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디
누구나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다 [3]

태양과 달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고 어김없이 나타났다. 계절성의 변화에 따라 늑장을 부리며 지각을 할 때도 있긴 하거니와, 어쨌든 그들이 나보다 배로 성실했다. 이른 시각부터 부지런을 떠는 달과 해들을 보면 성실하니까 빛을 잃지 않는 걸까 – 같은 엉뚱하고도 지극히 문과적인 감성에 사로잡히곤 했다. 수차례의 낮과 밤이 흘렀다. 소설의 챕터가 넘어가듯 나에게는 제법 임팩트 있는 커다란 개요들이 생겼고, 그런 개요들을 차례로 읊다 보니 어느덧 열아홉. 대학 입시 준비에 관한 얘기가 빼곡한 챕터에 다다르게 됐다. 결말은 모르다. 누구도 모른다. 아니 근데, 나도 모르는 내 인생의 결말을. 10대의 피날레를 함부로 단정[…]

누구나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다
/ 2021-10-15
우주디
그 날, 소라고둥이 품은 것은 [1]

절망을 묘사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너는 기억하니. 뉴스 속 카메라 앵글이 잡은 것은 절망뿐이었을까. 나는 그 고통의 총량을 구태여 견주려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슬퍼하는 모든 것들을 서사로 써 버렸지. 이야기의 각주만 보고 짤막한 상징성을 떠들어대는 평론가들처럼, 볼품없는 문학을 하고 있었어. 현에게서 온 편지였다. 푸른색 편지지에서 현이 사는 제주의 바다향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택배 상자 한구석에는 에어 포장지에 감싸진 소라 껍데기가 들어있었다. 포장을 풀어, 소라고둥을 귀에 가져다 대니 바닷소리가 났다. 철썩, 철썩 소리와 함께 흰 갈매기의 끼룩, 울음도 들리는 것만 같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문득 현이 밟았을 모래 해변이 궁금했다. 사르륵 흩어진[…]

그 날, 소라고둥이 품은 것은
/ 2021-08-28
우주디
사랑의 눈물 [1]

(사랑의) 눈물 나는 전선 위에서 꿈을 꾸던 참새들 마냥, 우기의 영향으로 잘 수 없었다. 전선이 비에 젖고, 참새는 사라진 지 오래인 여름밤이었다. 장마 전선이 슬그머니 북상하고, 빗소리는 세상의 모든 목소리를 앗아갈 정도로 요란법석을 떨었다. 나는 차렵이불을 만지작거리다가 괜히 발가락을 꼼지락대기도 하며,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밤을 지새우는 중이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과 더불어, 먹구름 낀 날씨에 마음이 울적해진 탓도 있거니와, 사실은 그보다 더 묵직한 이유가 꿈의 문턱을 가로막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메이저 문예 대회의 결과가 나올 터였고, 반나절도 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심장이 층간 소음을 일으키듯 거세게 쿵쿵 찧었다. 하지만 긴장의[…]

사랑의 눈물
/ 2021-08-27
우주디
불꺼진 화요일 [3]

회색 벽지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인 스탠드가 희미한 주홍색 테두리를 형성했다. 둥그스름하게 퍼지는 주홍빛이 꼭 불에 덴 자국 같았다. 보기에는 따뜻해 보이는 빛이었지만 막상 손을 가져다 대면 고열이 느껴지지 않았다. 빛나는 것과 따듯한 것은 분명 달랐고,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어버렸다는 사실마저 더불어 깨우쳤다. 보기에는 빛나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그 무엇보다 차갑고 냉철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패한 마음들을 곱씹었다. 너무 쉽게 믿어버린 사랑, 사람, 삶 그리고 따듯함. 나는 이불의 끝자락을 감싸쥐었다. 이불 위로 촉촉한 땀 자국이 베어났다.  파란 이불에 금세 음영이 졌다. 문득 열어젖힌[…]

불꺼진 화요일
/ 2021-08-27
우주디
습작생 A [1]

