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디
기니피그가 되고 싶던 햄스터 NEW!!

  옥탑 실선에 걸어둔 빨래는 국기처럼 흩날렸고 고장 난 고물 삽니다 트럭 아저씨가 틀어둔 트로트 애국가라도 된 마냥 가슴이 웅장해졌다 역시, 나는 한 왕국을 다스리는 왕인 것일까   녹는 여름 창을 투과한 햇볕에 바짝바짝 말라가는 장판은 이상하게 뜨겁고 끈적 끈적 달아올랐다 산기슭에 핀다던 다년초 끈끈이주걱이 방 안을 뒤덮은 듯 나는 벌레라도 된 마냥 장판에 눌어붙어 일어날 수 없었다 그건 내 탓이 아녔다 바닥에 핀 끈끈이주걱 탓이었지 내 탓이 아녔다   고장 난 고물을 산다던 트럭 아저씨가 미리 녹음해둔 테이프를 틀었다 사체가 경직하기 5초 전을 바라본 사람의 목소리처럼 영혼의 무게가 사라져[…]

기니피그가 되고 싶던 햄스터
/ 2021-07-25
우주디
숨바꼭질 NEW!!

열기로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신호등이 깜빡 거리면 잠시 잠들었다 깨어났을 뿐이라고 구도심 이면 도로에는 여전히 전봇대가 잠들어 있다던데 전선 위에 참새들은 우기의 영향으로 잘 수 없었다 ​ ​우리는 빗속에서 투명해지기를 원했지 방울과 방울이 하나 되는 걸 가만 바라보면 어쩐지 거대한 세계를 원하는 것도 같았다 그건 우리를 닮았고 ​ ​하나부터 열까지 조용히 세어볼까 휘파람 부는 법을 몰랐던 어린아이처럼 눈을 꼭 감고 엇갈린 숫자를 뱉어내면 전선도, 참새도, 우기 같은 것도 전부 아스팔트의 열기에 녹아 숨어버릴까 영영 보이지 않는 것이 될까 나는 빗속에서 숫자를 셀 수 없었다 ​ ​어쩌면 증발해 버렸을 지도 모르는[…]

숨바꼭질
/ 2021-07-23
우주디
컨테이너 [1]

 불투명한 시트지 너머, 유리창에 달라붙은 빗방울이 보였다. 자그마한 물방울들이 저들끼리 합쳐지다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창을 보다 말고 정수기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냉수는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정수기가 며칠 전부터 말썽을 부렸지만, 사장은 말로만 수리사를 부른다고 했지, 정작 수리 센터에 전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뜨거운 물을 받았다. 장마철에 마시는 믹스 커피는 딱히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온몸에 전이되는 따듯함을 느끼기에, 컨테이너 안은 이미 충분히 고열감을 떠안겼다. 사장은 책상에 다리 한 쪽을 올린 채, 삐딱하게 안아서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말했다. 유정 씨 조금 이따 사람 오기로 했으니까, 나가서[…]

컨테이너
/ 2021-06-21
45 월장원 상품 수령 동의서 [0] 우주디 2021-05-18 Hit : 153 우주디 2021-05-18 153
우주디
밤이 너무 무거울 땐 [1]

밤이 너무 무거울 땐 불을 켜고 숨 쉴 구멍을 찾아야 한다고 그녀의 두터운 한숨이 말했다 하늘에는 무지개색 구름이 떴고 별들의 과오가 무거운 삶의 각주처럼 늘어졌다 ​ 신이 새긴 주저흔이 하늘에 어질러진 날이면 나는 그 상처를 보며 빛을 찾았다 밤이 너무 무거울 땐 불을 보아야만 한다고 그녀의 차가운 심장이 말했다 ​ 얼어붙은 입술 새로 뜨거운 한숨이 나오면 우리는 북극에서 따듯해 죽어버리자 – 사랑의 힘을 온전히 믿어서 죽음마저 유의미하게 만들어버리던 그녀는 이제 내게 없다 ​ 밤이 너무 무거울 땐 불빛을 찾으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땐 신의 상흔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고 억겁의 슬픔을 삼키다[…]

밤이 너무 무거울 땐
/ 2021-04-30
우주디
얼음호수 [7]

  아메리카노가 색을 잃는다. 찬 얼음이 미적지근한 물에 중화된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푯말이 썰렁한 허공을 메운다. 이목을 잡아 끈다. 나는 '안녕히'의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어쩐지 자라면서, 안녕히 -라는 의미에 더 이상 두려움과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안에 안녕히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찬 바람이 유리창을 두드린다. 유리창을 날려 버리고 손아귀를 뻗어 조수석에 앉은 그녀를 낚아챌 것처럼 덜컹, 덜컹 성난 황소처럼 달려든다. 나는 쏟아지는 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눈 감아 버린 그녀를 본다. 그녀는 나이가 들었다. 그녀는[…]

얼음호수
/ 2021-04-29
우주디
비에 젖은 아스팔트 [4]

하지만 령, 언니는 너무 어리잖아. 너는 령 언니가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나는 격조했던 큰언니의 출산 소식을 접한 것과 더불어, 몇 년 만의 장마에 조금은 혼란스러운 때였다. 물젖은 버스의 창문은 빗방울로 가려져 버스 내부가 제법 좁고 답답해 보여서인지, 큰 언니의 출산이 막막한 일이라 느꼈기 때문인지. 더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며칠째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며 익어가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기운을 죄다 잃은 하늘만이 우중충하게 세상을 뒤덮었다. 너는 령 언니가 남편 없이 애를 키우기로 했다며 작은 입술을 오물대며 말했다.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던 남자는 네 말에 고개를 들어 잠시 우리네를 쳐다보는가 하더니, 이내 곧 다시금[…]

비에 젖은 아스팔트
/ 2021-03-31
우주디
그녀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1]

다 부질없음을 느낄 때 그녀는 비로소 재가 되고 소각장에서는 살갗이 반죽 되고 태움 되고 승천하는 용이 되어 더 이상 이무기 아닌 일만 일어난다고 했다 엄마 저 연기는 뭐야,라고 묻는 꿈을 꾸었고 엄마는 아이의 두 눈을 가리고 부질없는 그녀의 생애를 참회했다 다 부질없음을 느낄 때 그녀는 비로소 반죽되고 태움 되고 승천하는 용이 되어 더 이상 이무기 아닌 일만, 더 이상 사람 아닌 일만,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 수정구슬 모을 필요 없으니 남자 따위 안 만난다고 했다

그녀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 2021-03-17
우주디
가끔은 제자리 뛰기가 리듬을 순환 시키는 데에 좋다는 것을, [1]

지하철 출구에서 계단을 바삐 뛰어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이 뛰게 된다. 그냥, 왜인지 빨리빨리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개인의 리듬이 침해되고 있는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뭘까. ​ 나는 내 리듬을 최대한 보호하며 살고 싶었다. 아프면 쉬고, 힘들면 멈추고, 또 힘이 나면 뛰고. 나만의 마라톤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경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관중석에 앉은 이들은 느리게 달리는 사람을 보면, 야유를 퍼붓는다. 마라토너의 신발이 벗겨지고, 양말에 구멍이 뚫리고. 살갗에서 혈흔이 낭자할 때쯤이야, 하나둘씩 야유가 잦는다. ​ 왜, 뒤늦게서야 깨닫는 걸까. 보이지 않는 상처도 느낄[…]

가끔은 제자리 뛰기가 리듬을 순환 시키는 데에 좋다는 것을,
/ 2021-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