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11월 시_불] 불

    불   김승일         동네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신문지랑 쓰레기를 태우고 놀았다 매일 밤 다른 운동장에서 불을 지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불을 피웠다 나랑 어떤 친구 한 명이 주축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게스트였다 캠프파이어 강사가 된 것 같았다 어른들이 와서 불을 끄라고 할 것 같아서 아무도 안 다닐 것 같은 시간에만 불을 피웠다   다른 동네에서 친구들이 왔다 버스 시간 때문에 빨리 가야 돼 그래서 저녁 일곱 시에 집 앞 초등학교에 갔다 로또랑 스포츠 토토 용지랑 신문지로 불을 피웠다 돌돌 말아서 장작처럼 만들어야 돼 그래야[…]

[11월 시_불] 불
/ 2013-11-27
관리자
[11월 단편소설_불] 텅 빈 세계

    가득 찬 텅 빈 세계 – 프로메테우스 후생기(後生記)   하창수             여름이 막바지에 이른 무렵. K일보가 들어 있는 빌딩 커피숍의 창가 자리에 마주 보고 앉은 두 남녀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었다. 여자는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은 채 열심히 떠들고 있었고,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남자는 모양새만 봐서는 얘기를 듣는 건지 졸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에어컨은 적당할 정도로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고 있었고, 실내를 감도는 음악은 잔잔한 피아노곡이었다. 졸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여자는[…]

[11월 단편소설_불] 텅 빈 세계
/ 2013-11-15
김이듬
[11월 에세이_불] 불켜진 창문들

    불 켜진 창문들   김이듬             여기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글이 있어. 그래, 네가 있는 그곳에서 지금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글이 있듯이 말이지.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각이야. 테라스에 나가 무릎을 안고 싸늘한 밤공기를 들이켜본다. 소리 한 점 없어. 저 캄캄한 하늘에 반달이 떴구나. 황금빛 어항 같은 달 속에 투명한 비늘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이니?         #1. 아이오와는 날아가고       나는 투명 비닐 속에 든 금붕어처럼 답답했단다. 입술을 벌려 겨우 숨만 쉬었지. 지난여름의 일이야. 나는 주한미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길고 긴 줄[…]

[11월 에세이_불] 불켜진 창문들
/ 2013-11-15
[10월 산문_변] 그것이 찾아온다

    그것이 찾아온다   변왕중             휘리릭 높아진 가을하늘이 지나고 휑뎅그러한 겨울이 오고 드디어 방학이었다. 나는 눈물을 그림처럼 똑 떨어뜨릴 줄 알던 16살이었고, 온종일 방 안을 뒹굴며 군대 간 주인집 형이 맡긴 책들을 읽고 있었다. 부식거리가 될 게 틀림없으니 네게 맡겨둔다, 라고 그 형이 말했다. 뒹굴뒹굴, 나는 책을 읽었다. 오만가지가 다 나의 일이 아니니 할 일이 그 뿐이라고 생각했다. 뒹굴뒹굴 책을 읽다가 밥을 먹고, 뒹굴뒹굴 소화가 되면 가끔 마루에 나가 앉아 열사의 나라에서 귀국한 후 지방의 공사현장을 전전하며 아파트나 다리나 대학을 짓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거나[…]

[10월 산문_변] 그것이 찾아온다
/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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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단편소설_변] 함선

    함 선   강화길       지난 9년 동안 그의 삶은 작은 원을 그리고 지우는 것을 반복하는 것과 같았다. 이제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 한계에 와 닿았다는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가 안 되는 미련이라는 동그라미. 어느 순간 보면 세 가지 원은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건 두렵지 않았다. 포기 이후의 자신을 상상할 수 없어 겁이 날 뿐이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영이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석 달 후, 영찬의 영화 「함선」은 독립 다큐멘터리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좋은 시기였다. 영찬에게나 여자[…]

