 사업에 방해까지 되니까. 그러면 아버지는 김 관장을 미워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부상을 입힌 건 미안한 일이지만 그걸 가지고 수십 년 동안 묵혀두고 장사까지 방해하지는 말았어야지. 그건 옳은 행동이 아니야. 아버지는 냉장고에서 1.5리터짜리 물통을 꺼내 뚜껑을 열고 들이켰다. 입을 소매로 닦았다.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너는 그 대회 나가는 거냐? 그제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중심을 피하자고 했던 질문이 정 중앙을 관통해버렸다. 다른 말은 기억에 남지 않고 마지막 말, 대회에 나가냐는 그 말만 들렸다. 아니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냉장고 문을 닫았다. 다시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그게 일주일 전이었다.

 

 

내 등을 적신 식은땀이 마르기도 전에 아버지는 일어섰다. 아버지 그릇에는 물이 반쯤 남았고 밥알 하나가 둥둥 떠다녔다. 나도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현관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나는 아버지가 언덕을 내려가 오른쪽 모퉁이의 버스 정류장에 가기 위해 돌아설 때까지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더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속옷을 갈아입고 트레이닝복을 걸쳤다. 글러브를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기껏해야 중년들이 조기축구나 하던 오십 년 묵은 공설운동장은 오랜만에 겹치는 목소리들로 가득했다. 원형 경기장을 둘러싸고 각종 플래카드와 깃발이 휘날렸다. 조그만 도시 조그만 운동장에 스포츠 동호회가 몇백 개는 있는 것 같았다. 접수는 종목별로 나누지 않고 한 곳에서 맡았다. 책상 앞에 사람들이 서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벌써 접수처 근처는 사람들이 이룬 줄이 창자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있었다. 그 사이로 파고드는 일렬로 된 줄이 또 여럿 있었다. 그들까지 모두 수용하려면 시간은 더 소요될 게 뻔했다. 나는 창자 맨 끝에 섰다. 사람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땀이 이마에 맺혔다. 갑자기 틈새가 벌어지는가 하면 누군가 앞뒤로 미는 통에 사람들과 살을 부대껴야 했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는 연습을 머릿속으로 하거나 남의 발을 밟지 않을 정도로만 발을 놀렸다. 몸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탈출하려는 듯 늑골을 두들겼다. 겨우 스태프 목걸이를 맨 안내원과 마주했다. 그가 물었다. 종목이랑 이름하고 생년월일 불러주세요. 복싱에 구형수, 96년 11월 4일생이요. 스태프가 두꺼운 장부를 꺼내 맨 앞 페이지를 보았다. 한 장을 넘겼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단에 없는데요. 없다고요? 나는 안내원 앞의 장부를 들어 앞부분을 보았다. 강 씨들이 끝나고 김 씨 전에 구 씨가 일곱 명 있었지만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장부를 내려놓았다. 안내원이 다음 사람, 하고 외쳤다. 등산복을 입은 사내가 내 어깨를 밀치고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밀려났다. 사람들이 새장처럼 에워쌌다. 왔던 길로 돌아가려니 막막했다. 갑자기 저기요, 하고 안내원이 외쳤다. 고개를 돌리니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시 책상 쪽으로 갔다. 혹시 씨름 신청 안 하셨나요? 신청한 적 없는데요. 여기 보면 씨름에 신청되어 있는데요. 무슨 착오 있으셨던 것 아닌가요? 안내원이 보여주는 장부 첫 페이지에는 정말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소와 번호도 내 그것이었다. 내가 한참 뚱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까 내 뒤에 있던 등산복을 입은 사내가 말했다. 고마운 줄 아쇼. 내가 강 씨여서 바로 찾았지. 안 그래요? 나는 입으로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표정으로는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내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져갔다. 안내원이 접수번호가 적힌 표를 주었다. 뒷면에는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사람들을 비집고 나오니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씨름장까지 가려면 신호등 하나를 건너야 했다. 같은 곳을 가는지 내가 선 쪽에만 사람들이 많았다. 반대편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다. 초록 불이 켜졌다.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막았던 둑이 터지듯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방에서 돌아설 때 김 관장이 할 수 있는 운동을 물어보던 일과 무상체육관에 신청서를 낼 때 전화를 하던 직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나를 둘러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김 관장이 나에게 호의를 보일 거라고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파란 사람이 깜빡였다. 나는 주저앉아 입만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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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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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은 언제부터인가 12시간 운전대를 잡는 것보다 12시간 자는 것에 익숙해졌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지각을 할 뻔한 날부터였다. 민식은 후드티에 트레이닝복 바지만 입고 신발에 발 뒤꿈치가 쓸리는 것도 모른 채 뛰었다. 쇠 냄새와 촌스러운 간판들이 가까워졌다. 회사 앞에 도착했다. 민식의 눈에는 한 자리도 비어있지 않은 주차장이 보였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자주 보았던 대리가 민식에게 웃어 보였다. 연락 못 받으셨나 봐요. 민식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오늘인가요? 대리가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오늘부터랍니다. 민식은 대리에게 눈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 뒤꿈치가 아파져 왔다. 민식은 생각을 반추해 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왜 오늘 지각을 할 뻔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제가 붉은 조끼와 구호, 돌고 도는 술잔, 그런 것들로 형상화되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공단이 즐비한 곳을 지나서 집 앞 8차선 횡단보도를 기다리면서 민식은 깨달았다. 중얼거렸다. 파업이구나.

