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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참았더니

화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참고 참고 죽고 싶을 만큼 터질 만큼 참았더니

화가 어디론가 쑥 사라졌다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 뒤로부턴

화를 내야 할 때 화가 나오지 않는다 눈치 참 더럽게 없는 놈이다 괘씸하다

그리곤 밤이 되면 주책없이 튀어나와

나에게 화낸다 왜 그때 화내지 않았느냐고

왜 화내야할 상황에 잠자코

당하기만 했느냐고

나는 화, 너에게 화낼 수가 없구나 네 말이 너무 옳아

나는 화에게 화내지 못한다

나는 더욱 커진 화를 입속에 쑤셔넣고 또

참는다 이 밤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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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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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나는 이런 몽상에 빠져든다: 빨래를 널어야 할 때면 나는 베란다로 나가 세탁기 뚜껑을 여는데, 그때마다 나는 세탁기 속으로 흡수된다는, 빨려 들어간다는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소름끼치면서 야릇한 느낌. 만약 정말로 세탁기 속으로 쑤욱 들어가 혼란스레 뒤엉킨 빨래들과 한 몸이 되어 한 색깔로, 아니 이도저도 아닌 색으로 혼합되거나 분할되면서 섞인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세탁기로 들어가는지 세탁기가 나를 끌어당기는지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내 머리가 뒤틀리는 걸 느끼면서,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쭈그러지며 빨래들과 미친 듯이 뒹군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렇게 되면 나는 나인 걸까 빨래인 걸까? 마냥 세탁기 안에 머물러있을 수는 없으니 빨래를 널기 위해 밖으로 나가, 물이 뚝뚝 흐르는 축축한 몸으로 베란다를 나오면 그때 나는 나로 돌아오는 것일까 빨래 일부분이 포함된 빨래인간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나라는 자아는 없어지고 빨래, 그 자체가 되는 것일까. 하루 내내 나는 나를 온전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빨래가 몸에 붙어있는지 모른다.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누구든지 자기 삶에 만족을 못하는 법이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일까. 나는 지금 행복을 원하는 것일까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사랑을 원하는 것일까. 아무 탈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뭔지 모를 공허함이 만져지기도 한다. 그런 적이 있다. 여느 때처럼 나 혼자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누비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만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은 길을 메울 정도로 많았는데 그 순간 나 외에 사람이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웃으며 팔짱끼는 연인들, 수레를 끄는 노인,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선명히 눈에 보이는데 없는 것 같았다. 모두 내 곁을 스치고 있는데 그들의 존재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없었다. 이러다 나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졌다. 이런 것을 그냥 외로움이라 부르는 것일까. 두려움은 외로움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에 익숙해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외로움을 느끼는 건 왜일까. 어디로 여행 가든 전혀 즐겁지 않았다. 집 앞 공원에 가도 미술관에 가도 홍대에 가도 외로움이라는 분신은 끈덕지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내게는 누군가 필요한 걸까. 이상하게도 이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 할 말을 다 해서인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 줄로 요약한다면 결국 이 말 아닌가? 나는 외로워. 친구가 필요해.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길게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한탄을 하는가? 어쩌면 친구가 생겨도 내 안의 외로움을 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요즘 자주 '일상으로의 초대'를 듣는다. 2년이 지난 노래임에도 나는 결코 이 노래를 잊을 수 없다. 아마 이 노래가 나를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노래는 나를 말한다. 지루하고 지겨운 일상을 깨고, 내 삶으로 들어와 달라고. 내게로 와 달라고. 나는 내 일상으로 와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 누군가는 사람이 될 수도 사물이 될 수도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그게 무엇인지 언제 올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오늘도 기다린다. 나에게로 와 달라고.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날의 일과 주변 일들을 얘기하다 잠들고 싶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오면 나는 잠들고 나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영원히 잠드는 것만큼 편안한 것은 없다. 젊어서든 늙어서든 나는 영원히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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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을 맛본다.

콧속 깊이 밤을 들이마셔, 그 안의 달과 별들을 삼킨다.

나는 밤을 먹으러 새벽에 나간다. 해가 떠 어둠을 가리기 전 나는

밤을 먹으러 나간다. 차들의 배기가스와 공장의 불빛이 어른거려도 나는

밤을 먹으러, 기어코 나간다.

밤은 달고 맛있다. 잡냄새가 섞여있어도 밤은 밤 맛 그대로 낸다.

