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얼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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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것들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예를 들면 꽃다발, 비눗방울, 무지개, 기포, 체리 사탕, 붓에서 풍기는 물감 향기

 

부드러웠던 마녀의 입맞춤을 기억해

검정 립스틱이 분홍 입술로 전염되고

목소리를 남김없이 빨아들이던 성대

꽃점을 칠 때면 장미들이 너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지

꿈틀거리는 꽃잎은 열두 언니들의 혓바닥

장미와의 사투 끝에 남는 건 결국

손가락 없는 손바닥과 배부른 덩굴들이 전부야

 

빛을 일곱 조각으로 해부한 뒤 남은 잔해를 만져본 적이 있냐고 내게 물었지

그건 아주 서늘하고 끈적해서

감촉이라기보단 차라리 소음이더라고

마스크 사이로 흐르는 매니큐어 냄새가 지독했는데

 

유서 대신에 자화상을 그렸잖아

부검의가 밝힌 사인은 순백의 납 중독일 거라고

아틀란티스를 뒤져 찾아낸 낡은 팔레트를 훔쳤어

네 머리칼은 빨간색이었지만 알 게 뭐야

포말로 부서지는 순간에는 흴 거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었거든

 

예상대로 너는 버블건을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지

일렁이는 환영의 표면이 각막을 집어삼키자

두개골을 녹이고 회백질로 스며드는 산성 비눗방울

무지개를 얇게 펴바른 손톱이 칠판을 긁고

 

인어공주가 깨진 자리에는 열 개의 LSD 코팅 우표가 남았어

조문객들이 핥아먹을 수 있도록

비석은 꼭 알사탕이어야 한다는 유언만큼은 지켜줄 수 있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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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은 고양이 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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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쯤에 글틴 자유게시판에서 <껌은 고양이 뇌로>라는 웹툰을 소개하는 글을 본 적이 있었어요. 그 글을 보고 찾아봤었는데 스토리도 참신하고 작화도 독특해서 참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연재중단이라고 해서 엄청 아쉬웠는데, 오늘 그 웹툰이 다시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몇 달 전부터 재연재중이더라구요. 그 글을 쓰신 분께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여기에 올려봅니다ㅋㅋㅋ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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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브리아¹ 인솜니아 (불면의 밤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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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콩이 다섯 번째 죽음으로 스며들 때마다

어김없이 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컵 속의 바다²가 끓어오른다

괴담을 되뇌이며 목구멍 위에서 표류하는 조각배들

 

ㅡ저 아래는 온통 난파선이래

너희는 두려웠다

그리고 지나치게 예민했다

뱃속에 가득 선적된 에테르

심해의 차갑고 무거운 바람을 타고

돛이 부푼다 배가 녹는다

 

골격만 남은 조각배들의 공동묘지

찢겨 벌어진 선체에서 흘러나온 흰 창자가

조금씩

휘발하고 있다

 

 

 

 

우리가 손을 잡고 거닌 모래사장은

헤고 부서진 것들이 쌓여 만들어졌다

방금 전까지 눈부시게 희다가도 다음 순간 펄럭이며 사라지는 곳이었다

아무리 울어도

결코 발자국이 남지 않는 곳이었다

 

ㅡ바다의 밑바닥 너머엔 무엇이 있어?

ㅡ물론 다른 쪽 밑바닥이 있지…

 

 

 

 

 

 

¹플라멩코를 슬로우 모션으로 추며 읊조리지, umbría, umbría. 난파선의 성명. 해저의 지명. 항상 그늘진 곳에서.

 

²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바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았지 넘실거렸지 응시했지 가만히 내가 저걸 삼켜야 한다며 조금 울었던 것도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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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끝에는 질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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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뺀 모두가 너의 예정된 죽음을 알고 있다.

