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12월_시_밑]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12월_시_밑]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이소연         이것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악이다 한 떨기 꽃대로 가는 붉은 시간과 여백으로 지워지는 냉의 시간이 선연한 막(膜)을 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음악   얼굴 없이 죽어가는 소녀들을 생각하는 밤, 나는 천천히 죽어갈 꽃잎이 필요하다   품이 큰 잠옷을 입고 강가로 가서 쉽게 찢어지고 쉽게 갈라지고 쉽게 입을 다물고 있는 물속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다   소녀는 소녀로 살기 위해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내 가랑이 밑에서 햇빛 좋아하는 사자(使者)를 부른다   저 물밑 세상으로 건너가고픈[…]

[12월_시_밑]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 2014-12-17
조영한
[11월_단편소설_망] S대

윤오는 천막에 쓰인 글씨들을 읽었다. ‘폐과’, ‘반대’, ‘결사’와 같은 글자들이 가로로 또는 세로로 쓰여 있었다. 글씨는 갓 링에 올라온 레슬러 같은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어딘지 글 모르는 아이가 쓴 낙서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 때면 천막이 부풀면서 글씨들도 바람에 쓸려 어디론가 날아갈 듯했다.

[11월_단편소설_망] S대
/ 2014-11-15
김현
[11월_시_망] 조선 마음 3

  [11월_시_망]     * 조선 마음 3     김현              *   조선은 마사키와 코오우의 명복을 빌었다. 망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이었다. 빛이 들었다. 빛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그림자는 밝았다. 그게 조선의 마음을 작아지게 했고, 작아진 마음 때문에 조선은 작은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명복이란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다.       꿈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만이 와타루를 검은 빛이라고 불렀다. 검은 빛은 배우였고 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은 빛 영화를 보았다. 어려서는 몰래 자라서는 앞과 뒤로 돌려 보았다. 검은 빛은 오랫동안 빛을[…]

[11월_시_망] 조선 마음 3
/ 2014-11-15
[10월_시_멍] 요트의 기분

  [10월_시_멍]     요트의 기분     서윤후               우리는 발 하나 담갔을 뿐인데     웅덩이는 바다가 되어 넘쳐흐르고 있었지     유약한 사람들이 만든 종이 요트 타고     바다를 찢으며, 그렇게 나아갔지       구멍 난 바다를 채우려드는 저 파도에게, 파도가 게을러질 때쯤 우리는 백사장에 선착장 하나 그려놓고선     다음 날이면 지워져 돌아올 수 없는 주소를 가지고 그렇게 바람을 찾아갔단다       맨발을 숨기고 자꾸 손으로 걸으려고 하니까     김 서린 안경을 닦고 돛 끝에 달린     바람개비를 흔들며 안녕!     마중인지 배웅인지 헷갈리는[…]

[10월_시_멍] 요트의 기분
/ 2014-10-15
안희연
[9월_시_무] 상상 밖의 모자들로 가득한

  [9월_시_무]     상상 밖의 모자들로 가득한     안희연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조금씩 기울어지는 시간을 겪고 있다       어쩐지 모험가가 된 것 같아     놀이기구 탄 것 같은데?     야, 내가 오늘 새 신발을 신어서 그래     방안으로 밀려드는 물을 보며 우리는 쉴 새 없이 킥킥거린다       웃음소리     정적     더 큰 웃음소리     정적     시소를 타듯       사실은 너무 무서워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     누군가 구겨진 종이뭉치처럼 툭, 던진 말   *[…]

[9월_시_무] 상상 밖의 모자들로 가득한
/ 2014-09-15
석지연
[8월_시_면]서교동 술집의 마스크들

  [8월_시_면]     서교동 술집의 마스크들*     석지연           콜롬비나Colombina 단 한 번도 빛나는 로맨스는 없었다 나는 하녀근성을 타고나서 양복 차림의 백발노인에겐 자장가를 불러주고 가슴에 파묻히려 들면 팁을 요구하게 돼 치와와처럼 눈을 빤짝이고 썩은 이빨을 드러내며 선생님 같은 분은 안 늙으실 줄 알았는데… 연민은 가난한 웨이트리스가 내오는 디저트일 뿐 당신이 술잔을 엎질러도 에이프런은 내 원피스가 아니다   아를레키노Arlecchino 쉽게 사랑에 빠지는 자는 유머를 압니다 쇼를 벌일 줄 알아요 거울에 머리를 박아 대며 꼽추를 흉내 냅니다 그럴 때 계집애들의 모성이란 제 배를 찌르는 흉기처럼 발휘되지[…]

[8월_시_면]서교동 술집의 마스크들
/ 2014-08-20
정지향
[7월_단편소설_물] 준

삼촌이 가라앉은 곳은 수산물 직판장 근처였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처음 그걸 발견했어. 나는 엄마가 흐느끼는 걸 들으면서 그 풍경을 떠올렸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는, 왜 저기에 누가 부려놓은 것처럼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떠 있나, 하고 바다를 내려다봤을 것 아냐. 어떤 과일은 뜨고 어떤 과일은 가라앉잖아?

[7월_단편소설_물] 준
/ 2014-07-15
이이체
[7월_시_물] 물-집

  [7월 시_물]     물-집     이이체           물은 몸의 쓰라린 자리에 집을 짓는다   슬픔에 수긍하려고 거듭 고개를 주억거렸던 그 아픔의 윤회들   낯선 남녀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랑은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이름을 지워주는 일이었음을   죽은 타인에게 나를 흘릴 수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저 물을 죽일 수만 있다면   울지 마라, 아이야, 울지 말아라 어떤 메마른 섹스도 젖지 않을 수는 없다       작가소개 / 이이체(시인) 198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2008년 《현대시》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7월_시_물] 물-집
/ 201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