 

며칠 전부터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민식은 기사 일에 뛰어든 지 몇 년 되지 않은 초짜였고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좀 어수룩했다. 하지만 잔뼈가 굵은 이들은 벌써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퇴근길 지나가듯 툭툭 던지던 말들이 조금씩 구체화 되어갔다. 민식이 불안하게 이것저것 물어볼 즈음에는 이미 모든 사항이 결정된 후였다. 어제는 확정된 결론을 자축하는 행사였고 민식은 일단은 그 틈에 끼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안정된 일자리는 아니었고, 회사 측에 붙는 것보다는 아저씨들 측에 붙는 게 그나마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는 길이라고 민식은 생각했다. 그렇지만 민식은 파업이 언제 시작하는 건지 까먹고 있었고 이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있었다. 당장 오늘부터 일거리가 없어졌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민식은 군대 시절부터 모아둔 돈이 얼마 정도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한 일주일 정도는 걱정 없이 놀고먹을 수 있지만 그 뒤부터는 불안해질 것 같았다. 이쯤 되니 민식은 그냥 회사에 붙어서 안전하게 운전이나 해서 트럭이나 살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가도 아저씨들에 찍혀 영영 업계에 발도 못 들이면 그건 정말로 큰 일이라는 걱정이 들어서 복잡해졌다. 횡단보도 불이 켜졌다. 민식은 집 계단을 올랐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놀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민식의 휴대전화는 아니었다. 민식이 사는 원룸 공동식당에 연결된 전화였다. 주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을 때 전화를 걸 때 사용했다. 아니면 걸려온 전화를 주인집이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용도였다. 원룸 문을 꽉 닫지 않으면 아래서부터 소리가 울렸다. 민식은 어쩐지 전화를 직접 받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공동식당이 있는 일 층으로 내려갔다. 전화를 집으려고 한 순간 주인집이 받았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민식에게 건넸다. 학생한테 온 전화네. 고등학교 친구라는데? 민식이 아 예, 하고는 두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가 한 손을 뺐다. 여보세요. 민식아. 귀에 익은 목소리였지만 민식은 이름이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쪽에서 먼저 정체를 밝혔다. 오랜만이라서 그렇구나. 나 형철이야. 박형철. 민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박형철이라는 이름을 반추해보았다. 박형철이 자신과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침묵이 어색해질 즈음에야 민식은 박형철이 그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같은 반이었음을 상기해냈다. 사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것도 생각났지만 몇 번 스쳐 지나간 것 말고는 기억이 없었다. 민식은 일단 어색함을 없애고 전화를 끊는 쪽으로 유도하고 싶었다. 어중간한 사이의 고등학교 동창이 걸어오는 전화는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간단하고 어색한 관계증명과 그 뒤로 이어지는 대출 권유, 다단계, 공동투자 제의 같은 데 민식은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민식보다 형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직 내가 잘 기억이 안 나는 것 같네. 나중에 다시 전화해볼게.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다. 민식은 드디어 동창 등쳐먹는 방법도 진화한 건가, 하고 생각했다. 민식은 형철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려 노력해보았다. 그렇지만 도저히 떠올리려야 떠올릴 수가 없었다. 형철은 민식과는 다른 무리였고 말을 섞거나 했던 적도 없었다. 어쩌다 눈 마주치면 어색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왜 자신에게 형철이 전화를 했는지 민식은 알 수가 없었다.