밤은 아침과 섞어 마실 수 없다. 아침에겐 맛도 없고 향취도 없다.

나는 밤맛만을 맛보며 살고 싶다. 새벽마다 수탉처럼 일어나, 밤과 함께 누비고 싶다.

평생 낮을 보지 않고 밤과 사귀고 싶다. 학교도 직장도 집도 삶도 버리고

밤만을 껴안고

밤이랑만 살아가고 싶다.

세상 근심 떨어내고 밥이 아닌 밤을 먹고

달과 별을 마시고 싶다. 나는

밤을 사랑하고 싶다.

밤만을 사랑하면 밤이랑만 살 수 있다고

밤에게 물어본다.

밤은,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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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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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공원 한가운데에 서있습니다. 이유도 목적도 없습니다. 그저 조용한 공원 한가운데에 아무 말 없이 서있을 뿐입니다. 사위는 잠잠합니다. 주변의 소리라곤 간헐적으로 짹짹거리는 참새와 찌익거리는 직박구리 소리뿐입니다.

남자에게 소리란 없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저 공원 한가운데에, 목표도 방향도 없이 가만히 서있을 뿐입니다. 여자는 궁금합니다. 그녀는 호기심을 느끼고 서있는 남자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남자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긴 외투를 입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멀리서 봐도 이십대 후반쯤 되는 젊은 사람인 건 알 수 있습니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찍힌 듯, 공원 한가운데 정지해있습니다. 여자는 가까이 다가갑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남자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갑니다. 여자가 한 발짝 다가설 때마다 잔디가 사그락 소리를 냅니다. 다가가보니 남자는 키가 큽니다. 여자가 코앞까지 갔는데도 남자는 꼼짝도 않고 서있습니다. 여자 쪽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여자는 남자 앞에 서서 그를 응시합니다. 남자는 너무나 이상하게도 죽은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한 치의 미동도 없습니다. 여자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자는 정교하게 잘 다듬어진 밀랍인형 앞에 서있습니다. 여자는, 이번에도 속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는 기분이 안 좋습니다.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린 걸까요? 누가 스마트폰을 빼앗기라도 한 걸까요?

아이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습니다. 화난 얼굴로, 우울한 얼굴로 공원 벤치에 앉아있을 뿐입니다. 아이는 울지 않습니다. 한결 같은 우울한 표정 그대로입니다. 벤치는 차갑고 딱딱합니다. 아이는 엉덩이가 아프지도 않은지 오랜 시간 앉아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손을 들어 코를 파기도 하고 머리를 긁거나 눈을 비비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딘가 초조하고, 불안해보입니다. 아이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리기 때문일까요. 아이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공원 나무와 나무 사이, 지평선 너머 해가 빛나는 곳을 아이는 묵묵히 바라봅니다. 공원에는 기린과 사자가 돌아다닙니다. 코끼리도 있고 코뿔소도 있습니다. 수리부엉이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나무늘보가 나무를 타고 느릿느릿 이동합니다. 돌고래들이 물을 뿜으며 공원 분수에서 시원하게 수영을 합니다. 오리들이 꽥꽥거리며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있군요. 저기 반달가슴곰이 괴로운 얼굴로 쑥과 마늘을 씹어 먹고, 펭귄들이 물고기를 입에 물고 구름 위를 날아다녀요. 카르카르돈토사우르스가 쿵쿵대며 초식공룡을 잡아먹고 벨로키랍토르가 인디언들을 부려먹고 있네요. 그때, 하늘에서 UFO가 내려오고 척척 조립된 변신합체로봇이 나타나요! 그리고는 노아와 함께 제사를 드리고, 다니엘을 뒤따라 사자 굴에 들어가네요. 어느덧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해 에덴의 불칼을 들고 홍수를 가릅니다! 요셉과 형제들은 서로 껴안고 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베드로는 닭의 목을 꺾어 삼계탕을 해먹는군요! 언젠가 다같이 삼계탕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참 맛있었지요…… A, B, C, D 알파벳을 외워야 해요!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가야죠! 이런이런, 장난감을 사 달라 조르면 안 되잖아요. 조심해요, 저기 커다란 회초리가 날아와요!

