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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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은 고리를 쌓았다
허물없음이 상처입히고 마니까
가장 쓸모없는 존재도
제일 아름다운 형상을 지으면
누구든 직공을 칭찬하고 마니까
또한 흉을 지으게 되니까

 

토성은 고리를 녹인다
허물이 사람을 외롭게 하니까
가장 많은 고리로 치장했음에도
제일 작은 먼지 덩어리는
꾸준히 남아 폐 한 구석을
어지럽히고 마니까

 

사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우주의 티끌이 되는 법
티끌이 모여 별을 이루는 것
토성에 섞이지 않는 법을 알고
또 다른 고리를 만드는 법
베틀을 다룰 줄 알아야
망가뜨리기에 쉬우니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잘도 알아서 매여 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제법 얽혀 있다

 

토성은 물 위에서도 뜬다는데
뭍에서도 가라앉는 우리는
날 적부터 고리를 절렁이던 우리는
퍽 불쌍한 처지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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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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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용지가 이리저리 굴러 무참히 구겨졌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학원에 한참을 갇혀 있다 일요일에는 보고서를 써야 한다며, 정규 수업은 없지만 겨우 얻은 하루 동안의 휴가였다. 돌아오는 주에는 금요일에 학원을 빼고 남은 일요일에 가려 한다. 금요일에 학원을 뺀다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일요일에 정규 수업이 없으니까 가는 게 더 유별난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내 보고서보다는 미래에 빠지게 될 수업을 어느 수로 따라가야 하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금요일에 조퇴를 신청한 이유는 그저 동아리 내 한 부서의 부장이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그 자격으로 실험을 진행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구입한 장비를 시험하는 겸, 부장이 필수로 모여 실험을 해야 한단다. 인원수가 적어 같은 학년에서 나를 빼면 남은 인원은 겨우 한두 명이 되는 부서에서 감투를 써봤자 기록용 빼면 어디에 쓰나 싶었는데 이런 데에나 쓴다. 차라리 학원이 여는 시간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붙잡혀 수업이며 자습이며 일일이 감시당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지 않는 실험에 우리 부서에 도움이 될 만 한 장비도 아니라 더욱 침울해진 것은 물론이다. 과학고나 과학 중점 고등학교가 아닌 이상 학교에 망원경도, 하다못해 기상 관측계도 우리는 들여 놓을 수 없고 사용할 수도 없다. 학교가 고지대에 있다고는 해도 천문 관측대를 들여 놓을 자리는 없다. 차라리 우리 동네에 천문대를 지으라면 지었겠다. 학교를 감싼 아파트 단지만 서너 개는 되고 골목을 따라 큰길로 나가면 밤에도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걸. 학교 근처에는 별보다 한참 뒤떨어진 불빛이 잔뜩 한데 모여 남은 수명을 태우고 있다. 옆 과학 중점 학교는 천문대를 들였단다, 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걔네 학교 과학부는 야자 빼고 별이나 본단다. ‘옆’, ‘과학 중점.’ 총 다섯 글자. 우리는 그 글자가 이르는 두 수식어가 부족해 그곳과 다른 과학부가 되었다. 그 학교 재학생이 들려준 사실과 그에 기반해 떠돈 소문을 조합해본다. 그러다 관둔다.

 

무기력해졌다. 방학 동안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의 양식을 다시 보니, 그 기운은 한층 강해졌다. 내가 가진 꿈을 위해 한 해간 해왔던 성실하기 위한 노력과 서너 해간 꿈만 꿔왔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겉멋만 든 문체로 간드러지게 서술해야 한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환상은 순식간에 구체화되었고 가끔은 학사모와 박사 학위복을 입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장황하게 쓰인 논문을 받아드는 상상을 하다가도 곧장 공상에 깨 현실을 바라보곤 하는 때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안타까운 건 이 모든 건 그러한 ‘보고서’에는 관용 따위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글이 직조한 세계를 전부 집어넣을 수가 없는 현실 탓이다.