 

형철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 건 이틀 즈음 뒤였다. 민식은 전화벨이 다섯 번쯤 울리기를 기다렸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 박형철이야. 형철이 먼저 말했다. 이제 내가 기억나니? 민식이 대답했다. 어. 고등학교 동기잖아. 너무 갑자기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서 그때는 잘 기억이 안 나더라. 형철은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민식은 잠시 말이 없었다. 몇 초 지나서 민식의 귀로 대답이 들렸다. 다른 게 아니고, 운전 좀 가르쳐 줄 수 있나 해서. 운전? 민식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 너 운전 잘하잖아. 내가 운전 잘하는지는 어떻게 알아? 아니, 잘할 것 같다고. 너 고등학교 때부터 운전했잖아. 민식은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민식이 3학년 생일이 지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서 종종 아버지 차를 운전하고 다녔던 건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형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였다. 민식이 말했다.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너 나랑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아, 그랬지. 민식이 대답했다. 머릿속으로는 졸업앨범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민식은 전화를 끊고 싶었다. 내가 가르쳐주는 것도 좋은데 운전학원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내가 다녔던 데 괜찮은데. 민식이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운데, 아무 데서도 안 받아주겠대. 네가 좀 도와주라. 기본기만 가르쳐줘. 돈도 줄게. 민식은 돈이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다잡았다. 그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운전 되게 잘하는 사람 있는데. 그 사람 소개해 줄게. 그게 더 나을 거야. 형철이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음. 그럼 일단 전화번호 좀 주면 내가 연락할게. 그래. 다음에 만나서 밥 한번 먹자. 민식이 전화를 끊었다.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식은 이제 누구를 형철에게 소개해줄 지가 고민이었다. 영민이 떠올랐다. 영민은 민식보다 다섯 달 늦게 트럭을 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가서 전역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운전병으로 복무했다고 했다. 공백이 있었지만 영민은 성실했고 남이 하는 부탁도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민식은 영민 정도 성격이면 형철이 답답해도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형철은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지 않아 한 달 전 통화내용을 뒤져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영민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영민은 회사 지하 휴게실에 있다고 했다. 거기는 왜? 민식이 물었다. 여기가 노조 사무실이래요. 영민이 대답했다. 민식은 일단 그리로 간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민식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회사 건물 지하 휴게실로 향했다. 철문 둥근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오래된 먼지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비닐 장판이 깔린 바닥에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은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렁이고 있었다. 모두 빨간 조끼를 입었고 더러는 머리띠도 메고 있었다. 드물지만 머리를 민 사람도 보였다. 벽 한쪽에는 문구가 적힌 종이 피켓과 천으로 된 걸개가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영민아. 민식이 불렀다. 의자에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던 영민이 일어났다. 빨간 조끼에 짧은 머리였다. 민식이 영민을 한 번 더 불렀다.

 

영민과 민식은 지하에서 건물 주차장으로 올라왔다. 민식이 말했다. 간단한 거야. 운전하는 것 좀 네가 도와주면 돼. 영민이 물었다. 형이 직접 안 하고요? 형 친구라면서요. 친구까지는 아니고, 아는 사람. 동창. 돈도 준대. 너 많이 벌어야 한다면서. 파업하면 임금도 안 나오잖아. 영민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거죠? 형철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내가 너 아끼는 후배여서 너한테만 소개해주는 거다. 할게요. 영민이 말했다.

 

파업 대열에 동참한다고 생각했지만 민식은 갈수록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눈치 보면서 시작했지만 온종일 사무실에 죽치고 앉았던 이후로는 다시 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대신 공사장에서 잡부 노릇을 하거나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일당을 벌었다. 그렇다고 회사 측에 붙을 마음은 아니었다. 민식도 회사에 대한 반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민식은 종종 동료들의 파업에 대한 뉴스를 찾아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협상 결렬이라는 글자만 몇 번을 보았는지 민식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파업이 길어지고 일당벌이도 트럭을 타던 때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였다. 민식은 형철에게 영민을 소개해 준 것이 아쉬워졌다. 그깟 운전이 뭐 대수라고. 형철에게 돈을 좀 더 올려 받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식이 늦게 일어난 날 영민의 전화가 몇 통 들어와 있었다. 연속으로 걸려 있었다. 민식은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민이 첫 마디를 꺼냈다. 형, 나 형이 말한 운전 도와주는 거 그만뒀어요. 민식은 속으로 기쁘면서도 궁금해졌다. 왜? 무슨 일인데? 형, 그 사람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도대체가 몇 번을 알려줘도 감을 못 잡더라고요. 아니 운전은 고사하고 시동도 못 걸더라니까. 그래서? 겨우 시동 걸고 액셀이랑 브레이크 밟는 것까지 가르쳐줬죠. 그러니까 자기가 이 정도면 됐다고, 운전학원 가본댔어요. 몇 주동안 한 게 그게 끝이야? 네. 알았어. 좀 진행은 되고있냐? 영민이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요새 회사에서 대체인력 뽑아서 운행할 거라는데 그 소문 때문에 다들 난리예요. 형은 아니죠? 나도 회사 싫어해. 민식이 곧 전화를 끊었다.