 

개는 공을 굴립니다. 작은 소나무 그늘에서 솔방울만한 공을 굴립니다. 한참을 굴리다 싫증이 났는지 코를 흥흥대며 자리에 앉습니다. 햇볕에 살이 탈 정도로 날은 따뜻합니다. 개는 벤치에 앉아있는 아이를 슬쩍 쳐다보고는,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에게 친근감을 표하려는 걸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앉아있는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무언의 신호를 보낸 것일까요. 몸도 따뜻하고 나른해진 개는 아이 옆에 드러눕습니다. 까만 눈을 깜박이고는 이내 잠이 듭니다. 아이는 누워있는 개를 가만히 응시하며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맞습니다.

 

여자는 오래전부터 기다렸습니다. 여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여자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모자를, 억겁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여자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는 천천히 밀랍인형을 살펴봅니다. 이 밀랍인형이 정말 밀랍인형인지, 한때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여자는 땀을 흘려가며 밀랍인형의 속눈썹 하나하나까지 훑어봅니다. 여자 앞에 서있는 인형은 인형이라 하기에 애매하고 남자라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여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이 밀랍인형은 여자가 생각하는 남자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오똑한 코, 동그란 눈, 넓은 이마…… 여자는 이 인형이 남자와 무척이나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여자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밀랍인형이 남자와 닮았다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자는 착각이어도 상관없다는 듯 인형 앞에 서서 몇 분이고 인형을 바라봅니다. 여자는 이 인형이 자기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너무 기다리고 기다리다 뼈가 으스러져 가루가 될 때까지 기다리던 그 남자가 아닐까 상상합니다. 인형은 그런 여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체처럼 가만히 서있습니다.

 

아이는 개를 천천히 쓰다듬습니다. 햇볕에 노릇노릇 익은 털이 손끝 사이로 물결 탑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들은 듯, 개가 깜짝 놀라 일어섭니다. 저 멀리 누군가의 흐느낌이 들립니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입니다. 낡은 방문을 열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개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갑니다. 아이도 개를 따라 달려갑니다. 여자의 신음소리도 점점 커져갑니다. 가까이 보니 낯설지 않은 사람 둘이 서있습니다. 한 명은 울고 있는 여자고 한 명은 우두커니 서서 허공을 쳐다보는 남자입니다. 아이는 그 둘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와 남자에게, 아주 오랫동안 가까이 다가가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하늘만 응시한 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서있습니다. 여자는 말없이 남자의 손을 잡고 흐느낍니다. 아이는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면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는 뒤따라온 아이 옆에 얌전히 앉아,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처럼 눈을 끔벅이고 있습니다.

 

여자는 소리칩니다. 남자에게 소리칩니다. 어서 일어나라고, 눈을 뜨라고 외치지만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남자에게는 여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남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아무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남자가 어떤 세계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몸을 부여잡고 흔들어댑니다. 남자는 힘없는 꼭두각시처럼 덜거덕거릴 뿐입니다. 잠자코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는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갑니다.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이 여자와 무척이나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여자의 손을 잡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안고 있느라 아이를 전혀 보지 못합니다. 아이는 여자가 자신을 돌아보든 보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손을 더 꽉 잡습니다. 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멀리서 남자와 여자와 아이를 바라봅니다. 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소리도 울리지 않는 허공에 대고 무의미한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를 누가 들을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남자는 마침내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나 이미 여자와 아이는 떠나고 없습니다. 남자가 있는 세상에는 남자가 떠난 후 몇 년이 지나 늙어 죽은 개 한 마리만 있을 뿐입니다. 남자가 떠나온 이곳에는 여자도 아이도 없습니다.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말없이 개를 쓰다듬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는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이제 돌아갈 수도 더 먼 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여자와 아이는 아직도 남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기다리다 못해 남자도 갈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떠난 것일지 모릅니다. 남자는 말없이 앉아있다, 해가 지고 사위가 조용해지자 슬그머니 일어섭니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울지도 못한 채,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남자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갈지, 여자와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남자는 걸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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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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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느끼기는커녕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맡아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가득했는데, 지루하고 심심한 날도 있지만 행복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행복을 도저히 만질 수 없습니다. 너무 멀어지고 흐릿해져 나에게 행복이란 게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내가 아직 사춘기에 머물러있기 때문인 걸까요. 어른을 코앞에 두니까 책임감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일까요. 내 머릿속에는 ‘독립’이라는 거대한 강박관념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관념 때문에 내 상상력은 완전히 결여되고 말았습니다. 소설도 잘 써지지 않고 독후감도 잘 써지지 않습니다. 공부는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할 뿐입니다. 어렸을 때 신나게 떠올리던 만화적 상상력이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유롭고 풍부하던 상상이 차단되었다고 생각하면 미칠 듯이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일곱 명의 식구, 50평 남짓 아파트, 아침마다 갔다 오는 도서관, 부모님의 잔소리, 누나의 타박과 욕, 동생들의 고함. 똑같은 배경에 똑같은 인물, 한결같은 세상에 한결같은 하루. 친구도 지인도 연인도 없고 쾌락도 편안함도 없습니다. 세상은 변함이 없고 내 마음에도 변화가 없지요. 이때까지 근근이 취미생활로 버텼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내 손을 떠나고 있군요. 글도 그림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론 버티기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아마.

