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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방족 [2]

명절날 어머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우리 집 개는 키우고 싶어도 못 키워서 없고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있는 반지하방으로 가면 얼굴에 나는 돈밖에 모른다고 써있는 음식을 한가득 만들어놓고 냉장고에 처넣어 썩히기만 한다는 우리한테 일절 관심도 없고 고모 고모부 아들들만 사랑해주는 친할머니 벌써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우리가 떠날 때만 눈물 비치는 용돈도 대화도 주지 않는 표정이 한결같은 할아버지 위층에는 하루종일 드러누워 컴퓨터 책상과 일심동체가 된 말이 별로 없는 사촌 형 종수 반지하방에는 하루종일 잠옷만 입고 양치질을 왜 해? 하고 대답하는 이가 썩은 항문도 스스로 못 닦고 할머니가 닦아주는 살이 뒤룩뒤룩[…]

반지하방족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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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詩 [1]

도시는 싫다. 도시는 총총한 밤하늘 별을 요리하지 않는다. 도시는 상쾌하고 싱그러운 나무들을 심지 않는다. 도시는 시원한 바람과 청결한 빗줄기를 뿌리지 않는다. 도시는 산뜻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을 만들지 않는다. 도시는 화려한 꽃과 광활한 들판을 꾸미지 않는다. 도시는 맛있는 눈송이와 먹음직한 밤송이를 떨구지 않는다. 도시는 붉은 노을과 붉은 단풍을 색칠하지 않는다. 도시는 꼬끼오 수탉과 음머어 암소와 컹컹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다. 도시는 살을 태우는 햇빛을 수많은 빼빼로로 가득 메운다. 도시는 검은 담배연기와 100만 볼트의 전류를 뿜어낸다. 도시는 거리마다 그림자를 드리우고 웃음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도시는 어디를 가도 눈부시고 피로한 빛만 보여줄 뿐이다. 도시는 언제나[…]

도詩
/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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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녹음_190909 00:00:00 [1]

음, 아아, (목을 다듬는다) 으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성대 스트레칭) 야아아아아아~!! (목을 풀기 위한 가벼운 샤우팅) 워어 난 이제 울며어 쓰러지겠지 널 그리며~~ (몽니 <소나기> 한 소절, 성대가 제대로 붙지 않은, 중음이 빈 센 가성/반 가성 소리) 아 씨 왜 이렇게 안 되지.. (중얼거린다) 대체 얼마나 해야, 언제까지 해야 성대가 잘 붙을까? (잠깐 있다가) 그 날카로운 고통의 구멍에 곧 너의 삶은 간파당했네 (국카스텐 <싱크홀> 한 소절, 간파 당했네에서 삑사리, 아니면 아예 힘이 풀려 가성으로 샌다) 에이 씨, 못해 먹겠네.. (신경질을 내다가) (턱을 열고 후두를 내린 상태에서) 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성대 스트레칭, 같은 방법으로 오 이[…]

음성녹음_190909 00:00:00
/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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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자 [1]

그러고보면 나는 참 종교인이다 한국에서 록커가 되겠다는 꿈을 꾸다니 클래식 재즈 힙합 발라드 팝 펑크 그 많은 길 가운데 좁아도 너무 좁은 길을 고른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진정한 종교인이다

기독교 신자
/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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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없는 당신 [1]

당신의 향기를 어디서 맡을 수 있을까 당신의 체온을 언젠가 만질 수 있을까 당신의 음성을 내일은 들을 수 있을까 당신의 손등을 오늘은 느낄 수 있을까 당신의 시선을 매일밤 받을 수 있을까 당신의 얼굴을 지그시 담을 수 있을까 당신의 입술을 살포시 포갤 수 있을까 당신의 혀끝을 뜨겁게 핥을 수 있을까 당신의 허리를 부둥켜 안을 수 있을까 당신의 맥박을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 당신의 생각을 오롯이 읽을 수 있을까 당신의 마음을 은밀히 얻을 수 있을까 당신의 육체를 깊숙이 헤칠 수 있을까 당신의 영혼을 환하게 밝힐 수 있을까 당신은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여기 없는 당신
/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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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빛 멜로디 [1]