 

형철이 민식에게 연락한 것은 영민이 전화한 지 두어 달 뒤였다. 민식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형철은 예의 힘없는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형철은 운전학원에 다니면서 면허를 땄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영민이 도와주었던 이야기나 시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민식은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 때마침 손님이 짐을 한가득 들고 오는 것을 보았기에 잠시만, 이라고 말하며 형철의 말을 끊었다. 형철은 조금 있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운전면허를 따기는 했는데 완전한 건 아니야. 민식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형철은 연습면허를 땄다고 말했다. 도로주행 중이라고 차에 붙이면 도로에서 주행은 가능하대. 그런데 2년 이상 운전한 사람이 동승해야된대. 민식은 이제야 형철이 왜 전화를 했는지 알았다. 형철 주변에는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도와달라고? 응. 돈도 줄게. 형철이 너무 스스럼없이 말해서 민식은 조금 당황했다. 얼버무리고는 대화를 끝냈다. 민식은 정작 약속 전날까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만취한 채로 늦잠을 자다 전화를 받고서야 민식은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해냈다. 민식이 약속 장소로 가니 형철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법한 회색 경차였다. 아직 뒤에는 도로주행이라는 글자가 없었다. 형철이 왼손에 들고 있는 종이가 그것인 것 같았다. 민식이 어떻게 차를 구했냐고 물었다. 형철은 웃으면서 렌터카라고 말했다. 도중에 운전면허 없이 여기까지 차를 운전했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형철은 동네를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민식이 할 일은 조수석에 앉아서 그가 어떻게 하는지 도와주면 되는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 몰랐지만 민식은 차 시트에 앉자마자 자신이 엄청나게 피곤한 상태임을 깨달았다. 눈꺼풀이 조금씩 느리게 감기는 것을 느꼈다. 애써 참아보려 했지만 자꾸만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싶어졌다. 형철은 더듬거리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차가 주차된 모퉁이를 돌 때는 몇 번이나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민식은 잠시 졸다가도 뒷 차가 울리는 경적에 몇 번씩 고개를 쳐들었다. 형철과 민식은 시내를 빠져나와서 강 바로 옆 4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교통량이 많지는 않았다. 덕분에 민식은 팔짱을 끼고 잠에 취할 수 있었다.

 

