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소설가(2013)
[4월_빛_소설] 뒷면의 우주

아무튼 일단 저 별만 열심히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니까. 온도가 몇 도인지, 구성 성분이 뭔지, 몇 살이나 먹었고 언제 죽을지도 알고. 죽을 때 어떤 식으로 죽을지도 알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이 크기가 얼마고 질량이 얼마고 밀도나 항성에서부터의 거리 같은 것도 다 알 수 있다니까. 그 빛의 성질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직접 안 봐도 그 근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게 엄청 많다고. 딸려 있는 행성에 대해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딸려 있는 행성에 위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4월_빛_소설] 뒷면의 우주
/ 2013-04-15
[4월_빛_시] 어둠과 빛의 춤

일년 중 이틀, 춘분과 추분에만
눈물을 흘리는
‘샤콘느’라는 이름의 노인이 있다.
노인에겐 ‘왈츠’와 ‘마주르카’ 라는 이름의
이란성 쌍둥이 남매가 있었다.

왈츠는 달개비 꽃을 좋아했고
마주르카는 양귀비를 좋아 했다
왈츠는 저녁노을을 좋아했고
마주르카는 무지개를 좋아했다
왈츠는 계란의 흰자를 좋아했고
마주르카는 계란의 노른자를 좋아했다
왈츠는 시를 좋아했고
마주르카는 소설을 좋아했다
왈츠는 진한 커피를 좋아했고
마주르카는 맑은 홍차를 좋아했다

[4월_빛_시] 어둠과 빛의 춤
/ 2013-04-15
김소연 시인(2013)
[3월_봄_에세이]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겨우내 조용하던 골목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봄이 과연 왔나 보다 한다. 아이들은 가장 먼저 봄을 알아채고 골목에 나와서 몰려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놀이의 법칙을 발명해 나가면서 티격태격하다 깔깔대고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도 좀 끼워 줄래 하며 나가 보고 싶어진다.

[3월_봄_에세이]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 2013-03-30
전석순 소설가(2013)
[테마_봄/단편소설] 너무 우아한 나머지

“어때? 선글라스까지 쓰니까 더 우아해 보이지 않아? 부잣집 딸 같지?”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미라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라는 새 옷을 입었을 때도 향수를 뿌릴 때도 새로 산 구두를 처음 신을 때도 나에게 물어왔다. 다른 건 다 양보할 수 있어도 그 말은 끝까지 해주기 싫었다.

[테마_봄/단편소설] 너무 우아한 나머지
/ 2013-03-15
안현미 시인(2013)
[테마_봄/시] 봄

그 봄으로 한 여자가 입장 한다 맨발이다 일순간 일제히 모든 시선들이 여자가 끌고 온 여행 가방의 테두리처럼 상처투성이인 그 발에 주목한다 사위는 적막을 껴입은 듯 고요하다 여행 가방처럼 먼 길을 끌려 다닌 여자의 그림자가 여자를 끌어안고 먼저 쓰러진다

[테마_봄/시] 봄
/ 2013-03-15