[10월 단편소설_변] 함선
/ 2013-10-15
김언(시인)
[10월 시_변] 모기

    모기   김언         지난여름 내내 모기와 싸워야 했지만 가을에도 모기는 나온다 겨울에도 모기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다닌다 이른 봄까지 모기가 죽는 시간은 이제 아무 데도 없는 것 같다 잠깐 사월이 지나가고 오월이 푸르러지고 산에서부터 여름이 내려온다 정화조는 점점 살이 찐다 하수구는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을 모르는 것 같다 어서어서 나갈 준비로 바쁜 태아들이 열 달을 꼬박 채우고 분만실로 들어간다 비릿한 냄새 들큰한 향기가 코를 찌르는 아침이 돌아올 무렵 누군가 배설해 놓은 아이들 틈에서 조금씩 젖이 오른다 울음에 섞여서 소리에 묻혀서 젖먹이는 잠이 든다 기진맥진 한[…]

[10월 시_변] 모기
/ 2013-10-15
[9월_단편소설_밤] 배트맨 [1]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하상훈             부담 갖지 말고 사실대로만 말하면 돼. 우린 다만 자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거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피네타 에번스(19): 아, 네.     (흑인. 호리호리한 체격. 짧게 깎은 머리. 양쪽 귀에 해골 모양 피어싱)       그 자의 생김새에 대해 자네가 본 대로 말해봐.       라몬 노바로(19): 음, 영화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어요. 똑같은데, 생각보다 좀 뚱뚱했던 것 같은데요.     (히스패닉 계. 키가 큼(192cm). 올백 머리에 매부리코)       더듬거리지 말고 확실하게 말해! 정말 뚱뚱한 거[…]

[9월_단편소설_밤] 배트맨
/ 201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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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_에세이_밤] 밤의 메시지

    밤의 메시지   송종원           밤은 불편하다. 무언가를 숨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밤은 어둡지 않은가. 어둠은 무언가를 숨기기 좋은 장막이지 않은가. 하지만 어둠은 눈에 잘 보이는 대상만을 숨긴다.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두울 때 오히려 더 환해진다. 이를테면 은근한 마음의 일렁임. 슬며시 생각이 나서 자꾸만 생각을 하다보면 도무지 왜 이렇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는, 그런 존재로 향하는 마음의 움직임 같은 것. 밤은 그렇게 내 마음을 내가 놓아버리게 한다. 어쩌면 밤은 지구의 자전이 만드는 현상이 아니라 마음의 기능인지도 모른다. 낮 동안에도 밤은 있다. 한 순간 나선처럼 휘어진[…]

[9월_에세이_밤] 밤의 메시지
/ 2013-09-15
[8월_에세이_벽] 푸른 벽 [1]

    푸른 벽   함성호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서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잣대가 하나 있다. 어느 마을에나 오리 바위와 십리 바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바위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아이들의 수영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오리와 십리는 지금 척도로 얘기하면 각각 2킬로미터와 4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다. 물론 그 기준이 되는 지점은 해변이다. 해변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바위가 오리 바위고, 그 보다 먼 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것이 십리 바위다. 그러나 누가 자로 재 본 것도 아니어서 실제로 그 바위가 해변에서 오리나 십리 거리에 있는지는 아무도[…]

[8월_에세이_벽] 푸른 벽
/ 2013-08-27
관리자
[8월_시_벽] 벽

    벽   하재연         뻑뻑해진 몸이 더 이상은 너를 통과할 수 없게 된 그때   어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무해해   저 너머에서 누군가 외쳤다.   내게서 튀어나온 모서리들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던 순간은 어제의 뒤로 간 어제들에게서 시작되었나?   나를 복제한 입자들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이 세계   밀가루 반죽처럼 물렁해진 나의 팔과 다리는 한 덩이로 뒤섞이면서   차츰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되어가고 있었다.          《글틴 웹진》  

[8월_시_벽] 벽
/ 201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