민식은 타의로 잠에서 깼다. 길게 경적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옆을 보니 형철이 겁먹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앞 신호등을 보니 파란 불이 선명했다. 민식이 풀썩 소리 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지금 출발해야 돼. 형철이 조금씩 속도를 냈다. 뒤차들이 경적을 울리고는 앞질러 갔다. 제기랄. 민식이 중얼거렸다. 이제 그는 잠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형철은 겁에 질려서 민식이 무슨 행동을 하든 신경도 쓸 수 없었다. 형철은 30킬로를 넘지 않게 운전했고 그의 차선을 고른 차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깨닫고 탈출을 시도했다. 형철은 그가 운전하는 차선 뒤에 단 하나의 자동차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형철은 그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차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니 형철은 조금씩 속도를 올렸고 자신감도 붙기 시작했다. 그가 원형교차로를 무사히 통과했을 때부터였다. 그러나 형철은 민식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원형교차로를 지나서는 오거리였다. 형철은 파란불만 보고 우회전 신호를 받지 않은 채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다행히 그에게 달려드는 차는 없었다. 형철은 뒤늦게 도로에 적힌 글자를 발견하고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형철이 이제껏 올렸던 속도를 갑작스레 늦추었다. 민식은 차 앞부분에 거의 닿을 만큼 몸이 당겨졌다. 민식은 운전을 도와주러 왔다는 것도 깜빡한 채 자기 잠을 방해한 게 무엇인지 파악에 나섰다. 민식은 형철이 거의 걷는 정도 속도로 운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야, 뭐 하는 거야? 민식이 물었다. 아까 도로에 속도제한 09라고 적혀있던걸. 60이 아니고? 민식이 말을 끝낸 순간 앞에서 트럭 하나가 미친 듯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민식은 형철을 보았다. 그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가 민식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민식은 안전띠를 풀었다. 엑셀에 올려진 형철의 발을 밟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트럭은 민식과 형철이 탄 차 트렁크 부분을 스치듯 지나갔다. 민식은 그대로 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갓길에 세웠다. 형철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민식이 형철의 뒤통수를 쳤다. 다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역주행을 한 거야? 형철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몰랐어. 그게 뭔지 몰랐다고. 민식은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미친 듯 긁었다. 잠시 후 차 문을 열고 나갔다. 형철은 시동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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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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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갔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적어도 사흘은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어쩌면 오래 머물러야 할 수도 있었다. 무언가 빼먹은 물건이 있는 것 같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면도기가 생각났다. 방이 엉망이라 무너진 서류 더미를 들어내고 틈새를 뒤져서 겨우 찾았다. 이리저리 흩어진 종이 뭉치들을 대충 갈무리했다. 이미 물결 모양으로 퍼진 잔해들은 그대로 두었다. 면도날을 뺐다. 화장실 찬장에서 새 날을 꺼내 갈아 끼웠다. 이틀 전이 기억났다. 가장 최근에 면도기를 쓴 게 그 날이었다. 모임을 앞두고 길렀던 콧수염을 밀어버린 오후였다. 날을 바꿀까 생각했지만 한 번 정도는 더 써도 괜찮겠다 싶었다. 면도기가 움직일 때마다 살에서 털이 분리되며 미세한 진동과 함께 사각거리는 마찰음이 들렸다. 거울에 푸른 수염 자국을 비추던 중 전보가 왔다. 부친위독. 순간 정신의 무게추가 한 쪽으로 넘어갈 듯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전보를 갈색 나무 책상 위 종이 더미 사이에 올려놓았다. 의자에 풀썩 소리가 나게 앉았다. 검지와 엄지를 벌려 입을 감싸고 동공에 힘을 풀었다. 다음 며칠 간의 일정과 오늘 만날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십 년 만에 만나는 대학 동기들이다. 다시 언제 만날지는 모른다. 얼굴만이라도 비추고 나오기로 했다. 하루 동안 누레진 셔츠를 벗어 바구니에 쑤셔넣었다. 합판 옷장을 열었다. 새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마지막 단추를 잠글 때 종이가 양철 바닥에 쌓이는 소리가 스쳤다. 갑자기 귀가 멍해지는 듯하더니 가슴 한가운데가 요동쳤다. 누런 종이를 뒤집어서 방 안으로 들고 왔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왼쪽 모서리를 천천히 돌렸다. 부친사망급래요망. 발신자 명의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주소는 내가 아는 아버지의 집 주소가 맞았다.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아버지 집에 찾아간 날 내게 어색하게 인사했던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광대가 우묵하게 들어간 얼굴과 흰자위가 누런 눈으로 나를 쏘아보던 눈빛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첩의 자식이라고 속으로 욕을 했던걸까. 나는 무심코 옆얼굴을 만져보았다. 방을 몇 바퀴 빙 돌았다. 동시에 오른쪽 손목에 달린 단추를 잠그고 풀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한숨을 내쉬고 멈춰 섰다. 물 반 컵을 마시고 광낸 구두를 신었다. 둥근 양철 손잡이를 돌려 밖으로 나섰다.

 

젊은 날 자주 다니던 술집에서 벌써 반쯤 늙어버린 이들은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통기타를 버리고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에는 침묵과 잔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전보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이어지지 못하는 동정 어린 말들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이상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농담을 했지만 잠긴 목 때문에 거북하게만 들렸다. 취기를 빌려 억지로 자아내는 웃음들은 상투적이었다. 정적이 계속되고 누군가 입술을 들썩일 즈음 나는 일어섰다. 모두와 손을 맞잡고 건투를 비네, 따위의 덕담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도 끊긴 시각이었다. 억지로 들이킨 잔들 때문에 걸음이 지벅거렸다. 지축이 흔들리는지 내가 흔들리는지 알지 못한 채 구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침대에 엎어저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제 또 전보가 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소리를 들었다. 이불을 걷어내고 잠바 하나를 러닝 위에 걸쳤다. 문을 열고 우체통 안에 손을 넣었다. 종이 질감이 느껴졌지만 손으로 쥐어지지 않았다. 전보를 양철 바닥에 붙이고 밀어 꺼냈다. 조카출생급부산행요망. 자형이 보냈다. 태기가 있다는 소식은 작년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들었다. 축하합니다. 누님, 하며 나는 누님과 자형의 손을 잡고 격려했었고, 양부가 내게 결혼을 언제 할 거냐고 물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게 지난 봄이었다. 지금은 해를 넘겼지만 아직 쌀쌀하니 열 달 정도 지난 셈이었다. 세 번째로 전보를 받은 날 회사에 장례 때문에 사흘 정도 못 오겠다고 말했다. 주말까지 몸 잘 추스르게. 차장은 내 어깨를 한 번 만져 주었지만 그가 인쇄소 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툴툴거리던 것도 나는 보았다.