 

보고서를 작업 중인 워드 파일은 여전히 공란이며 모든 표가 채워지지 못하고 한두 문장이 조합되지 않은 채 같은 공간에 따로 존재해 남았다. 차라리 백 퍼센트 허구를 욱여넣으면 마음이라도 조금 편할까, 하지만 내가 만든 사실에 기반하고 실제 활동에 근거한 내용이 열정 담긴 모습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단다. 일기를 쓸 때에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건과 현실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감정을 혼용하고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추후에 다시 볼 때도 이만큼은 열심히도 지어냈구나 감이 금방에 오는데, 보고서가 탈바꿈할 다섯 글자가 뭐라고 꾸준히 사람을 복잡하게 했다. 나는 어떤 가치를 바라고서 대학을 가려는 게 아니다. 그러니 대학을 쉽게 말하며 지금의 성적으로도 꽤 안정하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국립대까지를 목표라고 쉽게 운운하곤 했지. 성적이 아무리 낮은 곳이면 어떤가. 내 꿈을 위해서 대학은 부가적인 가치이다. 대학원을 가려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야 하고 그러면 대학은 장학금을 받으며 다녀야 할 테고, 국가장학금을 소득 기준으로 받기에는 겨우 애매하게 기준을 넘어 집안에 돈이 흘러 빗나가는 형편이니 수석 입학으로 받는 전액장학금을 노리자. 내가 가고 싶은 학과는 개설대학마저 부족하니까, 낮은 대학이라도 국립대이니까 기숙사도 쌀 수도 있지. 아니면 차라리 이번 학년에 성적을 높여 입학생 전체 수석이라도 노려? 국립대를 생각하며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스스로마저 스스로를 허상 저 너머로 보내버리고 미래에 맞게 ‘나’를 다시 새로운 틀에 재구성하는 그 이름, 박사 과정이 쉬운 줄 알고 대화중 은연히 드러낸 내 현실과 허상의 경계는 조금의 시간과 돈, 또 대학원 합격 서류 정도면 금방이라도 무너지고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고는 또 다른 허상을 꿈꾸겠지.

 