 

너는 수족관에서 태어났다. 이후로는 그저 살았다. 마트의 영업시간 동안은 발광하는 다이오드의 인위적인 낮 속에서, 일순간 불이 꺼진 후로는 다시 빛이 찾아올 때까지 눈을 크게 뜨고 자면서. 가끔씩 다가오는 초록 뜰채를 피해 우르르 구석으로 몰려드는 동료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러다 운이 나빠 뜰채 안으로 딸려 들어갔다. 평생 알아온 직사각형의 단단한 세계를 벗어난 너는 물방울 모양에 좀 더 좁고 미끌거리는 세계로 흘러갔다. 이리저리 흔들리다 원래의 세계와 비슷한 어항에 부어졌다. 그리고 다시 살았다.

 

살았다. 그것 외엔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 물고기 사료를 게걸스럽게 삼키며 매일을 흘려보내던 너에게 더 넓은 세상이 찾아온 것은 비극이었다. 네가 든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집으로 향했던 43세의 아주머니는 금붕어가 아이들에게 주는 즐거움은 잠깐이며 어항 청소는 무척 까다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너는 다시 이리저리 흔들리다 연못 안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모 건설사에서 보기 좋게 둥글둥글한 돌들을 배열하고 물을 채워넣은 그곳은 너의 최종적인 세계로 안착했다.

여름은 너의 황금기였다. 물론 너는 그 계절의 이름이 여름임을 몰랐지만, 어쨌거나 너는 여름 내내 아파트 단지에 조성된 인공 연못에서 살았다. 바람이 수면을 스치며 새긴 일렁이는 발자국은 지나치게 잔잔했던 전까지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달콤함을 선사했다. 낮과 밤 사이에는 새벽과 저녁이라는 시간이 존재했고, 빗방울이 너의 천장을 두들기며 물속으로 스며들 때마다 너는 전율하며 꼬리지느러미를 파르르 떨었다.

 

너는 아파트에서 사는 다른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지나치다 문득 너를 본 사람들은 네가 외로워 보였던지, 각양각색의 어항을 들고 등장해 너의 세계 안으로 다른 물고기들을 쏟아 넣었다. 구피, 금붕어, 제브라 다니오가 공존하는 연못을 보며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그 물고기들을 너와 같은 운명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 그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자신이 너희에게 자유와 넓은 세상을 주었다고 자부할지도 모를 일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삭막한 어항보다는 연못이 낫다. 그러나 자유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너도 수온이 차가워진 것을 느낀다. 열대어들과 함께 언제나 섭씨 25도의 균일한 수온 속에서 살아왔던 너에게는 이 변화 또한 생소하고 즐겁다. 그러나 날씨는 계속 추워질 것이다. 눈이 내릴 것이다. 너의 세계는 얼어붙지도 못한 채 그대로 증발할 것이다. 아파트 인공 연못은 겨울 동안 메마른 바닥을 드러낸다. 원래 그래왔고, 물고기가 가득하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11월 첫째 날에 너는 질식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살을 에는 것처럼 느껴질 차가운 공기가 너의 아가미를 파고들 날을 생각한다. 물기가 말라 버린 조약돌 위에 누워서 헐떡거릴 너의 입술을 생각한다. 너의 곁에서 신음할 너의 새끼들을 생각한다. 모노톤의 바닥 위에 늘어선 크고 작은 주홍빛 점들의 심장박동이 차츰 느려지다가 멈추게 될 날을 생각한다. 10번의 하루가 더 지나면 너는 죽는다.

