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와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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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찬기운이 남아있는 이른 봄의 새벽. Y은 속옷차림으로 욕조 위에 누워 그 앞의 전신거울을 쳐다보고 있다. 4평 남짓한 서울의 옥탑방. Y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크기였다.

그는 꽤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배냇머리가 사라질때쯤에는 지금 그의 방보다 넓은 화장실의 욕조, 그안에서 장난감 오리를 띄우며 목욕을하곤 했었다. 유년시절의  동년배들과의 놀이에서 사치라고 불릴 만 했던  장난감들과 한껏 목욕하는것은  그의 자랑거리중 하나였다. 물론 그것이 계속 이어졌던것은 아니었다. 사업가였던 Y의 아버지의 실패는 나날이 늘어가서 사춘기쯤엔 집안에 빨간 딱지가 가득했다. 고단한 하루 끝에 집에 들어온 그어게 그것을 피해 욕조에서 잠드는 것은 습관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얼마전 성인이 되자 대학을 핑계로 재혼한 모친의 집에서 나와 독립한 것이다.
욕조앞 전신거울을 누군가 본다면 깡마른, 퍼석퍼석한 머리칼의 남자가 누워있을 것이지만 Y의 시선의 끝에는 갖가지 명품으로 치장한 다부진 근육의, 깔끔한 포마드를 펴바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어젯밤부터 거울속 그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 가슴골이 훤히 들어나는 옷을 입은 여자가 들어와 그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었을 때었다. 봄의 아침햇살이 그의 방 왼쪽의 열린 창으로 새어 들어와 그의 눈을 잠시 멀게했다. 그것은 진실을 비추는 빛이었을까.

그의 망막이 정상적으로 빛을 받아들일 때 쯤 거울속의 명품을 걸친 남자는 더이상 없었다. 앙상한 갈비뼈와 등에 붙을것 같은 뱃가죽, 혐오스럽게 튀어나온 다리털. 유건은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악…아악!!” 그는 자그마치 반나절을 누워있던 욕조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을 단편적으로 핥고 지나간 햇살뒤에 그는 에곤 쉴레의 초상이 되어있었다. 욕망만 남은 살가죽과 뼈. 그는 책상에 놓인 뚜껑이 언제 없어진지도 모르는 조니워커를 들이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시계는 오전 열한시 사십분, 일주일 전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유건은 어느새 느긋하게 거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것이다. 거울속의 에곤 쉴레는 이미 사라졌다. 거울속에는 단정한 구두와 바지, 버버리 코트에 채스터필드를 물고 포마드를 바른 제임스 딘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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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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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등학교3학년 입니다. 글틴은 글을 쓰다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합니다. 그분의 소설을 읽다가  처음 습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길게 쓰는건 쉽지 않아서 짧게 콩트를 쓰고 있어요.

이곳에 콩트 한편을 올렸는데 한번 읽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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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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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원히 살 거야”
“왜?”
“사는 게 즐겁거든”

여전히 차가운 연초의 바람소리가 잠을 깨웠다. 살짝 열려있는 문 사이로 어머니가 켜놓고 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를 조금 흥얼거린다. 잠은 더 오지 않는다. 대학에 떨어진, 한국의 스무 살이 연초에 할 수 있는 일이란 학교 동창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대거나 둘 중 하나이다.

오늘은 간밤에 꾼 꿈이 계속 생각난다. 대화는 세 마디에서 끊겼고 그 뒤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학창 시절에 친구와 나눴을 대화일 것이라. 하지만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 이름도 성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식빵에 크림치즈를 발라서 목으로 넘긴 후 갓 데운 우유를 마신다. 머릿속으론 여전히 꿈속의 상대를 더듬고 있다.

영원히 사는 것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기장판을 올린 소파 위에 누워 티브이를 본다. 창밖에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인가 생각나 앨범을 뒤지기 시작하다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멈췄다. B 그의 이름이었다. 중학교 3학년의 급우로 생각해보면 당시 퍽 친해서 항상 붙어 다녔었다. 꿈속에서의 대화 상대도 아마 B였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B와 늘 농구를 하곤 했었다. 한껏 땀을 빼고 나면 오후 네시가 좀 넘어 있었다. 여름의 오후 네시 반쯤, 태양은 잘 익은 오렌지 색깔의 빛을 내며 반투명한, 조금은 짖어지는 구름을 넘어 두 개의 산등성이와 그 사이 아파트들 뒤로 잔상을 남기고 사라져 간다.
그때쯤 우리 둘은 오렌지빛이 약간 남은 초록색의 학교 농구 코트 위에 누워서 그 나이에 맞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날도 좋고 싫은 선생님들을 이야기하고 누가 누구에게 고백했거나 누구랑 누가 헤어졌다든지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가 진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꿈, 나는 그때의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 꿈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B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꿈의 대화의 일부이다.

“난 영원히 살 거야”
“왜?”
“사는 게 즐겁거든, 우리 집이 많이 힘든 거는 너도 잘 알지?”
“응”
“아침에 내리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거 같은 빗속에서 슬퍼해본 적 있어? 너무 싫어서 집을 뛰쳐나가 본 적은?”
“아니, 근데 그렇게 힘들면서 영원히 살고 싶어?”
“그렇게 힘들어도 난 하루 하루가 즐겁더라.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선 무슨 일이 있을까 기대하면 즐겁고 학교 와서도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는것도 즐거워 또 이렇게 너랑 농구도 하면 다시금 내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거든.”
“참 낙관적이구나..?”
“내 정원이 얼마나 자랐는지, 내가 지금 어디쯤 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지 못하더라도 지금은 가정환경 때문에, 내 상황 때문에 울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야. 나는 그냥 숨을 쉬고 싶어 그리고 살고 싶어 난 죽고 싶지 않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디부터가 잘못되었는지 알아볼 거야.”

당시 B가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이 아이는 성공할 것이라고 꿈을 꼭 이룰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작은 동경을 하며 살며시 보랏빛을 내는 하늘을 지나왔었다.

B는 지금 무얼 하며 지낼까 궁금하여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애석하게 내게는 B의 연락처가 없었다.
싸락눈은 함박눈이 되어 세상을 하얗게 페인트칠하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들은 B의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이 년 전에 죽었다. 고등학교에 와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가정에서도 간간히 폭력을 당하다 견디지 못하고 당시 살던 13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나는 왜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 것일까. 그들은 내가 그의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내 기억에서 그는 완전히 사라졌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올 만큼 술을 몸에 채우고 나는 이제는 어둠이 깔린 하늘 아래 흰색 눈을 밟아가며 그들과 헤어졌다.

홀딱 벗은 채 눈을 맞은 나무도 조금 있으면 봄을 맞이한다. 우리가 취해 있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언젠간 나도 녹색의 산사태 아래에 너를 찾겠지, 언젠가는 그렇겠지. 나는 밀려오는 술기운에 버티지 못하고 푸른빛 가로등 아래 눈을 이부자리 삼아 누웠다. 너는 꿈을 이뤘다.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나는 너를 아파트에서 밀어버린 사회가 무엇인가 아니꼬워 꽉 찬 보름달 위에 침을 뱉었다. 돌을 던지고 욕을 했다.
너는 그때 말했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인생에 봄날이 올 거라고 믿잖아’ 라고.

하늘 위엔 샴페인색의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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