독립한다고 달라질까, 내가 이 집을 떠난다고 해서 과연 행복해질까, 바깥세상은 훨씬 위험하고, 무섭고, 잔인할 텐데 하는 걱정은 무뎌진지 오래입니다. 어떤 힘든 노동도 상관없으니 일단 나가보자는 떼어놓을 수 없는 끈질기고 강력한 강박이 내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다른 잡념은 제쳐두고 무조건 나가라고, 제발 나가라고.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압니다. 나는 미성년자이고 미필이고 대학도 가지 않았고 취직할 수 있는 성인도 아니거든요. 이제 십대 후반인데,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는데 왜 그리 급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나까지 합해 일곱 명입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모두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독자 여러분은 참 특이한 집안이라 생각하시겠지요. 20년 가까이 한집에서 한 가족이 살았습니다. 제겐 친한 친구도 친척도 없습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관계가 좋지 않아 친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본 것도 오래되었습니다. 외가 조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친가 조부모님은 우리에게 연락 한번 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학교를 다니지 않아 친구가 없는 것일까요. 학교 다녀도 친구 없는 외톨이는 많고 학교 다녀서 왕따 당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 성격이 소심해서일까요? 한주에 한번 교회 갈 때마다 아는 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다 나의 고독과 우울의 원인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된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찾고 싶은 것은 행복입니다. 어쩌면 코앞에 행복이 있는데 모르는 것일지 모르지요. 꽃향기를 맡으려 해도 감기 걸려 코가 막혀서 못 맡는 것처럼 말이에요.

요즘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습니다. 쉽지가 않더군요. 먼 곳에 가려면 차비가 들고 가까운 곳은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나는 미성년자에 미경험자거든요.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으니 받아주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계속 찾고는 있지만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습니다. 내 용돈은 내가 벌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요.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 독립, 돈, 군대, 진로 걱정이 빈틈없이 차있어 골이 아픕니다. 이 글이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내 마음이 혼란스럽다는 뜻이겠지요. 조부모님이나 친구에 관해서는 후일 더 자세히 다루고 싶습니다. 이런 복잡한 머리로 소설을 잘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조금 비약이 심할지도 모르겠군요)

행복이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엔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 불안감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놓아버립니다. 사고가 나서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 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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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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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한 마리 개미로 살고 싶다

앞만 보고 기어가는

땀 흘리는 일꾼 되고 싶다

개미 굴속에는 대학이 없겠지 시험도 없겠지

애써 수능 칠 필요도 공무원 자격 볼 필요도

일자리 구하려 전전긍긍하고 집 한 채 얻으려 끙끙대지 않아도

여왕이 시키는 대로 왔다갔다 일만 하면 되겠지

사랑하는 사람 붙잡을 필요도 억지로 인연 만들 필요도 없고

늙어서 연금 걱정하거나 복잡한 사회 문제로 골머리 앓을 일 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 움직이면 되겠지 참 편하게 살 수 있겠지

아무 생각 없이 주는 것 먹는 것 물어나르다

하늘 위에 무엇이 서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밟혀

터져 죽는게 차라리 낫겠지

꿈을 꾸지 않아도 되겠지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지

더 이상 잠을 설치며 울지 않아도 죽은 사람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으로 살기보다

개미 되어 죽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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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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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광입니다. 하루에 책 한 권은 꼭 읽는, 독서광이자 책상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수집광입니다. 언제부터 내가 책을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세 살 스티븐 킹 소설에 빠져 한동안 대중소설을 읽다가 세계고전에 심취하고, 문학뿐 아니라 영화/미술/철학까지 두루 섭렵해 어느새 나는 책에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설이 재미있어 글을 사랑하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다양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지요. 자연스레 소설 쓰고 독후감도 쓰게 되더군요.

