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헨다
목록

 뚫린 벽으로 웃풍이 스몄다. 나는 밥상 아래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아버지는 묵묵히 국만 뜨고 계셨다. 데우지도 않은 국인데, 국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밥알만 세고 있던 막내 동생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다분히 의도가 보이는 질문이었다. 아빠, 왜 우리 집은 자주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아버지는 이가 시린지 잠시 뜸을 들이며 대답하셨다. …그야 느 누나가 외출할 때 퍼즐조각을 챙겨서 나가니깐 그렇지. 우리 가족은 퍼즐로 만들어 진 집에 살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한쪽 구석만 차지하고 있던 하늘은 어느새 오른쪽 천장까지 다 잡아먹은 뒤였다. 왜 챙겨서 나가는데? 동생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계속 아버지께 물었다. 그래야 나중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와서 퍼즐로 벽을 다시 끼워 막으니깐 그렇지. 하지만 이미 여기저기 구멍이 많이 뚫려있는 걸? 아버지는 헛기침을 점짓 내뱉으셨다. 고개 숙인 아버지 뒤로, 아버지가 기대 주무시는 가장 휑한 벽이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국물을 뜨지 않고 밥그릇만 묵묵히 바라보셨다. 동생이 연달아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다. 다른 집들은 벽이 퍼즐조각이 아니어서 바람이 안 들어온데. 옆집 성호네는 레고로 집을 지어서 구멍이 숭숭 뚫릴 일이 없고, 지혁이네는 집이 공으로 되어 있어서 여기저기 여행 다닐 때 편하데. …우리도 이사 가면 어때? 아버지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밥상 위에 내려놓았다. 더 이상 대답하기 싫다는 신호였다. 동생은 눈치껏 입을 꾹 다물고는 수저로 밥을 휘젓는다. …그리고 또 우리 집은 비오는 날이면 여기저기 다 젖어버리잖아. 동생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는 아버지와 동생의 눈치를 보며 우리 집 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색이 번지다 못해 바래버린 벽이, 질린 듯 누렇게 떠 있었다.

 밤이 늦었는데도 누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벽엔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고, 구멍으론 차가운 냉기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동생은 이부자리 끝으로 내민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벽에 기대 천장을 바라본다. 어쩐지, 뚫린 천장이 아득히 멀어. 마치 우리 집이 끝없이 넓어 보인다. 천장에서 툭,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밥그릇을 가져와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는다. 텅 빈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울던 밥그릇이, 이내 동심원 가득한 소리로 번져나간다. 점점 굵은 물방울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내렸다. 나는 밥그릇을 더 가져오려다 그만둔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툭, 툭. 힘겨운 숨을 내쉬는 아버지의 얼굴 위로, 슬픈 표정의 동생 위로 뭉클한 물방울이 덩이진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눈물인지 빗방울인지 모를 것들이 스며든다. 나는 물먹은 우리 집을 살짝 건드려본다. 툭. 힘없이 퍼즐조각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이런 집은 빚쟁이들도 더 이상 떼어가지 못할 것이다. 빗방울들이 조금씩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집안에 별빛을 풀어놓은 듯, 온 사방의 빗방울에 맺힌 달빛이 일렁거린다. 나는 반짝거리고 있는 아버지와, 동생과, 우리 집을 바라보며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벽을 등으로 받친다. 밤하늘보다 더 반짝거리는 우리 집을 바라보며, 나는 밤을 샌다. 반짝반짝, 별을 헨다.

목록
핸드폰
목록

어릴 땐 왜 그렇게 다투곤 했었을까
눈가에 시퍼렇게 번져간 멍 자국엔
아릿한 지치보라의 추억만이 남았다

 

잠결에 일어나서 밝혀본 핸드폰엔
새벽의 그림자만 고요히 일렁였다
시간의 그림자 아래 숨겨놨던 추억들

 

색 잃고 바래버린 사진 속 친구들은
그렇게 시나브로 어른이 되어갔다
그때의 버리지 못한 꿈을 아로새기며

 

구름에 빗방울의 채도가 옅어질 때
전하지 못했었던 말들이 투명하다
액정의 흰 기억들이 아슴푸레, 잠든다.

목록
가짜들
목록

 고요했던 비행기 내부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객실 복도를 승무원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응급환자가 발생해 급히 의사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의사 없으신가요? 의사! 승무원이 우리가 앉아 있는 좌석으로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에 맞춰 내 심장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난기류라도 만나 승무원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행운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었다. 웅성거리는 승객들 속에서 여자친구가 손을 번쩍 들어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 의사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내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승무원이 급하게 우리에게로 뛰어왔다. 나는 여자친구의 팔을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있지, 내가 고백할 게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지 오래였다. 의사 신가요? 아뇨, 제가 아니라 제 남자친구가요. 동시에 여자친구와 승무원, 주변 승객들이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하려던 고백이 뭐냐는 듯이.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두 눈을 꾹 감고 말했다. 실은, 나 수의사야.

 

 수의사라고 말하면 돌아갈 줄 알았던 승무원은, 기어코 나를 잡아 끌고 응급환자가 있는 좌석으로 안내했다. 사람도 동물이지 않느냐. 수의사라도 이 비행기엔 당신 밖에 의사가 없다면서. 어쩌다 미국으로 가는 여정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모르겠다. 경품으로 양도 받은 비행기 티켓이 문제였는지, 저가 항공의 객실이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그러니깐, 나는 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직업을 의사로 속인 것이 화근이었다. 언젠간 사실을 밝혀야지 하면서 여자친구와 만남을 이어간 것이 벌써 2년이 다 되어갔다. 그 2년동안 말하지 못한 비밀이 결국 폭탄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올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응급환자는 객실에 누운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승무원에게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 행동이 더 빨랐다. 괜찮아요. 괜찮을 겁니다. 안정을 취하세요. 가짜 의사인 주제에 왜 환자를 안심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까. 나는 환자의 목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고는, 승무원을 바라보면서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어, 일단 체온 조절을 하기 위해 담요를 가져와 주세요. 기도를 확보하고, 119에 신고하세요. 여긴 비행기 안 인데요? 아, 아무튼 빨리요! 승무원이 사라진 사이, 나는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심폐소생술이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나는 대충 깍지를 끼고는 심장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심장을 압박할 때마다 환자가 억억하는 신음을 냈다. 그리고 환자에게 숨을 불어넣자 환자가 경련하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다 환자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세상에, 살아났어! 승객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씩씩 거리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신, 일부러 다 알면서 그런 거지!

 

 객실 내부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환자는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조금만 아픈척하면 퍼스트 클래스로 옮겨줄 줄 알았는데, 일이 커져서 환자인척 했더니만. 사람 잡을 일 있어? 갈비뼈 다 박살나는 줄 알았네, 아이고 삭신이야. 다시 객실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담요를 가져온 승무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사실,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거짓말한 것이 이렇게 커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소란스럽던 객실이 다시 잠잠해져 슬그머니 감았던 눈을 뜨니 승무원이 펑펑 울고 있었다. 승객들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실…저도 승무원이 아니에요. 쌍둥이인 언니 몰래 유니폼을 입고 비행기에 탄 것이 그만…. 죄송합니다. 승무원이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자 승객들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승무원 뒤로 여자 친구가 우물쭈물하며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있지, 나도 고백할 거 있는데…오빠, 아니. 형. 실은 나 남자야. 뭐? 형 사진을 본 누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나보고 하루만 대신 소개팅 나가달라는 게 그만…. 하루만 만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형이 의사란 거 안 가족들이 어떻게든 계속 만나라고 해서… 미안해. 비행기에 탄 사람들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 우리는 곧 미국 뉴욕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해주시길 바랍니다.

