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와 단풍나무와 빈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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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날던 작은 새 예쁜 날개 단풍가지에 걸려

이리저리 비틀어 봐도 으스러지는 것은 제 몸이라

 

수백 번 애원에도 어린 깃털 놓지 않는 잔혹한 단풍나무에

우레같은 굉음 울려 꺾여버린 어린 날개.

 

스러진 참해 위로 단풍잎 둘 내려앉고

황량이 빈 들판에 남은 것은 작은 새의 울부짖음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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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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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로 가입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님은 황석영 작가님, 소재원 작가님이고 좋아하는 시인은 이형기 시인입니다.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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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설산 (孤雪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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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번 그런 위험한 곳으로 가려고 그러니, 응? 사진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찍을 수 있잖아. 어젯밤, 어머니가 했던 말이 그의 귀와 머리를 시끄럽게 헤집었다. 어머니의 새하얀 손이. 절대 70대 노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매끈한 피부가. 손에 주렁주렁 매단 형형색색의 보석 반지들이. 그의 감긴 눈에 몇 번이고 아른거렸다. 무한 재생인 양 머리에서 수백 번 반복되는 그 버거운 음성과 영상을 조금이라도 지워보고자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데, 2만원에 그를 경치가 좋은 산 중턱 까지 데려다 주겠다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고설산에는 왜 가시는가? 보아하니 등산가는 아닌 것 같은데.

사진을 좀 찍으려고요.

사진? 사진작가 양반이신가?

그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렇다 할 대표작 하나 없는 무명 이었지만, 그는 일단 사진작가였다. 어머니의 음성과 영상이 어느 정도 지워지자, 이번에는 머릿속에서 대학 선배의 얼굴이 두둥실 떠올랐다. 네 작품엔 말이야, 음. 영혼이 없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느껴지는 게 없달 까. 선배가 무심하게 뱉은 말은 당시 어린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감동이 없었다. 하기야 찍을 때 감흥 없이 찍은 것이 찍고 나서 보니 감동이 깃들어 있을 리도 없었다. 그가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 것 이 아니었다. 그는 사진을 사랑했다. 한 장의 사진에 수만 가지의 감정을 담은 걸작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 어딘가가 풍족하니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는 감정이 담긴 사진을 좋아했다. 희로애락, 그 중에서도 애(哀) 의 감정들 담은 사진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괴로움과 슬픔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괴로우니까 슬프고, 슬프니까 괴로운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슬픔과 괴로움의 현장들을 찾았다. 그리고 사진에 담아내었다. 하지만 담긴 것은 그저 풍경, 인물, 사물. 감정은 없었다. 그리고 세간의 평은 냉정했다. 그는 무명이었으니, 세간의 평 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그에게 들려오는 평들은 전부 그랬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칭찬만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덧없는 칭찬들은 귀에서 저절로 걸러졌다. 오직 참혹하고 냉정한 평들만이, 그의 뇌리에 박혀 그를 잠 못 이루게 할 뿐이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애환이, 재앙의 현장이, 농민들의 아름다운 땀방울이. 그에게는 왜 와 닿지 않는가, 그 어릴 적에는 수만 번도 더 생각했더라.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와 닿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교수님은 그의 사진을 보며 말했었다. 장비는 최고급인데, 결과물은 왜 최고급이 못되나. 그제야 깨달았다. 누군가 망치로 제 머리를 세게 때려준 기분 이었다. 장비는 최고급인데. 그 ‘장비’는, 자신의 잘난 부모가 저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사준 것들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따위 것들, 수십 개도 더 얻을 수 있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그의 마음에는 서글픔, 외로움, 결핍, 땀의 정서 같은 것이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세상 물정을 담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 넓은 집.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들이 그에게는 전부 당연하기 짝이 없는 것들 이었다. 한 치의 감사함도 느낄 수 없는. 당연한 것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슨 사진을 찍어낼 수 있는가… 무슨 괴로움의 감정을 담아, 어떤 슬픔이 깃든 작품을 만들 수 있냔 말이다. 오래도록 생각했다. 기계처럼 의미 없는 사진들을 찍어내면서, 그렇게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언젠가 깨달았다. 하나가 있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언젠가는 꼭 다가올 한가지의 것이 있지 않은가. 죽음이었다. 누구에게나 닥쳐 올 재앙 아닌 재앙.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슬프고 괴로운 지구 상 모든 생명체의 말로.