어느 날,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책을 읽고 작가의 대단한 독서량에 경쟁심을 느껴 그보다 더 책을 많이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식하게 하루 한 권은 꼭 읽으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말았지요. 마음속에 욕심이 무럭무럭 솟아나면서 나는 미친 듯이 책을 끌어 모았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상에 책이 한가득 쌓여있더군요. 천장을 가릴 정도로, 서른 권 아니 마흔 권이 넘는 책 더미가 터질 듯이 책상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책이 마치 높고 높은 돌탑 같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루 한 권 다 읽는 일이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감당 못할 두꺼운 책을 한꺼번에 모아버린 것입니다. 소설에서 만화까지, 책상을 가득 메운 책이 취미와 재미를 넘어서 얼른 처리해야할 숙제, 짐 더미가 되었습니다.

나는 참 곤란해졌습니다.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나? 너무 욕심을 부렸나? 오늘 한 권 다 읽으니 내일 한 권 쌓여있구나. 그러나 나는 걱정을 접었습니다. 수량이 많아도 늘 하던 대로 미친 듯이, 아니 미친 채로 읽으면 이런 책 탑쯤 금방 사라질 거라고. 그래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내내 책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 절반을 책에 투자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300쪽짜리 책은 기본이고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까지, 시 수필 소설 평론 잡히는 대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밀린 책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새 책을 또 읽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산더미 같은 책은 그대로더군요.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역부족이었던 겁니다. 책상 자리가 비면 그냥 놔두면 되는데, 못 참고 책을 빌려버린 것이지요. 덕분에 천장까지 쌓였던 책이 천장을 뚫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꿈이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책을 읽을 필요가 있나? 하고요. 상관없습니다. 작가가 되지는 않더라도 제대로 된 소설을 써서 꼭 책 한 권은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으니까요. 내 실력이 어느 정도 훌륭해지면 신춘문예나 신인상에 소설을 응모해볼 생각입니다. 이미 나는 몇몇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내 자랑은 그만하고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 아둔함을 나무라봅시다. 하지만, 더 얘기할 게 있을까요? 책상은, 아니 책상과 천장과 바닥은 이미 책으로 뒤덮였고 집은 책으로 가득 찼습니다. 밀린 숙제처럼 나를 짓누를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충족감을 들게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리 책이 쌓여도 읽고 또 읽을 것이며, 내 뇌가 터질 때까지, 늙어서 죽을 때까지 책을 읽을 거라는 걸.

나는 오늘도 반납기한에 시달려가며 책을 읽습니다. 한 권, 두 권, 백 권, 만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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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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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말 없는 물고기가

이름도 없고 기억도 없는 바다에서

살고 있어요 소리없이.

물고기는 봅니다 반대편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갈매기를

소리도 없고 추억도 없는 물고기는 봅니다 언젠가

바다 반대편으로 날아오를 꿈의 그 날을.

그래요 물고기는 잡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웃음 짓는 어부의 쇠창살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고기는 세상으로 나오고

소리 없이 트럭에 실려 침묵 없이 시장에 팔려

나갑니다 검정 비닐 밖으로

번뜩이는 칼날이 기다리는 반짝이는 비늘에게로

다시 눈을 뜨면 물고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캄캄히 잠들은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지구 반대편 차가운 물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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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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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14

 

 

나는 이탈로 칼비노를 올해 초순에 처음 만났다. 도서관에서 잡지를 펼쳐읽고 있었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광고가 보였다. 민음사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을 냈다는 것이다. 나무위의 남작, 우주만화, 팔로마르 등 이탈로 칼비노 소설이 총 열한 권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작가 연보를 보니 아무래도 전집은 아닌 것 같았다. 이탈로 칼비노의 다른 책으로 <왜 고전을 읽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선집을 간절히 읽고 싶다는 욕망에 붙잡혔다. 무지개 색으로 반짝이는 표지 때문이기도 했고,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우주만화’란 독특한 제목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열한 권 전부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에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권씩 사자니 집안에 혼자 남을 한권에게 미안했다.