 

 응급환자, 승무원, 여자…아니, 남자친구. 그리고 나. 우리는 뉴욕 경찰서에 피의자 신분으로 사건을 진술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모호해지는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서로 말을 아꼈다. 허 참, 기가 막혀서.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이 신문지를 책상에 던졌다. 신문의 1면엔 우리가 탄 비행기가 담겨 있었다.

 

 '특종, 14시간 동안의 아찔한 비행…가짜 조종사. 어제 저녁 입국한 항공기를 조종한 기장이 사실 면허도 없는 민간인으로 밝혀졌다. 경찰 진술 때, 거짓 경품 이벤트를 수습하기 위해 항공기를 탈취해 이 같은 행위를 벌였다고…'
———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어 닥터 에피소드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을 알립니다

목록
치매(癡呆)
목록

 중학생 때 은사님을 뵈러 전철을 타고 은사님이 계신 학교로 향하던 날이었다. 수업이 일찍 끝나서 그런지 전철안의 좌석은 군데군데 비어있었고, 무료함에 펼쳐든 책장 사이로 투명한 번루색이 스며드는, 학교에서는 몇 번 겪지 못한 한가로운 오후였다. 갑자기 주어진 여유 탓인지, 나는 단정히 고쳐 매던 교복 넥타이도 풀어헤친 채, 덜컹거리는 전철 진동음에 맞춰 평소엔 잘 부리지도 않던 가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열차를 이어주는 연결통로의 문이 열리더니, 내 여유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어떤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퍽 상해버린 것 같은 쉰 목소리였다. 고개를 드니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입가엔 흐르다 말라붙은 침 한 가닥이 허옇게 눌어붙어 있었고, 빈 좌석처럼 군데군데 빠져 있는 이 사이로 어떤 단어를 말하고자 하는 듯, 백태 낀 혀를 굴려대고 있었다. 아마 노인은 ‘껌’ 을 발음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의 손에 한가득 들려있는 자일리톨 껌과 동전 몇 닢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얼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가 그 껌을 내가 사주기 원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지하철 환승통로마다 붙어있는 ‘잡상인, 팔지도 말고 사지도 맙시다.’ 하는 문구라든가, 아버지의 ‘저런 잡상인들이 국가에 세금도 내지 않고 민폐만 끼친다.’ 는 말들을 으레 들어왔기에, 나도 다른 승객들처럼 그 노인을 무시하고 읽고 있었던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읽고 있던 소설 속에는 치매를 바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 말 그대로 어리석은 바보나 멍청이가 되는 병. 딱 저 노인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보. 나는 가지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려, 소음을 막을 이어폰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왜 그랬던 걸까. 내 손은 가방에 있는 지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노인을 다른 곳으로 쫓아낼 심보로 지갑을 찾았던 걸지도 몰랐다. 흉한 노인의 몰골이 어쩐지 불편했기에, 몇 푼 손에 쥐어주면 다음 칸으로 옮겨 가겠지란 생각으로 나는 지갑 속을 뒤적거렸다. 노인도 내 의도를 알았는지, 불편한 몸을 비틀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내 지갑 속에는 그 흔했던 천 원 한 장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한참동안 오천 원권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 주머니 속에 있던 동전을 꺼내 노인이 들고 있던 바구니 안에 넣어주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노인의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 그때, 별안간 노인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전철 안에 있던 승객들의 시선이 노인과 내게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 지갑 속에 있는 지폐를 본 것일까. 잡상인들이 뻔뻔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강매까지 할 줄이야. 책을 보고 있던 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나는 노인에게 따질 의향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발가락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숙이니 아까 꺼냈던 지갑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노인은 그 지갑을 향해 계속 소리치고 있었고, 내가 지갑을 줍자 지르던 괴성을 멈췄다. 그리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음 칸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나는 사라져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들고 있는 지갑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다. 노인은 말하는 법은 잊어버렸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가슴 속에서 밀려왔다. 내가 치매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아까 그 노인이 치매에 걸린 것일까. 정말 어리석었던 사람은 누구였던 걸까. 나는 보던 책을 덮고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창에 어리석은 바보의 몰골이 비춰 보이고 있는 듯 했다.

목록
인터넷은 이상을 알지 못한다-이상 「날개」(1936),그리고 박제가 되어버린 언어
목록

인터넷은 이상을 알지 못한다

-이상「날개」(1936),그리고 박제가 되어버린 언어

 

1. 박제가 되어 버린 ☐☐를 아시오? 나는 ☐☐하오.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유머저장소’ 와 ‘카광’ 이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인터넷 유명인이자, 사회정치적인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는 점. 그리고 충격적인 과거사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대한민국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에서 그들이 올린 글들이, 그대로 그들의 과거를 폭로하는 글들이 되면서 논란은 시작되었다. 문제가 되는 두 사람의 과거는 그대로 인터넷에 ‘박제’ 가 되어 부메랑처럼 그들에게 돌아왔다.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어느 날을 살아가는 ‘나’ 가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문구다.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2017년 수능특강에도 수록되며 수험생들을 괴롭혔던 문제작, 이상의「날개」(1936)이야기다. 매춘부의 기둥서방으로, 시대처럼 의욕을 잃어버린 나는. 말 그대로 음폐 되어 있는 방안에‘박제’되어 있다. 나는 아내에게 빌붙어 살며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방안에서 자아를 억누른다. 아내가 외출할 때만 아내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욕망을 해소 하는 유희를 즐긴다.
 자, 이제 시대가 바뀌어 광복(光復)이 되었다. 눈부신 경제 성장도 이루어냈다. 정보화 사회에 걸맞게 유희거리도 넘쳐난다. 현재의 ‘나’ 는 이제 밝은 사회를 향해 갇힌 방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지 못하다. 분명 나는 말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폐쇄되고 억압된 현실에서 벗어나 의지를 다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말했듯, 나는 방안에 ‘박제’ 되어 있다. 사장되어 버린 인간성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두 인물이 떠오른다. 두 인물 역시 자신의 과거에 ‘박제’ 당했다. 여기서 내가 있는 어두운 방에서 인터넷이 연상된다. 나는 박제를 지워낼 수는 없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종로3가의 어두운 사창가 뒷골목은 정부의 단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추악한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로 사라졌을까? 정말로 좋은 시대가 되었고, 안전한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 본연은 지워낼 수 없는 법이다. 현대사회의 뒷골목의 추악한 욕망은 스마트폰의 검은 액정 속으로, 검은 모니터 속으로 그대로 옮겨갔다. 악성댓글, 리벤지 포르노, 찌라시와 유언비어. 이 모든 것들이 인터넷 속 익명성이라는 이름아래 소리 없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소비된다. 두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천안함 / 세월호 사건 비하, 음란물 유포, 인격모독. 모든 것이 꺼져있는 어두운 모니터와 스마트폰 속에서 시작되었다.

