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비
꽃이 피고 지는 덴 이유가 없다 [2]

꽃이 피고 지는 덴 이유가 없다. 호흡함에 이유가 있을까. 명분을 찾으려 발버둥 칠때 비로소 사슬에 묶이는 게 아닐까. 우리는 안다. 뜨거운 물에 데이면 황급히 손을 떼는 법을 알며, 오랜 잠수 끝엔 수면을 향해 몸부림을 치는 법을 안다. 요란스레 무언가의 본질을 찾는 것이 과연 좋을까? 어쩌면 때론 보여지는 게 다인 경우도 있는 법. 존재함의 자체가 어쩌면 까닭과 명목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나 에고(ego)의 소란함을 겪는다. 평생을 우리는 생장하고 이 과정에 노화는 없다. 여전히 목련은 꽃잎을 피울 때 화사한 소리를 낸다. 숨막히게 찬란한 벚나무는 잘게 부서진 유리조각이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난다. 툭[…]

꽃이 피고 지는 덴 이유가 없다
/ 2021-04-13
이나비
꽃이 피고 지는 덴 이유가 없다 [2]

꽃이 피고 지는 덴 이유가 없다 호흡함에 이유가 있을까 명분을 찾으려 발버둥 칠때 비로소 사슬에 묶이는 게 아닐까   우리는 안다 뜨거운 물에 데이면 황급히 손을 떼는 법을 알며, 오랜 잠수 끝엔 수면을 향해 몸부림을 치는 법을 안다 요란스레 무언가의 본질을 찾는 것이 과연 좋을까? 어쩌면 때론 보여지는 게 다인 경우도 있는 법 존재함의 자체가 어쩌면 까닭과 명목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나 에고(ego)의 소란함을 겪는다 평생을 우리는 생장하고 이 과정에 노화는 없다   여전히 목련은 꽃잎을 피울 때 화사한 소리를 낸다 숨막히게 찬란한 벚나무는 잘게 부서진 유리조각이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꽃이 피고 지는 덴 이유가 없다
/ 2021-04-13
이나비
사랑이나 한 바탕 하자 [1]

거듭 너는 키스가 아니라 손깍지를 원하고 섹스가 아니라 포옹을 원하지 널 일평생 일축하지 못할 난, 내 목덜미에 코를 묻는 너의 뒤통수나 쓰다듬어 너는 자주 울어 내게 까닭이나 명목을 절대 일러주지 않으니 난 네 볼에 그저 하염없이 입 맞추지 이따금씩 나는 네가 궁금해 너의 모든 사무치는 고난을 치료하지는 못해도 습기 찬 네 모퉁이에 함께 자리할게 그런 후에 이제는 괴로움 따위 없을 때쯤 한 번 더 날 껴안아 초저녁 초승달에 내가 모든 네 허물을 벗겨 띄우면 우리 그땐 사랑이나 한 바탕 하자

사랑이나 한 바탕 하자
/ 2021-01-25
이나비
북향 [1]

내 방의 구석, 그늘에 자리한 난초 하나 쉬지 않고 나날이 커진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너의 모습을 하고 너의 향기를 품고 지독하게도 끈질기게도 방 모서리를 휘감는다 너는 죽었을까 날 견디지 못해 떠나가 잠적한 너는 그만 시들었을까 아니 새 뿌리를 내렸을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네 모습을 껴안고 네 향기를 마시고 지독하고 끈질기게 널 머금었을 건데 내 방 언저리, 네 모습을 하고 자리한 난초 하나 쉼 없이 날로 부푼다 정말이지 목이 마르다는 말을 둥실 띄운 채로

북향
/ 2021-01-24
이나비
여름날 [1]

얘, 넌 아니? 귀뚜라미가 동네가 떠나가라 찌르르 울어댈때면 난 네게 편지를 쓴단다 엄마가 그랬어 편지를 쓴다는 것은 이르게 성년이 된 이들이 미숙한 청춘을 담아내려 애를 쓰는 것과 같다고 늦여름, 사랑은 한 줄기 제비꽃마냥 예쁘게도 피었더랬지 노란 햇빛 그늘 아래서 꾸벅꾸벅 조는 네 손가락을 쥐고 봉숭아를 빻아 올릴래 손끝이 온통 물들었다며 투정을 부려도 나는 그저 예쁘다며 웃을거야 얘, 넌 정녕 아니? 새벽마다 발로 솜이불을 온통 밀어 놓고선 배가 차 끙끙대는 네 소리에 나는 내 이불까지 모두 덮어주고 소리가 잦을때까지 너의 머리를 쓸어내린단다 걱정마 네 속눈썹의 갯수를 새다 보면 나도 금방 잠을[…]