 

너의 수명이 원래 20년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처음 연못에 들어왔을 때의 너는 내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았는데, 지금의 너는 내 손을 다 덮고도 남는다. 3개월 만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면 20년 후에는 연못이 좁을 정도로 멋진 물고기가 되지 않을까. 너의 세계가 너의 수명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 네가 얼마나 더 빛나는 비늘을 가질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너의 자식들이 다시 너만큼 크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네가 헤엄치는 모습이 보인다. 바람이 불어 수면이 구겨진다. 너의 모습이 일그러진다. 춥다. 눈을 감자 눈꺼풀 안쪽에 너의 잔상이 새겨진다. 짙은 푸른색의 반점이 어둠 속을 유영한다. 나는 마지막 잎새가 수면에 일으킨 파장이 채 잦아들기 전에 찾아올 질식을 예감하고 있다. 너의 지느러미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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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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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믐달

물이 다 빠져나간 바다 밑바닥에서 사막이라고 쓰인 지도를 찢으며 울고 있었지

오차원으로 가는 마법이 얇게 발린 티켓이 필요해

옷장 속 깊이 감춰둔 부츠를 꺼내 반대로 신자

 

(샤라랑)

 

소용돌이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

갈수록 짙어지는 난간 가장자리가 신발 뒷축을 갉작일 때쯤

친절하게도 반딧불이들을 몰고 마중 나온 당신

씨쓰루 블라우스를 걸친 신비로운 너에게 나는 단박에 빠져 버렸어

 

(샤라랑)

 

네 드레스를 유난히 좋아했었는데

화려하게 일렁이는 치맛자락의 밑단이나, 거기에 달린 투명한 리본, 그걸 보고 홀려 달려드는 나비 같은 것들

내게도 날개가 달려 있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우린 날숨을 나눠 마신 각별한 사이잖니

 

(샤라랑)

 

물결치는 빛의 장막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또각또각 탭슈즈 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어

너는 언제나 술래, 나는 무지개를 목에 휘감고 속삭이고

네가 나를 찾아내면 손을 맞잡고 탭댄스를 췄지

어지러운 스텝에도 북극의 플로어에는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잖아

 

(샤라랑)

 

정신없이 즐거운 새벽의 연속이었어

차츰 오렌지보다 자몽을 선호하게 되었고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너의 반짝이는 손자국은 내 팔에, 발에, 입술에 새겨져 있었지

자꾸만 입맞추고 싶어지는 롤리팝

 

(샤라랑)

 

금지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지, 네 유독한 드레스는 어느새 나를 입안 가득 물들이고

나는 굴하지 않고 새파란 혓바닥 위에 우표를 조심스레 진열했어

눈꺼풀을 오로라 안에 담갔다 빼면

끈적한 방사성 키스

 

(샤라, 랑)

 

스텝을 밟을 때마다 주머니 안에서 녹아버린 사탕이 혈관으로 스며든다

야광 잉크가 피부 위에서 뒤섞이고 나는 거울 속에서 날개를 목격하지

선물로 받은 빨간 구두 안에는 아직도 흰 발등이 전시되어 있어

차마 망나니를 찾아가지 못해서 오늘도 나는 너에게 달려간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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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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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까지는 세 발자국 최대한의 속력으로 절벽을 향해 달려가자 브레이크는 이미 고장난 지 오래, 우리는 마지막으로 초승달의 모서리를 붙들고선 쓰리, 투, 원,

 

││: 다이브 :││

(묘비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도돌이표라는 이름의 자매가 있었대. 일란성 쌍둥이였지. 올라서는 법은 알았는데 차마 내려서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나봐. 그래서 부러진 뼛조각과 두 눈을 끌어안고서 언제까지라도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나머지 반 세기 동안 이 사이를 오가며 눈물 흘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몰디브, 올리브, 라이브가 아득한 곳으로

꼭대기에 간신히 매달린 추락의 기억이 아직 신선할 때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줘

 

분명 팽팽한 올가미 사이에서 죽어갔었는데

다시 만난 너는 그것에 의지해 공중을 걷고 있었지

허공에서의 줄다리기는 생각보다 더 위태로웠다는 것

한 올 씩 서서히 끊기는 그네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어

비틀거리면서도 계속되어야만 했으니까

 

수직의 도로로 영혼이 상승할 때

희고 투명한 것은 천장을 향해 나아가시오

나머지 검붉은 것은 가느다란 펜촉 사이로 흘러들도록

 