 

 

2.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1)

 이상의 날개는 자의식의 흐름으로 작성된 소설이다. 소설 속 나는 인물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의 흐름대로, 감정이 흐르는 대로 글을 작성하고는 한다. 즐거운 대로, 분노하는 대로. 우리의 이성을 되찾고 감정을 사그라들어도 작성한 글은 그대로 인터넷에 남아 있다. 소설 속 나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생활한다. 현실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이렇게 표현한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버린다. 침침한 방 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은 알 길이 없다.2)
 
 빛이 들지 않는 곳은 익명이 보장된다. 적어도 내가 사는 곳은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을 원하지 않는다. 갇힌 방안에서 나는 자유롭다. 무슨 짓을 해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가 생활하는, 빛이 드는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아내는 생활력도 있고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 사회라는 시선에 제약을 받고 제지 받는다.
 “타인은 지옥이다.”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남긴 말이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시선 속에서 역할을 만들고, 사회성을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방에서 유희를 즐기는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인터넷에는 얼굴이 없다. 타인의 시선이 없으니,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가 있을 때 할 수 없었던 돋보기, 거울, 화장품을 가지고 나는 유희를 즐긴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생 병들이 아롱이 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3)
 
 나는 어두운 방에서 잠시 햇볕이 드는 방으로 나온다. 발광하는 모니터로 인터넷 속 사회를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용한 것에는 흔적이 남는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니 모를 뿐, 물건에는 모든 과거의 상흔이 남는다. 현실(아날로그)에서는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고 변질된다. 물건이 오래되어 버려지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에는 휘발성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디지털)은 그렇지 못하다. 인터넷에서 행동한 흔적들은 그대로 그곳에 남아 있다. 다른 인물들은 소설속의 나의 행동을 알지 못하지만, 현재는 모두가 나의 방안에서의 행동을 바라보고 기록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언어가 '박제'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볍게 내뱉는 말처럼 우리의 행동을 금방 잊어버리곤 한다.
 
어느덧 손수건 만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중략)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 없고, 한참 자고 깨인 나는 속이 무명형겊이나 메밀껍질로 띵띵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중략)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4)
 
 작은 볕이 나갔다. 유희거리를 다 즐긴 우리가 핸드폰과 모니터의 빛을 꺼버린 것과 같다. 하지만 소설 속 나처럼, 우리는 인터넷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과 달리 인터넷에서 흘러보낸 시간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감춰둔 본성을 드러내곤 한다. 가벼운 뒷담화 부터 심한 욕설까지. 사회가 정해놓은 올바른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바뀐다. 신념과 사상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소설의 나처럼 좌절과 절망감에 빠지더라도 언제든 일어설 수 있는 존재이다. 말실수도 마찬가지이다. 미처 잘못 내뱉은 어린 시절의 우리의 작은 실수와 잘못도. 모두 묻어두고 잊혀질 수 있기에 어른으로서 교화 될 수 있고 재사회화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과거를 묻어주지 않는다. 인터넷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나는 날개를 달고 다시 비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날개는 현대에서는 언제든지 꺾일 수 있는 존재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나의 비밀, 과거, 심지어 관련 없는 아내의 일까지. 언제든지 파헤쳐지고, 공개적으로 조리돌림 당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마주하기보다는, 눈앞의 현상에 주목하고 싶어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사회는 과거를 용서하지 않는다. 다시 비상하고 싶어 날개를 펼친 나는, 현대 사회에선 그대로 그 날개를 박제 당한다. 날 수 없다. 움직일 수도 없다. 용서라는 소망은 그대로 못 박혀 상징이 된다.
 소설 속 나는 한 번만 더 날아 보자 독백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일어섰을까, 아니면 백화점 옥상에서 투신을 했을까. 적어도 인터넷 세계 속에서는 불행한 말로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3. 유명인이 되려는 자, 자신의 과거를 견뎌라5)

 이상의 「날개」 마지막 장은 일제강점기에서 멈춰있다. 소설로 박제된 과거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세지를 던져주고 사회를 환기시켜준다. 소설 속 나에겐 감추고 싶은 비밀이자 일 일지라도, 우리는 「날개」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인터넷의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와 인터넷 실명제도 우리의 알 권리와 상충된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우리가 실명으로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우리의 욕망까지 사라질 수 있을까 싶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보복등으로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가 흐지부지 되었듯.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의 음지화를 더욱 가속시킬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잊힐 권리는 어떨까. 누구나 지우고 싶은 자신의 과거가 있다. 논란의 두 인물과 소설 속 '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묻어두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현재의 모습만 평가해 주길 바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권리가 있다 주장한다. 어떤 과거를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어떨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 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이하 "삭제등"이라 한다)를 요청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명예훼손)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약칭 정보통신망법에서는 과거에 대한 잊힐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활동한 과거로 인해 자신의 사생활이나 명예가 침해될 수 있으면 활동한 내역을 삭제할 수도 있고, 누군가 내 과거를 들춘 것을 처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상충하는 알 권리도 만만치 않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자유는 전통적으로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발표의 자유)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전달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은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을 전제로 한다.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은 정보에의 접근이 충분히 보장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정보에의 접근·수집·처리의 자유, 즉 알 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으며 자유권적 성질과 청구권적 성질을 공유하는 것이다.6)
 
 대한민국의 최고법인 헌법에서는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문에 써 있는 것처럼 알 권리는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보장되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 권리가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주고 받은 메신저? 사사로운 개별적인 만남? 사생활의 어느 단면까지가 우리의 알 권리에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유명인의 학창시절 학교폭력 사실, 성형 전 사진, 이성과의 연애. 이 중에 묻어둬도 괜찮은 과거와 드러내야 하는 과거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까? 당신이 공인이라는 이유로 당신의 과거를 파헤쳐도 되는 것일까?
 카광과 유머저장소. 논란의 두 인물은 결국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들을 정지 시켰다. 네티즌들은 말한다. 저런 인간 쓰레기들의 본연을 알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하지만 이 두 인물의 과거 외에도 구설수에 오른 유명인들은 많다. 당장 검색창에 'A 연예인 누드' 따위를 검색하면, 이미 사그라든 과거의 사건들이 주루룩 나열된다. 그런 과거 역시 알 권리에 포함되고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사생활은 중요하다 말하는 대중들은, 우리들의 잣대는 과연 옳은가.
 박제된 과거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다시 폭력으로 되 변한다. 우리가 판단하기에 옳든, 옳지 않든 말이다. 유명인에 향한 우리의 칼날은 언제나 우리를 향할 수 있다. '국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유통되는 포르노나 놀림거리가 되는 일반인의 방송 출현 같은 것들. 빛과 어둠처럼, 지우고 싶은자와 발굴해내려 내는 자들의 끊임없는 대립항. 언젠가 우리가 사회로 나가고 공인이 되어된다면, 우리는 박제된 과거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까. 인터넷은 마치 이카로스 같지 않을까. 높이 날고 싶어도 녹아내리는 날개를 가진 이카로스.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과연 떳떳할까? 필자는 두렵다. 필자가 나쁜짓을 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필자가 깨닫지 못하는 인터넷에 묻혀있는 과거가, 가면을 쓰지 않은 글들이 어딘가에 묻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가 모르는 본연의 자신이 정말로 존재할까봐 두렵다.
 