 

해가 뜰 즈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찬물에 얼굴을 비빈 뒤 양치를 했다. 새 셔츠를 입고 황갈색 코트를 걸쳤다. 검은 넥타이는 바랜 자주색 가죽가방에 쑤셔 넣었다. 마지막으로 날을 갈아끼운 면도기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우체국으로 갔다. 공기가 바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직원들이 상자를 나르고 있었고 데스크에는 한 명만 앉아 있었다. 구석으로 가서 전보 발신지 한 장에 당일 도착. 이라고 썼다. 번호표를 뽑을 필요도 없이 바로 종이와 전보 값을 내밀었다. 급행인가요? 직원이 물었다. 예. 내가 대답했다. 직원은 손을 뻗어 하얀 대리석 위에 놓은 종이와 동전을 가져갔다. 나는 회전문을 밀어 우체국을 나왔다. 시계를 한 번 보았다. 다시 우체국으로 들어가서 한 장을 더 썼다. 급행으로 보내주십쇼. 직원에게 건넸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은 그새 제 자리를 찾아가고 거리에는 노파 몇 사람뿐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신작로 쪽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생각했다. 친아버지가 죽었다. 마땅히 슬퍼해야 한다. 양부의 딸이, 누님이 아이를 낳았다. 온 힘으로 축하해야 한다. 불행에 동정을 절반만 쏟아붓고 경축에 나머지 반을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감정을 반으로 나눌 수도 없다. 그럴 만한 조절력이 내게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았다. 부산으로 가면 마땅히 장례에 가서 혈육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하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을지언정 십수 년을 함께 살아온 호적상의 가족에게도 기쁜 낯을 보여야 했다. 두 장의 전보는 지금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누가 먼저 도착할까. 어쩌면 한 우체부의 가방에 모두 실리어 갈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병원 3층 산부인과에 한 장, 지하 영안실에 한 장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보도가 끝났고 아스팔트 앞에 섰다. 대로 횡단보도 반사경에 내 등 뒤로 달려오는 택시가 보였다. 몸을 돌려 오른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초록색 차가 멈추었다. 터미널로 갈 것이다. 결별과 축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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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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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이 만년필에 내 모든 몸과

영혼을 맡겼다

 

문학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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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한 뼘 가까이 [퇴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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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한 뼘 가까이

고치기 이전 글입니다.

 

눈을 감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티끌들을 볼 수 있다. 그날 하루의 흔적들이다. 애써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지만, 형체는 핍진하다. 가끔은 가만히 눈감은 이 상황이 죽음이라 가정하곤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면 잠자듯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가슴 한쪽이 아리며 숨이 막혀왔다. 그러면 무서운 공상을 멈추기로 했다. 대신 생이 끝난 뒤에도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안도는 잠깐이었다. 죽을 수 없다면 그것대로 끔찍하겠지, 그 수많은 사람이 부대낄 자리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몰려왔다. 또 숨이 막혀와서 이제는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끌어매었다. 며칠 동안 이런 상태를 반복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도 그랬고 길을 걸을 때도 그랬다.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결같이 대답은 쉼표보다는 물음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믿었지만, 그 생각이 우스워지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걱정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 가장 좋은 삶은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란 친구의 말이 들어맞았다. 사실 새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걱정 같은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길로 다녔다. 의미 없는 지식을 남보다 더 채워 넣고 보상을 받았다. 잠은 부족해서 정신이 멍했고 눈만 감으면 꿈을 꾸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기억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문학마저 뒷전으로 치워버렸다. 이렇게 기계처럼 나를 죽이며 버텨내다 보니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일 같은 건 쉬이 망각해가고 있었다.

3년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계속 살아냈다. 하루는 길을 걸었다.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에 가던 길로 가다 보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가 외진 곳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등교 시간까지 맞추려면 걸어서는 아슬했다. 앞의 녀석도 학교로 가는 데도 샛길로 빠졌다는 건 그 길이 빠르다는 신호 같았다.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길 들머리부터 구불구불한 골목이었다. 길바닥조차 아스팔트가 아닌 오래된 콘크리트였다. 큰 교회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왼쪽은 산기슭이었고 오른쪽에는 노후화된 주택가였다. 그때부터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계속 따라가서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보다 십 분은 더 이른 시각이었다.

학교가 파하고서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떠올려 집으로 걸어갔다. 다시 그 산기슭과 낡은 집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그곳이 평범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보였다. 내 지난 상념들이 덩어리져 있는 것 같았다. 공동묘지처럼 정갈하지도 않았고 문중의 묘처럼 단정한 석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에 묘가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이름 모를 산담은 죄다 홀로였다. 검은 돌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세우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최소한의 구획이나 기단석조차 없었다.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무덤이 있었고, 그 위나 아래에 또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해가 떠오르며 비추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그만 흙산들은 햇빛을 머금고 풀을 돋우기만 했다. 그들은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모습이었다. 비석 이나마 세운 게 있으면 그나마도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자로 학생 신위라 쓰여 있는가 하면, 한글로 ○씨 ○○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 세월에 깎이고 이끼가 껴서 한때 글자가 존재했는지조차 모를 돌도 있었다. 몇몇 무덤은 땅이나 다름없이 완만했다.