습작생 A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을 안긴다던데, 그건 순 엉터리 거짓말에 불과하다. A를 떠올리면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행해졌으니까.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망각할 정도로, 지나치게 과거를 돌아보는 인간이 되어버렸으니까. 그건 A와 내가 바라던 어른의 형상이 아니었는데, 어느덧 내가 그런 부류의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A의 신춘문예 등단 소식을 알게 된 건, 스무 번째 면접에서 합격 소식을 접하기 몇 달 전의 일이다. 나는 과외 알바를 막 끝내고 귀가하던 참이었고, 버스 뒷좌석에 앉아 옆 사람과 코트 자락이 닿지 않게 옷깃을 끌어당기며 꾸벅꾸벅 졸던 때,[…]

습작생 A
/ 2021-08-13
51 나만의 문학 작품 소개 – 박지리 작가의 '번외' [0] 우주디 2021-08-09 Hit : 113 우주디 2021-08-09 113
우주디
기니피그가 되고 싶던 햄스터 [5]

  옥탑 실선에 걸어둔 빨래는 국기처럼 흩날렸고 고장 난 고물 삽니다 트럭 아저씨가 틀어둔 트로트 애국가라도 된 마냥 가슴이 웅장해졌다 역시, 나는 한 왕국을 다스리는 왕인 것일까   녹는 여름 창을 투과한 햇볕에 바짝바짝 말라가는 장판은 이상하게 뜨겁고 끈적 끈적 달아올랐다 산기슭에 핀다던 다년초 끈끈이주걱이 방 안을 뒤덮은 듯 나는 벌레라도 된 마냥 장판에 눌어붙어 일어날 수 없었다 그건 내 탓이 아녔다 바닥에 핀 끈끈이주걱 탓이었지 내 탓이 아녔다   고장 난 고물을 산다던 트럭 아저씨가 미리 녹음해둔 테이프를 틀었다 사체가 경직하기 5초 전을 바라본 사람의 목소리처럼 영혼의 무게가 사라져[…]

기니피그가 되고 싶던 햄스터
/ 2021-07-25
우주디
숨바꼭질 [1]

열기로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신호등이 깜빡 거리면 잠시 잠들었다 깨어났을 뿐이라고 구도심 이면 도로에는 여전히 전봇대가 잠들어 있다던데 전선 위에 참새들은 우기의 영향으로 잘 수 없었다 ​ ​우리는 빗속에서 투명해지기를 원했지 방울과 방울이 하나 되는 걸 가만 바라보면 어쩐지 거대한 세계를 원하는 것도 같았다 그건 우리를 닮았고 ​ ​하나부터 열까지 조용히 세어볼까 휘파람 부는 법을 몰랐던 어린아이처럼 눈을 꼭 감고 엇갈린 숫자를 뱉어내면 전선도, 참새도, 우기 같은 것도 전부 아스팔트의 열기에 녹아 숨어버릴까 영영 보이지 않는 것이 될까 나는 빗속에서 숫자를 셀 수 없었다 ​ ​어쩌면 증발해 버렸을 지도 모르는[…]

숨바꼭질
/ 2021-07-23
우주디
컨테이너 [1]

 불투명한 시트지 너머, 유리창에 달라붙은 빗방울이 보였다. 자그마한 물방울들이 저들끼리 합쳐지다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창을 보다 말고 정수기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냉수는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정수기가 며칠 전부터 말썽을 부렸지만, 사장은 말로만 수리사를 부른다고 했지, 정작 수리 센터에 전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뜨거운 물을 받았다. 장마철에 마시는 믹스 커피는 딱히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온몸에 전이되는 따듯함을 느끼기에, 컨테이너 안은 이미 충분히 고열감을 떠안겼다. 사장은 책상에 다리 한 쪽을 올린 채, 삐딱하게 안아서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말했다. 유정 씨 조금 이따 사람 오기로 했으니까, 나가서[…]

컨테이너
/ 2021-06-21
50 월장원 상품 수령 동의서 [0] 우주디 2021-05-18 Hit : 245 우주디 2021-05-18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