 

4. 인터넷은 이상을 알지 못한다

 빛과 어둠. 모니터 속의 작은 사회. 분명 인터넷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발전된 인터넷 속에서 우리는 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인터넷을 바라보는 우리의 이상향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소설 속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로 올라간다. 나는 그곳에서 회탁한 거리를 바라본다. 거기서 나는 깨닫는다. 아내와 나,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었다는 것을. 인터넷과 우리의 이상도 어쩌면 서로 맞춰 걸을 수 없는 절름발이는 아닐까. 필자는 물음표만 가득 늘어놓고 정작 해답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최대한 인터넷에서는 우리를 감추고 살아가야한다 말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저 방관만 하라고 조언해야 할지. 불편한 문제를 감추기 바쁜, 부끄러운 필자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헬로우, 디스토피아.
 이상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냐며 자조적인 언어로 자신은 유쾌하다 말한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전혀 유쾌하지 못하다. 알맹이가 비고, 껍데기만 남은 박제. 어쩌면 이상은 허울뿐인 자신과, 죽어버린 사회에 대해 박제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마음은 생명으로 가득한가? 우리는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는가? 대중들이 쉽게 내뱉는 줏대와 모순된 언어. 끊임없는 사람들의 자가당착의 굴레. 양 진영에서 존중을 외쳐도 결국 안으로만 굽는 팔.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의 수많은 과거가 쌓여가고 발굴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살아가는 곳. 이상이 말한 박제는, 결국 우리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회고되고 논의 될 것이다.
 이상의 「날개」가 인터넷 속 사회 문제와 연결 짓기엔 무리라고 볼 수도 있다. 이상의 「날개」는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당대의 지식인의 의지를 보여주니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필자는, 날개가 지금의 우리의 세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분열되고 혼란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적어도 인터넷은 이상의 생각을, 이상을 모르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들도 언젠간 활짝 날개를 펼친 세상을 보는 날이 올까? 우리 사회가 한 번 더 비상할 수 있기를, 박제를 벗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날자. 날자. 날자. 다들 한번만 더 날아보자.
——————————————————–
1) 다산 정약용「유배지에서 보낸 편지」中, 창작과비평 2001,
원문-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 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2) 한국현대문학전집 17 이상 「날개」,현대문학 2011, 84면
3) 「날개」, 86면
4) 「날개」, 87-88면
5)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4세(Henry IV Part)희곡」,1596
원문-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 the crown)
6) 헌법재판소 1991. 5. 13. 90헌마133

목록
불치병
목록

 마지막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나가자, 의사는 긴 한숨을 내쉬며 환자목록으로 가득한 모니터를 꺼버렸다. 온종일 의료 기록을 바라봐 흐릿해진 안경과, 알코올 냄새와 식은땀이 밴 축축한 가운이 그의 노곤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누런 목때 낀 가운과 헐거운 안경을 책상 위에 던져놓곤, 지친 몸을 의자에 뉘이며 천장을 향해 몸을 뻗었다. 오후 내내 몰려든 환자 때문에 그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마다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다. 등락하는 주식 때문에 담배를 끊지 못하겠다며 찾아온 직장인을 시작으로, 친구 따라 우정 따라 다니는 산악회 때문에 술을 못 끊겠다는 노인. 시험날만 되면 위경련이 일어나 시험을 못 친다며 펑펑 우는 학생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여자 친구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낭만 청년까지…. 진료를 보면 볼수록 여기가 내과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던 그였다. 시골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병원이다 보니 조금만 아프다 싶으면 이곳으로 찾아와버려, 제대로 된 진료를 볼 수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가 진료를 진행할수록 환자의 병을 진찰해주기보다 환자와 상담을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쯤 되니 그는 자신이 의사인지 상담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몸이 아프기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더 많으니. 이쯤 되니 마음이 곯는 병이 돌아 사람들이 아픈 것은 아닐지 의심이 가는 그였다.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오늘 사용한 의료 기구들을 다시 주문해야 했다. 그때, 진료실 문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진료실 문을 박차고 한 환자가 들어왔다. 그는 놀라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학생을 붙잡고 있는 아주머니와 어쩔 줄 몰라하는 간호사가 서로 뒤엉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거 놓으시소! 어머님, 지금 진료가 다 끝나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시면 안 되세요….

 

 차라리 빨리 진료를 해주고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그는, 눈치를 보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간호사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주머니는 간호사를 밀치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이고, 의사 선생님 이 얼라가 드디어 죽을병에 걸렸다 봅니데이. 답답한 듯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아주머니와 그 옆에 있는 학생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심각한 일임을 느낀 그는 급하게 가운과 안경을 걸치고, 동시에 진료차트를 꺼내 들며 빠르게 말했다. 어디가 아픈가요? 무슨 증상을 겪고 있죠?

 

 패혈증? 부정맥? 아니. 심각한 병이면 큰 병원으로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오만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리며 학생을 진찰하기 위해 다가갔다.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요 아가 갑자기 글을 쓰지 뭡니까! 네? 글이요? 그는 당황해서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요 머시마가 한동안 착실히 공부만 하더니만, 갑자기 교과서 대신 소설을 찾아 읽고 글을 쓰고 앉아 있지 않심니꺼. 한창 공부만 해도 모자를 시기에 갑자기 글을 쓰다니. 문제가 있는게 아잉교…. 아이고, 어째요 의사 선생님. 요 자슥이 판검사가 될 재목인데 글을 쓰고 싶다 계속 조르니, 이러다가 정말 큰일나는 거 아임니까. 엉엉 울부짖는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학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 병은 어느 학계에 보고된 병인가. 이 환자는 어떻게 진찰해야 하는 것일까. 온도 차 다른 두 울음소리가 섞인 진료실.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글? 글을 쓰고 싶다고? 네가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정신 차리렴. 의사가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겠니. 그게 글 쓰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는 일 아니야? 글쟁이로 아무리 잘살아 봐야 기자밖에 더 되겠어? 글은 의사가 되어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잖니.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진료 차트에 병명을 적어가며 아주머니께 말씀드린다. 어머님, 지금 아드님은 중2병이나 감성병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게 크게 번지면 문학도 지망이라는 합병증도 나타날 수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병입니다. 뼈저리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감성에 젖어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제가 처방해드리는 약을 먹이시면 헛된 꿈도 몽상도 모두 잊어버리고 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라는 진찰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그는 학업으로 인한 과로로 나타난 우울 증상이라며, 비타민제와 항우울제 처방을 내리고 아주머니와 학생을 돌려보냈다. 진료실을 나가면서 뒤돌아본 아이의 시선이 그와 맞닿았을때, 그는 그 눈빛이 뭐라 말할 수 없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료차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랍장에서 오래된 만년필 한 자루를 꺼내 든다. 그는 먼지 쌓인 만년필로 차트 한 귀퉁이를 써내려간다. 고독하고, 쓸쓸하고, 슬픈 것이 묻어 나온다. 굳어버린 잉크 멍울들. 자꾸 그 학생이 떠올랐다.