집 근처 도서관에 이탈로 칼비노를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아버지께 부탁하기로 했다. 아버지 직장이 대학교라 마음껏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해 자주 책을 신청했고 그날도 내가 주문한 책을 손에 넣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이탈로 칼비노 소설은,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이었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듣자마자 환상적(fantastic)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공모전에 올리려다가 만 글이다. 주제가 '오솔길'인데 나에게는 오솔길과 엮인 기억이 하나도 없다. 애써 짜낸 오솔길이 소설 제목 오솔길이라니, 참 한심하기도 하지.. 하면서 썼는데 어떻게 글을 맺어야할지 막막해져서 관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제가 '오솔길'인 수필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공모전에 연달아 떨어지고 소설도 못 쓰고 있고.. 책은 많이 읽는데, 성과는 언제 나올까. 연말이라서 그런지 마땅한 공모전도 나오지 않는다. 내년엔 글을 미루고 미뤄 공모전 마감일을 넘겨버리는 짓 따위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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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의 나와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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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 2018. 1

 

 

두 번째로 머리를 기른다. 첫째는 타의에 의해서, 둘째는 자의에 의해서다. 내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결같은 머리 모양이 지겨워, 염색을 못하니까 머리라도 길러, 어떻게든 머리카락에 변화를 줘보자는 심정으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짧은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와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로 머리를 기른 지 십 년이 되어간다. 한 아홉 살인가, 식구들의 권유로 나는 별 생각 없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 병든 사람,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발을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증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내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기쁨에 무작정 머리를 길렀다. 머리 기르는 일은 참 별거 아니라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자가 머리 기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길면 여자, 머리가 짧으면 남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부정했지만, 길을 가다 짧은 머리를 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남자라 인식하게 된다. 이런 의식과 관념은 아주 옛날부터 비롯된 것이고 우리 머릿속 깊이 내재해있는 거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머리 기른 남자에게 머리는 여자만 기르는 것인데, 왜 네가 기르냐 물어오면 불쾌해질 수밖에 없다. 머리가 길어서 여자로 알았다고 하거나 화장실에 들어가다 깜짝 놀라 나가라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하게 된다. 나는 길고 긴 몇 년 동안 그런 일을 숱하게 겪어왔다. 남자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낯선 아저씨들이 “공주님은 저기로 가야지” “니 여자고 남자고?” 하고 말을 건네면 한없이 창피해지곤 했다. 별로 크게 의식할 일도 아니고 그들의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왜 그렇게 민망했는지 모른다. 중년 남성에게 대들 수도 없었다. 여자 아니라고, 남자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매번 반복되는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웠다. 그래서 소변도 눈치봐가며 봐야했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물론 한참동안 소변기에 서서 소변을 보지 못하는 나의 행동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아주 나쁜 습관이었다. 남들에 대한 두려움, 피해의식 때문에 그런 버릇이 더 심해지지 않았나 유추해볼 뿐이다. 피해의식이 생길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나는 남자화장실을 꺼리게 되었다. 대신 여자화장실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상관하는 사람도 없고, 아주 편하게 볼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화장실엔 아저씨, 청년, 청소부 등 간섭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자화장실엔 그럴 사람이 없었다. 모두 같은 여자 대하듯 지나쳤다. 오히려 편했다. 여자가 아닌데 여자화장실에 간다는 사실이 처음 얼마간은 어색했으나 익숙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머리를 기른 뒤 나는 길을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여자애’ 소리를 들어야했다. 낯선 여자아이 둘이 나를 보면서 귓속말로 키득거리고, 식당 주인 할머니가 정말 남자 맞냐고 내 사타구니 부분을 더듬기도 했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 모두 나를 여자로 봤다. 나는 화내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사람들이 나를 여자로 대할 때마다 대들고 싶었고 화내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소심한 나는 또박또박 여자가 아니라고 설명해줄 용기조차 없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참고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남자가 머리 기른다는 사실이, 아니 내가 머리 기른다는 사실이 뿌듯하지 못했고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영락없는 아홉 살 여자아이였다. 어깨도 넓지 않고 수염도 없는 앳된 나는 누가 봐도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내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이었을까? 한창 예민할 시기에,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어, 아니 분명 나는 당당한 남자였는데 타자의 착각이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이었을까?

 

처음엔 이발비를 아끼려 머리 기르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모발 기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머리를 기른 걸까? 아픈 사람들을 위해? 머리를 기르라는 부모님을 위해?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를 위해 머리를 기른다. 기증하려 기르는 것도 이발비를 아끼려 기르는 것도 아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것 하나뿐이다. 아홉 살 머리 기른 소년과 달리 열여덟 살 머리 기른 청년을 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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