석사도 학사 취급하는 분야라 했다, 빈 백색 화면을 보자니 주변의 위로 섞인 저주가 윙윙 울렸다. 남들 공부해서 취직하는 것처럼 쉬운 루트 가는 건 힘들지, 보통 끈기로는 아무 것도 못할 걸. 그를 땔감 삼아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을 긍정적인 면만 일궈낸 공상을 양껏 하다 다시 익숙한 종이 속 항목을 본다. ‘나의 진로를 위한 노력.’ 대학은 그래서 가는 것이지. 고민하다 으레 익숙한 문장을 타이핑했다. 아주 자랑스러운 동아리서 입학사정관에게 들이밀고 죄다 실패했지만 그럴 이유가 있더라 구구절절 늘어놓게 될 실험을 몇 가지 줄줄이 진행했다고. 실험처럼 내가 실패한 것 같지만 전혀 아니라고, 그러고 이번 학년에 올라가게 되면 동아리 부장도 맡아, 나 이 정도면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느냐고. 동아리에 매여 사는 삶은 싫지만 아무튼 내 한 해도 가장 큰 역할을 맡을 것 같다고. 미래에 만들어질 A4 용지 약 20 페이지짜리로 된 묶음이 곱게 철되어 다섯 글자의 제목을 단 보고서로 자랑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내 몇 년은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누구보다 아름다운 환상을 녹아냈다며 비슷한 묶음들 사이서 존재를 드러낼 수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겠지. 다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기간 동안 글로 다져진 이력은 물꼬를 튼 강물처럼 가뭄도 없이 물살을 가로질렀다. 대세는 셀프-마케팅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마저 다섯 자였다. 허상 속에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꾸준히 들었다. 자랑처럼 학사모를 하늘 높이 던졌다 받고 싶다. 어쩌면 이러한 상상이 나를 하루 더 살아가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고 나는 이미 개연성 없이 만들어진 공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동아리에서 맡은 역할은 그저 부원이었고 이제야 부장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던 지라 적을 이야기가 더 남아있지 않았다. 자그마치 내 나이에 두 배를 한 만큼 오래 이어진 동아리에서 나는 한 기수, 한 부서를 담당하는 부장이 되었다. 이 말 정도를 적고 나면 다음 학년의 보고서에는 더 쓸 말이 없게 될까. 상황이 좋지는 않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동아리는 위계질서만 대단했지 (특히 우리 부서에서의) 그 실상은 무관심으로 똘똘 뭉친 군락이다. 좋지만 않은 게 아니라 그저 나빴다. 아무도 문과로 전향하지 않은 우리 기수, 우리 학년에서 공석이 나기만을 벼르고 있는 아이가 내 주변에만 넷이다. 진로가 바뀌었거나 동아리를 잘못 들었거나 해서 우리를 멋모르고 부러워하는 네 아이만큼 나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멋모르고 고등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에 동아리 이름 하나만 외워두고 학교에 입학하고 그토록 바라던 동아리에 들어와 자랑스레 붙었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 이제는 두 학년을 책임지는 부장이었고, 애초에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음에도 처음 리더가 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했다. 내가 모든 걸 일궈내고도 동아리는 천 자밖에 안 들어간단다, 내 학교생활 중 칠팔 할은 동아리일 텐데. 여전히 동아리에 매여 있을 텐데. 기록용으로도 정해진 분량은 너무 적었다. 나는 내 보고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 기록으로는 나를 죄다 표현하고 내 몇 년을 욱여넣을 수 없으니까. 스무 페이지다. 내가 열정을 쏟아 부은 시간들, 새 학년이 되면 나는 또 달라진 마음가짐을 가질 것이다. 그러한 심증은 전부 버려진다. 백색의 여백이 꾸준하게 어떠한 의미 없는 구성으로 가득 채워질 때 나는 지속해서 나를 떠올렸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미래와 오래도록 생생한 꿈을 그리다 무너지거나 이루어진 과거 속 미래. 나는 일 년을 계획했던 자리에서 동아리 부장 투표용지를 열어보며 한 장 한 장 득표수를 세는 허상을 만들었고 한 학기가 지나자 내년에는 어떻게 할지 올해는 어떻게 했더라 하고 다른 부서 친구들까지도 대화를 끊임없이 하며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그렸다. 이미 무뎌진 곳에서 내 열일곱과 열여덟은 아슬한 경계를 타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 한 해를 물리고 되새김질하는 새해를 맞아 문서에 남기면 비로소 불완전한 온점을 마치고 다음 장으로 도망치듯 달려갈 것만 같은 외줄타기였고 내가 넘어야만 하는 벽과도 꼭 닮은 형태였다.

 

동아리에서 추진해 학교에 천문대를 세울 수는 없지만 우리끼리라도 천문대를 갈 수는 있다. 몇 없는 자료를 찾아가며, 메일과 전화로 수소문해가며 모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천문대 관측행사 프로그램을 참여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 때였다. ‘뉴 호라이즌’이 문득 생각나 워드 파일을 내리고 그가 덮어 두고 있던 다른 팝송이 귀를 찌르는 페이지를 열어 명왕성이 한껏 비쳐지는 동명의 노래로 바꿨다. 처음에 뉴 호라이즌 호가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천체에 접근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예고를 들은 것이지만, 그가 천문학-중 천체물리학-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뉴 호라이즌이 명왕성까지 가는 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자리에 가지도, 그래서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그가 작곡하고 부른 동명의 노래가 울려 퍼지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그가 아니었으면 나보다는 우리 부서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려는 친구가 먼저 이 소식을 알고 나는 그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을 것이 눈에 선했다. 퀸의 음악은 예전부터 간간히 들었는데,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와 동제인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를 위로하고 치유해준다는 느낌이 들고 그에 사로잡혔던 몇 년 전부터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영화가 개봉한 날 야자를 빼고 영화관에 가는 버스를 급하게 탄 뒤 뛰어가 숨이 차고 긴장돼 콩닥이는 가슴 그대로 눈물을 흘리며 영화관에서 나오고는 집에 돌아가 한참을 부모님과 같은 세대의 팝 세계를 들락거렸던 기억이 난다. 밴드 멤버 넷을 모두 좋아하고 있어도 요즘은 그 중에서도 특히 브라이언 메이의 애정이 뒷받침된 전문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타와 락이 좋았기 때문에 쟁쟁한 음악사의 한 시기를 그와 그가 속한 팀이 만들었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천문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아 우주 탐사에 도움을 주고 나사에서 이번 신곡을 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저명한 천체물리학 박사가 되었던 그처럼은 불가능할 거다. 나는 아마 브라이언 메이처럼 좋아하는 것을 일평생에 바쳐서 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책을 꾸준히 잡으면서도 듣고 있는 음악이 꾸준히 변화했고 읽고 있는 책을 띤 청구기호가 띠는 백의 자리 숫자가 꾸준히 변화했다. 세계 문학을 좋아하다가 순간 한 글이 ‘좋다’는 일말의 느낌 덕분에 시집을 반쯤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한 나의 정서는 그와 같을 수는 없다. 글을 쓰면서도 소설이나 다른 창작물에서 단순히 팬의 심정으로 좋아하는 캐릭터 몇 명이 보고 싶던 장면을 늘어놓던 것이 전부이던 문장에서 조각보처럼 이야기로서 발전시켰고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적기까지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하고 싶은 것도 계열이나 대분류만 같았지 분야는 휙휙 변화해 가려는 학과가 변하고 가고 싶은 대학의 분류가 자연대에서 공대까지 변했다. 아직까지는 그런 흔들리는 삶을 살아왔다.