 

 그는 가운을 벗으면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 퀭한 눈동자에 여릿하게 그 눈빛이 스며들어있다. 아까 그가 내렸던 진단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게 크게 번지면 문학도 지망이라는 합병증이…. 제가 처방해드리는 약을 먹으면 현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는 쓴 알약을 삼킨 것처럼 인상을 쓰고는, 오래된 서류들을 모아둔 금고를 열어 그 안 깊숙이 만년필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도 모를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자물쇠로 금고를 잠가버린다. 그가 겪었던 과거의 아픈 열병들이, 묻어버렸던 추억들이. 자꾸만 새어 나오려 하고 있었다.

목록
이분법 세계
목록

 어느 날, 세계에서 이상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거짓말 같지만, 구체적인 한 편의 수기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현실 같은 꿈이었습니다. 꼭 예를 들어야한다면 VR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게임과는 다르게 모든 감각이 생생했습니다. 마치 정말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유로움, 그리고 꿈에서 본 사람들 모두 정말로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현실감.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현재가 꿈속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치 장자가 꾼 호접몽처럼 말이죠. 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처음에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저 잘 짜인 흥미로운 소설 한 편이라고 느꼈을 뿐. 그런데, 처음 올라온 글과 비슷한 내용의 글이 다음날 게시판에 올라왔고, 이어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부류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에 번져나가는 잉크처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신이 꾸었던 ‘꿈’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글쓴이들 모두 직접 본 것처럼, 내용이 구체적이고 세밀했었다. 모두 같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자세한 부분에 대한 묘사는 서로 달랐다. 마치 거대한 퍼즐의 조각을 제각기 떼어 글 속에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다른 이들의 글을 대조해서 읽어보면 서로 아귀가 맞아 떨어졌고, 다른 사람이 놓친 부분을 보충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터넷의 속성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글을 믿지 않았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모든 글을 한 사람이 작성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듯‘꿈’에 대한 수기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글을 접한 사람이 늘면 늘수록 같은 경험을 했다는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그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신빙성을 얻을 만한 정보들이 생겨나자 발 빠르게 학계에서는 이 현상을‘꿈 공유현상’이라는 명칭을 붙였고, 이어 언론사들도 유행처럼 매일같이 이 사회적 현상을 보도하였다.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을 보였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자 하나의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겼다.

 

 「꿈을 공유하는 것이 뭐가 신기하다고? 그냥 함께 게임하고 같은 영화 보듯 똑같은 꿈을 꾸는 것뿐이잖아?」

 

 철 지난 유행처럼, 꿈 공유에 대한 이야기는 금방 시들해진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유행이 조금씩 바뀌어 돌고 돌 듯, 꿈 공유 현상도 변종이 생긴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세포가 분열해서 제 몸을 불리는 것과 같았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꿈을 공유해도 같이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마다 꿈의 크기가 다른지라 같은 꿈을 공유해도 서로 다른 장소에 있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올라오는 수기의 내용들을 찾아보니 다른 체험자와 만나는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였어요. 처음에는 꿈의 크기가 작아진 것으로 가정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예요.」

 

 숫자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5명에서 10명으로. 10명에서 100명으로. 군데군데 흩어져 있던 물방울들이 한데 엉겨 고이는 것처럼, 각기 다른 꿈들은 점점 뭉쳐 거대해져갔다.

 

 우리 가족들도 언제부터인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처음엔 얼떨떨해했지만.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예전보다 더 화목한 모습들이었다. 딸은 꿈속에서 낮에 못다 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막내가 만든 상상 속의 동물을 타고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멀찍이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나는 가족들과 꿈을 공유하기는커녕 요 며칠 새 개꿈조차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 중학년이 된 딸이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아빠. 조금씩 꿈을 같이 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잖아? 얼마 안 있어서 아빠랑 우리 모두 같은 꿈을 꿀 수 있을 거야. 나중에 꼭 막내가 만든 유니콘 타고 노는 거다? 꼭 그러자며 나는 딸과 손가락을 걸었다.

 

*

 

 물먹는 스펀지처럼 점점 커지던 꿈은. 서로와 서로 달라붙어 마침내 한 국가를 형성할 정도로 커지더니, 갑자기 모든 꿈을 다 흡수해버리곤 그대로 하나의 덩어리로 굳어버렸다고 했다. 모든 꿈이 하나로 연결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와 동시에 뭉쳐진 사람들의 상상력이 더 어마어마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유토피아에서부터 열역학에 의해 존재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무한동력까지…. 현실과 다르게 제약이 없는 자유로움과 상상하는 것 모든지 이루어지는, 정말 꿈같은 세계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상상력을 중요하다곤 말하지만, 정작 실용적이고 무난한 상상력을 중요시 여겼던 사회였기에. 많은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꿈 속 세계를 환영했다. 물론 이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불면증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하고 겨우 잠들어도 꿈도 별로 꾸지 못하는데 이건 너무하잖아! 나도 매일 야근 때문에 잠도 별로 못 자는데, 먹고 자고 아무 도움 안 되는 백수들만 행복하겠네. 긴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만은 터져 나왔다. 꿈을 꾸면 뭐하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왜 나는 날아다니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거냐고!

 

 세계는 이제 크게 둘로 나뉘게 되었다. 현실세계와 꿈속 세계 둘로. 사람들이 모이면 집단이 생기듯 꿈속에서도 사회가 만들어졌고, 질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형형색색의 물감도 모두 섞이면 어지럽듯, 다양한 이들의 상상력을 보호해주기 위함이었다. 꿈속 세계 사람들의 무분별한 상상력의 사용은 금지되었으며, 공익을 위한 생각들을 펼치는 것을 제1철칙으로 정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하루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고 싶어 했다. 억눌린 현실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현실보다 훨씬 인정받을 수 있는 꿈속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다르게 꿈속에서는 상상력이 곧 힘이었고 권력이었다. 거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꿈속을 다스렸고, 만들어갔다. 빈약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꿈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했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자유로운 세상을 즐길 수 있었으니깐. 심지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사실은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김 과장님, 어제 남서쪽 마을 가보셨어요? 이번에 누군가 거대한 세계수 만들어 놓은 거 보셨죠? 완전 대박이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세밀하게 설계했을까?”

 

