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디
얼음호수 [7]

  아메리카노가 색을 잃는다. 찬 얼음이 미적지근한 물에 중화된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푯말이 썰렁한 허공을 메운다. 이목을 잡아 끈다. 나는 '안녕히'의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어쩐지 자라면서, 안녕히 -라는 의미에 더 이상 두려움과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안에 안녕히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찬 바람이 유리창을 두드린다. 유리창을 날려 버리고 손아귀를 뻗어 조수석에 앉은 그녀를 낚아챌 것처럼 덜컹, 덜컹 성난 황소처럼 달려든다. 나는 쏟아지는 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눈 감아 버린 그녀를 본다. 그녀는 나이가 들었다. 그녀는[…]

얼음호수
/ 2021-04-29
우주디
비에 젖은 아스팔트 [4]

하지만 령, 언니는 너무 어리잖아. 너는 령 언니가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나는 격조했던 큰언니의 출산 소식을 접한 것과 더불어, 몇 년 만의 장마에 조금은 혼란스러운 때였다. 물젖은 버스의 창문은 빗방울로 가려져 버스 내부가 제법 좁고 답답해 보여서인지, 큰 언니의 출산이 막막한 일이라 느꼈기 때문인지. 더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며칠째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며 익어가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기운을 죄다 잃은 하늘만이 우중충하게 세상을 뒤덮었다. 너는 령 언니가 남편 없이 애를 키우기로 했다며 작은 입술을 오물대며 말했다.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던 남자는 네 말에 고개를 들어 잠시 우리네를 쳐다보는가 하더니, 이내 곧 다시금[…]

비에 젖은 아스팔트
/ 2021-03-31
우주디
그녀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1]

다 부질없음을 느낄 때 그녀는 비로소 재가 되고 소각장에서는 살갗이 반죽 되고 태움 되고 승천하는 용이 되어 더 이상 이무기 아닌 일만 일어난다고 했다 엄마 저 연기는 뭐야,라고 묻는 꿈을 꾸었고 엄마는 아이의 두 눈을 가리고 부질없는 그녀의 생애를 참회했다 다 부질없음을 느낄 때 그녀는 비로소 반죽되고 태움 되고 승천하는 용이 되어 더 이상 이무기 아닌 일만, 더 이상 사람 아닌 일만,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 수정구슬 모을 필요 없으니 남자 따위 안 만난다고 했다

그녀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 2021-03-17
우주디
가끔은 제자리 뛰기가 리듬을 순환 시키는 데에 좋다는 것을, [1]

지하철 출구에서 계단을 바삐 뛰어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이 뛰게 된다. 그냥, 왜인지 빨리빨리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개인의 리듬이 침해되고 있는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뭘까. ​ 나는 내 리듬을 최대한 보호하며 살고 싶었다. 아프면 쉬고, 힘들면 멈추고, 또 힘이 나면 뛰고. 나만의 마라톤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경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관중석에 앉은 이들은 느리게 달리는 사람을 보면, 야유를 퍼붓는다. 마라토너의 신발이 벗겨지고, 양말에 구멍이 뚫리고. 살갗에서 혈흔이 낭자할 때쯤이야, 하나둘씩 야유가 잦는다. ​ 왜, 뒤늦게서야 깨닫는 걸까. 보이지 않는 상처도 느낄[…]

가끔은 제자리 뛰기가 리듬을 순환 시키는 데에 좋다는 것을,
/ 2021-03-17
우주디
사랑, 사람, 그리고 한 잔. [1]

우리는 너무 쉽게 영원을 믿지, 부둣가에 짐을 싣는 노역꾼들이 내용물을 모르는 것처럼,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움직임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의 내용물을 모르지. ​ * ​ 재개발이 한창인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는 원두 냄새가 솔솔 났다. 2층짜리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끼워 맞춘 블록처럼 제법 좁고 위태로워 보이는 카페였다. 재개발 다가구 주택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칼럼을 작성하던 나는, 자주 몸 녹일 곳을 찾아 카페로 걸음 했다. '사랑, 사람, 그리고 한 잔.'이라는 상호가 적힌 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그다음으로 아르바이트생도 없이 홀로 일하는 어딘가 성숙해 보이는[…]

사랑, 사람, 그리고 한 잔.
/ 2021-01-18
우주디
기억해, 소리 내서 우는 법을 [1]

호언장담해도 수치스럽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일과 모레, 글피가 있어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 유년의 베개에는 깃털 대신 꿈처럼 가벼운 걸음이 가득, ​ 전부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그때를 사랑해 짧게 깎은 인형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지 않았지 잃어버린 바비의 한 쪽 구두를 찾아줄 왕자는 어디 ​ 가벼운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그때에는 수돗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마저 예뻐서 희게 웃고 하얀 눈물 줄줄 흘려도 혼나지 않았지 ​ 수도꼭지 잠그고 엉엉 울음 터뜨려도 혼내는 이 없고 엽총 들고 따당 따당 총을 휘갈기는 사냥꾼을 흉내 내는 오빠는 진짜 총을 쏘지 않았지 나는 죽는 시늉을 아주[…]

기억해, 소리 내서 우는 법을
/ 2021-01-18
우주디
새해 다짐 [2]

https://youtu.be/eNovSMOZ3VQ  이승윤 – 달이 참 예쁘다고 From, 블로그씨 내일이면 2021년이 시작되네요! 가슴 벅찬 새해의 계획을 말해볼까요? (( 이것은 수학 줌 수업을 음소거 해 놓고 쓰는 블로그 글. 다른 선생님들은 다 수업 안 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독서로 대체하시는데 ㅠㅠ 왜.. 수학 선생님께서는 대체.. 왜! )) ​ 나, 다음 날이면 절대 안 올 것 같던 고3이 된다. 열아홉이래! 말도 안 돼. 새해 계획? 나한테는 제법 거창한 것들. 누가 보면 소소하지만 말이야. 왜냐면.. 이미 실패를 여러 번 했으니까.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인 x를 찾는 건 열아홉의 과제겠지? 오글거릴지 모르겠지만, 이번 글은 이렇게 반말로 친구한테[…]

새해 다짐
/ 2020-12-31
우주디
1부터 10까지 [1]

1. ​ 조금 나아지려고 하는 행보이다. 오늘은 수요일, 내일은 24일, 목요일. 크리스마스이브. 이브라는 이름이 참 좋아. 언젠가 아이의 이름을 이브라 짓고 싶다고 문득 떠올린 적이 있는데. 아이 말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이브'라는 이름을 줘야겠다. ​ 2. ​ 엄마는 백설탕과 밀가루를 샀다. 크리스마스에 쿠키를 만든다고 했다. 오븐에 노릇노릇 구워질 쿠키도 좋지만, 눈이 내리면 좋겠다. 백설탕이 눈으로 승화해 하늘에서 훨 훨 날면 좋겠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면 조금 더 의미 있을 텐데. ​ 3. ​ 내가 열아홉이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10대의 마지막이 된다니! 불과 재작년만 해도, 고3 하면 엄청나게 듬직하고 커 보였는데,[…]

1부터 10까지
/ 2020-12-23
40 질문있습니다! _ 대회 투고 관련 [2] 우주디 2020-11-25 Hit : 268 우주디 2020-11-25 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