그래서 그는 고설산으로 가기로 했다. 고설산. 외로운 눈의 산.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높고, 춥고. 자칫 잘못하면 조난되기 일쑤인 산이었다. 게다가 자살 명소.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는 했다. 그 죽음들의 무게를 담담히 담아내고 있는 고설산이라면, 아무리 그라도 처절하고 서글픈 죽음을 오롯이 사진 안에 담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덜컹 덜컹, 산길을 오르는 트럭이 심하게 덜컹거렸다. 차창 너머로 바라본 고설산은 아름다웠다. 산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되고 있었다.

도착이요. 차는 여기까지밖에 못 들어가. 사진 잘 찍고, 내려오고 싶으면 이 연락처로 전화 줘요. 뭐 걸어 내려와도 좋지만.

아저씨가 내민 전화번호를 받아들고서, 그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가파른 등산로를 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발은 어느새 등산로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처음은 청설모 때문이었다. 새하얀 눈밭에 조그만 발자국을 남기며 왔다갔다 해대는 조그만 몸체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러다 그 조그맣고 귀여운 짐승을 눈에서 놓쳤고, 문득 들어본 고개 앞엔 하얗고 아름다운 눈의 밭이 펼쳐져 있었다. 절경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렌즈 너머로 바라본 고설산의 풍경은 황량하고 외로웠다. 고설산. 그 이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황량함이. 그 외로움이. 사무치게 아름다웠음으로, 그는 그것으로부터 죽음을 느꼈다. 아아, 그래. 죽음이다. 무섭고 황량하고. 외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죽음이다. 셔터를 눌렀다. 찰칵. 셔터마저도 외로운 소리를 내었다.

 

 

*

 

 

넘치게 신이 나버린 건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산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 와 있었다. 등산로가 시야에서 벗어난 지도 꽤 되었다. 조금씩 가슴에 치미는 두려움에 왔던 길을 되돌아 가 보았지만, 눈 덮인 산은 위험했다. 온통 새하얗게 물든 나뭇가지나 돌들뿐이어서, 이곳이 그곳이고 저곳이 그곳 같게만 느껴졌다. 윗 쪽도 올려다보았지만, 여전히 등산로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산을 타면서 등산로를 찾아보자고 해도, 이곳에서 셸터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도 5km는 될 터 였다. 게다가 사방이 온통 눈이라 방향 분간도 잘 되지 않는 와중에 셸터까지 올라가겠다고 무모한 산행을 고집한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올 지도 몰랐다. 휴대전화를 꺼내보았다. 통화권 이탈 지역 이었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배낭에서 나침반과 지도를 꺼내보았지만, 현 위치가 어딘지를 모르니 허사였다. 어느새 어둠도 그를 위협하듯 조금씩 곁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조난이었다. 꼼짝없이 이 차갑고 외로운 산 속에 갇혀버렸다. 어쩔 줄 몰라 희연 눈밭만 사정없이 훑어대는데, 그의 시야에 조그만 동굴이 들어왔다. 지체 할 시간이 없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손에 쥔 카메라가 무거웠다. 처음으로 카메라의 무게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을 땐 제 손이 카메라이고, 카메라가 제 손 인줄만 알았는데. 다 허상이었다. 그는 잠시 바위 위에 올려두었던 배낭을 짊어 멨다. 그리고서 조그만 동굴 쪽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기 시작했다.