 “어…? 아, 응.”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입에 물었다. 통화 연결이 실패했다는 문구가 떠 있는 스마트폰 전원을 꺼버린다. 아마도 온 가족이 낮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사실, 내 기대와는 달리 꿈 공유 현상이 발생한 이후로부터 나는 지금까지 꿈을 단 한 번도 꿀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창밖에서 여명이 스며들고 있었을 뿐. 꿈 비슷한 것을 보기는커녕 피로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날들이 많아졌다. 안타까워하던 가족들도 지금은 그러려니 했다. 아침에 온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할 때에도, 가족들 모두 꿈 이야기 밖에 하질 않았다. 꿈속에서는 허리 통증도 없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어 좋더구나. 하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언론이 전해주는 소식에 꿈속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죄다 부정적 어조가 붙은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언론사들은 이제 현실세계의 존립을 위하는 기득권을 향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꿈속 세계에서는 모든 정보가 손을 거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퍼져나갔기에, 더 이상 언론사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또한 상상력으로 구축해낸 시스템이었다고 했다. 나는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어울리지 않게 한산한 서울 시내가 아래로 보였다. 어쩐지, 나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어찌 보면 이제 사람의 정신은 24시간 온전히 깨어있는 셈이었다. 사람들은 삶이 더 늘어난 기분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순수 수면 시간은 평균적으로 26년 가까이나 되었으니깐. 다르게 생각해보면 26년이란 시간을 더 깨어 있고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늘어난 시간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더 열중할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들 모습도 놀라운데, 나는 하루마다 영어실력이 유창해지는 딸을 보며 더 놀라워했다. 아빠는 그것도 몰라? 하고 말하는 딸아이가 어쩐지 낯설었다. 꿈속 세계는 정말 대단했다고 했다. 생각했던 그대로를 온전히 창조해 낼 수 있으니! 악기를 배우지 않아도 생각한 음계를 그대로 뽑아낼 수 있었고, 구상한 소설의 내용이 생각한 그대로 바로 완성되었다고 했다. 언제 배웠는지도 모를 기타를 딸아이가 치며 내게 말해주었다.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서 좋아. 정말, 상상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꿈 속 세계로 인해 현실엔 색다른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수학난제도, 발명의 완성을 가로막던 한 줄의 아이디어도. 모두 봇물 터지듯 솟아나기 시작했다. 많은 예술가들과, 발명가들, 창조가가 절망했고 좌절했다. 자신들의 노력과 시간들이 한순간에, 단 몇 초 만에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다시금 노력을 하고, 자신을 쥐어짠다고 해도 그 엄청난 상상력이 없다면 꿈 속 세계 사람들에게 단숨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꿈 속 세계로 옮겨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상실감에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선택한 이들도 많았다.

 

 꿈속 세계는 인류의 발전과 문화에 큰 영향 가져왔고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꿈 세계를 시기하는 사람들과 우려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꿈 세계가 가져다준 이익이 물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꿈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원해,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었다. 이제 현실세계에서의 식사는 필수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더 이상 가족들은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다. 음악을 듣지도 않았고, 딸아이의 인형을 쓰다듬지도 않았다. 모든 외부감각은 상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수면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현실 세계에서의 능률은 점점 떨어졌다. 정말 심한 곳은 아예 일할 사람이 없어서 그 지역경제가 폭삭 무너지기도 하였다고 했다. 세상의 균형은 기울다 못해 한쪽으로 치우쳐져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고, 보다 못한 정부가 사람들의 수면을 제한하며 꿈 속 세계를 규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며 항의했다.

 

 나는 식탁에서 홀로 아침식사를 하며 시위현장에 나간 가족들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아무것도 모르고 피켓을 들고 서있는 막내아들이 보였다.

 

 「이제는 상상하는 것마저, 꿈꾸는 것조차 막으려고 하는 겁니까? 그저 힘든 삶에서 단비 같은 꿈을 꾸는 것뿐인데? 」

 

 극심한 반발이 심해지자 정부는 내용을 철회했다.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세계에서의 기득권자들은 꿈속세계에선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신분이 반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나라의 장관이 꿈속에서는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으로, 동냥하던 노숙자가 꿈속에서는 부족한 게 없는 부유한 사람으로 바뀌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꿈속에서 자본은 아무런 힘도, 통용도 되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상상력만이 거래되었고 힘을 얻었다. 현실에서 모든 것을 얻은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이상향을 바랬겠는가?

 

 얼마 전 송부장이 황대리의 뺨을 때린 뒤 황대리가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 사내에 돌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송부장도 사표를 냈다고 했다. 다들 꿈 때문이라고들 했다.

 

 몇 차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속으로 향해, 꿈 세계를 이용하거나 제지하려고 하였지만. 빈번히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꿈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24시간 꿈에서까지의 연장근무는 죽어도 막겠다는 사람들의 의지였다. 꿈속 세계는 온전한 꿈을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현실세계는 현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점차 꿈속을 살아가는 자와 꿈속을 살아가지 않는 자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꿈속에서 밖에 힘을 쓸 수 없는 졸렬한 족속들이라고 비난했고, 꿈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상도 생각도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비방했다. 그러다 나중엔 각자 자신이 사는 세계가 진짜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저쪽 현실세계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뿐인 가짜다! 꿈을 꾸는 것은 현실세계의 무능을 인정하는 자들의 망상이다!

 

 세계는 이제 정말로 둘로 나뉜 듯 했다. 꿈속을 살아가는 자와 현실을 살아가는 자 둘로. 시간이 지날수록 꿈속 세계와 현실세계의 교류는 끊기다 시피 했으며, 중립을 지키며 현실과 꿈속을 오가는 사람들이 간간히 양 세계의 소식을 전해주곤 하였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현실에서도 가난했지만, 제2의 삶이라 여겼던 꿈속에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극단적인 비관이었다. 정말로 꿈도 희망도 없었던 사람들의 말로였다.

 

 꿈속이 점점 번성할수록 회사 내에서도 직원이 점점 줄어들었다. 회사에서도 위기를 느꼈는지 주지도 않던 상여금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승진한지 몇 주 되지도 않아 또 다시 승진을 시켜주었다. 국가에서 상여금을 장려하며 회사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아마 퇴사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스마트폰 알림 울리는 빈도가 모래시계 모래 떨어지듯 조금씩 사라져갔다. 아내가 꼬박꼬박 보내주던 아이들 사진도 보기 힘들어졌고, 아내와 아이들 목소리도 들은 지 꽤 오래되었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도, 집에서 회사로 출근할 때도 가족들은 죽은 듯 잠만 잤다. 나는 가족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은 같이 잘 수 있었어도, 꿈은 같이 꿀 수 없었다. 어떤 공허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

 

 위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세계 사람들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대다수의 가게가 무인으로 바뀌었고, 대중교통도 자동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구축해둔 무인 시스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현실에서 활동하는 인구가 줄자, 남아 있는 사람을 붙잡기 위한 맞춤형 복지가 늘어나기도 하였다. 오히려 전보다 사람들의 인권을 챙기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부작용은 꿈속 세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상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간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것이다. 상상력이란 것은 자본과는 다르게 나누어줄 수가 없던 것이기에,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계가 되었음에도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양 집단 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퀭한 표정으로 지하철에서 그 소식을 보곤 비웃었다. 인간의 욕심은 얼마나 끝이 없던가? 자유로운 세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계급을 나누고 서로를 비교하다니. 끝없는 상상력을 더 갈망하고 축적하고 싶어 스스로의 세계를 망가트리는 모습이. 어쩐지 나는 우스웠다.

 

 나는 오늘 업무를 다 끝내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나는 고개를 틀며 기지개를 펴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책상을 바라봤다. 현실 세계를 선택한 사람들도 숙면을 취해야 하긴 했으니. 보통 현실세계 사람들은 자러간다는 말을 놀러갔다 온다는 표현으로 비유하곤 했다. 꿈속에서는 거주할 공간이 없으니,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구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현실세계의 이방인이라는 것을 꿈속에서 들키게 되면 배척받는다고 했다. 지역도 인종도 아닌 하다못해 꿈꾸는 것 마저 차별이라니. 멍하니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는데 정적을 깨고 복도에서 사람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과장… 아니, 김 부장님! 소식 들으셨어요? 꿈속에서 사람이 죽었대요!”