여름날
/ 2021-01-24
이나비
첫 눈 [2]

눈이 온다 언니야 첫눈이 쌓이진 않더라 언니 쌓이진 않았어 펑펑 왔는데 밤새 다 녹아버렸어 언니는 제일 먼저 봤겠지 그거 하난 다행이다 지금 어디있어 따뜻하게 입어 양말 꼭 신고 제발 추워 언니 눈이 와 첫눈이 언니는 안 오고 첫눈이

첫 눈
/ 2020-12-16
이나비
원망 [1]

네가 미치광이라 부르던 계절이 문을 두드리면 비통할 틈도 없이 나는 네 자리에 입술을 문지르고 팔꿈치를 맞대고 자른 머리를 뿌리고   너의 날갯죽지에 수북이 쌓인 내 체취를 느꼈을 때야 말로 넌 그만 훨훨 날아갈 걸 알았지만 사실 난 너의 어깨를 붙잡을 때보다 젖은 날개뼈를 닦아줄 때 더 안온했음을 모르는지 꾸벅 졸기만 했던 너를 헤아리며   너에게 난 원망怨望 이었겠지만 나는 너를 원망願望 했노라고   아직껏 젊음을 호흡할 적의 너에게, 미처 날개를 뽑아내지 못했을 적의 너에게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네 이름을 한 토끼풀을 꺾어 속삭인다  […]

원망
/ 2020-11-04
이나비
은린옥척 (퇴고) [2]

제이야. 우리 바다에 갈까, 응? 우리 바다로 가자. 아무도 우리를 만류하지 못해. 짭짤한 공기를 들이켜고 모래성도 쌓자. 그 밑엔 그리움을 묻어두자. 네가 좋아하는 바람개비도 살 거야. 날개가 춤 추기를 멈출 때까지 부둣가를 거닐자. 우리 잠은 자지 말자. 밤새 입을 맞추자. ​- 제이야. 금붕어는 바다에 안 산대. 아가미를 달라고 내가 밤마다 기도했는데. 물빛 주홍을 네 손에 다시 쥐어주고 싶었거든. 넌 인어를 닮았어. 인어의 물거품을 닮았어. 뜬구름같이 사뭇 하얀 인어의 구슬픈 선율을 닮았어. ​- 제이야. 나는 살고 싶다. 연명이 아닌 새 삶을 살고 싶어. 바람개비와 금붕어, 은여우와 흑빛 나비가 한데 모여 유영을[…]

은린옥척 (퇴고)
/ 2020-09-14
이나비
장마 (퇴고) [1]

비다 비가 와 제이야   너는 비를 눈물이라 불렀지 볕에는 아무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면서   비가 내리면 넌 발목이 아팠잖아 네 싸구려 단칸방 벽지에 물이 새도록 말없이 발목을 주무를 때, 넌 풀린 눈꺼풀을 껌뻑이며 무슨 공상을 하냐 물었지? 네가 딱하단 생각을 했어 들키기 싫어 네가 잠든 이후에도 손에 쥐가 나게 진즉 망가진 발목을 애무했어   비야 비가 내리면 넌 바이올린을 켰지 빗소리엔 바이올린이라 했지만 나 사실 헛소리라 생각했어 이제와 말하지만 네 바이올린 연주는 참 엉망이야 G현을 튕기는 손가락이 사랑스러워서 평생 비밀이었는데   그리고 그걸 그만둘 때 너는 사라졌어 부어오른 뺨을[…]

장마 (퇴고)
김경연 / 2020-07-09
이나비
장마 [1]

비다 비가 와 제이야   너는 비를 눈물이라 불렀지 볕에는 아무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면서   비가 내리면 넌 발목이 아팠잖아 네 싸구려 단칸방 벽지에 물이 새도록 말없이 발목을 주무를 때, 넌 풀린 눈꺼풀을 껌뻑이며 무슨 공상을 하냐 물었지? 네가 딱하단 생각을 했어 들키기 싫어 네가 잠든 이후에도 손에 쥐가 나게 진즉 망가진 발목을 애무했어   비야 비가 내리면 넌 바이올린을 켰지 빗소리엔 바이올린이라 했지만 나 사실 헛소리라 생각했어 이제와 말하지만 네 바이올린 연주는 참 엉망이야 G현을 튕기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평생 비밀이었는데   그리고 그걸 그만둘 때 너는 사라졌어 부어오른 뺨을[…]

장마
/ 2020-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