바위 동굴은 꽤 넓었다. 동굴 한편에 배낭을 내려놓은 그는 일단 돗자리를 꺼내 동굴 바닥에 깔았다. 두 개 정도 겹쳐 까니 바닥의 잔돌도 느껴지지 않고 괜찮았다. 갑자기 닥쳐온 상황에 아직은 정신이 없어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긴장이 되어서인지 조금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배낭에서 핫팩을 꺼내 두 주머니에 집어넣고, 옷 안쪽에도 몇 개 더 붙였다. 그래도 한번 찾아온 한기는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바깥이 어두워질수록 한기는 더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는 돌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돌들로 조그맣게 화덕을 만들었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큰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불은 피워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산에서 함부로 불을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었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 이었다.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책임감 없는 생각을 하며, 그는 가방에 넣어왔던 잡지들을 찢기 시작했다. 땔감이 될 만한 마른 낙엽, 나뭇가지 같은 것은 없었다. 눈 때문에 전부 젖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땔감이랍시고 넣었다간 풀풀 연기만 나고 불은 잘 붙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잡지를 두 권 정도 통으로 놓고, 그는 라이터를 켜 그 위로 불을 붙였다. 활활, 불이 잘 타올랐다. 사실 지금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에겐 꽤 익숙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자태, 내음과 동화되어 사진을 찍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물론 이번보다 위험했던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반 쯤 체념하고서 불길 속으로 잡지나 더 던져 넣자, 붉은 불길이 화르륵하고 타오르며 열기를 내뿜었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외로운 산과 멋대로 피워버린 불길이라니. 이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그는 주머니를 뒤져 다시 한 번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았다. 휴대폰을 높이 치켜들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보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으로 돌려놓으며, 그는 담뱃갑을 꺼내 담배를 한 개비 뽑아 물었다. 약간 두렵고, 떨려왔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 멍 하니 넓어진 시야 틈으로, 고설산의 풍경이 비쳐왔다. 동굴에서 모닥불 너머로 바라본 고설산의 경치가 어떠한가 하면, 눈 이었다. 온통 눈. 눈이 얼마나 덧없고 아름다운 것인지 사무치게 느끼며, 그는 하염없이 이어진 눈밭을 또 하염없이 바라보다 수십 번도 더 카메라를 들었다. 그래, 이번엔 뭔가 좀 달랐다. 이곳에서라면, 이곳에서라면. 깊은 기대감이 얕게 솟아올랐다. 조난의 두려움조차 단숨에 삼켜버린 기대감 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어떤 것도 속 시원히 부서져 내리지 않았기에,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짙어져만 갔다. 언젠가부터 밖에선 부슬부슬 눈도 내리고 있었다. 그 눈이 꼴 보기가 싫었다. 쌓여있는 눈은 아름다운데, 왜 내리는 눈은 아름답긴 커녕 자꾸만 마음에 짓밟히는가. 휴대폰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조난으로 인한 두려움이 점차 가라앉자 가장 먼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심심함과 무료함이었다. 그는 터지지 않는 휴대폰을 다시금 꺼내들었다. 그리고서 갤러리에 들어가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훑기 시작했다. 무료함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는 것 이었다. 사진. 무미건조하게 적힌 두 글자의 폴더. 그는 폴더를 열어보지 않았다. 다시 휴대전화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그가 피곤한 고개를 어깨에 기대었다. 추운 곳에서 자면 안 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하 한숨을 불자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입김을 불었다가, 손으로 헤쳤다가. 다시 입김을 불었다가, 헤쳤다가.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데, 동굴 밖 어디선가 적막을 깨고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짐승인가, 싶어 굳은 몸의 긴장을 풀어준 것은 뒤이어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아, 거기 누구 있나요?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가녀린지 그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더라면 바람소리겠거니 하고 넘겼을 정도였다. 이러한 산중에, 게다가 밤에. 떨리는 여성의 목소리라니. 위험했다.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나섰다. 온통 뒤덮인 새하얀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산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 사이에 선 한 여자. 그녀는 발목을 넘어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긴 원피스를 입고 어깨에는 두꺼운 쇼올을 두르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산에 온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차림이었다. 여기까지 온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의 옷차림은 얄팍했다. 왜소한 체구에 바짝 말라 푸른빛을 띠는 입술, 길게 늘어트린 여기저기 엉킨 듯한 머릿결 까지. 어쩐지 굉장히 지쳐 보이는 모습에 그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제 몸에 반쯤 기댄 그녀의 몸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그렇게 얇은 옷차림으로 눈으로 뒤덮인 산에 올랐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괜찮으세요? 저 쪽에 제 짐이 있는 데로 가서 몸 좀 녹이시죠.