 

 꿈속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꿈 공유현상이 일어난 이후 제일 크게 다루어졌다. 신문기사 1면, 뉴스 보도 전문을 모두 메울 정도로 그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꿈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듣도 보지도 못했어. 상상하는 대로 모든지 할 수 있으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 한명 죽이는 건 일도 아니겠지?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언론사에서 정보를 취합해 제대로 된 보도를 내보내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선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꿈속 사람들이 떠돌아다니는 현실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다닌다며…. 무방비하게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를 현실사람들이 방관하기만 한데…….

 

 거기다 무분별한 사람들의 언행으로 사건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어차피 꿈속 사람들 우리 무시하기만 하는데 잘 죽은 거 아님? 현실세계에서 아무런 도움 안 되는 거 그냥 죽는 게 더 나을듯ㅋㅋㅋ
┗꿈도 없어서 현실에 수긍하고 찌질이 주제에 입 함부로 놀리네.
┗꿈속 사람들은 꿈만 꿔서 현실하고 꿈하고 분간을 못하냐?

 

 양쪽 세계의 사람들은 차별을 넘어, 걷잡을 수 없이 서로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혐오는 증오로 번져갔고 증오는 곧 범죄를 낳았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온 힘을 다해 울부짖듯, 세상은 비명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언론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전달했다. 속보입니다, 방금 광화문 광장에서 현장에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차량으로 치는 테러가… 이어 다시 속보입니다. 잠을 자고 있던 일가족이 연쇄 살인마한테 참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또 다시 속보입니다. 경찰서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꿈 속세계 수면자들이 일시에 집단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집으로 들어오니, 장롱도 서랍도 모두 다 텅텅 비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놀라 집안을 휘젓고 다니다 아내가 남겨놓은 쪽지를 본다.

 

 [여보 미안, 요즘 세상 흉흉한데 그냥 집에 있기 그렇더라. 연락해도 아마 못 받을 테니깐 연락하지 마. 그리고 밥 잘 챙겨먹고.]

 

 언제나 마지막에 덧붙이던 아내의 사랑한다가 없었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아내에게 통화를 걸려다가 그만둔다. 가슴에서 울컥 무언가 치민다. 손가락 걸고 같이 꿈꾸자 약속했던 딸아이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눈물이 자꾸만 고인다. 가족들 얼굴이 희미해져 가는 건 왜일까.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막내아들의 그림 공책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 나는 없다.

 

*

 

 과자에 강소주만 들이키던 나는 옆에 놓인 딸아이의 인형처럼 시르죽은 채 텔레비전만 바라본다. 뉴스는 똑같은 내용을 도돌이표 치듯 반복하고 있었다. 꿈속과 꿈밖의 살인. 테러. 정치. 혐오. 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는 소주잔을 들이킨다. 사람들은 온전한 시간의 원을 그리는데, 나는 홀로 비스듬히 잘라놓은 파이 같았다. 돈도, 시간도, 가족도 누군가 야금야금 갉아먹어 팩맨처럼 텅 빈 입을 가진 사나이. 비뚜름하게 비친 내 모습이 텔레비전 위로 보인다. 그래, 아이들도 아내도 현실보다는 꿈속 세계에서 사는 게 더 낫겠지. 피로에 찌들지 않아도 되고,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세계가 더 낫겠지. 꿈. 꿈…

 

 그런데, 내 꿈이 뭐였었지.

 

 …다음 속보로 제약회사의 기자회견장을 연결하겠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해냈습니다. 여러분의 자유를 위한 신약이 나왔습니다.」

 

 나는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제약회사의 사장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영원히 잠들 수 있는 수면제와 영원히 깨어있을 수 있는 각성제였다.

 

 「이제 더 이상 두 세계를 번갈아 다니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불안에 떨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세계로 영원히 이주하세요!」

 

 다음날, 전국 각지의 약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약을 받아든 사람들은 일말에 고민도 없이 입에 약을 털어 넣기 시작했다. 다들 자신이 믿는 각자의 세계로 떠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꿈을 꾸는 사람들은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수면제를 먹는 순간 숨이 멎으면서, 영원히 꿈 속 세계로 떠나게 되었다. 더 이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악몽 속에서 살해 당할까봐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됐고, 잠을 자지 않아도 돼 일의 능률도 늘었다. 다시 세계의 경계는 단단히 굳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서로의 세계를 차츰 잊어가기 시작했다. 두 세계는 서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영원히 잠들 수 있는 알약과 영원히 깨어있을 수 있는 각성제를 들고 물끄러미 서울 시내를 바라보았다. 다시 세계는 둘로 나뉘었다.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 창조와 융화가 조합되었던 세계는 더 이상 없다. 사람들은 다른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더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속해 있을 수 있는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아내의 마지막 통화가 귓가에 귀벌레처럼 파고든다.

 

 ‘…있지 여보, 기억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꿈을 포기했던 날 기억나? …그래 성범씨 사고. 그 사고 때문에 당신이 꿈을 포기했었잖아. 별일 아니라는 듯 당신은 말했지만, 나는 정말 그때의 당신이 안타까웠거든. …그런데 있지 여보. 옛날의 당신이 여기에 있어. 여기 있는 당신이 더 희망 있고 행복해 보이는 그때의 당신 같아. 누가 진짜 당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상관없는 것 같다. 끊을게.’

 나는 서울 아래를 바라보며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저 멀리 경계선 너머를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정말 내가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꿈 없는 내가 정말 가족들과 같이 있을 자격이 있을까? 가족들이 나를 반겨줄까? 혹시 만약 안 된다면…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정말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목록
택배
목록

 택배, 택배라. 택배만큼 모든 걸 전해주는 그런 신비로운 정체가 있을까 싶다. 날카롭게 각져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온화한 질감을 가진. 손끝에 적절히 실리는 어딘가 만족스런 무게감을 주는. 그런 종이 상자를 전국을 넘어 전 세계로 실어 나른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내 머릿속의 하늘은 날아다니는 택배 상자들로 가득하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면 높이 솟아 있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있다. 이웃 간의 소통이 줄어드는 현대사회에서 적절한 소음을 환기해주는 존재가 택배가 아닌가 싶다. 띵동하고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굳게 닫힌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급히 뛰어 내려가며 택배를 전달해 주는 기사 아저씨의 발소리를 뒤쫓다 보면 이웃사촌의 삶과 대화를 엿볼 수 있다.

 

 택배를 뜯기 전까지는 포장된 테이프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긴장을 풀어내고 꼼꼼히 포장된 택배 상자를 열다 보면 어떤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말 택배 상자 안에는 뭐든지 담을 수 있어서, 할머니가 살고 계신 바다 내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생선비린내, 동태였다가 북어가 되어가는 명태 대가리, 그리고 편지 한 통 없지만 꽉꽉 채워진 할머니의 사랑이 엿보여 처치 곤란의 택배를 받아도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루는, 택배 상하차를 하고 시르죽은 채 뻗어버린 형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미련하게 그걸 다 하고 있냐고. 그냥 중간에 도망치지 그랬냐고 말이다. 형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응, 맞아. 중간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졸라 힘들어 죽겠더라… 근데 내가 실어 나르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겐 정이고, 누군가에겐 행복일 거라 생각하니깐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도망치지도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냥 다 했어…. 형은 말을 마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일 때문에 얼굴은 고되보였지만, 입가만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형의 말을 들은 이후로 택배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집 앞에 택배를 놓아두고 급하게 뛰어가는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크게 인사하기도 하고, 집 앞에 음료수를 놓아두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해하시던 기사님도 이젠 웃으시며 배달을 하신다.