처음 이곳이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적당히 양지바른 언덕에 누군가 주검을 묻고, 또 누군가가 밤새 몰래 봉분을 만들고. 그러기를 수십 년이 넘었을 것이다. 이제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묻은 이는 분명 다른 이의 흙을 좀 빌려야 했을 것이다. 주로 아래쪽 무덤이 허물어져 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을 테다. 찾아오는 이 한 명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언덕 맨 위쪽의 그나마 비석이 단정한 곳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무덤은 죽음에 가깝더라도, 그 가장자리에서 생은 버티고 있었다. 둔덕 왼쪽 구석에 푸른 그물을 친 곳이 있었다. 다른 부분들과 달리 평평한 땅이었다.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땅 위에 파랗게 솟은 건 배추였다. 사람이 직접 울타리를 치고 심었다. 그곳뿐 만 아니라 주변에 밭이 많았다. 거기 누운 사람들이 내게 실마리를 쥐여주었다.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살아내고 있다고. 죽은 자의 육체는 흙에 스며들고 그이를 머금은 땅은 작물을 길러 내고 사람을 살게 한다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알아볼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내가 본 대로만 판단해보자면, 죽음이 영원한 결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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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한 뼘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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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사리 잠들지 못하던 날들이 많았다. 주로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신도 내세도 믿지 않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면 잠자듯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눈감은 이 상황이 죽음이라 생각했다. 숨이 일순간 막히곤 했다. 그러면 무서운 공상을 멈추었다. 암울한 생각 대신 생이 끝난 뒤에도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원히 살면 그것대로 끔찍할 거란 기분이 들었다. 그 수많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체념이 몰려왔다. 또 숨이 막혀와서 이제는 눈을 떴다. 며칠을 내내 이런 상태였다.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도 생각했고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결같이 대답은 쉼표보다는 물음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믿었다. 그 생각이 우스워지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걱정은 해결해도 또 다른 형태로 생겨나므로 가장 좋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란 친구의 말. 들어맞았다. 기계처럼 나를 죽이며 버텨내다 보니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일 같은 건 쉬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멍하니 계속 살아냈다. 하루는 길을 걸었다.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에 가던 대로 가다 보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녀석이 어떤 샛길로 빠졌다. 등교 시간까지 맞추려면 걸어서는 빠듯했다. 앞의 녀석도 학교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샛길로 빠졌다는 건 지름길로 간다는 신호다.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샛길 초입부터 구불구불한 골목이었다. 길바닥조차 아스팔트가 아닌 오래된 콘크리트였다. 큰 교회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왼쪽에 둔덕 오른쪽에 오래된 주택가였다. 그때부터는 적당히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도착하고 보니 예상보다 십분은 더 이른 시각이었다. 기억해 두기로 했다. 학교가 파하고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떠올리며 걸었다. 다시 그 둔덕과 빌라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둔덕이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그건 내 지난 상념들이 뭉쳐진 것과도 같았다.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덤들이었다. 무슨 공동묘지처럼 정갈하지도 않았고 문중의 묘처럼 단정한 석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에 무덤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어쩐지 더 쓸쓸했다.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이름 없는 무덤들은 죄다 홀로였다. 검은 돌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세우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최소한의 구획조차 없었다. 줄 맞추기나 기단석 따위도 없었다.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무덤이 있었고, 그 위나 아래에 또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해가 떠오르며 비춘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그만 흙산들은 햇빛을 머금고 풀만 돋우었다. 무덤들은 어느 하나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비석 하나 세운 것이 있었다. 그나마도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자로 학생ㅇㅇㅇ신위라 쓰여 있는가 하면, 한글로 ㅇ씨ㅇㅇ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 세월에 깎이고 이끼가 껴서 한때 글자가 쓰여 있었는지조차 모를 돌도 있었다. 몇몇 무덤은 땅이나 다름없게 완만했다.