아, 네. 감사합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왜 이런 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위험하게스리.

길을 잃어서요. 정신없이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길을 잃었더라구요. 그런 일이 빈번한 산이죠.

그렇습니까.

그녀와 함께 동굴에 도착한 그는 배낭 옆에 매달아 두었던 침낭을 꺼내 지퍼를 열어 담요처럼 펼쳤다. 그리곤 그녀의 얄쌍한 어깨를 겨우 덮은 쇼올 위로 그것을 둘러주었다. 혹시 그 쪽 휴대전화는 터지느냐, 말을 꺼내 볼 심산이었으나 얇은 옷차림에 산을 터덜터덜 헤매고 있던 사람이 터지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기에 그냥 말을 아꼈다.

추우시죠. 옷이 많이 얇네요.

그런가요? 하기야 만년설 쌓인 산을 오르기엔 얇기는 하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무엇이 재미있는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어쩐지 그늘진 웃음이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얼마간 바라보던 그는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산에 오르기 전 따뜻한 생강차를 끓여 왔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따뜻한 차가 간절할 것은 아까나 지금이나 똑같았을 텐데, 왜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지 모를 일 이었다. 그는 가방 옆에 달랑 달려있던 작은 컵을 빼들었다. 보온병을 열어 그 컵에 차를 따라 그녀에게 내밀고, 자신 몫도 보온병 뚜껑에 따랐다.

차를 후후 불어 한 모금 머금어보며, 그는 문득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건네 준 컵을 그냥 가만히 들고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시선은 허공에 닿아있었다. 하늘인지, 눈인지, 나무인지. 도대체 어느 곳에 그녀의 마음이 닿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황량한 눈빛 이었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물기어린 눈을 하고, 그녀가 물었다.

이곳은 고설산입니다.

그가 뭇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알아요.

보온병에선 아직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컵을 부드럽게 감싼 두 손이 따뜻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밖에선 한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왜 오셨어요? 산 타러 오셨나요?

어느새 홀짝이며 차를 다 마신 그녀가 조금이나마 진정이 된 듯 말을 건네 왔다.

아뇨, 사진을 찍으러 왔습니다.

사진이요? 와, 사진작가 분 이셨구나. 멋있다. 저도 예쁜 사진 한 장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 는데.

뭣하면 한 장 찍어드릴까요?

됐어요. 사진은 예쁜 걸 찍어야죠.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녀의 자신감 없는 말에 무언가 위로를 하고 싶어 말을 고르는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었다. ‘넌 사람이 너무 무미건조해.’ 그저 그럴듯한 말을 뱉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나간 인연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그를 지나쳐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내뱉었던 말. 그리고 그 말은 제 사진에 대한 자비 없는 평을 듣는 것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무너뜨리곤 했다. 나는 무미건조한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미건조한 사람인가? 대답도 물음과 같았다.

 

산에서의 시간은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듯 그래도 여느 때처럼 흘러갔다. 문득 그는 도시에서 아들에게 연결되지 않는 전화를 붙들고 저만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했다. 얼마나 걱정을 하고 계실까. 여기에 올 때도 그렇게 걱정을 하셨는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가 머리를 끌어안고 그러게 내가 뭐랬니. 라며 우실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숨만 내쉬는데 그녀가 갑작스런 질문을 해 왔다.

작가님은 여기 무슨 사진을 찍으러 오셨나요?

작가님, 언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색한 호칭이었다. 자기 자신이 저를 작가라고 은연중에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예 저는…….

그는 자신이 무슨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지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한번 물꼬를 튼 말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다. 결국 그는 제 인생이야기를 그녀에게 전부 늘어놓게 되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현재 함께 처한 상황이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몇 배는 더 끈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일면식 없고, 다음에 다시 만날지 못 만날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만.

그 긴 이야기를 듣고도 그녀는 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이사이 추임새나 감탄사를 넣어주며 그의 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다가 조그맣게,

작가님도 저 만큼 불쌍하신 분이네요.