 

 나는 지나가는 택배 트럭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 트럭 안에는 얼만큼의 행복과 사랑이 실려 있을까 하고. 가끔은 넘치다 못 한 사랑이 부풀어 올라, 트럭 안에서 펑하고 쏟아져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홀로 웃기도 했다. 여기저기 실린 사랑과 행복이 전국을 넘어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빌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택배는 그 단어의 뜻 그대로 집마다 나누는 정인 것이다. 이웃과 나누는 덕담 한마디.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과자도 모두 마음과 마음 사이로 전달해 줄 수 있는 택배이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누군가와 나눌 빈 택배 상자를 바라보며, 무얼 채워 넣을까 고민해본다.

목록
자화상
목록

 내 자화상 밑그림을 작은 글씨로 그려보자. 앞머리를 가다듬으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아픈 상처를 가리려 검게 염색을 했지만 이내 색이 바래버렸다. 조금 이르게 애늙은이가 되었다 생각하자. 넘긴 앞머리로 진한 눈썹이 그려져 있다. 삼신할매가 나를 점지해줄 때 붓질을 조금 힘 있게 하였나 보다. 강하게 그어진 선이 굵게 스며든다. 눈동자에는 가을이 물들어있다. 그래서 시선 끝에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눈 옆에는 서로 만나지 못하는 두 개의 별이 떠 있다. 빛나지도 못하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 두 검은 별이다. 별들 아래엔 울리지 않는 종 하나가 달려 있다. 흥얼거리지 못하는, 그런 종 하나가 매달려 있다. 종 밑에는 매일 같이 다듬어주어도 질기도록 올라오는 잔디가 자라 있고,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진홍빛 입술이 있다. 그런데 내 자화상을 그려 가는데 자꾸 다른 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펜을 잘못 놀린 걸까. 왼손으로 내 얼굴을 천천히 더듬어가니.

 아, 내 얼굴에 아버지가 물들어 있다.

목록
휴게소
목록

 선배, 잠시 쉬었다가 가요. 지금 너무 오랫동안 운전했어요.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는 가로등이 자동차 위로 잠시 내비췄다 멀리 사라진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는 지칠 줄을 모르고 두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있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며 점멸 해갔다. 나는 말없이 뒷좌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쌓인 A4 용지들 위로 에너지 드링크 캔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제발요 선배. 선배가 걱정 되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제가 죽을까봐 그래요. 사고 나서 죽으면 선배가 책임질 거예요? 논문도 좋고 석사도 좋지만 일단 살고 봐야죠. 나는 내비게이션을 흘끗 바라봤다. 가까운 휴게소까지 20km는 족히 남아 있었다. 게다가 휴게소를 들리기 위해서는 국도로 빠져야만 했다. 동이 트기 전까진 도착해야 제대로 된 촬영을 할 수 있어, 너도 그거 알고 따라온 거잖아? 후배가 툴툴거리며 새(鳥)사전을 뒤적거렸다. 우리는 겨울철에 대한민국을 지나는 나그네새를 촬영하기 위해 내려가는 중이었다. 겨울이어서 해가 늦게 뜨기는 했지만, 그래도 서두르기는 해야 했다. 아무리 나그네새를 보러 간다지만 우리가 나그네새가 될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 투정 부리는 후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나그네새가 떠도는 줄 아냐? 먹이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배부른 새가 굳이 왜 떠돌겠어. 우리도 배고프기 때문에 떠도는 거다. 논문 찾아 이곳저곳. 교수님처럼 텃새가 되고 싶으면 일단 나그네가 되어야지. 그럼 밥이라도 사 먹이고 부려 먹든지요. 확 그냥, 펑크라도 나버려라. 후배가 발 받침대에 발길질을 하는 순간, 뒤쪽 타이어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차체가 휘청이며 덜컹거리더니 갓길로 빠져버렸다. 나와 후배는 서로를 쳐다봤다.

 

 이거 휠 안 망가졌어야 하는데…. 나는 자동차 타이어를 보며 말했다. 급하게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에 있는 휴게소에 들렸으니 후배의 소원 중 반은 이루어진 셈이었다. 단지 휴게소가 닫혀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스물 네 시간, 성수기와 명절 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을 휴게소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정비소는 물론이고 화장실마저 잠겨있어 후배는 화장실 옆에 있는 풀숲을 헤쳐 들어갔다. 휴게소에는 더 이상 허기를 자극할 음식 냄새가 없었고, 고요가 잔뜩 내려앉은 등나무 벤치에는 미지근한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자동차 배기가스와 피로를 실은 하품 한 점 없는 휴게소의 공기는 맑고 깨끗했다. 타이어는 로드 킬을 당한 개구리처럼 땅에 달라붙은 채 푹 꺼져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타이어를 고쳐보기 위해 트렁크에서 스패너를 꺼내 들었다. 버려진 휴게소보단 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느새 볼일을 보고 온 후배가 내 옆에 앉아 중얼거렸다. 휴게소인데 왜 운영을 안 하고 있을까요? 수익이 안 생기니깐. 다들 고속도로로 달려 나가기 바쁜데, 누가 굳이 시간을 내어 국도를 타면서 휴게소에 들리겠어. 머무는 사람들이 있어야 운영을 하지. 마치 선배 같네요.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 나는 스패너로 나사를 풀며 생각했다. 새가 좋아 무작정 생물학과에 진학 한 지 어언 6년. 남들이 취업을 다 하는 동안 나는 새만 바라보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분명 좋아서 한 일이었는데. 다른 동기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돈을 버는 동안 나는 학위를 따기 위한 떠돌이 생활에 불안정한 미래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어쩌면 학위에 대한 집착을 가져온 것일지도 몰랐다. 다급한 마음 때문일까. 스패너에 맞물린 나사가 계속해서 헛돌았다.

 

 선배! 언제부터 부르고 있던 걸까, 후배가 고함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내 스패너를 뺏어 들은 후배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스패너를 풀숲으로 멀리 집어 던졌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 뭐하는 거야? 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후배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딴청을 피우며 자동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후배를 따라 자동차 안으로 들어갔다. 후배는 자동차 시트를 젖힌 채 거꾸로 누워있었다. 선배도 따라해 보세요. 나는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냐니깐? 후배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꾸로 생각해보자고요. 뭐를? 긴급출동 서비스 불렀으니, 사람 도착하기 전까지는 좀 쉬자고요. 선배 지금 당장이라도 졸도해 버려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으니깐. 선배가 그랬잖아요, 휴게소에 사람이 있어야 운영을 한다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휴게소에 들리듯, 사람의 마음에도 여유가 있어야죠. 휴게소도 쉬는데 선배도 좀 쉬어요.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후배는 어느새 골아 떨어져 있었다. 나는 후배를 깨우려다 그만두고는 후배를 따라 옆에 누웠다. 차창으로는 귀뚜라미조차 울지 않는 새벽이 그려져 있었다. 지친 탓일까. 나도 금세 후배를 따라 잠에 들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깨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휴게소도 자동차도 잠시 멈춰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는 가로등을 따라 보안등 밝힌 렉카가 달려오고, 휴게소 간판에 나그네새가 쉬어가는, 그런 밤이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