자 저는 여기 있어요 여기 누워 언제 올지 모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 앉아있는 게 좋을까요 어쩌면 서 있는 자세가 바람직할지 몰라요 자 이제 내게로 와요 향기로운 밤냄새 가득 풍기며 도시의 별빛 수놓은 캔버스로 나를 만나러 와요 먼지 날리는 해변에는 딱정벌레들이 다닥다닥 모여있고요 펼쳐놓은 파랑 파라솔에는 굶주린 나방들이 달려들어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은은한 향수 냄새 나는 키 큰 나무가 줄 지어 서있는 정원으로 오세요 장미 넝쿨의 가시를 피해 위태로운 신전 속으로 모래톱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에게 자 어서 달려와요 저는 여기 있어요 아픈 발과 굳은 몸을 당신의 혀로 어루만져줘요 주변의[…]

밤빛 멜로디
/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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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송 [1]

여기, 당신과 나 여기, 지금, 이곳에, 당신과 나 여기, 지금, 이곳에, 당신은? 여기, 지금, 이곳에, 무엇을 하며? 여기, 지금, 이곳에, 누구를 기다리며? 여기, 지금, 이곳에, 나는 어디로? 여기, 지금, 이곳에, 입을 닫고 여기, 지금, 이곳에, 눈을 감아 여기, 지금, 이곳에, 귀를 기울여 여기, 지금, 이곳에, 오는 소리를 들어볼까? 여기, 지금, 이곳에, 언젠가는 여기, 지금, 이곳에, 잠들고 여기, 이곳에….

포크 송
/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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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1]

심장이 뛴다 심장이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근두근이었다가 욱궁욱궁으로, 욱궁욱궁에서 다시 쿵쾅쿵쾅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아무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달리기도 팔굽혀펴기도 앉았다일어서기도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도움닫기 멀리뛰기도 줄넘기를 이천 개씩 알이 배기도록 한 적도 아무 장비 없이 산을 오르락내리락 한 적도 트램펄린에서 방방 뛴 적도 복싱을 땀 내리듯 한 적도 없고 태권도나 유도, 검도 합기도 쿵푸 태극권 같은 무술도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축구나 농구 혹은 야구나 정구를 한 적도 없으며 잠수를 해 숨을 오래 참은 적도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진 적도 없고 사랑하는 연인과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번지점프를[…]

심장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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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을 품은 모든 버러지에게 – 오시미 슈조 「악의 꽃」 [1]

      이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사춘기를 겪는다. 대부분 10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극심한 '성장통'을 앓는데,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가는 길은 일종의 입사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채로운 일을 겪으며 성장한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청년 – 장년 – 중년 – 노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험을 하고 길지 않은 생애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춘기를 거치고 어른의 길을 향해 발을 딛는다.  오시미 슈조 「악의 꽃」은 청소년들의 방황과 역경, 성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카스가'는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을 좋아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문학소년'이다. 그 나이에 걸맞게 짝사랑 상대도 있다. '사에키'는 카스가에게 '뮤즈이자 운명의 여인'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사에키의 체육복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자신의 옷 속에 숨긴다. 그 모습을 동급생 '나카무라'가 목격하고 나카무라는 카스가의 약점을 잡아 '변태적인 행동'을 강요한다. 변태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비정상과 일탈을 의미한다. 동시에 탈바꿈(變態)이라는 뜻도[…]

악의 꽃을 품은 모든 버러지에게 - 오시미 슈조 「악의 꽃」
/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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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심장 [1]

그의 심장은 숲속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다 후투티와 딱따구리가 날아들고 개미와 딱정벌레가 우글우글 모여든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빛깔 벌레들이 야금야금 맛있게도 심장을 갉아먹는다 혈관에 뜯겨져간 부서진 심장은 부패되어간다 붙을 곳 없는 핏줄이 쓸쓸히 핏물을 뿜는다 냉장고 밖으로 쫓겨난 심장은 서서히 썩어가고 파리 떼는 기다렸다는 듯 깊숙한 슬픔까지 파고든다   그는 텅 빈 공간을 움켜쥐고 숲으로 뛰어간다 드넓은 산속에서 수풀을 헤치고 잃어버린 마음을 찾기 위해 달려간다 떨어져나간 심장에겐 끔찍한 악취가 난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뒤면 시커멓게 변색된 심장이 완전히 바스라져 더 이상 그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급히 심장을 찾는다 숲속에서 심장[…]

숲속의 심장
/ 2019-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