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둘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사람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인데 아까 피운 모닥불이 배는 더 따듯하게 느껴졌고,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줄곧 그를 얕게 괴롭혀 왔던 무료함도 가신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그와 그녀는 통성명만은 하지 않았다. 산에서 이름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넓게 깔린 바위와 나무와 땅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아서, 아무도 먼저 이름을 묻지도, 꺼내지도 않았다.

어느새 이야깃거리도 다 동이 나고, 둘 사이에는 가벼운 침묵이 맴돌고 있었다. 그는 저의 때 낀 손톱을 바라보았다. 손은 조금이지만 거칠었다. 굳은살도 박여있었다. 어머니가 제 손의 굳은살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눈물지었던 일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다 큰 아들 손의 굳은살이 뭐가 그리 서러우셨을까. 그는 조용히 숨만 내쉬었다. 그녀도 조용했다. 그녀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시선을 따라가 보니 달이었다.

저 멀리 맑게 빛나는 달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던 그녀가 별안간 웃는 낯을 하고서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묻는 것이다.

작가님, 왜 고설산에서 사람이 많이 죽는지 아세요?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눈에 홀려서요. 그저 희고, 희고, 희고, 희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눈에 비해 자신은 너무 더럽고, 질척이기만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깨닫고 난 뒤 다시 한 번 눈을 보게 되면, 그 눈이 너무나도 아득하고 아름다워서……. 세상 이 전부 산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세상이 다 산이었으면 좋겠어요.

한참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산……. 그 짧은 단어의 깊은 여운을 곱씹다, 그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그 때 처음 알았다.

작가님 저는요, 여기에 죽으러왔어요.

그렇게 이야기 하고서, 그녀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한 방울 떨궈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그는 묻지 않았다. 그래도 조난당한 상황에선 살고자 하여 이곳까지 온 사람이다. 생존의 의지가 남아있는 사람.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막연하게 그리 생각하였다. 그녀는 매우 마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제 삶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만 움푹 팬 볼과 눈 밑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그녀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결핍과 고통의 정서를 가지고 있을까. 조금은……. 그가 멍청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이 심하게 어긋났으며, 오만하고 무례했다는 것을 깨닫고서 조용히 고개를 수그렸다. 웃긴다, 자신은 웃기는 사람이다. 무미건조한데다 웃기는 사람이라니. 어찌 이렇게도 초라할까.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다.

 

그는 조금 졸았다. 깨고 보니 저도 몰래 흘러나온 침이 어깨부근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소매로 대충 입가를 정리하고 옆을 바라보니 그녀는 옆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침낭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또 숨도 아껴 쉬고 있는지 그 소리도 잘 들리지가 않았다. 모닥불은 그가 잠든 새 그녀가 잡지를 더 집어넣은 건지 전보다 불길이 약해져 있었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어느새 저 멀리 동쪽에선 동이 트고 있었다. 달보다 배는 더 환한 태양이 손짓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뜻 모를 한숨을.

이제 동도 텄고 하니 슬슬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았다. 나가서 휴대전화가 터지는 곳도 찾아보고, 등산로도 다시 찾아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그녀에게 조금 다가가며 말했다.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조용했다. 자는가 싶어 얼굴을 들이미니 눈이 감겨있다.

일어나보세요. 저기요, 저기요.

눈은 뜨여지지 않았고,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툭, 제 어깨에 기대어있던 그녀의 고개가 불길하게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설마. 설마. 정말로 설마. 그는 급격히 거칠어지는 호흡을 다듬고서 그녀의 코 아래에 검지를 대어보았다. 떨리는 손가락엔. 숨결이 와 닿지 않았다. 아, 그래. 죽은 것이다. 죽으러 왔다더니. 정말 죽은 것이다. 입술은 마르는데 손바닥은 젖어든다. 동쪽 저 멀리선 오늘의 해가 뜨고 있는데, 제 옆 차갑게 식은 사람의 오늘은 이젠 다신 찾아오지 않는다.

 

찰칵. 짧은 셔터소리만이 차갑고 외로운 산을 맴돌았다. 아, 그의 가슴 한 가운데 박혀있던 것이 부서져 내린다. 그는 떨리는 몸을 일으켜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멎어있었다. 우스운 자태로. 그렇게 멎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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