처음 이곳이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적당히 양지바른 언덕에 누군가 가족을 묻고, 또 누군가가 밤새 몰래 무덤을 만들고. 그러기를 수십 년이 넘었을 터이다. 이제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묻은 이는 분명 다른 무덤을 밟고, 다른 이의 흙을 좀 빌려야 했을 것이다. 주로 아래쪽 무덤이 허물어져 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을까. 아무렇게나 두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언덕 맨 왼쪽 꼭대기의, 그나마 비석이 단정한 곳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단지 그것 뿐은 아니었다. 무덤은 죽음에 가깝더라도, 그 가장자리에서 생은 버티고 있었다. 둔덕 왼쪽 구석에 푸른 그물을 친 곳이 있었다. 평평한 땅이었다. 다른 부분들과는 구분되었다. 그 땅에 놓인 것은 배추였다. 사람이 직접 울타리를 치고 심었다. 그곳뿐만 아니라 주변에 밭이 많았다. 나는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살아내고 있다. 죽은 자의 육체는 흙에 스며들고, 그이를 머금은 땅은 작물을 길러내고 사람을 살게 한다. 죽음을 먹고 다시 삶이 자란다. 지독한 순환이다. 동시에 내 상념도 스치듯 해결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누구도 확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본 대로만 생각해보자면, 죽음이 꼭 끝만은 아니다. 끝이 있기에 시작이 있다고, 모두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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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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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글을 거의 쓰지를 않은 것 같네요. 못 쓴걸까요, 안 쓴걸까요. 중학교때 안하던 공부를 이제 와서 열심히 하다 보니 시간이 안나서, 라고 변명하고 싶은데, 막상 보면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나 책읽는 시간  일기쓰는 시간은 비워두면서 글쓰는 시간은 없네요. 몇 번 소설을 쓰려 시도는 했죠. 그런데 쓰다가 팽개치고 쓰다가 팽개치고를 한 두어번을 했어요. 이제는 시도 조차도 안해요.  언제 또 시간을 내서 꾸준히 소설을 쓸지 확신이 들지를 않으니까. 고등학교는 시험 치고 걸러 또 시험이더라고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 인데,  역시 책에서 말하듯 한 장씩이라도 쓰는게 좋은거겠죠. 팽개치더도 써보는게 옳은 거겠죠. 알면서도 실천하는게 참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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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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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사지가 잘린지는 좀 되었다. 도시에는 보도블록 위로 창백한 가로수가 서있다. 크기나 종도 제각각이다. 그도 생물이어서, 죽지 않으면 자란다. 뿌리가 벽돌을 뚫고 조그만 오르막을 만들기가 예사다. 가지는 조금씩 자라 사람들 눈을 감춘다.

 

동네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사거리가 있다. 좌우로 나뉜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여기는 2단지, 저기는 3단지 식으로 구별한다. 곳곳에 가로수는 많이도 심겨있다. 2단지 쪽에 세워진 나무가 하나 있다. 잎이 둥근 종이라 겨울이면 삭막해진다. 겨우살이나 가끔 신세질 뿐, 앙상한 가지만 무성하다. 어느날 보니 그 나무에 사람이 올라갔다. 자세히 보니 사다리를 탄 것이다. 사람이 올라간 후 나무는 한풀 멋이 꺾였다. 그나마 빽빽하던 것이 잘렸다. 짧은 잔가지는 덜어냈다. 긴 가지는 뭉텅 잘리었다. 주위를 보니 다른 나무도 마찬가지다. 사철 푸르지도 못하고 사지를 잘리는 이 시지푸스들이 가련하다. 그러든 말든,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쳐간다. 기실 나무에 신경쓰기는 너무 바쁜 우리네다. 나만 해도 우연히 나무를 본 것이다. 그 전에는 저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나무가 어떤 기분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무는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썰린 나무를 보고 착잡한 마음으로 가던 길을 걸었다. 길섶 울타리를 보았다. 울타리는 풀이 덮었다. 그 중 풀 한 포기가 막대기처럼 솟았다. 서리도 없는 따뜻한 겨울에 그것은 홀로 길게 자랐다. 사람 키의 곱절은 되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나는 자연의 신기함을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잠시 잘리워진 나무를 떠올렸다. 무리에서 특출난 것이 화를 당하는 일이 많지 않은가. 풀도 그 사례가 될 것만 같았다. 긴 풀은 사람들 시선에 빽빽한 나무 만큼이나 눈에 잘 띌 것이다. 곧 작업복에 야구모자 쓴 이가 큰 집게로 풀을 썩둑 자르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풀이 솟은 울타리는 항상 지나는 길이다. 어제 보아도 오늘 보아도 그대로, 자랑스러이, 인간을 내려보듯 서있다. 사람들은 나무에 비해 풀에 관대한 듯 하다.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나무가 자라면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풀은 거들떠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실용을 좇고 귀찮은 일을 벌이기 싫어한다.

 

글을 쓰는 지금은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다. 해마다 봄이 지날 즈음이면 풀냄새가 진동한다. 여름을 대비해 풀을 깎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저 군계일학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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