 

다만 곁가지는 꾸준히 변했지만 내가 가진 큰 줄기는 굳건하게 서 있다. 아무리 솎아내고 가지를 쳐내도 밑동은 도려내지 않은 것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과실을 맺어낸 것은 아니지만 도태되지 않았고 벗어나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고민은 여전하더라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인 것도 사실이었다. 같은 학년 친구들은 모두 나를 뽑았다고 했다, 한 사람 당 두 표를 투표하는데 득표수 차이가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올라간 학년이었고 감투였다. 다만 그 과정 중 곁가지를 쳐내고 꿈이 자연과학이 아닌 공학 계열에 가깝게 스멀스멀 ‘기술’이란 가깝고도 먼 개념이 추가되었다. 그래도 동아리를 바꿀 필요도 없었고 뇌리에 새겨지도록 들은 ‘두루뭉실에서 명확하고 자세’한 내 진로 계획란에는 잘 들어간다. ‘뉴 호라이즌‘도 다섯 글자였다. 뉴 호라이즌은 더 시도해보라 말한다. 하늘은, 하늘이 품는 우주는 천문학적으로 너무도 광활하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그 짧막한 가사 구절이 다르게 다가왔다. 구겨진 흔적을 손으로 밀어 본다. 내가 보고서에 쓰고 다시 옮겨진 후 만들어질 다섯 글자로는, 그 다섯 글자가 수식하는 약 스무 페이지로는 내 삼 년과 미래의 약 사 년을 위해 살아온 십구 년을 전부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꾸준히 고민하며 위태로웠던 청소년기를 나름 마쳐가는 ‘나’가 차곡차곡 쌓여 있을 테다. 내 다섯 자에는 꾸준히 뒤바뀌거나 기존의 허상이 가르킨 이정표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더라도 내 안에 숨겨둔 내 정성을 용해하고 자랑스레 일궈낸 기록이 담겨 있다.

 

 

*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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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이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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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이 세상이 미웠던 걸지도 모른다

 

하늘을 가르는 몸짓과 물살을 가로막는 수족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남겨진 파편,

깃은 무참히 깨지고 색채마저 잃어가며

그마저 아름답다 다만 세상은 찬사를 보내지

무엇을 바라고 비행을 느껴야 했는가

 

좁아져야 날 수 있는 폭과 가라앉아 헤엄할 절벽

보통 절박해서는 부족한 격차에서 우린,

걷기도 전에 뛰어오르라 명을 받고

나는 법을 알고서 날으는 법을 배우지

어떤 족쇄를 파(破)해야 떠오를 수 있는가

 

자고로 시란 일 평 단위의 무수한 수직선

엿듣고 훔쳐 본 무구하며 찬란한 기록

하늘을 떨치고 건물을 가로지른다

그 가게 옥상에도

쇠창살이 있을까

 

 

*  안녕하세요 가입하고 처음 글 올려보네요…!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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