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oKey
안녕 [1]

세상 사람들은 안녕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늘 말한마디 나누지 않을 나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석마다 설마다 내려가는 고향은 삭막하다 더이상 이웃의 정도 관용도 없는 이곳은 고향이 아니다 나는 실향민이다   말라버린 고향에 남은 것은 개인주의 이 사회에서 안녕은 옛 고향을 떠오르게 해준다   이제는 옛 고향의 유산도 알아보지 못하고 나는 막연하게  고향을 그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안녕
/ 2021-08-24
NooKey
열정 [1]

나의 나이테가 돌고돌아 어지러워 쓰러지는 날까지 문을 열자 문을 열자   발자국 냄새 더러워 나에게 닿기 전에 문을 닫자 문을 닫자   어둠, 따스함, 그러한 불안감 불꽃으로 불태워버려 남은 불로 앞으로 가자   차가운 곳에서 가자 차갑고 쓸쓸할 때 일어서 더욱 불타오르자

열정
/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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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을 위한 회상 [1]

오후, 모두가 회상하는 시간 조용한 버스에 앉아 어딘가로 향하던 길 앞만 보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뒤를 보던 중이었다   누구도 방해 않는 회상(回想), 그런데 회상(回翔)하던 파리 한마리가 나의 다리를 건드리고 말았다   화가 나 쫓아버린 것도 잠시 저 파리의 회상이 마치 내 삶의 모습인 것 같았다   어딘가로 향하는 길 세상을 회상하는 너, 그리고 나는 바다 위의 빙산처럼 떠다니며 그저 고한(苦恨)을 녹여내고 있는 걸까   오후, 모두가 회상하는 시간은 회상을 위한 준비, 또는 회상을 하고있는 이런 일상을 하는 시간    

회상을 위한 회상
변인숙(필명 : 미지) / 20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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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되는 우산 [1]

비 온 후의 길을 걷는다. 맑은 공기를 타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부신 날을 보며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우산이 지팡이이다. 진짜 지팡이들 사이에서도 우산이 1등이다 할머니는 우산이 손이다 난간을 우산으로 잡고 하나, 둘 하나, 둘 계단을 오르신다 할머니는 우산이 양산이다 눈부신 날, 할머니의 우산은 다른 양산들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이다.   비 온 후의 길을 학원이 끝나고 걷는다 맑은 공기는 어쩌면 할머니가 수고했다고 주시는 따스한 우산이 아닐까 괜히 들고 있던 싸구려 우산을 조심스레 품어본다

모든 것이 되는 우산
/ 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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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1]

그 연약한 휴지들이 한장한장 뽑힐 때마다 내 가슴은 뜨거운 열기에 부어버렸다   아늑한 길을 포기한 채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그들은 나아간다   뽑고 또 뽑고 그들은 그렇게 뽑혀나가도 다시 보면 또 하나가 굳건하게 서있다   휴지, 그 흰 것이 마치 태극기의 배경같아 내 가슴은 뜨거운 열기에 데여버렸다

휴지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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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석양 [2]

과정이 아름다우면 그 끝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동안 밝게 빛나주었기에 폭발마저 밝다 아주 오래전 반짝인, 지구를 지켜보던 수많은 별들   냉정하고 차가웠던 지난날의 얼음도 갈증난 목을 어루만졌기에 올라갈 수 있었던 하늘   이들이 그렇듯 나도 그러할 끝 그 끝이 아름답지 않다면 그 끝은 끝이 아니다 끝을 향한 또 다른 시작    삶이 아름다우면 그 끝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의 석양
/ 2019-03-02
NooKey
유랑하는 범퍼카 [1]

 시원한 하늘과 달달한 땅 그 사이에서 맛을 보는 ‘나’   햇빛은 유난히 신맛이 나고 달빛은 오직 나에게만 쓰다   답 못찾는 날 보는 형광등은 단맛을 잃었고   과거의 부지런한 새소리는 현재의 쓰디쓴 쥐소리   내 마음의 곧은 의지는 마구 뭉쳐져 소금에 절여진 주머니속의 이어폰   나는야 가장 매운 세상에서 사탕 잃은 혓바닥  

유랑하는 범퍼카
/ 2019-02-25
NooKey
하롱하롱 떨궈진 단풍 [2]

잿빛 아스팔트 도로 위 혼자 떨궈진 낙옆 붉은 그 낙옆은 외로이 서있었겠죠 회색이들 알갱이들이 못살게 굴었었겠지요   그래도 너가 거기에 있어서 나는 좋았지요 바라만 보며 떠올리던 지난날의 나 어느새 나는 친구 두명 붙여주고 말았지요 초라해 보이던게 썩 보기에 좋았지요   다음날, 그 도로 위가 빨강이 되었었지요 친구가 생겨 참으로 좋았을 겁니다 저도 잠시 멈춰서선 미소를 지었었지요   죽어서도 생각날, 평범했던 나의 어느날  

하롱하롱 떨궈진 단풍
/ 2019-02-08
NooKey
쾅쾅쾅쾅 [1]

단편소설 쾅쾅쾅쾅   “자네는 내 딸과 평생을 함께할 자신이 있나?” 이 질문에, ‘예 평생을 함께하겠습니다.’ 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익을 위해 무모한 말을 필터 없이 던지고, 눈과 귀를 닫으며 모르는 척 지나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양심이 가슴을 사정없이,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쳤다. ‘쾅`쾅`쾅`쾅’ 그 속도는 어머니가 때리던 회초리와 같았다. 난 참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난 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내 친구들은 내가 좋은 게 아니라 같이 놀 인원수가 부족했던 것이며, 나에게[…]

쾅쾅쾅쾅
/ 2017-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