(자매의 사인은 질식이라고 쓰여 있더라고, 멍청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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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¹ 동안 음표들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올리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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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천 년은

전시를 마칠 때까지의 시간

모든 것의 원점은 너의 물고기를 닮았다고 했지

 

투명한 창자를 따라 계속 나아가면

붉은 바다와 번개, 세계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

창백한 손가락들에 날개가 돋아날 즈음엔

모두 검은 털과 비늘로 뒤덮였다

이제는 동화를 색칠할 시간

 

과연 밀물은 끈적하게 유혹적이어서,

수백 개의 위성이 일렬로 늘어선 그 날 만조에도

정사각의 고향을 그리워 하는 이는 없었다

나의 어머니와 너의 고조부가 나란히 조각나 널브러진 웅덩이에서

진부한 로맨스를 기꺼이 상연했던 우리

네가 던진 꽃다발은 부서질 듯 가벼워서

사실 나는 살짝 실망했었어

 

그러니 마지막은 날카로운 전율과 탄내로 장식하자

다시 천 년 후의 오늘을 위해

달콤함의 근원이 부패하는 세월이란 것을

우린 너무 늦게 깨달았지

 

 

 

¹ A Thousand Years,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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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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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콩이 다섯 번째 죽음으로 스며들 때마다

어김없이 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컵 속의 바다¹가 끓어오른다

목구멍 속으로 가라앉은 조각배들

 

ㅡ저 아래는 온통 난파선이래

너희는 두려웠다

그리고 지나치게 예민했다

심해의 차갑고 무거운 바람을 타고

돛이 부푼다 배가 녹는다

 

 

우리가 손을 잡고 거닌 모래사장은

헤고 부서진 것들이 쌓여 만들어졌다

방금 전까지 눈부시게 희다가도 다음 순간 펄럭이며 사라지는 곳이었다

아무리 울어도

결코 발자국이 남지 않는 곳이었다

 

ㅡ바다의 밑바닥 너머엔 무엇이 있어?

ㅡ물론 다른 쪽 밑바닥이 있지…

 

 

 

¹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바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았지 넘실거렸지 응시했지 가만히 내가 저걸 삼켜야 한다며 조금 울었던 것도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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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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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파란색일 거라고 너는 말했었잖아

 

– 1991, 영원의 바다에서

 

 

 

¹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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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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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찢기던 날에 태어났으니까

이름은 비로 결정하자고

 

노란 더듬이가 청명한 날에는 우중충한 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우중충한 날에는 끔찍한 영화를 보고요

끔찍한 날에는 블루 파인애플 마티니를 즐겨 마시곤 한답니다

 

흰 가시가 주룩주룩 꽂히는 꽃무덤 위를 달리다 왈츠를 때로는 탱고를 꿈꾸며

혼란스럽던 조리개에 씌운 느와르

혼자 추는 춤에는 비늘이 돋아난다길래 다급히 찾은 파트너

(그게 전부 너였다는 거에요 믿어지나요?)

면적을 잃은 단면으로 너절하게 끊어냈었잖아요

 

조금 있으면 샤워를 할 시간

발가락 사이를 물들인 꽃즙을 씻어내면 나는 더 이상 스텝을 밟을 줄 모르게 되고

꼭대기부터 조금씩 적셔갑니다

발끝으로 새어나오던 분홍과 노랑 애벌래의 눈물은 차츰 붉은색이 되어 가는데

그 안엔 내 혓바닥이랑 허파랑 심장과 숨 그리고 언어와 모두 또

 

목욕을 마치면 피부밖에 남지 않은 몸뚱이가 날아갈 듯 해요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살구색 허물을 이물 속에 묻고서

나는 곧 죽을 것만 같은 아주 평화로운 기분으로 잠들 수 있죠

 

내일의 나비는 벌써 빨간 다리가 일곱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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