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행복 [1]

  요즘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느끼기는커녕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맡아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가득했는데, 지루하고 심심한 날도 있지만 행복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행복을 도저히 만질 수 없습니다. 너무 멀어지고 흐릿해져 나에게 행복이란 게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내가 아직 사춘기에 머물러있기 때문인 걸까요. 어른을 코앞에 두니까 책임감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일까요. 내 머릿속에는 ‘독립’이라는 거대한 강박관념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관념 때문에 내 상상력은 완전히 결여되고 말았습니다. 소설도 잘 써지지 않고 독후감도 잘 써지지 않습니다. 공부는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할[…]

행복
/ 2018-05-24
모로
개미 한 마리 [1]

차라리 한 마리 개미로 살고 싶다 앞만 보고 기어가는 땀 흘리는 일꾼 되고 싶다 개미 굴속에는 대학이 없겠지 시험도 없겠지 애써 수능 칠 필요도 공무원 자격 볼 필요도 일자리 구하려 전전긍긍하고 집 한 채 얻으려 끙끙대지 않아도 여왕이 시키는 대로 왔다갔다 일만 하면 되겠지 사랑하는 사람 붙잡을 필요도 억지로 인연 만들 필요도 없고 늙어서 연금 걱정하거나 복잡한 사회 문제로 골머리 앓을 일 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 움직이면 되겠지 참 편하게 살 수 있겠지 아무 생각 없이 주는 것 먹는 것 물어나르다 하늘 위에 무엇이 서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밟혀 터져 죽는게 차라리 낫겠지 꿈을[…]

개미 한 마리
/ 2018-05-17
모로
책에 미쳐서 [1]

나는 독서광입니다. 하루에 책 한 권은 꼭 읽는, 독서광이자 책상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수집광입니다. 언제부터 내가 책을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세 살 스티븐 킹 소설에 빠져 한동안 대중소설을 읽다가 세계고전에 심취하고, 문학뿐 아니라 영화/미술/철학까지 두루 섭렵해 어느새 나는 책에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설이 재미있어 글을 사랑하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다양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지요. 자연스레 소설 쓰고 독후감도 쓰게 되더군요. 어느 날,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책을 읽고 작가의 대단한 독서량에 경쟁심을 느껴 그보다 더 책을 많이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식하게 하루 한 권은 꼭 읽으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말았지요. 마음속에 욕심이 무럭무럭 솟아나면서[…]

책에 미쳐서
/ 2018-03-22
모로
검은 바다 [1]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말 없는 물고기가 이름도 없고 기억도 없는 바다에서 살고 있어요 소리없이. 물고기는 봅니다 반대편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갈매기를 소리도 없고 추억도 없는 물고기는 봅니다 언젠가 바다 반대편으로 날아오를 꿈의 그 날을. 그래요 물고기는 잡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웃음 짓는 어부의 쇠창살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고기는 세상으로 나오고 소리 없이 트럭에 실려 침묵 없이 시장에 팔려 나갑니다 검정 비닐 밖으로 번뜩이는 칼날이 기다리는 반짝이는 비늘에게로 다시 눈을 뜨면 물고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캄캄히 잠들은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지구[…]

검은 바다
/ 2018-03-05
모로
오솔길 [1]

2017. 12. 14     나는 이탈로 칼비노를 올해 초순에 처음 만났다. 도서관에서 잡지를 펼쳐읽고 있었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광고가 보였다. 민음사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을 냈다는 것이다. 나무위의 남작, 우주만화, 팔로마르 등 이탈로 칼비노 소설이 총 열한 권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작가 연보를 보니 아무래도 전집은 아닌 것 같았다. 이탈로 칼비노의 다른 책으로 <왜 고전을 읽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선집을 간절히 읽고 싶다는 욕망에 붙잡혔다. 무지개 색으로 반짝이는 표지 때문이기도 했고,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우주만화’란 독특한 제목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열한 권 전부 사고 싶었지만[…]

오솔길
/ 2018-02-02
모로
10년 후의 나와 머리카락 [2]

2017. 11 ~ 2018. 1     두 번째로 머리를 기른다. 첫째는 타의에 의해서, 둘째는 자의에 의해서다. 내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결같은 머리 모양이 지겨워, 염색을 못하니까 머리라도 길러, 어떻게든 머리카락에 변화를 줘보자는 심정으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짧은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와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로 머리를 기른 지 십 년이 되어간다. 한 아홉 살인가, 식구들의 권유로 나는 별 생각 없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 병든 사람,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발을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증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내가[…]

10년 후의 나와 머리카락
/ 2018-02-02
모로
봉사활동 간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직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추위는 온몸을 으슬으슬 떨리게 만들었고, 쌀쌀한 바람은 마음속 빈 공간을 싸늘하게 훑고 갔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저와 형 누나에게 노숙자 식사 배급 봉사를 부탁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바깥의 풍경은 시리도록 황량하기 그지없었지요.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더니 입구에 노숙자분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고, 계단을 따라 주욱 내려가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 반가워. 저기 가서 앞치마 입으면 된단다.” 이곳에서 늘 봉사하시는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저희는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길쭉한 장화를 신은 다음 노숙자분들이 들어오길 기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노숙자분들은 줄지어서 우루루[…]

봉사활동 간 날
/ 2018-01-02
모로
결혼에 관한 단상

2017. 7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결혼하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애도 낳아 알콩달콩 잘 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부모님이 그랬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섯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만약 낳게 되면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하며 다소 유아적이고 섣부른 상념을 품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환상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할 이유도 없고, 결혼하란 법도 없고, 결혼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결혼한다 해도 애를 낳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없을 일이었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내 가족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내가 첫째를 낳으면 내 형제의[…]

결혼에 관한 단상
/ 2018-01-01
모로
2018년에도 [1]

나는 살면서 한번도 사귀어본 적이 없어 사귀지 못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알 거야 이런걸 흔히 모태솔로라고 하더군 나도 알아, 사귀려면 멋있어야 하고 잘 꾸며야겠지 멋있게 꾸미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돈을 가지려면 돈을 벌어야겠지 돈을 벌려면 얼른 커야지 무럭무럭 자라서 독립을 해야겠지 독립을 하려면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야겠지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겠지 돈을 벌고 벌어서 차넘칠 때까지 벌어서 보란듯이 자랑해야지 식구들 비웃으며 독립해야지 나 혼자 살면 한결 자유로울 거야 한결 편안할 거야 간섭하지도 따지지도 잔소리하지도 아무 소리도 들을 필요없어 아무도 없으면 사귈 수 있겠지 친구도 우정도 가족의 사랑도 집어치우고 사람을 사랑해야지 자유를 사랑해야지 지긋지긋해서[…]

2018년에도
/ 2017-10-09
모로
낙타는 바늘귀에 들어갈 수 없다 [2]

내가 교회에 다닐 때 집사님이 가장 자주 하던 말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더 어렵다’였다. 거대한 짐승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몸통을 줄여서? 몸속의 물통을 비우면 배가 홀쭉해져 바늘귀보다 작아지는 것일까? 집사님의 말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이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니? 부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단다. 평생 욕심만 채우다 지옥으로 떨어지기 십상이지. 그러니 여러분도 꼭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 해요. 알았죠? 부자가 되는 건[…]

낙타는 바늘귀에 들어갈 수 없다
/ 2017-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